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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스크랩 고려와 송의 힘의 차이
라이센스 추천 0 조회 962 07.10.19 20:41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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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0.19 20:46

    첫댓글 저도 고려가 군사적 강국이였다는 점에서 공감합니다 고려는 우리역사상 가장많은 군대로 정벌활동을 했으니...

  • 07.10.20 00:09

    고려는 군사강국임에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송나라에서 고려의 수도 개경에 사신을 보낼 떄 주화선 (중국역사상 딱 두 번 만든 배)을 파견했을 만큼 송나라 에게 고려는 대단히 중요한 외교국이었습니다. 또한 고려의 수도 개경은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표현한 것 처럼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특히 회정전은 그야말로 으뜸이었다 라고 써 놨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황제국을 대외에 천명했으며 회정전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5개였으며(5개는 황제국만 가능함) 개경에는 곳곳에 사찰과 두 집 건너 한 채씩 2층 집이 있을 만큼 고려의 개경은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 07.10.20 00:12

    이런 고려가 망하고 고려의 하이테크놀로지 군사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조선은 그 기술을 제대로 발전 시키지도 못하고 제대로 운영하지도 못해서 16세기 임진왜란 때 그야말로 오합지졸로 변해버렸습니다. 조선이 고려의 하이테크놀로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고 국방을 튼튼히 했다면 역사적 비극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려가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참 궁금합니다.

  • 07.10.20 00:21

    기본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여기서 후삼국에 이어 고려시대로까지 상무정신이 이어지죠.. 문제는 이놈의 유교, 특히 성리학이라는 놈이 이 상무정신과 상극으로 부딪치는 꼴이 되다 보니, 성리학 받들어 무(武)를 억제하는 여러가지 정치 시스템이 확립되면서 우리 민족 전통의 상무정신마저 희석시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 시대 군사력을 보면 참 여러가지 발전할 만한 퍼텐셜은 많은데도 정작 윗분들의 정치 코드 때문에 저 정도밖에 발전을 못 시키나 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 07.10.20 04:12

    그러나 요나라에게 있어서 주전선은 송나라의 전선이 아닌가요? 즉 주력군을 송전선에 배치했기 때문에 고려를 칠때는 비주력군이 더 많았던것이 아닐까요? 그냥 저의 추측이지만요. 또한 조선초기 태종과 세종, 세조등은 국방강화에 힘을 썼으며, 소위 신진사대부들 역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과 그의측근들을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의 모든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한것은 역시나 사림의 등장과 중종반정이 아닐까요? 막강 왕권의 추락과 첫번째 개혁시기를 놓친점... 그뒤 조선은 완전히 몽상가, 학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정치는 정치가 해야하는것이죠. 학자가 하는것이 아니죠.

  • 07.10.20 04:16

    그뒤 겨우 버티고 있던 조선의 시스템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임진왜란.... 인조반정과 두번째 개혁시기를 놓친점.......시스템이 서서히 복구되고, 왕권도 어느정도 강화가 되고, 실학을 기본으로 하는 실학파들의 등장과 정조의 마지막개혁... 그러나 이것도 실패로 조선은 3번의 개혁시기를 전부다 날려버렸습니다. 그후 얼마안되서 서양에선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죠... 쩝... 몽상가와 학자가 다스린 조선엔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안일어날 수 있었던 전쟁이었지만 몽상가들과 학자들때문에 일어나고 말죠.

  • 07.10.20 10:30

    저는 고려와의 전쟁때는 2선급군대가 더 많았을거라는 추모왕님의견에 찬성하지 못하겠습니다 1차전때는 추모왕님의 의견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2차전에는 요의 황제 성종이 친정한 전쟁이었습니다 황제가 친정하는군대가 2선급군대라고 볼순없죠 3차전에 투입된 10만도 여진족이나 한족군같은 2선3선급부대가 아닌 거란족으로 구성된 요의 최정예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 귀주에서 강감찬에게 요군의 중추역활을 하던 10만대군이 전멸당하고 나서 요군의 군사력은 급속히 약해졌다고 봅니다

  • 07.10.21 23:28

    뭐 비주력군 이야기는 그냥 저의 추측에 불과하죠^^;;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신단수님의 말씀이 맞는것 같습니다. 귀주대첩도 책에는 쉽게 써있지만 천천히 보면 상당히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귀주회전을 보면 밀리밀리는 전투를 전개하죠. 그러다가 후방에서 도성을 수비하던 부사령관이 군대를 이끌고 오면서 전쟁향방은 끝나니깐요. 계속해서 힘들게 개경까지 진격했다가 사기가 떨어진 후에 퇴각하면서 강감찬 장군과 맞선 요나라 군대는 상당히 선전을 했으며, 치열한 전투를 행하였습니다. 후방에 있던 군대가 오지 않았다면 전투의 향방은 알 수 없었겠죠.^^ 물런 그 후방군대도 강장군님의 계산에 있었겠찌만요^^;;

  • 07.10.20 06:49

    음.. 이 글 쓰는 분께서는 송나라의 군사력을 너무 무시하거나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군요. 송대 운용되던 정규병력은 120만에 달하고 이 시대에 전근대 중국 군사과학 기술이 사실상 완성되는 전성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병력 운용에 필요한 철강 생산능력은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철강생산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수치를 따지고 보면 요나라도 상대가 안됩니다만 송이 항상 깨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려는 대체로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병력에 의존하는 대신 송의 군 병력은 주로 도시 부랑자나 하층민에 대한 복지 정책과 연계되어 군사력 운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07.10.20 06:53

    때문에 군 병력의 전문화가 되지 못했고 그 때문에 덩치는 크지만 재정만 많이 잡아먹는 허약한 군대가 되었던 겁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종 군사 무기의 개발과 활용이 급속도로 일어났던 거구요. 그래서 요가 유목 기마대와 한족 병사로 구성된 80만 대군을 보유하고도 끝내 송을 멸하지 못한 것은 고려나 서하의 견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송이 가진 군사력 또한 그렇게 약하지 않아ㄸ나는 반증이기 되기도 합니다. 송대에 개발되거나 개량된 무기에는 화약무기 종류(화포, 화창)와 노포(신비궁, 제갈노)가 개발되었는데 주로 유목 기마대를 상대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 07.10.20 06:57

    그리고 고려가 거란에게 강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지형지물에 의존한 결과라고 봐야합니다.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왔을 때 개경 근처까지 함락 당하고도 멸하지 않은 것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홍화진에 주둔한 고려군이 거란군의 보급로를 차단한게 주효한 결과였고 이후 전쟁에서도 요는 고려군보다 소수의 병력으로 고려를 침공하여 북변을 유린했습니다.(소손녕 때의 80만 대군은 대체로 허구로 보는 학자가 많으며, 소배압의 경우 강감찬은 10만 거란군을 20만 대군으로 포위 격파했음) 따라서 고려의 군사력을 일방적으로 송보다 더 강한 군사국가였다라고 보는 건 오히려 사실을 호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07.10.20 20:12

    고구려와 백제가 강성할때 군사가 100만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걸로 압니다만.. 30만이 아니고 말입니다.

  • 08.01.26 21:12

    심계의한님의 말씀은 좀 잘못된것 같습니다...비록 고려에서는 무과가 없었지만 그것은 고려인들 스스로가 평소에 무예수련을 즐겨한 숭무사상이 강한 나라였기때문입니다...강감찬이나 윤관같은 분들을 보아도 어린시절부터 문과 무에 다 뛰어난 분들이었고 전쟁에 참여했던 문관들도 대부분 문무를 겸비한 인물들이었습니다...게다가 고려는 조선에 비해 신분이동이 자유로운 나라였습니다...천민출신의 이의민같은 이는 그 능력만으로 장군이 되었으니까요...이러한 사회분위기와 대외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던 고려는 군사강국이었습니다...

  • 08.01.26 21:14

    그리고 임란당시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병항쟁의 지도자들은 유생이 많았고 그분들은 모두 문무를 겸비한 분들이었습니다... 조선초기는 이러한 고려의 정신을 이어받아 문무가 고루 발전하였지만 점점 문치주의로 변질되어간 것입니다...

  • 08.01.26 22:37

    고려가 문치주의 국가...? 사병들을 이끌던 귀족 호족들의 군사 지휘력이나.. 그런 귀족출신인 고려의 정치가들은 모두 문무를 소화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전쟁을 문관이 소화했다고 이를 조선시대와 동일시 여겨서 이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문관들은 모두가 뛰어난 사령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천재적 정치가인 정도전만 하더라도 전선에서 여진족 때려잡던 분이십니다. 문무를 결합해서 여겼으나 중국의 제도를 상당히 받아들였던 덕분에 문무의 구분이 없어졌음에도 무신들이 따로 존재했던 기이한 형태의 고려 제도 덕분에 무신정권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조선이 초기부터 군사력이 약

  • 08.01.26 22:39

    했던 나라였다고 여기진 않습니다만.. 고려를 문치지향국가였다고 여기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자체에 대한 제 개인적 소견은 송나라의 국력을 군사력에 한정짓는다면.. 군사편제에 중대한 문제점이 존재했던 송나라가 좋은 국력이라고 받아들이긴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송나라의 실질적인 국력은 고려보다 훨씬 뛰어났던게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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