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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1-3 / 출 6: 6~8 : 이스라엘 나라의 정체성과 사명
호산나교회 정태경 목사 2019년 2월 24일 주일 설교
지금까지 성경 처음부분인 우주 만물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에덴 동산에 인간을 두시고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는 것과 그렇지만 하나님이 먹지말라 하신 선악과를 통해 그래도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을 배웠다. 에덴 동산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은 가인 계열을 통해 발전해왔지만 사탄의 4가지 거짓말이 ( 죽지 않을 것이다.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같이 될거야,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 그대로 되어서
모든 종교와 사상과 철학에 미쳐서 이 세상의 문화와 사상과 철학을 형성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유교 불교 기독교 천주교도 아니고 대학교 라고 했겠는가
대학교 앞에서는 어떤 다른 종교도 힘을 못쓴다 자녀가 대학교 가기위해서 신앙생활도 뒷전이 되고만다
주일에도 그래 대학가야지, 공부해라, 교회는 다음에 가면되지, 어떤 기도 보다도 대학교 가는게 우선이다
입시철만 되면 교회 기도회에 사람이 가득하다. 절에도 그때 이름 걸고 기도해준다고 돈을 내라고한다
무당들도 대학교 붙게 해준다고 하면서 부적 붙이고 한다. 대학교가 거의 모든 종교보다 우선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라도 수단 방법 안가리고 대학교에 가고 좋은 데 취직하고 하면 뭐 할거냐는 것이다.
그게 종교가 되고 그게 그들이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얼마전 블랙코미디 스카이캐슬을 잠시 보니 어느 가정의 하버드 다닌다는 딸이 부모가 하도 대학 대학하니 거짓말로 하버드 학생인것처럼 꾸몄다가 들통나는 내용이 나온다. 부모가 자녀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 )
유현미 작가는 대전사람이다. 대전 어느 교회 집사님이다. 참된 행복은 대학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문화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옆사람 보면서 대학교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게 최고의 행복입니다 )
우리는 성경을 처음부터 살펴보고 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사명과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정체성 : IDENTITY 자신의 내부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본질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신체적 모습,
정서적 표현, 언어 양식과 행동 방식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영향, 친구 관계, 이성적 경험, 선생님 관계,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성 정체성 이라고 할 때 이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 하는 성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가 있을 때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들은 정체성과 사명이 분명해야 한다.
내가 누군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 사명은 무엇인지 하는 목표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창12장1-3절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중 한명인 아브라함을 부르는 장면이다 다같이 읽습니다
( 예수님도 마 1장에 말하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말한다)
모세가 하나님을 설명할때도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같이 이방인 중에서 예수 믿은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영적후손이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의 세계사 가운데에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질문 : 하나님은 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나라들 가운데에 세우기를 원하실까?
영원한 하늘나라를 천국에 만들어 두고 거기에 오라고 하시지 않고 왜 이 땅에 세우려 하시는가?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동시에 나타나면서도 혼합되어 존재하고 있는게 성경이고 이 세상의 현실이다
세상의 나라들은 국가의 3요소를 따라 에덴 동산을 떠난 이후에 문명을 발달 시키는 가인 계열(국민)을 통해 힘이 센 사람(주권) 니므롯과 시날 평지(영토)에 모여서 바벨탑을 쌓는 제국주의 사람들을 통해 힘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바벨론 제국으로 흘러간다. 이 흐름이 요한 계시록의 큰성 바벨론까지 쭉 흘러간다.
하나님 나라도 셋 계열을 통해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를 만들어 간다. 성경에 족보가 중요하다
아담-셋 계열을 통해 방주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홍수심판에서 살아남는 아담의 10대손 노아가 나오고
그 후손에서 오늘 본문의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 받는 아담의 20대 후손 아브라함이 나온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족보를 통해 국민을 만드시고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율법 (주권)을 주시고 민수기에서 가나안 땅 (영토)를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가신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다
또한 이 계열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 나오고 다윗의 길로 갔던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의롭게 부름 받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들과 함께 존재하며 서로 교차되어 흘러가는 게 성경이고 현실이다
창12-50장은 하나님 나라의 국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4족장 이야기다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어떤 사람인가? 누가 후사를 이어가는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질문과 같은 의미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이 세상 가운데서 특별히 선택하여 불러내고 구별한 사람들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독자 사랑하는 아들이삭을 제물로 드린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주었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받았다가 형이 무서워서 도망갔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된 것처럼 내 의지나 내 행위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선택받았고 변화되었고 구원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너는 복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인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자체가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에게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 사명이요 정체성이다
내 가족 이웃에게만 흘러갈게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에게로 모든 열방에 흘러가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목표요 사명인 것처럼 우리의 목표요 정체성이요 사명이다.
( 인사: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 복이 이웃에게 열방에 흘러가기를 축복^^)
<문제제기> 문제는 세상에 살다보면 하나님 나라 백성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잊어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년의 종살이를 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렸다.
400 년전 이스라엘이 처음 애굽에 들어갔을 때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면서도 하나님이 반드시 그 땅으로 인도하실 것 이라는 약속과 은혜를 잊지 않았다
창49장에 야곱은 죽을 때 나를 우리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땅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고 유언한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위해 애곡하고 멀리 가나안 땅 막벨라 굴까지 가서 장사하고 돌아온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묻힌 그 땅을 보고 오는게 중요하다. 보고 돌아오니 비젼이 생긴다
그리고 창 50장에서 요셉은 죽을 때 언젠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자기의 해골을 메고 가나안땅에 가서 묻어달라고 유언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 애굽에 살때는 우리는 여기 애굽에 잠시 머물러
살지만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가나안 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목표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어떻게 야곱과 요셉은 하나님이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다는 분명한 목표의식과 정체성이 있었을까
창 25장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받아 100세에 이삭을 낳고 185세를 살고 죽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여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아브라함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서도 25년 이상을 같이 살았다는 말이 된다 야곱이 20년이상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여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고 180세에 죽는다. 그의 아들 야곱이 밧단아람에 갔다가 돌아와서 함께 살다가 180세에 죽는다, 야곱이 91세에 요셉이 태어났다 야곱이 120세 일 때 이삭이 죽음
야곱이 130세에 애굽의 바로 앞에 선다 (그때 요셉이 39세로 총리가 되어 있을 때다)
즉 야곱의 자녀들이 장성할 때 까지 요셉이 17세에 팔려갈 때 까지도 이삭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가르쳤고 이삭은 다시 야곱과 요셉에게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손자들에게 가르쳤고 또 그 아들이 아들과 손자들에게 가르쳐서 야곱과 요셉이 비록
지금 몸은 애굽에 살지만 언젠가 가나안으로 인도하실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부지런히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사명과 약속과 비젼을 가르쳐야한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너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있어, 이 땅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며 살아라 언젠가 우리 모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거야 그때까지 모두 잘 살아야해
그런데 야곱도 죽고 요셉도 죽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은 애굽의 문화와 혼합되고 세상을 따라가면서 점차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부어 만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본 것을 금방 따라해 버린다
애굽에서 먹던 참외와 부추와 수박이 생각난다면서 출애굽한 것을 후회하며 원망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그들이 애굽 사람처럼 먹고 마시고 금송아지 만드는 것 따라 하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정체성은 어릴적부터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로 영향을 받고 사는 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400년 생활동안 애굽의 문화와 풍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이 전부 애굽의 신들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 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느새 우상을 보고 다산과 풍요를 바라게 되었고 우상에 점점 물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것이다
‣ 절망감 :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정체성을 잃고 살아갈 때 그냥두시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의 환경을 배열하신다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고난이 그런 내용이다. 성을 쌓게 하고 벽돌을 굽게하고 농사를 심하게 하게 하고 안하던 일을 하게 하면서 심한 육체 노동을 하게 한다.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못 낳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왠일로 인구가 더 늘어나고 있다. 고난중에도 점점 인구가 번성하고 퍼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노동과 학대를 해도 안 되니 이제는 산파를 시켜서 남자 아이를 낳으면 태어난 아이를 죽이게 한다. 그래도 안된다.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여 히브리 아이들을 살려준다. 하나님은 그런 여인들에 은혜를 주셔서 그 집안이 흥왕하고 잘 되게 하신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니 이제는 바로가 남자 아이들 낳으면 무조건 나일 강에 던져서 죽이게 하라고 한다. 남자 아이를 다 죽여 버리고 여자애는 애굽 사람과 결혼하게 함으로 언젠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섞여 버리게 하려는 인구 말살 정책이다.
믿음의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결혼하고 세상 문화에 혼합되면 금방 자기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런 고난의 환경을 통해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하 우리는 애굽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자기들의 정체성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한다.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노동에 이용할 뿐이지 근본적으로 그들을 종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지는 않는다 그냥 계속 애굽의 종으로 살아라는 것이다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과 압제를 보고 듣고 알고는 모세를 보내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내신다.
‣해결(아하!) (클라이막스) -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출애굽기
6장 6-8절의 말씀이다 다 같이 읽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르쳐 주신다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스라엘 정체성 중 첫 번째는 6절 말씀에, 내가 너를 애굽의 종, 노예에서 건져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노역에서 건지며 너희를 속량하였다는 것이다
애굽의 노역과 무거운 짐에서 구원하여주셨다. 우리도 무거운 죄와 율법과 사망의 짐에서 건져주셨다
너희를 속량하셨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값을 주고 샀다는 것이다. 댓가를 지불하고 샀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이 다시 종으로 삼으려고 값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시고 아들로 삼으시고 영원한 땅을 주시기 위해서 댓가를 치러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댓가를 치르고 하나님이 속량하신 사람들이다
그 아들을 내어 주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결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다
죄와 사망과 사탄의 종에서 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잊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축복
두 번째, 너희는 내 백성이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주어가 하나님이다 내가 속량하였고 내가 빼내었고 내가 너희를 백성 삼았고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고 약속이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고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삼으셨다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돌보시겠다는 약속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는 것은 만물의 창조주 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희 편이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여겼기 때문에 애굽에 수많은 신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출 6장에 뒤 이어서 7-12장에 걸쳐서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신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말하고 약속하신 것을 직접 경험하게 하시고 보여주시면서 약속을 지키신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자부심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백을 가지고 살아가라
따라 합니다 “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치고 살아가시길 축복한다
세 번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그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신다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으니 마음껏 누리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 땅이 기업이라는 것은 그땅을 잘 경작하여 소득도 얻고 이익도 남기면서도 어려운 약자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그땅을 안식하게 하고 희년을 선포하면서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 백성의 문화를 만들어 가라는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유를 잊지마라.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는 땅을 가꾸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
기독교 신앙은 어디 절에 들어가서 면벽수행하거나 수도원에서 신앙 생활 하는게 아니다
이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가꾸어 가라. 세상의 사상 학문과 가치관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한다
* 복음 경험: 사명자반 공부중에 보면 에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실까?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장소요 처음 부름 받은 사명의 장소다 거기서 복음을 다시 경험하라는 것이다. 4복음서 마지막이 요21장이다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다 그들이 거기서 변화되어서 위대한 사도행전의 역사를 써 나간다는 것을 잊지마라
복음이 우선이고 사역은 그 뒤에 따라오는 열매다. 주님을 만나는 복음이 우선이고 그 뒤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확장되는 사도행전이 뒤 따라온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다시 복음을 경험하라
실패한 내 인생의 빈 그물을 들고 초라하게 서있을 때 다시 갈릴리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라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밤이 새도록 수고하여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말씀하실 때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던 제자들처럼 다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라
새벽 추위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숯불을 피워놓고 떡과 물고기를 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시면서 제자의 사명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해라
여러분은 주님이 불러내어 선택한 특별한 사람들이다 너는 복의근원이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
나를 부르신 사명을 잊지마라.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 너 때문에 이세상이 복받을 거야
내 인생이 좀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갈릴리로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라. 다시 복음을 경험해라.
갈릴리는 “고리” 라는 의미다 복음을 경험하고 사도행전의 역사를 써나갔던 제자들처럼 그 강렬한 복음의 경험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바꾸고 자녀를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교회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아멘
< 결단과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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