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2년 가까운 유럽ㆍ소련 등지에서의 외교활동을 통해 이론과 현실을 스스로의 눈으로 직시하게 되었다. 아울러 일본유학, 대동단결선언・대한독립선언서 등에서 쌓은 지적인 능력과 판단, 그리고 예리한 정세분석 등을 통해 <김상옥전(金相玉傳, 1925)>을 비롯하여 <한국지현상급기혁명추세(韓國之現狀及其革命趨勢, 1930)>ㆍ<한국독립당지근상(韓國獨立黨之近像, 1931)>, 임정의 외교문서, 독립신문의 논설ㆍ논문, 각종 기념일에 발표한 선언문 등 광복 의지를 구현하는 창조적이며 혁명적인 문필활동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1920년대 후반 삼균주의 사상을 창안 해낼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 초반 삼균주의 개념의 제시, 1930년대 중반에는 그 이념체계가 확립되었다.
1922년 1월 상해에 돌아와 중국국민당 간부 장계(張繼)의 초청으로 손문과 회담한 선생은 삼균주의로 관심을 깊게 해가는 한편, <발해경(渤海經, 1922)> 이후 <한국문원(韓國文苑, 1929)>ㆍ<유방집(遺芳集, 1932)>ㆍ<화랑열전(花郞列傳, 1933)>ㆍ<대성원효전(大聖元曉傳, 1933)>ㆍ<이순신귀선지연구(李舜臣龜船之硏究, 1934)> 등을 계속 집필하였다. 이는 모두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것이며, 민족문화의 독창성과 우수함을 강조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동시에 민족적 단결을 부르짖는 내용이었다. 이어 6월에 임정의정원에서 경기도 의원으로 선출되고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선임 되었다. 곧 외무총장에 취임한 선생은 중국 국민당정부와의 원조와 한ㆍ중 공동전선의 모색에 힘썼다. 또한 김상옥을 국내에 밀파하여 의거케 하고, 1928년에는 장개석(蔣介石)을 설득하여 김좌진에게 무기를 제공케 하였다. 1931년 말부터 선생은 김구ㆍ이동녕ㆍ조완구ㆍ김철 등 5인의 모의로 1932년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일으키게 하였다.
이에 앞서 선생은 1927년에 국내에서 신간회(新幹會)가 성립되자, 이에 호응하여 11월 상해에서 한국유일독립당촉성회를 결성하고 그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임정 수립 후 처음의 민족세력통합운동이었으나, 좌우익의 대립심화로 민족대당은 결성하지 못하고 1930년 1월 이동녕ㆍ김구ㆍ이시영 등 임정 요인을 포함한 28명과 함께 상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였다. 이때 선생은 당의ㆍ당강을 작성하였는데, 선생의 삼균주의 사상이 공식 반영되어 여기에서 ‘태극기민족혁명론’을 제창하고 적기혁명론을 배격하였다. 즉 당의는 “국토와 주권을 완전히 광복해서 정치ㆍ경제ㆍ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신민주국가를 건설하고, 안으로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하고, 밖으로는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세계일가의 진로로 향한다.”라고 하였다. 당강은 보통선거의 참정권과 기본권 보장, 토지 및 대생산기관의 국유화에 의한 생활권의 평등화, 국비의무교육에 의한 교육권의 평등화, 또한 민족자결과 국제평등, 세계일가의 조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후 임정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실상 임정의 집권당이었다. 그리고 인류, 민족, 국가는 정치ㆍ경제ㆍ교육의 삼평(三平)을 획득하며 서로 공생해야 된다는 삼평사(三平社)를 조직하고 잡지 《평론(平論)》까지 간행케 하였다.
한편 삼균주의가 임정 차원에서 처음 개진된 것은 1931년 4월부터이다. 선생이 삼균주의 이론체계를 정립한 임정의 <대외선언>을 기초ㆍ작성하여 재중독립운동자 전원에게 배포하였으며, 또 5월에는 남경에서 개최된 중국 국민당정부의 국민회의에 제출하였다. 이 대외선언서에서 삼균주의는 한국독립당과 임정의 정치이념으로 채택 수용되고, 그 체계가 정립되었다는 임정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또한 1934년 1월 한국독립당의 기관지 《진광(震光)》을 발간하여 <민족문제연구>와 <각국혁명운동사요> 등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선생은 그 해 11월 임정국무위원회에서 삼균제도를 국시로 채택한 대한민국건국강령을 기초하고 이를 결의에 의해서 통과하게 하였다. 삼균주의를 정리해보면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는 평등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이를 위해서 개인 차원에서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 필요하다. 민족 차원에서는 자결주의가 필요하며, 국가 차원에서는 제국주의가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