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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년 7월 21일~23일
참여한 분: 김대성, 기우현, 이상기, 김영철, 구본황 (총5명)
기타: 2박 3일 패키지 여행(묵호 → 울릉도 → 독도), 참가비 46만 8천
벌써 울릉도 여행이 1년 3개월이나 된 것을 깨닫고 새삼 놀라게 됩니다.
시간이 많이 경과되어 생생한 감흥을 적을 수 없습니다만, 기록면에서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영철 대장이 새벽 4시 15분까지 잠실역에 도착하여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을 하달(?)하였는데, 분당에서 첫출발하는 지하철 시각이 아침 5시 30분 경이니,
비상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날 여행배낭을 꾸리면서 옷가지를 거실 소파에 나란히 내어놓고 일찍 취침한 다음, 새벽 3시에 부리나케 일어나서 여행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3시 30분 살금살금 현관문을 나서면서 푸른콜(성남 콜택시)을 불러 여름 새벽 공기를 가르며 북으로 내달았는데, 다행히 4시 15분 쯤에는 잠실역 4번 출구에 도착하니 다른 분들도 아직 잠에서 탈출하지 못한 얼굴로 롯데관광버스에 올랐고,
4시 30분 경 안개 구름처럼 꾸역꾸역 몰려온 여행객들을 태워 출발할 때는 거의 만차 상태라 은근히 놀랐습니다.
잠실에서 묵호항까지는 대략 3시간 거리인데 새벽 시간이어서인지 7시 경에는 묵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동해시에서 국내선 여객터미널은 묵호항에 있고, 국제선 여객터미널은 동해항에 있습니다.)
(울릉도 항구 마다 육지에서 출항하는 항구가 다릅니다.
사동항 - 묵호, 도동항 - 포항, 저동항 - 강릉)
출항 시간이 9시라, 근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수천식당에 갔는데, 여행객들이 넘쳐나는 속에서 일행 모두 7000원짜리 백반을 시켜서 빈속을 달래니, 비로소 힘이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또한 3시간 거친 파도 속 힘겨운 배멀미와 씨름하기 위해 각자 가져온 멀미약을 복용하였는데, 결국은 기우에 불과하였습니다.
동해 용왕님의 보살핌인지, 거친 날씨로 유명한 동해 바다가 항해 내내 잔잔한 호수 같아서, 우리 일행은 마음껏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울릉도 꿈을 꿀 수 있었는데,
이러한 날씨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이어져서, 배멀미 없이 독도 입도의 감격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탄 배는 하얀색 쾌속선인 <씨스타 1호>였는데, 마치 한 마리 백조 같이
여행객들을 3시간 만에 경쾌하게 사동항에 내려주었습니다. (통구미 마을과 함께 울릉도 최남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동항은 5각형 모양의 울릉도 남동쪽에 위치한 세 항구 중 가장 최근에 건설되었는데(2006년에 1단계 건설공사 완공), 육지와 가장 가깝고(동해시에서 161km, 강릉시에서 178km, 포항시에서 217km) 여객선 접안이 가장 용이하여 미래의 대표적인 항구로 발전될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를 메워 1.2km 활주로 건설하는 공항이 이곳에 2020년 경 완공될 예정이어서 울릉도의 핵심 도시가 될 <왕세자 항구>입니다.
<사동(沙洞)>의 지명유래가 옥 같은 모래가 바닷가에 누워있는 곳(臥玉沙)이니,
개천에서 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배에서 내려 가이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이드는 일행을 인솔하여 울릉도에서 가장 번화가인(인구가 많은) 저동항(옛날 모시풀이 많은 데서 명칭 유래)으로 일행을 인솔해갔습니다.
울릉도는 평지가 없어서 산비탈이 해안까지 돌출해있기 때문에 교통이 무척 불편하고 숙소가 비좁은 것이 여행객들을 가장 힘들게 합니다.
사동항에서 저동항으로 이동할 때에도 산 고개를 넘어 산길로 구불구불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정구역이 1읍 2면으로 되어 있는 울릉도는 72㎢ 면적에 1만 인구인데, 주민들의 보유 자동차 수가 5천 대라고 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집밖에 나가기 힘든 산비탈 지형에서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낯선 고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울릉도는 동해 2천 미터 이상의 심해에서, 200만년 전인 신생대 제4기를 전후 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라 현무암 등으로 형성된 화산체가 대부분 바닷속에 있어서, 울릉도와 44개의 섬 형태로 물 위에 나와 있는 부분은 화산체의 정상부이기 때문에, 대륙붕 위에 형성된 제주도와 달리, 종상화산의 형태를 이루어 산 비탈의 경사가 급하고 평지가 거의 없음. 학자들은 심해에 누워 있는 울릉도, 독도 지역의 화산체 전체 면적은 전라남도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기도 함)
저동항 동해식당에서 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2시 40분 경 집합하여 다시 산구비를 꼬불꼬불 달려 첫번 째 관광지로 내수전 전망대(지명유래: 김내수 농부의 밭이 있었던 곳)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울릉도의 최동단 440m 고지에 있어서 쾌청한 날에는 87km 떨어진 독도도 보인다고 하는데, 이날은 흐려서 살펴볼 수 없었지만 조망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거인 같은 웅장한 산들을 우러러 볼 수 있고, 울릉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더덕캐는 부부가 오손도손 살고 있다는 죽도나 북쪽으로 달리는 말 형상을 하고 있는 북저바위, 그리고 우리가 방금 전 식사했던 저동항을 굽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봉래폭포를 찾았습니다.
저동항 2km 위쪽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가는 길에 천연에어컨 역할을 하는 풍혈이 있어서 땀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비탈 길이었지만 삼나무 숲이 이어져서 지친 발걸음을 상쾌하게 하여 주었는데,
폭포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낙폭이 30m나 되는 3단 폭포인데, 하루 쏟아지는 양이 무려 3천t으로 울릉도 주민의 70%가 이 물을 정화하여 식수로 사용한다고 하니,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산골 색시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씻어내리는 긴 가르마 머리칼처럼, 마냥 곱디고운 모습에 기 선생님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는데,
울릉도의 많은 봉우리 물이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로 흘러내려와서 지하를 관통한 후 다시 용출하여 이 폭포를 이루었다니, 봉래산 신선의 조화가 신비롭기만 하였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울릉도의 금강산을 마음껏 살펴보았으니 이젠 맛집 기행을 할 차례입니다.
당산대형 5용사는 저동항 동쪽 끝까지 쭉 걸어가서 <오징어 회센터>를 찾았습니다.
울릉도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어종이 오징어인데 북한 어장을 중국배가 점령하고 있어서, 이젠 주민들도 오징어를 마음껏 맛보지 못하고 산비탈에 방목하는 약소, 칙소 고기로 대신한다고 하니, 안타까웠습니다.
식당의 위치가 저동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창가이고, 마음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잡어를 듬뿍 보너스로 서비스해주셔서, 포식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숙소인 낙원호텔에 들어가기가 아쉬워서( 명칭은 호텔인데, 역시 울릉도라 모텔 보다 비좁고 수리공사까지 하고 있어서, 비호감이었음) 제방 길을 산책하였습니다.
다소 흐린 날씨라 저녁 노을이 <섬처녀 볼>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는데,
특히 하늘하늘한 맵시로 바다로 달려갈 것만 같은 <촛대바위>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원래는 바다 속 섬이었다는데, 방파제가 생기면서 육지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늙은 아비와 딸이 저동 지역에 살았는데, 바다로 나간 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저동 바닷가에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효녀바위>입니다.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과는 대조가 되는 우리의 아름다운 정서가 숨어있습니다.
산책 후 김대성 고문님의 제안에 이구동성 호응하여 노래방에 가서 동해 바다 섬나라에 꿈결같이 온 감흥을 제대로 즐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용왕님의 신비한 기운이 받쳐주어서인지, 내가 부른 <친구여>는 물론 5가수 모두 다짜고짜 100점씩 받아 어안이벙벙하였는데, 비좁은 숙소에서 모로 자면서도 흐뭇하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울릉도 여행 첫째 날 찾은 항구나 관광명소는 모두 울릉읍에 있는 곳들입니다)
7월 22일(금), 울릉도 여행 2일째인데, 오늘은 울릉도 일주 관광을 하는 날입니다.
6시 30분쯤 기상하여 어제 중식을 한 동해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패키지 상품에 돈을 더 얹어주고 오징어내장탕으로 해장을 하니 어제의 취기가 조금은 진정된 것도 같았습니다.
우리 일행이 미니버스에서 내려 8시 30분 경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면 통구미 마을이었습니다.
울릉도의 최남단에 있는 마을인데, 울릉도에서 하나 뿐인 자연포구 어촌이고 해양수산부에서 아름다운 어촌으로 선정한 명소입니다.
<통구미>라는 이름이 재미있는데, 이곳 명물인 거북바위가 마을 깊숙히 이어진 개울로 기어들어가는 통과 같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합니다.
거북바위 앞에는 청동으로 강치상을 조성해놓았습니다.
울릉도, 독도는 원래 강치(바다사자)의 천국이었는데, 한말, 일제시대 몰지각한 일본인들이 울릉도, 독도의 강치를 남획하여 멸종되었는데, 바다사자가 본래대로 돌아오라는 염원으로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어미 거북과 새끼 거북 모습을 살펴보고, 이렇게 맑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새파랗기만 한 바닷속을 내려다보며 거북바위를 배경으로 하염없이 포토타임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서 마침 썰물 무렵인 것을 활용하여,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로 덮혀 있고 해초가 자리잡아 미끄럽고 위태로운 해안 길로 거북바위 일주 시합을 시작하였는데, 역시 180cm가 넘는 늠름한 체구를 자랑하는 이 선생님이 장원을 차지하였습니다.
거북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서 거북의 모습이 다르고 용암으로 형성된 암질이 다양한데다 주변 암벽 산이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향나무 자생지라, 관광객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고 있어서,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터널을 지나 서쪽으로 남양항을 지나가는데, 흔들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곳이 옛날 우산국의 수도였는데, 신라군이 우산국 군대가 바위 폭탄을 퍼붓는 관계로 패전을 거듭하자 이사부 장군이 나무사자들을 싣고 와서 항복시켰다.
앞에 보이는 투구봉이 마지막 왕이었던 우해왕의 투구이고 사자바위가 그 시절의 나무사자가 바위로 변한 것이다.>
9시 10분쯤 울릉도 최서단 마을인 태하리에 두번 째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황토를 공납했다는 황토굴이 유명한데, 황토가 9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황토구미 마을>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명물은 태하등대로 이어주는 모노레일이고, 이것을 타면 산 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가설한 케이블카를 만날 수 있으며, 큰 바람이 불면 단번에 육지까지 배를 보내준다는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구멍바위, <대풍감>을 건너다볼 수 있다는데, 우리 팀은 일정상 눈으로만 모노레일이 운행하는 것을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울릉도는 태풍 등으로 인한 거센 해일과 무너지기 쉬운 화산암 지형으로 인해 해안도로가 자주 유실되고 낙석 피해가 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데군데 도로를 터널로 보호해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통난의 불편함이 있지만, 주민들은 가장 맑은 공기 속에서 어디서나 청정수와 약초를 맛볼 수 있는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주었습니다.
(3무5다의 섬: 도둑, 공해, 뱀이 없고, 물, 돌, 바람, 향나무, 미인이 많음)
남쪽 얼굴, 서쪽 얼굴을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야하겠지요.
산길을 굽이 돌아 북면을 찾아가는데, 이곳에서 우리 일행이 첫번 째로 찾은 곳이 현포리에 위치한 예림원입니다.
노인봉 옆에 위치한, 울릉도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식물원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문자조각공원 등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정원, 희귀 식물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동해 바다를 굽어보는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또한 부근에 있는 평리 마을은 7080세시봉 가수로 유명한 이장희씨의 <울릉천국>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오랜 시절 세계를 주유했던 이씨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지었다는 가옥과 연못, 노래비, 정자, 세시봉 가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기둥들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차창 밖으로 멀리서 눈요기만 하고 지나쳐갔습니다.
다음에 해안도로 동쪽 추산항 방면으로 이동하여 올라간 곳이 나리에 위치한 성불사입니다.
2002년에 독도 수호의 염원을 담아 울릉주민과 조계종 불자들이 조성한 사찰인데,
달라이라마가 기증한 부처님 사리가 안치된 약사여래부처님이 대웅전 대신 독도를 향해 수호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괴도 루팡의 종횡무진 활약을 그린 <기암성>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날카롭기 짝이 없는 송곳봉(해발 420m)을 지척에서 올려다 볼 수 있습니다.
송곳봉의 씩씩한 기운을 담아 솟아오르는 용천수로 가슴을 씻으면서 송곳바위 구멍에 숨어 있는 옥황상제 전설 이야기(정상 구멍을 통해 울릉 주민들을 구원)를 귓가에 흘리다 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공암(코끼리 바위)이 동감이라는 듯 껄껄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1시가 지나가니 슬며서 뱃속이 허전해졌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여정으로 나리 분지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나리분지는 북면 나리의 해발 500m 산간에 위치한 울릉도에 다시 없는 평지 지역입니다.
한말 개척민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서 섬말나리의 뿌리를 캐서 연명하였다고 하여
<나리>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1만 9천년~5천 6백년 전 화산 활동으로 칼데라가 함몰되어 평평하게 형성되었고 그 면적이 서울 여의도와 비슷한 2㎢ 가량인데, 바닥 암석층이 부석이나 화산재 퇴적물로 물이 쉽게 빠져나가서 논농사가 불가능하므로, 현재는 13가구에 이르는 주민만이 남아서 명이나물, 부지깽이 나물, 더덕, 취 같은 산나물과 감자,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패키지 일행은 도동(울릉군청이 있는 행정 중심지, 옛날 도방청에서 명칭 유래)에 있는 식당에 점심 예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점심 시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투막집 견학이나 성인봉 산행 등 설레며 찾아가보고 싶은 일정들을 모두 생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패키지 여행의 단점)
당산대형 5용사는 구름 장벽에 막혀 주변 산조차 제대로 조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막걸리와 산나물로 달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북쪽 해안도로는 북동쪽 끝에 있는 북면 천부리 섬목(석포와 함께 울릉도 최북단이며, 울릉도의 목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데서 명칭 유래)에서 막혀 있기 때문에(울릉도 일주도로 44.2km 구간 중 섬목 - 내수전 4.4km가 미개통, 울릉도 중앙부는 성인봉 등 가파른 고산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제주도처럼 남북을 연결하는 종단도로가 없음) 차는 아침부터 온 해안 길을 다시 빙빙 돌아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서 도동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고 예약된 식당에서 역시 이 고장의 별미라는 <따개비 칼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알뜰한 김영철 대장은 다른 패키지 일행과 달리 선택관광으로 별도의 경비지출이 요구되는 유람선 투어를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산대형 5용사는 가이드나 다른 일행과 헤어졌는데, 오후 가장 더운 시간에 성인봉 등정은 무리라 판단하여 내일 아침에 결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서로 상의한 끝에 울릉도의 주요 교통수단인 대형택시편으로 숙소(낙원호텔)가 있는 저동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명소인 행남해안도로(살구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명칭 유래, 2.6km 거리)를 산책하게 되었습니다.(당연히 울릉읍에 있는 곳입니다)
촛대바위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천연동굴이 있는 해안절벽을 올려다보고 아스라이 손짓하는 섬들을 손짓하면서 오르내리다 보니 골짜기를 연결하는 예쁜 다리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낙석 사고로 도중에 철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도동항까지는 완주하지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일행은 늦은 시간까지 저동항 방파제를 오가면서 항구 너머 그림 같이 펼쳐진 저동 마을 정경을 건너다 보고 갈매기 춤사위 너머 부르는 주변 섬들과 대화하면서 산책하다 보니 둘째 날이 저물어갔습니다.
그런데 성인봉이 숨어 있을 북쪽의 웅장한 산봉우리들은 구름에 가려 있어서,
내일 산행이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었습니다.
7월 23일(토), 여행 3일째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성인봉 등정, 독도 입도 등 숨가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서,
우리 일행은 새벽 시간인 5시 15분에 기상하여 바삐바삐 도동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어제 미리 가이드에게 오늘 오전에 우리 팀은 유료 선택관광인 죽도 관광을 포기하고 독자적으로 성인봉 등정을 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에, 패키지 일행 모두 참여하는 독도 입도를 위한 집합시간 12시 30분까지 도동에 돌아와야합니다.
등대식당에서 백합내장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역시 1만원을 주고 대형택시를 이용하여 KBS 중계소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갈래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우리 팀은 보다 경사가 완만하다는 사동코스로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정상까지 3.8km 거리, 왕복 4시간 소요)
7시 20분 경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여름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려니 더위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10분도 못되어 기선생님은 옷을 벗느라고 발걸음을 멈추는데 다른 팀들이 꼬리를 물고 올라와서 혼잡하여, 혼자 앞서서 전진하였습니다.
산의 경사가 심하여 등산로는 나선형 흙길로 이어지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후덥지근하고 상록수 숲이 주변을 가득 에워싸서 주위 조망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도를 닦는 심정으로 묵묵히 발길을 내딛으니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완경사 코스를 선택하여 올라가니 초로의 부부가 서로 격려하며 멋진 그림같이 걸어가고 있어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팔각정 정자가 나타나면서 두 길이 다시 합쳐지는데, 급경사 코스는 된비알이어서 이 코스로 우리 일행이 오르면 고생하겠다 슬며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상 아래 쉼터에서 대화해보니, 실제로 급경사로 오르다가 무척 고전하였다 함)
팔각정에서 정상까지는 1.3km인데, 무더위 속에서 나무 계단을 2번씩 통과하면서
9시 15분 경 마침내 성인봉을 등정하였는데,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는 정상 지역은 비좁고 뙤약볕이 내리쬐어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뒤따라온 부부팀과 서로 축하하며 포토타임을 가졌는데, 청명한 날씨에도 뭉게구름이 산 7부능선을 감싸고 있어서 울릉도 마을이나 바다를 눈에 담지 못하였지만,
항상 구름, 안개가 감싸고 있다는 신령스러운 산에 올라 신비한 구름과 파도 같이 용솟음치는 산봉우리, 신선의 부채 같은 마가목 숲을 가슴 가득 담을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울릉도의 울릉읍, 서면, 북면 등 모든 행정구역이 합쳐지는 성인봉은 1년 중 300일 이상 항상 안개, 구름에 가려 있고, 신령스러운 사람 같다하여 <성인봉>이라 부른다고 함, 해발고도는 986m이나 대륙붕 위에 자리잡은 한라산이나 육지의 백두산과 달리 동해바다 2500m 심해바다 위에 솟아 있어서 사실은 대한민국 최고봉이라 부를 수도 있음)
숲 그늘이 있는 정상 아래 쉼터로 도로 내려와서 당산대형 용사들을 기다리니, 중년 부부가 허위허위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너무 힘겨웠던지, 체면 불구하고 내가 손에 들고 있는 포카리 음료를 나누어달라고 사정하여 병째로 드리니, 거듭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
20분이 지나가니 우리 일행이 하나 둘 도착하였는데, 나도 같이 올라가서 함께 포토타임을 갖자고 제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힘겨운 등산 후 꿀맛 휴식을 즐기고 있던 참이라, 웃으면서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관심이 많은 기선생님은 정상을 지난 지점에 전망대가 있었다면서,
북동쪽 알봉분지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감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산대형 산사나이들은 쉼터에서 정상주를 나누며 간식 타임을 갖고 9시 50분쯤 하산을 시작하여 11시 20분 경 KBS중계소에서 미리 연락해 둔 택시를 타고 하산을 완료하였습니다.
11시 40분, 도동의 한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꿀맛 같은 중식을 즐기면서 다시 한 번 등정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다른 패키지 일행을 만나는 시간까지는 50분 가량의 여유가 있어서 이선생님과 함께 근처 농협마트를 찾았습니다.
이선생님의 예상처럼,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 매점 보다는 물건 값이 저렴하여,
가족들이 좋아할 명이나물 장아찌를 싼값으로 구매하여 들고 나오니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저동 농협에서 부지깽이 나물, 호박젤리를 샀습니다)
가이드와 약속한 12시 30분쯤, 흩어졌던 패키지 일행 전체가 다시 뭉쳐서 롯데관광 미니버스를 타고 첫째 날과는 역코스로 산길을 구불구불 달려서 사동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1시 10분경, 육지에서 우리를 섬 나라로 인도했던 씨스타 1호, 쾌속선을 타고 독도를 향해 출발하니, 한편으로는 거친 파도로 배멀미에 시달릴 것 같아서 긴장도 되고 (배멀미약 복용)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최동단에 가서 여행을 마무리한다는 설레임이 밀려오기도 하였습니다.
2시 40분쯤, 예상과는 달리 잔잔한 호수 같은 87km 해면을 미끄러지듯 1시간 30분만에 달려서 마침내 독도 연해에 도착하였는데, 쾌속선이기 때문에 선실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독도 모습을 한시바삐 카메라에 담기 위해 승객들이 우루루 선창 근처로 몰려가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속해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서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고, 울릉도 동남쪽 87.4km 해상, 동경 131도 52분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입니다.
당산대형 벗들은 재작년에 백령도를 여행하여 북한 지역을 제외한 최서단을 다녀왔으며(가거도, 홍도 보다 백령도가 최서단), 작년 독도 입도로 최동단에 발길을 내딛는 감격을 맛보았고, 올해에는 마라도에서 최남단 여행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독도의 총면적은 187,554㎡로 151m 물길을 사이에 두고 동도(해발고도 98.6m, 면적 73,297㎡, 독도경비대가 거주)와 서도(해발고도 168.5m, 면적 88,740㎡, 동도와 달리 식수가 용출하고, 독도 이장 김성도씨 부부가 실제 거주)로 나뉘어져 있고 주변에는 89개의 바위 섬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울릉도와 같이 동해 심해해저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는데, 형성 시기가 울릉도 보다 훨씬 오래되어(최종 화산 활동 250만년 전) 해면 위로 나온 화산체가 대부분 침식되어서 섬 면적이 울릉도의 1/400에 불과하나, 수심 200~300m 아래에 있는 정상부의 평지 면적은 울릉도의 6배에 해당하는 412㎢로 측정되어 경제적 가치가 높습니다.
울릉도, 독도의 해저 지형에는 미래의 에너지 자원이라 불리는 <하이드레이트>가
6억t이나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독도는 울릉도 대부분 지역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데 비하여,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오키섬에서는 157km나 떨어져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섬입니다.
우리나라 기록에 독도는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독도)라는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나고 대한제국 정부가 1900년 칙령 제41호로 영토 관할하였는데,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여 독도로 어민 출항을 금지해 오다가, 러일전쟁 중 전쟁 승리를 위해 영토편입을 단행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최고사령부 지령 677호로 다시 우리 영토로 회복한 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6.25전쟁 중에도 독도 침탈을 노리는 일본 순시선, 어선을 물리치면서 독도를 지켜왔습니다.
2시 50분쯤 입도가 가능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통편이 불편하기 그지 없는 울릉도에 찾아오기도 어렵거니와, 울릉도 바다 보다 더 큰 파도가 밀려오는 독도까지 와서 결국 입도를 못하고 주변만 빙빙돌다가 돌아가는 관광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마침 우리 배에는 독도경비대 위문활동을 온 한국해양소년단 소년, 소녀들이 단체로 탑승하였는데 입도 후 경비대 의경 형, 오빠들이 도열한 가운데 음악 연주를 하고 함성을 지르며 위문 행사를 하여서, 섬 나라에 활기가 넘치고 바라보는 우리 일행도 뿌듯하기만 하였습니다.
독도는 전체 섬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참으로 신비한 경치가 곳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코끼리 모양 바위, 촛대 모양 바위 등이 제각기 개성 있는 자태를 자랑하고,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 아래 괭이갈매기들이 재미있다는 듯 우리 일행을 내려다보는데, 가마우지는 푸르른 수면 위로 아슬아슬하게 비행 실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430여명의 낯선 객들이 좁은 동도 섬 입구를 메우고 장터같이 북적거리는 속에
(다른 지역은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도 정신 없이 카메라를 누르며 입도의 기쁨을 함께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가족, 학생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흐뭇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독도야, 걱정마>란 플래카드를 든 자녀의 모습을 기념 사진으로 담아주는가 하면, 어린 학생들이 경비대 형, 오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라사랑 체험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언제까지나 들떠서 대한민국 영토 수호를 위한 최동단 전장터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씨스타 백조는 3시 10분 경, 아직도 감격을 못다누른 4백 넘는 식구들을 꼭꼭 챙긴 다음 독도를 출발하여 역시 1시간 30분 만에 사동항으로 돌아왔습니다.
6시 묵호항으로 출항하는 배(독도 다녀온 씨스타 1호)를 기다리며 컵라면으로 석식을 대신하고, 다시 백조의 품에 안겨 돌아오면서 어둠 속에서 오징어배 불빛을 바라보노라니, 신의 선물로 누린 성인봉 등정 모습과 독도 입도의 함성이 여름 날의 그리운 꿈마당처럼 하염없이 길손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7월 울릉도 여행
구 본 황
여름날 흰 고니 타고 동해바다 건너니
봉래신선 간 곳 없고 폭포만이 남아서,
길손 땀방울 씻어주었네
송곳바위는 바다 건너 기암성 이야기 속삭여주고,
거북바위는 바위 폭탄 쏟아지던
우산국 설화 들려주는데
안개구름 잠긴 성인봉
허위허위 기어오르니
마가목 너머 흰 구름은 어서 오라 손짓하고,
갈매기 가마우지 반기는 독도 찾아가니,
태극기 펄럭이는 푸른 하늘 아득히
고운 님 웃음소리 메아리쳤네
첫댓글 작년 7월 여행 후 여행기 작성을 위한 메모까지 해 놓았습니다만, 정신없이 소중한 시간들을 흘려보내며 살다 보니, 올해 10월에 와서야 겨우 붓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해온 것처럼, 여행 다녀온 시간이 오래 경과되었고, 울릉도, 독도에 관한 지식이 빈약한 관계로 치열한 고증이 필요하여, 글쓰기가 지지부진하기만 하였습니다.
10월 6일 시작하여 거의 일주일 만에 부족하나마 마무리하게 되니,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듯 뿌듯한 기쁨이 느껴집니다.
더운 계절 고생하면서 울릉도 여행의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든 <당산대형 5용사>에게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울릉도 및 독도 여행지에서 보고 들었던 지명은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글을 읽으며 그 감동을 되살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대 공유했던 체험이 지금도 값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