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너무 잘 알지만 그렇게 실천을 못해서 수영을 못하는 바보가 바로 나다. 잠깐 다니러 온 네 살짜리 어린 손녀를 데리고 수영장에 다녔는데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코를 손으로 쥐고 머리를 물속에 넣더니 몸이 뜨고 곧 수영을 하게 되는 것을 보고 참 대견하게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수영을 배우려면 머리를 물속으로 넣으라고 하는데 그것을 도저히 못해서 수영을 못한다. 그리고 “죽으면 살리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하고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해에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항해하는 것에 비유한다.
곧 풍랑에 휩쓸려 갈 것만 같은 위태한 나뭇잎을 타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인데 자녀들을 기르며 참으로 그런 위험과 함정이 도처에 노리고 있는 것을 본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영양실조로 아이들이 굶주려서 너무나 안타까운데 풍성한 선진국과 우리 한국도 너무 영양이 풍성해서 비만으로 걱정이다. 그 비만은 이제 그냥 넘길 일이 아니고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잘 먹도록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이 세상 나쁜 오락, 영화, 게임, 섹스 등 그런 것들로부터 어떻게 자녀들이 잘 헤엄쳐 나올 수가 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 근처도 못 가게, 머리를 그 속에 빠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불행하게도 우리 자녀들은 그 악하고 음란한 유혹의 세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필히 수영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수영을 못하면 남과 더불어 살 수가 없다. 물속에 들어가서는 숨을 쉬지 말고 그 물을 먹지도 말고 고개를 잠깐 내밀고 숨을 쉬고 다시 들어가서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고도 견딜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하리라.
내가 그 수영장 물이 더러워 머리를 물속으로 넣지 못하는 것처럼 그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가르쳐주고 결코 그 물을 마시지는 말고 그 곳에 빠지지도 말고 고개를 들고 살아남으라고 가르쳐야 한다.
나는 어릴 때에 한강에서 수영을 못 배운 것이 참 안타깝다. 미국 부모들이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와서 물속에 집어 던지며 수영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는데 아이가 어릴수록 수영을 잘 배운다.
세살 때의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어릴 때에 올바른 도를 가르치면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성경에 말씀하신다. “‘
죽으면 살리라.” 어떻게 죽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 고해 속의 인생을 살면서 육신의 수영만 열심히 가르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쉴 수 있도록 영적으로도 잘 인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