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추웠던 지난 2월의 어느 날, 나는 연극 “19 그리고 80”을 다시 한 번 보기 위해 소극장을 찾았다. 이 연극을 본 것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올해에만 두 번째 걸음이었다. 벌써 다섯 번이나 봤는데…. 여든의 나이에 여전히 소녀와 같은 순수함과 삶에 대한 열정을 마음 가득 안고 사는 할머니 모드의 주옥같은 대사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마음을 흔들고 내 손수건을 적셨다. 그날, 연극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설 때는 마침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내 볼에 와 닿던 공기의 차가운 감촉, 사람들이 내뿜는 입김과 사방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불빛들이 마구 섞이던 극장 앞 거리의 풍경, 하늘 가득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이던 입자 고운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던 그 아름다운 모습, 바로 그 밤 한없이 벅차오르던 내 마음, 그리고 그날 이후 계속해서 내 귓전을 맴도는 모드의 대사들… .
연극에서 여든 살 생일을 맞는 모드는 오래전부터 날을 정해 놓고 있었다 말하며 자신의 80세 생일에 죽음을 택한다. 그녀는 갔지만 삶의 순간순간을 진정으로 즐기며 최선을 다했던 그녀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인생을 살아가던 19살 청년 해롤드에게 남긴, 그리고 나와 같은 수많은 관객들에게 선물한 것은 바로 ‘인생을 진정으로 멋지게 즐기는 지혜’가 아닐까.
연극의 마지막 장면, 죽음을 앞둔 모드에게 해롤드는 그녀만을 위한 기타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형편없는 실력으로 차마 못 들어줄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 연주에 떨리는 목소리로 찬사를 보내는 모드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해롤드, 정말이지 이건 놀라워! 그건 세상 가장 장엄한 연주였어! 고마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모든 진실한 존재들이 주는 감동을 나는 얼마나 느끼며 또 그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매일같이 건강하게 시작하는 하루,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시는 부모님의 존재,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아침 식탁,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나의 소중한 일,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해주는 나의 오랜 친구들, 또 그들과 내가 함께 나누는 웃음과 눈물, 사랑하는 남동생의 짓궂은 장난, 멀리 있는 친구의 안부 전화, 사랑하는 이가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 가끔 미치도록 아름다운 달이 뜨는 밤, 들을 때마다 가슴을 파고드는 너무 잘 쓴 유행가 가사들,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이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 숨 막히게 재미있는 영화, 좋은 책을 읽고 흘리는 값진 눈물 … .
진실한 것들은 모두 감동을 준다는, 모드의 대사를 접하는 순간 사소하게만 느껴졌던 내 삶의 기쁨들이 기적이 되어 돌아왔다. 인생을 즐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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