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장길산, 임꺽정, 명화적 심지어 일지매까지 조선시대의 도적과 그 무리를 다룬 이야기는 박진감이 넘치며 꽤 재미있다. 예전에는 책에서만 그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TV 드라마는 물론 영화에서까지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조선시대의 도적 이야기, 지리산 추설을 다룬 영화다.
개봉하자마자 2014년 하루 최다 관객 수 기록을 경신하면서 흥행몰이를 달리는 중이다. 부정 축재한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빼앗은 재물로 어려운 백성을 돕기 때문에 도적들은 백성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됐다. 그러다 보니 모두 다 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이번 영화 군도는 무리의 우두머리보다는 무리 전체에다 초점을 두었다.
메가폰을 잡은 윤종빈 감독은 1862년(철종 13년)은 실제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민란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던 시기이어서 그 해를 민란의 해라고 부르기도 했다면서 그 시대에 있었던 도적떼가 중요하기에 그런 시대적 상황을 알고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민란의 시대를 부제로 붙였다고 소회했다.
선전적이며 선동적으로 연출
윤 감독은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일단 심장이 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윤종빈 감독은 상당히 남 다르다. 2005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첫 선을 보이면서 <비스티 보이즈>,<범죄와 전쟁>을 연출했다. 가끔 영화에 직접 출연하거나 카메오 경험도 있는데 특히 영화 <베를린>에서 국정원 현장분석관을 연기했다.
남자 호스티스, 조직 폭력배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소재로 삼아 연출했던 윤 감독의 세상보는 눈은 달라보인다.
그렇다 보니 영화 <군도>에서 탐관오리에서 백성들에게 착취한 쌀을 지리산 추설패가 백성들에게 쌀 가마니를 공중으로 던져 나눠주고 백성들은 서로 쌀 가마니를 챙길려고 싸우는 장면은 무척이나 선전적이며 선동적이었다.
마치 1943년 2월 18일, 선전 선동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나치의 요제프 괴벨스가 스포츠궁전에서 "독일 국민 여러분, 전쟁을 원하십니까? 더욱 더 혹독한 전쟁을 치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외칠 때마다 전원 모두 박수를 치며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고, 모두 "네"라고 대답하면서 나치식 경례로 괴벨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호응하는 장면이 연상게 되었다.
추설패가 나주 목사의 목을 베고 쌀가마니를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목격한 돌무치(하정우)의 눈빛과 표정은 그 무리와 언젠가는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동참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
사실 조선시대의 도적떼가 모두 의적은 아니었다.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어려운 백성을 도운 무리도 있었지만 지극히 소수였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체제에서 탈락한 이들을 모아 무리를 이끌고 체제에 대해 저항하다 보니 백성들에겐 한 줄기 희망처럼 보였을 것이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보다 부패하고 무능한 왕조였다.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한 19세기에 이르러 민란으로 번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명종실록에서는 “도적의 무리 가운데는 하루라도 연명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저들은 도적질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굶주림이 절박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럼 백성을 도적으로 만든 자는 누구입니까? 세도가의 문전에서는 공공연히 벼슬을 팔고, 무도한 자들을 지방수령으로 보내 백성을 약탈하게 합니다. 백성이 도적이 되지 않고 어찌 살겠습니까?”라고 적혀 있다. 그러다보니 탐관오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엔 결국 뭉치면 도적, 흩어지면 백성인 셈이다.
공산사회의 원형인 패륜, 가족파괴, 약탈경제, 공동분배....
영화 <군도>는 공산사회의 원형을 제대로 보여줬다. 나주 최대 부호인 조대감 서자인 조윤(강동원)은 조선 최고의 검술을 자랑하는 무관이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출세하지 못해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결국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가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동생의 부인과 동생 자식을 죽이려 했다. 마지막에서 아버지의 목을 조르면서 극악무도한 패륜의 모습을 보여줬다. 추설의 우두머리 노사장(이성민)은 “우리는 모두 이 땅의 하늘 아래, 한 형제요. 한 자매다”라고 가족보다는 공동체의 단합을 목소리 높여 가족을 파괴했다.
지리산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무리들이 생존을 위해서 지나가는 양반의 물건을 빼앗아 약탈 경제 행위를 일삼았다. 자체 생산하기 보다는 남의 것을 빼앗아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득물이나 생산물에 대해서는 공평하게 분배했다. 그들은 공동 생산, 공동 약탈, 공동 분배가 원칙이다. 가족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는 사회를 공산사회라 하고 추구하는 사상형태는 공산주의다.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던 칼 마르크스가 주장하지 않았던가. 도적떼의 생활방식은 일찍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선행 학습한 것이다.
민란은 불법 집단행위
불법 집단행동은 법으로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통진당 이석기와 RO의 내란음모, 민주노총의 동맹파업 등 각종 노조 파업,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 민란 백만 송이 등 집단행동이다. 조선시대처럼 횃불과 낫과 곡괭이, 죽창을 들고 체제를 파괴하는 것은 폭동이다. 민란의 사전적 의미는 포악한 정치 따위에 반대하여 시민들이 일으킨 폭동이나 소요로 정의하고 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민란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에서 자유의 법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고, 남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보호를 해주어 서 각 개인들 간에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자유의 진정한 법치주의라고 했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대한민국에서는 민란을 절대 꿈꿔서 안 된다. 불법행위보다는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 최선이다.
많은 부분에서 아쉬웠던 <군도>
좀처럼 문화생활을 즐겨 하지 않는 필자가 지난 금요일 늦은 시간, <군도>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았다. 하정우라는 매력적인 배우는 주인공이기에 기대감이 컸다. 국민 살인마라는 모습을 보여준 <추격자>, 깡패 보스의 잔인함을 선보인 <범죄와의 전쟁>, 수완 좋은 변호사를 연기했던 <의뢰인>, 한국식 첩보액션을 펼쳤던 <베를린>, 연애하고 싶은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 <러프픽션>, 멋진하루, 성공에 목 말라했던 앵커의 모습을 보여준 <더 테러 라이브> 등 배우 하정우는 팔색조같은 매력적인 연기자다.
나름 하정우의 광팬이기에 그가 나온 영화는 이왕이면 한국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직접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그 연기를 맛본다. 이번 <군도>는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 여러 가지면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하정우의 연기도 내면의 연기가 부족했고 그저 복수심만 가득한 무식해 보이는 인물정도로 묘사됐다. 무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추설의 구성원들의 각각의 이야기는 궁금했고 조윤 집안의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미흡했다. 중국 액션활극보다 상대적으로 스케일도 작아 박진감이 떨어졌다.
당당히 살아가는 구성원이, 주인이 되는 사회
집이 불 타 순간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은 돌무치가 거꾸로 바꾼다는 의미를 가진 도치라는 이름을 개명하면서 개백정 최하층민에서 도적떼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사회를 영화 군도는 그려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신분이 바뀔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모두가 주인이 되는 사회보다는 당당히 자기 맡은 바를 열심히 하면서 불평 불만을 가지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는 구성원이 모인 사회가 모두가 주인이 되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