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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원>
환인은 7대 까지 있어서 3,301년간 환국을 다스렸다.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환국의 12분국의 이름
(1) 비리국 (2) 양운국 (3) 구막한국 (4) 구다천국 (5) 일군국 (6) 우루국
(7) 격현한국 (8) 구모액국 (9) 매구여국 (10) 사납아국 (11) 선비국 (12) 수밀이국
환웅은 18대 까지 있어서 배달국을 1,565년 재위 하였고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단군은 47대 까지 있어서 고조선을 2,096년간 재위 하였습니다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B.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 우현왕을 거쳐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B.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가. 약 300~400만년 전: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
나. 약 250~15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 출현
다. 약 4만년 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
라. 약 4만년 전~1만2천년 전: 구석기 후기 문화
마. B.C 10,000년: 신석기 시대가 전개.
특히 농경과 목축으로 인한 식량 생산의 경제활동은 신석기 혁명 혹은 제 1차 산업혁명으로
까지 불리어지는 생활의 큰 변화였다.
신석기 시대의 집단 생활과 공동체 생활은 상당한 수준의 국가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인간의 사회는 점점 집단화 되고, 갖가지 유용한 문명이 개발되었으며,
대규모의 종교의식도 행해졌다. 제단(祭壇)을 쌓고 제천의식도 행해졌다.
환국이 진정 현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문명의 시원국이라면,
오늘날 인류의 시원에 대해서도 뭔가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환단고기」<삼성기>하편에는 현 인류의 조상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은 아이시타라고 하는데,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구환(九桓)의 무리는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광명족의 환국의 9환족은 바로 인류의 시조인 나반과 아만의 후손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인류의 시조인 한 남자(나반)와 한 여자(아만)가 바이칼호에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
꿈에 천신의 가르침(神敎)을 받고 바이칼호를 건너 부근에 있는 아이시타에서 만나 결혼했다.
나반과 아만 이 두 분이야말로 유대민족이 말하는 약6천년 전의 아담과 이브보다도
수천년이나 앞선 현 인류의 진정한 시조인 것이다.
알타이어 전문 연구가에 의하면, “아빠”, “엄마”의 어원이 바로 나반과 아만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기재).
나반-> 나바이-> 아바이-> 아빠
아만-> 아마이-> 어마이-> 엄마
지구상에 갑자기 큰 변화가 생겼다.
즉 약 B.C 8,800년 경에 지구상에 소개벽(小開闢)이 발생한 것이다.
약 10,800년 전에 발생한 하늘과 땅이 무너질 만큼의 큰 변화였다.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는 지구상의 소개벽은 우주변화의 원리에 의해
약 10,800년 마다 발생한다고 한다.
지구상의 큰 대륙이 바다 속으로 들어갈 만큼 지각변동이 있었고,
동시에 인류문명도 변하게 되었다.
대서양의 아틀란티스(Atlantis) 대륙, 태평양의 무(Mu)대륙, 인도양의 레무리아(Lemuria) 대륙이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꽃 피어온 역사 이전의 문명이
세찬 비바람에 꽃잎이 떨어져 나가듯 바다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은 약 950년전에 하늘과 땅의 이치를 능히 통달했던 사람인데,
그가 처음으로 우주의 1년이 129,600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온난한 기후와 적당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중앙 아시아에 문명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고,
인류 최초의 국가가 생겨났다. 북방에서 다시 북방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처음 생긴
나라가 환국(桓國, B.C7,199~3,898)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천산(天山) 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동쪽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의 중국의 북서부 지역이다. 이것이 북방문명의 출발인 것이다.
B.C 3,000년경의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들이
모두 B.C 7,199~3,898년에 실제했던 중앙 아시아의 환국(桓國)의 신교(神敎)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환국(桓國)의 문명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세계 4대문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환국의 자취>
1. 중국 신강성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 동쪽에 소재한 천산천지(天山天池) 일대에서
신석기시대의 성터(北庭古城遺址)가 발굴됨 → 환국의 중심지로 추정됨.
2. 바이칼호 부근에서 신석기 유적: 배달국 홍산유적 출토물과 유사함.
3. 문헌기록:
진서(晉書) 4이전(四夷傳) -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일군국
중국사고지도집(상해출판사) 당서(唐書) 북적전(北狄傳) - 우루국
삼국사기 - 구다국(句茶國), 매구곡(賣溝谷)
<세계 최고(高)의 피라미드 발견>
2000년 07월 03일 중국 톈진일보에 의하면, 러시아 고고학 발굴단이 티베트 서쪽의
강런보치봉 주변지역에서 세계 최고(最高)의 피라미드와 100개가 넘는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군(群)을 발견했다고 한다.
환국(桓國)이 초창기에 도읍을 정한 위치와 일치한다.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도
수천년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나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들 피라미드는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고구려의 건축 양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고(上古)시대의 유적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요, 더 나아가 세계 최초의 나라인 이 환국은 9환족(아홉 족속)과
64민(무리)으로 이루어진 12환국의 연방국이었으며, 3301년간 지속되었고
(기원전 7199~3898년), 7명의 환인이 다스렸으며, 문화수준은 구석기말 내지 신석기 시대였다.
역사기록으로 살펴본 7명의 환인과 연방환국의 12분국(分國) 이름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7대 환인
‘환인’이라는 호칭은 당시의 제정일치, 정교일치 사회에서 통치자 및 제사장을 겸직한 직책이름
(관명)이다. 환국문명사의 1대 환인인 ‘안파견’은 ‘만인의 정신적 아버지’라는 뜻이며,
그 후 환국말기 환족의 동서 대이동에 따라 동서양 민족의 ‘아버지’라는 언어에
그 자취를 남기게 된다.
안파견 환인은 백성을 교화(敎化)할 때 천신(天神)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우리겨례는
하느님의 피를 받은 천손(天孫)민족, 천강족(天降族)임을 나타낸다. 우리민족 최초의 종교는
신교(神敎 : 천신의 가르침)이고, 환인이 천산(天山)에서 광명의 도를 체득하여서
국호를 ‘환국’ (桓國 : 광명의 나라)이라 하였으므로, 우리민족의 최초의 정신적 철학은
‘광명이세(光明理世)’라는 광명철학이었다.
우리민족이 태양의 총체색인 백색을 선호하여 백의를 즐겨입는 백의민족이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환국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神)이 있어 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이를 환국이라 하고, 그를 가르켜 환인 천제(天帝)라 불렀다. "
(삼성기 상)
환국이 12분국으로 구성된 것은 땅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원리인 12지지(地支)또는 태양 운행의
1주기인 황도 12순환 통로를 따른 것이다. 위의 표에서 환국의 12분국중 12번째인
<수밀이국>을 봐주시기 바란다.
이 분국이 바로 서양 사람들이 인류문명의 뿌리로 여기는 수메르(Sumer)문명국이다.
인류문명의 시원으로 여겨지는 수메르 제국이 환국 12분국중의 하나인
<수밀이국>의 이주민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러면 천산(파미르고원)과 바이칼호 근처에 있던 <수밀이국>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환국말기인 약 6천년전에 인구가 증가하고
기상이변으로 시베리아 지역이 점점 추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12환국의 한 갈래가 성지 태백산(백두산)으로 이동하여
환국의 정통을 지켜내려온 것(환웅의 배달국)이 바로 오늘날의 한민족이다.
이제 그 환국의 대이동 경로를 따라 갈라져 나가
오늘날 여러 민족의 뿌리가 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동 경로 : 현 민족의 뿌리
태백산(백두산)
환웅의 배달국: 한민족(정통 장자민족)
삼위산 방면 몽고초원
몽고족
삼위산(감숙성 돈황현)의 납목동굴
중국민족 (반고씨)
메소포타미아 지방
수메르 제국
베링해협(당시는 아메리카와 연결된 대룩)
아메리카 인디언
<수메르 문명>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Sumer)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 주는 무수한 점토판들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수메르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한글)와
같은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사용했었다. 또한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라트"라는 제천단과
그들이 남긴 유적들에게서 우리 문화와 같은 문화의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있다.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이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니, 환국(桓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BCE 2500년 전
수메르의 씨름모양의 향로, 고구려 각저총(角抵塚) 벽화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수메르인들이 건립한 지구랏트이며,
유대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바로 이 수메르 문명권의중심지인 우르(Ur)에서
수메르문화를 가지고 가나안으로 이주한 것이다.
<중국 황하문명>
중국의 황하문명은 B.C3,000~2,500년경에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발해 연안의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북만주와 발해 연안의 문명은 천산(天山)에서 자연 자원이 풍부한 바이칼호에 이르는
환국(桓國)의 중심세력이 광명의 근원지를 따라 따뜻한 기후와 풍요한 생활 환경을 찾아
자연스럽게 동남쪽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한국고대문화의 기원』이라는 책에 의하면, 지금까지 중국 황하문명의 전유물(專有物)로
여겨졌던 갑골(胛骨)문화는 본래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발해 연안 북부에서 B.C 3,500년 경에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동북아의 빗살무늬 토기와 적석총, 석관묘, 지석묘 등의 기원지도 발해 연안이라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고 한다. 발해 연안과 만주 요녕성 일대는 중국의 정사(正史)에서 동이족(東夷族)
이라고 하는 조선족의 활동 영역으로 고대(古代)에는 한국 민족의 활동 영역이었다.
이들 배달국의 홍산(紅山) 유적지에서는 지금까지 황하 유역에서 나타나지 않던 대형제단,
여신묘, 적석총군,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미국의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이 아시아의 동부지방
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언어,
혈액형, 체질(형질), 치아모양 등의 과학적 연구방법(DNA 추적)을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 부족 최고 지도자 ‘아파치’는 초대 환인 ‘안파견’에서 유래된 것.
- 북미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약 9천년 전의 것이며,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
- 인디언 들이 쓰던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삼태기, 베틀, 어망, 물레 등은
우리선조들이 쓰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것.
결론적으로 한민족은 파미르고원의 동방에 위치하는 천산(天山)산맥을 시원으로 하여,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호를 근거로 천지(天地)로 이어지는 경천숭조(敬天崇祖) 전통을 지닌
인류시원의 장자(長子)민족이다.
그리고 이 중앙아시아 천산을 기점으로 북방문명의 시조인 대단위의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 문헌으로 밝히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많은 증거들 중 몇 가지 증거들
박성수 교수는 단군학회 1999년 전반기 학술회의 지정토론에서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인
학자 금서룡(今西龍)이 태종실록과 세조실록에 나오는 고기(古記)들이 고려왕실의
서운관(書雲觀)에 보관되어 있음을 시인한 바 있다고 밝히고
또 이병도가 쓴 진단학보 창간사에 현재 3종의 고조선비사 이본(異本)이 있다는 기록을 들어
일제시대 1920년대까지 상고시대를 밝혀줄 고서들이 남아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서론자들 가운데는 독특한 방법으로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발굴해낸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환단고기} 내용에 나오는 기록과 중국사서와 발굴유물을 비교 검토하여 {환단고기}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는 사실들을 찾아냈다. 이것은 {환단고기}가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책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에 와서 그 존재가
드러나 위작이라고 평가되어 온 "화랑세기"의 기록에 있는 "포석사"가 실제 발굴되는 등
화랑세기와 한단고기는 실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것으로 이는 좀더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나고 발굴되어야 할 듯 합니다.
BC 1733년 홀달 단제 시대 단군 조선인들이 보았을 오행성의 결집 현상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역으로 추적하여 컴퓨터 합성 기법으로 시각화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단군조선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기성 사학계로부터 위서
(僞書) 라는 `누명`을 쓰고 버려져 왔던 상고사 서적들에 대한 복권 작업이 젊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와 표준 연구원 천문대의
라대일 박사는 학계에서 방치해 왔던 상고사 서적들의 내용을 천문학적인 방법론으로
검증한 결과 상당 부분이 당시의 실제 상황과 일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들의 연구는 상고사 서적들에 나타난
당시의 천문 현상 기록을 당시의 실제 천문 현상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교수와 라박사가 연구의 원본으로 삼은 서적은, 단군조선 시대에 대한 풍부한 역사 기록과
함께 당시의 천문 현상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는 <단기고사>와 <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단군세기>이다.
<단기고사>는 발해의 건국 시조인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서와 옛 비문, 현장 답사 등 13년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엮은 단군조선사이다.
제1세 단군왕검으로부터 제47대 단군까지 약 2천여 년의 역사를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이름만 전해
오던 것을, 구한말의 한학자인 유응두가 중국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행촌 이암이란 선비가 저술한 단군조선 시대
역사서로, <단기고사>의 서술 내용과 큰 줄기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
오행성 결집, 큰 썰물 현상 모두 "사실"
이 서적들은 최근에 들어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또 일부 내용이 과장돼 있다는
이유로 기성 사학계로부터 사료로서 인정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재야 사학계에서는 이런 주장
이야말로 일제 식민 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통박해 왔다.
재야 사학계는, 일제 때 단군조선 말살 운동에 앞장섰던 일인 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조선의 고대사 관련 사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밖에 없다. 그 밖의 사서는 사서가
아니라 위서다."라고 주장한 것을 기성 사학계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해 온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한 소국의 역사로 개악하고자 했던 일인 학자들에게,
적어도 고대 조선이 대륙을 사이에 두고 중국 민족과 자웅을 겨뤘던 고대 강국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는 이들 상고사 서적들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박교수와 라박사가 연구의 원본으로 삼은 <단기고사>와 <단군세기> 에는 일식 현상에 대한
기록이 모두 10군데,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 육안으로 보이는 다섯 별이 한자리에
모인 '오행성 결집 현상'이 한군데, 큰 썰물에 대한 기록이 한군데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천체 현상은 물리 법칙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전개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행성들 위치를 알면 슈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이 행성들의 과거와 미래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 이 사서들이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무작위 적으로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오행성 결집 현상에 대한 기록이었다.
<단기고사>나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제13대 단군인 홀달단제 50년, 즉 BC 1733 년에
다섯 개의 별이 서로 한군데에 모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돼 있다. 즉 '戊辰 五十年 五星聚婁'
라는 한 줄의 글귀로, 무진 50년에 다섯개 별이 婁星 근처에 모였다는 뜻이다.
박교수팀은 기록에 나타난 BC 1733년을 기점으로 전후 약 5백50년 사이에
오행성의 결집이 일어난 시점을 샅샅이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처음에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기록에 나타난 BC 1733 년으로부터 바로 1년 전인 BC 1734 년에 매우 뚜렷한 형태로
오행성이 서로 아주 가까워져 있는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 해 7월 13일 초저녁 다섯개의 별은 지상에서 보아 약 10도 이내의 거리에 모여 있었다.
이 날은 왼쪽 하늘에 초승달이 비스듬하게 떠 있어, 별빛이 한층 더 찬란하게 빛났었다.
BC 1733 년을 기점으로 하여 5백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오행성이 이보다 가깝게 모인 시기는
그보다 약 1백80년 전인 BC 1953년 2월 25일 새벽 단 한번밖에 없었다.
박교수는 "기록 연수보다 1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의 시간 계산법과 약 3천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간 계산법 차이를 고려하면 무시해도 좋은 수치이다." 라고 말했다.
만약 후대의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해 넣었을 경우, 이것이 서로 맞아떨어질
확률은 박교수의 계산 결과 0.007%, 즉 "세계 지도에서 임의의 한 장소를 지목했을 때
그것이 대한민국일 가능성" 에 비유될 정도로 매우 희박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오행성 결집 현상과 함께 박교수팀이 주목한 것은 큰 썰물에 대한 기록.
두 사서 모두 제29세 마휴단제 9년 (BC 935년) 때 `南海潮水退三倜` 라 하여
남해의 바닷물이 3척이나 뒤로 물러났다고 적혀 있다.
오행성에 대한 조사와 마찬가지로, BC 935년을 기점으로 전후 2백년 간에 나타난 조석력의
작용을 조사해 본 결과, 기록에 나타난 해로부터 4년 후인 BC 931년 11월 22일에
이 기간중 가장 큰 조석력이 작용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기록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전후 2백년 기간에 가장 큰 조석력이
4년 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라고 박교수는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후대의 누군가가 작위로 이 기록을 써넣었을 가능성은 0.04%에 지나지 않았다.
박교수팀이 처음 연구에 착수할 당시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은 일식 현상에 대한 기록이다.
일식 현상은 그것을 관측하는 지점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에, 일식 기록에 대한 분포도를
작성하면 단군 조선의 수도나 강역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단군 조선기에 실제 일어났을 것으로 보이는 일식 현상이 약 1천 5백회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비해 기록은 10개밖에 안돼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다만 중국의 사서에 나타난 최초의 일식 기록이 주나라 때인 BC 776년인데 비해,
우리의 경우는 제2세 부루단제 때인 BC 2183년 일식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어
중국 기록보다 적어도 1천 4백여 년이나 앞선다는 점, 그리고 10여 개의 일식 기록 중
다섯 개의 기록이 실제 현상과 일치하고, 그중 두개는 해뿐 아니라 달까지 일치하고 있는
점 등은 주목할 만하다고 박교수는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 박교수팀이 내린 결론은, 이 사서들이 그 동안 일인 학자들이나 국내 기성
사학계에서 주장한 것처럼,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전적으로 날조된 것만는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은 왜곡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천문 현상은 윤색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서들의 상당 부분은 단군 조선 당시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라고 박교수는 말했다.
기성 사학계도 연구 결과 인정
박교수팀의 연구는 그 동안 이들 사서의 내용에 대해 상당 부분 신뢰하고 있으면서도
기성 학계의 두터운 벽 때문에 실제 연구 과정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고조선사 연구
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윤내현 교수 (단국대 사학) 는 "그 동안은 주로 중국
사서들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에 의존해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서지학자들이 참여하여 이 사서들의 내용을 좀더 정밀하게 검토한다면, 단군조선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라고 말했다.
박성수 교수 (정신문화연구원, 사학)는 "기존 학계의 그릇된 통념을 깨는 획기적인 연구다.
이들 역사서의 내용을 전부 믿을 수는 없다 해도, 연구도 해보지 않고 이를 백안시해 온
학계의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교수팀의 연구에 대해서는 그 동안 상고사 서적들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온
`한국 상고사학회` 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이들의 연구 결과가 기성 사학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고사학회는 10월에 발간할 예정인 이 학회 연구 논문집
<상고사학보> 에 박교수팀의 논문을 게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상고사학회의 실무를 맡고 있는 최몽룡 교수 (서울대, 고고학)는 "연구 결과의
중요성을 인정해 논문집에 싣기로 결정했다. 단군 조선에 대한 연구는 결국 한국 문화의
뿌리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문헌사적인 연구뿐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연구도
활발하게 벌일 필요가 있다" 라고 말했다.
출처-하늘민족의 역사
그리고 지금 환인 환웅 단군이 나오는 역사 책에서 나온 유적들이 수천년의 새월이 지난후
지금 발굴되고 있습니다.
일본(日本) 국호의 비밀
일본은 한반도에서 이주한 한민족에 의해서 건국된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옛날에 자기들이 한반도의 가야지방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部說)'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임나일본부설'은 상고시대에 한국의 상당부분은 중국이 지배했고,
그 아래는 자기네 일본이 지배했다는 날조된 학설입니다.
'임나(任那)'는 맡을 임(任), 나라 나(那)로 '임나일본부'는
일본을 맡고 있는 부서라는 뜻이 됩니다.
즉, '임나일본부'는 가야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맡아 다스리던 부서라는 뜻입니다.
지나(支那)와 임나(任那)를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진정 한반도를 다스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면
당연히 '지나일본부(支那日本部)'라고 해야 말이 됩니다.
우리가 일본에 회사를 따로 세우면 일본지사(日本支社)가 되고
일본에서 한국에 회사를 따로 세우면 한국지사(韓國支社)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에 비밀의 열쇠가 숨어져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뜻은 '일(日)'은 '태양'을 뜻합니다. 그래서 일본국기를 보면 흰 바탕에 빨간 점이
하나 찍혀 있는데 이것은 '태양'을 상징합니다. '본(本)'은 '근원'이라는 뜻이므로
일본을 풀이하면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도를 머리 속에 그린 다음 일본에서 해가 뜨는 곳을 생각하면 미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 사는 사람은 미국을 보고 일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일본을 보면 해가 뜨는 곳이 됩니다.
즉,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를 하여 나라이름을 지은 것이 바로 일본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지배하던 세력 중의 하나인 백제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일본이라고 한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든 사람은 '천지왕(天智王)'으로 백제 의자왕의 36명 왕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우리나라가 본국(本國)이고 일본이 지국(支國)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일본의 천왕이 자기는 조선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가 파문이 일어나고
급히 수습한 사건도 존재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조상도 우리나라 입니다.!!
일본에 대한 것이 일제 강점기에 잃어버렸다면
중국에 관한 것은 더욱더 오래전 사대주의에 빠져서 다! 날려 먹었습니다.
<빙혼>
독자들이 상기 내용들을 믿거나 말거나는 자기 마음이다.
현재 읽고 있는 “성경, 불경, 천부경, 코란 등” 고대의 다양한 서적들은 인류가 문자를
얻기 전부터 구두로 전해져 온 것들을 문자가 생긴 뒤 그시대의 문자를 사용하여
짐승의 껍질, 나무판, 점토판, 동굴 벽 등에 기록되었다가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현대어로 번역하기 까지 수많은 오류와 오류를 거쳐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인류의 가장 대표적인 고대 서적 중에 성경이라는 책도 수많이 변경, 개정되었고
조선 말기 한글로 번역된 것이 계속 변경되어 아직도 개정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ISO 요구사항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웃기는 짓을 하고 있다.
ISO 공식 언어는 “영어, 불어, 러시아어”인데 한국판 ISO 규격은 영어로 된 규격을
한글로 반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SYSTEM"과 ”PROCESS"라는 단어를 영어를 좀 한다는 대단한 사람들이 두 단어를
한글로 번역하지 못하고 그냥 영어 발음을 그대로 쓰는 대단히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다 잘났기 때문에 뜽 가지고 입씨름만 하다가 서로가 양보를 하지 않으니
대한민국 국회처럼 항상 희한하게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대한망국 민족의 본성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무시하는 중국은 두 가지 단어를 “體系”와 “過程“으로 번역을 해서
아무런 이상도 없이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무시해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짓거리를 품질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해 놓고 있는데
고대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는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종교와 역사는 분명하게 다르다.
그러나 역사가 없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고 종교가 없는 역사는 존재하지 못한다.
마치 엄마, 아빠가 있어야 아이들이 존재하지 이유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모 특정 종교는 애비가 없이 자웅동체인 음양인이었던 마리아가 자식을 낳았으니
그 분야 사람들하고는 종교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하는 짓은 미친 짓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와 종교들은 수없이 변화와 변화를 거쳐왔고 또 변화되어 갈 것이다.
현실에 살아가는 가는 우리는 현실의 시각으로 세상과 종교와 역사를 바라보면 그 뿐이다.
역사와 종교를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말자.
유물을 찾아내 과학적으로 입증한다고 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진리라고 주장하지 말라.
옛날에 지구는 네모났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지구가 둥글다고 하면 지식인들과 과학자들에 의하여 음모론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시방은 지구가 네모나다고 하면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한다.
설탕과 커피, 돼지고기, 담배가 해롭다고 먹지말라는 사람이 많이 있다.
발견당시에는 설탕은 의약품이었고 커피는 건강식품이었다.
담배는 신혼여행에 필수품이었고 하루에 담배를 1갑씩 피우면 건강해진다는 광고도 있었다.
회족들 눈에는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온갖 잡병에 걸려 죽는 것이 불쌍해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제각기 운명과 숙명에 의하여 태어난 문화와 지식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을 지닌다.
자기와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기준이 다르다고 손가락질 하면 확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
빙혼은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환생한 웅녀의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적어도 흙으로 빚어진 점토 인간의 후손보다는 그래도 동물의 후손이 더 낫다고 생각이 든다.
고대 역사를 무조건적인 진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한국 역사의 변천이 궁금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