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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팬덤정치가 여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팬덤(Fandom)은 통상적으로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톱스타를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나 그러한 문화를 뜻한다. 정치분야에서 팬덤은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초다. 이들은 YS와 DJ로 불리며 영호남 열성 지지자들을 몰고 다녔다. 보다 현대적인 의미의 정치적 팬클럽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가 대표적이다. 다만 순수했던 정치인 팬클럽 문화도 증오에 기반을 둔 대결적인 여야 정치문화와 SNS의 광범위한 보급을 타고 최근 들어 지나치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으로 변질했다. 정치적 격변기나 치열한 대선을 거치면서 팬덤정치도 확산·보편화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나 윤석열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대깨윤(대가리가 깨져도 윤석열) 등 여야의 강성 지지층 그룹이다. 사실상 팬덤 기반의 정치문화가 여의도 정치권을 장악해버린 셈이다. 날이 갈수록 현실정치를 뒤흔드는 팬덤정치의 명암을 짚어봤다.
- 여야 강성 지지층 팬덤정치 영향력 날로 확산
- 문파·대깨문·태극기부대·때깨윤, 강대강 대치 주도
- 개딸·양아들, 민주당 팬덤정치 부작용·후폭풍 극심
팬덤정치는 참여 민주주의나 상향식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주요 정책방향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들어 팬덤정치의부작용과 후유증도 적지 않다. 20대 대선 패배와 6.1 지방선거 참패로 내홍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대표적이다. 박빙대선 패배 이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의 행보는 논란이다.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집단 가해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반대파 의원들에게 욕설 가득한 문자폭탄은 물론 조롱을 뜻하는 18원 후원금을 보내는 등 지나치게 거칠고 공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대로 두면 민주당은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팬덤정치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면서 민주당의 부활과 혁신마저 어렵다는 진단마저 나올 정도다.
선거참패 몸살앓는 거야, 개딸등장 팬덤정치 공방
20대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가 대거 온라인 당원으로 입당했다. 약 3분의 1은 20·30 여성들이었다. ‘민주당을 개혁하자’는 슬로건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아들)의 등장은 민주당의 정치지형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을 뜻하는 문파(문빠) 이상의 투쟁력과 단결력을 보여주면서 당의 주요 정책방향 및 의제 설정에 막강 파워를 과시했다. 여론의 반대에도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추진을 강행한 것은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결과였다. 대선 패배로 낙담한 강성 지지층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지만 역설적으로 지방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 과정에서 김용민, 김남국, 최강욱, 황운하 등 초선 강경파 의원들로 구성된 ‘처럼회’는 팬덤정치를 부추겼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도 비슷한 논란이다. 박 전 위원장은 86그룹 용퇴론을 주장하면서 “폭력적 팬덤정치와 결별해야 한다. 일부지만 팬덤정치가 우리 당원을 과잉 대표하고 있다”고 주문했다. 개딸들은 이에 “물러가라”며 박 전 위원장의 사퇴를 노골적으로 촉구했다. 민주당 당원게시판에는 △박지현은 지선을 망치려는 트로이 목마냐 △오만방자한 박지현, 민주당에서 제발 나가라 △김건희보다 박지현 얼굴이 더 보기 싫다 등 사퇴 촉구 글도 도배됐다. 이후에도 박지현 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오프라인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이탄히 의원이 “내부비판도 못하면 안된다”고 우려했지만 개딸의 무력시위에 민주당 의원들은 말을 잃었다. 용기있게 소신을 밝혔다가는 언제든지 강성 지지층의 언어폭력과 문자세례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20대 국회 시절 민주당 비주류 소신파를 상징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의원)와 같은 움직임조차도 사라졌다.
막강파워를 확인한 개딸의 행보는 이른바 ‘이재명 선거참패 책임론’을 놓고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친문계와 친명계 의원들이 팬덤정치에 제동을 걸기보다는 이를 부추겼다는 점이다. “가장 큰 원인이 이재명 민주당 의원과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 두 분의 출마였다”(김종민 의원)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거친 책임론이 제기됐다. 이재명 의원의 명분없는 인천 계양을 출마가 지방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이었던 만큼 이 의원은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고 자숙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이재명계 소속 강경파 의원들이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 쇄신 의지가 아니라 계파의 이익이 먼저인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김남국 의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동지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니 좀 잔인한게 아닌가”(민형배 의원)
양측간 설전이 확산되는 가운데 개딸은 이재명 책임론을 주장하는 친문 의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일부 의원은 하루에 적게는 1000통, 많게는 2000통 이상의 비난 문자에 시달렸다. 특히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의 인천 부평 지역구 사무실에 홍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대자보까지 부착됐다. 이재명 지지자인 개딸 회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자보에는 “치매가 아닌지 걱정되고 중증 애정결핍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고 적혀 있었다. 홍 의원은 이에 “문자폭탄을 과거에도 받아왔지만 갈수록 폭력적이 되어 걱정”이라면서 “상당히 조직적이다. 배후가 있다고 본다”고 반발했다.
‘노사모·박사모’ 순수 팬클럽 ‘대깨문·대깨윤’ 맹목적 지지
과거 여야의 팬덤문화는 현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순수했다.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정치인 팬클럽은 ‘노사모’가 시초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었다고 낙선한 ‘바보 노무현’을 응원하는 자발적 모임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사태로 위기에 처했을 때 최대한 결집하면서 17대 총선 승리를 이끄는데 기여했다. 노사모의 경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강했지만 맹목적 지지는 아니었다. 이라크파병 문제는 물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노 전 대통령의 대표 정책과 거리를 두고 비판하는 등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졌다.
진보에 노사모가 있다면 보수에는 박사모가 있다. 17대 총선 당시 보수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연전연승을 이끌었다. 이를 뒷받침한 게 바로 ‘박사모’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을 전후로 세를 크게 불렸으며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을 지원하는 응원 역할을 했다. 물론 노사모와 박사모 역시 이른바 노빠와 박빠로 불리는 극렬 지지층이 나타나기도 했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동영·김한길 등 비노무현계 정치인을 타킷으로 삼았다. 박사모 역시 이재오 전 장관 등 친이계 핵심 의원들을 맹렬 비판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사모와 박사모 또한 극단적으로 분화돼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차기 리더로 떠오르면서 노사모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며 다소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순수한 정치인 후원이 아니라 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2년 대선도전 실패와 2015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문빠’라는 오명에 시달리면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문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거친 문자폭탄을 날리면서 폭력적인 경향으로 변해갔다. 2017년 5월 19대 대선 이후 문 전 대통령의 취임했을 때는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이른바 ‘대깨문’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동안에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해”라면서 무조건적인 맹목적지지 현상까지 보였다.
박사모도 분화 과정을 거치며 일부 세력은 태극기부대라는 극단적인 팬덤정치로 변질돼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박빠’로 불리면서 박 전 대통령의 통치활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을 ‘배신자’로 맹비난했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 이후에는 이를 부정하는 태극기부대로 불리면서 강성 보수 지지층의 아이콘이 됐다. 20대 대선과정에서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깨윤(대가리가 깨져도 윤석열) 현상도 나타나기도 했다. 이밖에 최근 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앞 욕설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도 극단적 성향의 보수팬덤이다.
노사모와 박사모 이외에도 유사 팬덤은 적지 않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 바람을 일으켰던 안철수 후보는 안풍(安風)이라는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보수 혁신의 아이콘으로 30대 중반 0선 당 대표라는 기적을 이룩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20·30세대 남성 위주의 MZ세대를 팬덤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밖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크고작은 공개 행보나 패션 스타일 등이 화제를 모으면서 적잖은 팬덤을 형성했다. 여권의 기대주로 부상한 한동훈 법무부장관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의 활약과 법무장관 취임 이후 똑부러진 일처리가 보수 지지층의 일부 팬덤을 획득했다.
8월전대 팬덤정치 논란…이재명 자제 요청 내홍 확산
팬덤정치의 후유증이 현재진행형인 곳은 선거참패로 내홍 중인 민주당이다. 쏟아지는 비판에 이재명 의원이 개딸의 자제를 요청했다. 이 의원은 “이재명의 동료들은 이재명다움을 더 많은 영역에서 더욱 더 많이 보여주시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이어 “국민은 지지자들을 통해 정치인을 본다”며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모욕적 언사, 문자폭탄 같은 억압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모멸감을 주고 의사표현을 억압하면 반감만 더 키운다”고 당부했다. 다만 이 의원의 자제 요청이 얼마나 통할지 미지수다.
개딸의 행보는 팬덤정치의 전형으로 변모 중이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조국·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대립할 당시 서울 서초동을 수놓았던 화환행렬이 국회에도 등장한 것이다. 지난 7일 국회 정문 앞 담장에는 개딸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축하 화한이 줄을 이었다. 화환에는 “금쪽같은 내새끼 이재명” “언제나 사랑합니다” 등의 응원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대 분수령은 8월 전당대회다. 전당대회 룰 변경 여부에 따라 개딸의 전대 투표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개딸이 집단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경우 친문계의 거센 반발이 예고돼 민주당은 또 한 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순수한 팬덤은 정치발전의 자양분이다. 다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좌표를 찍고 댓글테러에 나서면서 여론지형을 왜곡시킬 경우 과잉비례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전문가들 또한 팬덤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손실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정치의 기본 토대는 핵심 지지층의 의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편승할 경우 오히려 당의 외연이 쪼그라드면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인을 응원하는 팬클럽 문화와는 달리 강성 지지층이 주도하는 팬덤정치는 맹목적인 응원과 지지를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과도한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으로 상징되는 민주당의 팬덤정치는 대선 패배와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의 반성과 쇄신을 가로막는 상징이 돼버렸다”고 우려했다. 특히 “여야 주요 정치인들이 오히려 팬덤정치를 조장하면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보수세력에게 탄핵의 강을 건너자고 용기를 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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