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날 당신의 남편으로 받아주겠어?”
“그만, 샤미르. 제발 그만.”
그녀에게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가 덧붙였다.
“사랑해. 당신이 내 집 문을 두드린 바로 그날부터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됐고, 그 사랑은 멈추지 않고 커졌어. 내 신부에게 키스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당신이 좀 멀군.”
샤미르는 자신의 장갑에 키스한 뒤 호 불어 그녀 쪽으로 날려보냈다. 이어서 단호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그녀와 연결된 로프를 끊었다. (48쪽)
“할머니의 누명을 벗길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1966년 1월 24일 몽블랑에 추락한 여객기 안에 있었어요. 엄마의 자살미수 이후 난 조사를 시작했죠.”
“그러니까 여객기가 추락한 지 사십육 년 만에 기체에 남아 있을 증거를 찾기 위해 몽블랑을 등반한 거란 말입니까?”
“지난 수년 동안 그 추락사고에 대해 연구한 결과, 그 주제에 관한 한 누구보다 많은 자료를 확보했어요. 매달의 빙하운동 현황 기록이며 그동안 빙하가 토해낸 기체의 잔해 목록도 작성했고요.”
“산과 충돌한 비행기에 대체 뭐가 남아 있길 바란 거죠?” (169쪽)
어떻게 자식을 떠나는 것을, 더는 품에 꼭 끌어안을 수 없는 것을, 귓가에 비밀 이야기를 속삭이는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것을, 자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죽는 것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는 가족을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지옥보다 더한 형벌이다.
그녀의 심장이 전속력으로 쿵쾅거렸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땅이 갈라지면서 둥둥거리는 북소리와 함께 심연에서 불쑥 솟은 마틸드의 얼굴이 보였다. (207쪽)
수지가 발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빙긋 웃더니 말했다.
“두 사람이 행복하길 빌어요.”
발레리가 말했다.
“여기까지 날 만나러 오다니, 대단한 용기를 내셨네요.”
수지가 여행 가방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용기는 두려움보다 강한 감정일 뿐인걸요.”
그러고는 발레리에게 인사하고 멀어져갔다. (4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