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김장 이야기
삼천포에 왔다. 부산보다 더 춥다.
아파트 문 꼭 닫고 있으면 추운지 바람이 부는지도 모르는데 고향집은 바깥 기온이 그대로 전해온다.
노는 땅에 배추를 백 포기 심었더만
그 배추보고 김장 같이 담그면 좋겠다 하여 형제들이 김장하러 온단다.
집사람은 괜히 많이 심어 일거리 만들었다고 그런다. 나도 힘든다. 사서 고생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희열이 솟는다.
형제들이 온다기에 배추 무 뽑아두고 밤 새 쪽파 대파 홍갓 겨자채도 가시었다. 삼천포 용궁시장에 들려
가라비 새우 소라 전복을 사 가지고 왔다. 삼겹살과 수육용 목살도 좀 샀다. 장작불 피어 구워 먹을 준비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물러주신 논에서 난 벼를 찧여 햅쌀 한 포대씩 묶어 각자 집으로 갈 때 가져가도록 준비도 해놓았다.
가을 내내 따서 삶아 말린 고구마줄기도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라고 충분히 준비했다.
비어 있던 밭을 대강 일구어 시금치 겨울초를 뿌려두었더니 많이도 자랐다.
힘이 들어 캐주지는 못해도 무농약 무공해 채소니 마음껏 가져가 먹었으면 좋겠다.
2박3일간의 김장 파티가 오늘 오후에 끝났다. 3일이 금방 갔다.
첫날
다 같이 모여 각 집에서 준비해온 반찬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소풍온 것 같았다. 이런 소풍 자주 했으면 좋겠다.
배추 백 포기 소금간 절이면서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초보 농부가 제법 배추를 잘 길렀다고 ㅎ 내가 생각해도 배추가 참 좋다. 적당히 게을러 물을 많이 주지 않았더니 속이 물렁하지 않고 알차다.
속 재료 정리해 두고, 무우청 배추시래기 삶아 담 위에 척척 걸쳐 놓았다. 한 겨울 시래기국 등 반찬 거리가 되겠지. 많다 많다 이거 누가 다 먹을거고 하면서도 그 많은 시래기를 다 삶아 널었다.
장작불 주위에 빙 둘러 앉았다. 가리비 새우 소라 전복 홍합은 불 위에서 익어가고,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여러 담금주에 또 익어가는 얼굴들...
이런 풍경이 늘 그리웠다고 눈가에 이슬 맺히는 시인으로 등단한 막내 여동생
주위는 어두워져가는데 이야기는 지치지도 않는다. 장작불 주변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 늦가을 서늘한 저녁 날씨 때문일까? 지난 봄 여름 버려진 나무를 모아 장작거리 만들기를 참 잘했다.
묵은 쌀 모두 물에 불렸다. 열 되는 될 것 같다.
둘째 날
아침- 밤새 절인 배추 물 빼기
오전- 김장 속재료 양념 준비, 갖은 재료를 넣어 육수 만들기
점심을 시내 식당에 가서 사먹자 하니
집에서 숯불에 삼겹살 구워 먹자고 한다. 숯불 피우기가 장작불 피우기보다 더 힘든다. 가끔 마트나 농자재상에 갈 때마다 하나씩 사놓은 숯이 제 값을 했다.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도 한 몫 했다. 삼겹살엔 역시 소주다.
집에서 밥 먹자 하면, 늘 밖에서 사 먹고 말지 했던 사람들이 옛 집에 오니 귀찮아도 집밥 먹고 싶은 모양이다
오후-속 재료 완성하고, 불린 쌀 떡집에 갖다 주고 왔다. 절편과 가래떡을 뽑아 고향집 찾은 기념으로 나뉘 줄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조금 쉬다 밤 늦게까지 버물기를 했다. 저 힘든 일을 사서 고생들 한다. 그냥 사먹고 말지. 배추 심은 내가 죄인이다.
준비해온 김치통에 나누어 담았다. 양이 꽤 된다. 모처럼 김치다운 김치를 먹을 수 있겠다.
세째 날
힘들었는지 다들 늦잠을 잤다. 우체국에 가서 밤새 담근 김장을 서울 큰누나 집으로 택배 보내고, 떡집에서 절편과 가래떡 찾아왔다. 금방 뽑은 절편과 가래떡이 맛나다. 이 떡을 형제들간에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유산으로 물려주신 할아버지가 그립다.
정미소에 쌀 찧으러 가면, 구순 가까이 되는 정미소 사장님이 늘 그런다. 조상님 물려준 땅을 팔아 안 가고
아직도 짓고 있는 사람이 인근에 몇 안 되고 그중 도시에 사는 사람은 나뿐이란다.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모르겠다. 논값 좋을 때 팔아 도회지에 작은 아파트 사 놓은 사람들은 재산이 불었는데 지금 논값은 더 내려간다. 경제적으로 바보짓을 했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밭에 있는 시금치 거울초 대파 쪽파를
한 보따리씩 나누어 담았다. 햅쌀, 김장 등 차에 실을 건 모두 차에 싣고, 김장 김치와 수육으로 점심 먹고 나니 비가 내린다. 담장에 널어놓은 시래기 우거지를 걷어 창고에 옮겼다. 내일 비 그치면 다시 널어야 한다. 전부 나 혼자 해야할 일이다.
점심 식사 후 차 한 잔 그리고 모두 자기 집으로 출발했다. 고향집은 다시 적막하다. 오래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시골 밤은 금방 어두워진다.
2박3일이 언제 지나 갔는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더 좋은 김장거리 준비해 놓는다고 했는데 그럴려면 건강해야겠다.
2023.11.16. 삼천포에서
김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