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
저자는 KAIST의 입학처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을 나름대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지금 이대로의 우리나라 교육이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입학처장을 맡게 되면서 두 가지 점에 집중했다고 술회한다. 그 중 하나가 과학고와 영재고에 선한 영향을 주자는 것이다. 최소한 과학고와 영재고 교육에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잘못된 바양으로 이끄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교육이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 하고, 아이들의 학습걍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며 학업 성취도는 항상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지난 세월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이 이러한 높은 교육열에 기인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교육과 입시제도 그리고 학교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비뚤어진 교육열이 교육정책이 교육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창 시절에 전혀 행복하지 않고 제대로 교육받고 있지 못하며, 학업에 대한 흥미와 만족도는 항상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정상적인 공교육과 가정교육의 상실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높아가고 가정 경제는 엄청난 사교육비에 짓눌려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사교육비를 거론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교육비 문제는 해외에서도 관심이 큰 모양이다. <블룸버그>의 지적은 날카롭다. 재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아이들의 기를 꺾는 교육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단어 가운데 하나가 ‘노하우’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는 ‘아는 것이 힘’이었고 자연스레 교육도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가르쳐서 외우고, 많은 문제들을 빨리 풀게 하는 방법이 최고였다.
당연히 입시도 그런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노하우라는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검색이 우리의 그러한 기능을 대신하는 까닭이다. 오늘날은 노웨어know-where의 세상으로 지식과 정보들을 검색 엔진을 통해 빨리 찾아내는 것이 실력이다.
나아가 이제는 그런 정보의 양이 넘쳐나는 빅데이터의 세상이 되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그 많은 데이터들이 더욱 빠르고 효과적으로 분석되고 활용되고 있다. 결국 미래 경쟁력의 핵심은 많은 데이터와 노하우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인 problem solver 보다 새로운 문제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 problem maker 혹은 problem creator를 향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이 알고 빨리 푸는 세상은 오래전에 분명히 지나갔다.
나. 교육이 없는 나라
그래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교육을 ‘교육이 없는 나라’로 정의한다. 따라서 교육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교육은 성적에 비해 학습 흥미도와 자신감은 매우 낮은 기형적인 구조다. 말하자면 억지로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가능한 구조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학업성취평가(PISA)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마치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고등학교의 분위기가 그럴 것이다. 학교는 나름대로 소위 일류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진학을 했는가로 학교 간 우열이 암묵적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대학이 바로 인생의 출발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에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방전이 되고 방황한다. 산 너머에 누가 있을까? 호기심에 가 봤더니 아무도 없더라. 허탈하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교육은 없고 대학 입시만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즉 대학 입시와 교육을 등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오늘의 삶과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행복감과 자긍심을 키워 궁극적으로 자신과 사회에 유익한 구성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을 더욱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모든 아이들이 다 영재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영재를 인위적인 범주로 한정한다.
그러한 범주에 들지 못하면 영재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어떤 특정 재능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러니 그런 재능을 가진 아이는 사회적 낙오자가 될 확률이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상황에서 ‘학교는 학원을 결코 이길 수 없고 그래서 공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학원은 입시 준비 기관인데 같은 입시 준비의 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교육을 대학 입시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마라톤에서 처음에 선두에 섰다고 해서 결승선에도 선두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간에 오버페이스로 완주를 포기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일제 식민지교육의 원형을 여전히 그래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개탄한다. 오늘날 교육은 대학 입시 외에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을 그 여파로 의심하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입시 중심의 교육 제도를 만들고 관련된 세부 규칙과 게임의 룰을 정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교육당국이 사교육을 조장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목적과 철학이 부재되었다. 이는 결국 ‘조상 탓이고, 나라님 탓’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개미, 꿈을 꾸며 즐길 줄 아는 베짱이, 그리고 소통하고 융합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꿀벌과 같은 사람들을 상상하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현실은 그와 동떨어져 있다. 여전히 고등학교 교육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쟁터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꿈꾸고 배움을 즐기며, 소통하고 융합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다. 미래를 위한 교육
오늘날 우리나라의 저력은 페스트 팔로어에서 벗어나 상당 부분 페스트 무버로 옮겨가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전략이 필요하다. 패스트 무버는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여정이다. 무턱대고 가다가는 천길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맹인촉상의 길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피하려면 그에 맞는 대응전략을 짜야한다. 그 선두에 교육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교육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암기위주의 교육이 바로 페스트 팔로어 전략에 쉽게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학생들의 각자의 타고난 능력을 찾아 기쁘고 즐겁게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먼저 교육 당국이 입시 제도를 가지고 수험생들을 옭죄는 일을 하지 않는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오늘날을 4차 산업혁명 시기라고 한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달로 5차 산업혁명 시기를 2040년으로, 6차 산업혁명 시기를 2050년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그리고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다는 ‘기술적 특이점’이 일어나는 시점을 2040년경으로 예측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육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그 뒤의 5~6차 산업혁명을 염두에 둔 거대한 국가 백년대계여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육을 받은 학생이 사회에서 역량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학생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때가 되면 산업혁명의 주기는 더욱 빨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교육이 시류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즉 AI가 지금은 첨단과학이지만 머지않아 앞선 첨단기술이 그랬듯이 도구기술과 생산기술로 자리를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교육은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배움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흥미와 엉뚱함 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미래의 주역이 되도록 돕도록 바뀌어져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암기교육으로는 안 된다.
라.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동의한다. 교육혁신은 모든 정부에게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교육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기껏 대입시 제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다.
교육 혁신을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교육이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장에게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는 것일 수 있다.
고등학생의 경우 문과와 이과의 구분보다는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선택과목의 폭을 넓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의 산학협동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사회에서 사장되는 일이 없도록 실사구시의 차원에서 교육내용을 재편할 것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교육내용은 오로지 대학 입시용일 뿐이다. 그렇게 하면 과학고와 영재고에 대한 선호도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저자는 대학 입시만을 목적으로 설계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그 원인으로 서열화된 대학 제도를 언급하고 그 해결 방안으로 대학의 차별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선행 사항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 사회의 공감대 형성이다. 둘째, 정책 결정권자와 정부의 강한 의지 그리고 여야 정치권의 협력이다. 셋째, 전문가 집단의 구체적인 방안 수립이다. 충분히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