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마고할미가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려서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으니 그 논을 옥전(玉田)이라 부른다. 비녀를 찾지 못한 마고할미는 논다랭이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녀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농사를 지었는데 끝내 찾지 못하였으며,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마고할미는 일생을 이곳에서 보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지금도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마고할미의 형상이 바위에 남아있다.』
석문에서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자라의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 <자라바위>를 볼 수가 있으며 석문 부근의 절벽에는 측백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주변경치를 사시사철 푸르게 해주고 있다.
3. 상 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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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계곡 10km의 구간에는 소선암 자연휴양림과 소선암 오토캠핑장, 소선암 자연발생유원지, 특선암 야영장 등 각종 관광 편익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 여름철 가족단위의 피서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또한 선암계곡을 관통하는 국도 59호선은 도로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절경을 만끽할 수 있어 자동차를 이용한 드라이브 코스로도 추천할만 하다. |
4. 중 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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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이라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으니 이는 조선 숙종 43년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尹憲柱) 선생이 특서한 것으로 단양, 영춘, 제천, 청풍 사군의 아름다운 산과 삼선구곡의 맑은 물과 바위 그리고 산천을 극찬하는 뜻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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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락산의 흰 바위와 노송이 느릿느릿 내려 있고 화강암석의 빛과 맑은 하늘의 구름이 중선암 물에 비쳐있는 절경에 반해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명현 묵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위에 각자된 이름만도 3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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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 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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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라 불리던 하선암은 성종 때 군수 임재광이 선암으로 고쳐 불렀으며, 후에 퇴계 이황선생이 하선암이라 명명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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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홍암(紅岩)」이라고도 한다.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운무,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적설노송이 절경을 이루어 조선시대의 많은 화원들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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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인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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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맑은 운계천은 굽이굽이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다가 이곳에 이르러 수백척의 기암절벽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으며 푸른노송이 어울어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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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을 따라 흐르는 계곡은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며, 또한 마을(사인암리)에는 여러 민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단위의 휴양객들이 찾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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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구 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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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였는데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쪽 언덕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퇴계 이황 선생은 구담봉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여유러움을 표현하는 시 한수를 남겼는데 이는 구담봉에 집을 짓고 거하던 은자(隱者) 이이성을 생각하며 지은 시라고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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曉過龜潭月在山 (효과구담월재산) 새벽에 구담을 지나노라니 달은 산마루에 걸려있네 高居想像有無間 (고거상상유무간) 높이 웅크린 구담봉은 무슨 생각 저리 깊을까 主人今作他山隱 (주인금작타산은) 예 살던 신선은 이미 다른 산으로 숨었으리라. 鶴怨猿啼雲自閒 (학원원제운자한) 다만 학과 원숭이 울고 구름만 한가로이 흘러갈 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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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단양8경 모습변하기 전에 가본 기억이..아마도 86년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