용서(容恕/Forgiveness)
容恕(용서)란 사전적 의미로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행동이다. 더 깊은 뜻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통해 의도적이며 공격적인 마음을 가지고 복수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버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용서의 반대말은 憎惡(증오)라고 하는데, 증오보다는 복수(復讐)하는 자세가 훨씬 반대의 뜻이 있을 것 같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故事에서 오로지 용서만이 그 惡(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비이락파사두 (烏飛梨落破蛇頭)
사변위저전석치 (蛇變爲猪轉石雉)
치작엽인욕사저 (雉作獵人欲射猪)
도사위설해원결 (道師爲說解寃結)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져 뱀의 머리가 깨지고
뱀은 멧돼지로 변하여 돌을 굴려 까투리가 죽고
까투리는 사냥꾼이 되어 멧돼지를 쏘려고 하니
도사가 설명하여 원한을 풀어주었네.
이는 1,500년 전 중국에서 佛敎(불교)의 天台宗(천태종)을 集大成
(집대성)하여 중국의 작은 釋迦(석가)라 칭송을 받은 지자대사가 어느
한가한 날 止觀三昧境(지관삼매경/마음을 고요히 하여 진리를 파악하는 경지에 빠짐)에 있을 때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멧돼지를
쫓아오는 사냥꾼을 보고, 獵師(엽사/사냥군)여! 잠깐 내 말을 들어보라 하면서,
배밭의 까마귀가 날아가자 배가 떨어져 그 밑에 똬리를 틀고있던 뱀의 머리에 맞아 뱀이 죽고, 그 뱀은 멧돼지로 변하여 땅을 파다가 돌을 굴려 까마귀에서 還生(환생)한 까투리를 죽게 하고, 까투리는 다시 사냥꾼으로 환생하여 멧돼지를 죽이려 하는 前生(전생)의 악연을 설명해주매 사냥꾼은 그만 활을 꺾어버리고 僧侶(승려)가 되어 도를 닦았다는 데서 나온 故事(고사)의 줄거리로,
現世(현세)에 원한 관계를 전생에 인연으로 생각하고 복수하지 말아야지 다시 복수하게 되면 來世(내세)에 어떤 보복이 올지 모른다는 이야기.
怨恨(원한)에 대한 최대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쟁하다가 44세에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하여 71세에 출옥할 때까지 28년 동안 갖은 고통을 받다가 출옥하여 대통령까지 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의 例를 보면,
집권하자마자 원한을 원한으로 풀지 않고 용서와 화해로 엉클어진 국사를 정리하여 국민과 세계인의 추앙을 받으며 노벨평화상까지 획득한
快擧(쾌거)를 보면 용서란 무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는 우리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도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사랑까진 못해도 용서는
하겠다며”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민주화운동 시절 갖은 박해를 가했던 정적들을
용서하는 정치를 하여 마찬가지로 영예의 노벨평화상을 가져와 본인의 명예는 물론 후진국인 한국을 일약 선진국대열에 올려놓았지 않았던가?
佛家에서도 자비와 용서를 큰 德目(덕목)으로 알고 修行精進
(수행정진/자기가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수행하는 것)
하라고 가르친다.
석가여래의 말씀에 땅은 언제나 자비롭고 용서하며 너그럽다고 갈파하며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거칠거나 허물어뜨리고 짓밟혀도 모든 걸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어머니 같은 大地(대지)를 닮으라고 했다 한다.
無所有(무소유)와 향기로운 삶을 가르친 法禎 스님께서도 법회에서 말씀하길, 인간은 때가 되면 누구나 자기의 日沒(일몰) 앞에 서게 되는데 살아오며 맺힌 것을 모두 풀고 자유롭게 이승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런 뜻에서인지 몰라도 臨終(임종)을 앞둔 이에게 그동안 살아오며
원한 맺힌 게 있으면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받곤 하는 전래의
우리 慣習(관습)이 있는데,
결국에 용서는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며 본인 자신도 그 악연(惡緣)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를 생각해본다.
사회를 구성하는 생활인으로서 살아온 동안 어찌 한두 번 원한 맺힌 게
없을 수 있겠나만, 통상적으로 凡人(범인)이라면 엊그제까지 절친했던
사이가 은퇴 등 처지가 바뀌었다 해서 돌변하여 背恩忘德(배은망덕)하며
背信(배신)하는 행위는 대단히 견디기 힘들어할 일일 것이다.
그런 경우 修養(수양)이 모자란 우리네 張三李四(장삼이사)로 선
힘이 드는 용서를 궁리하다가 스트레스받아 고생하지 말고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무관심으로 응대하면 한결 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2020.6.13.再愚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