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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
김 지 연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마혼 살이나 먹은 질긴 사내가 여린 심성의 소녀처럼 사랑이니 어쩌니 간지러운 소리 지절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나는 그를 혼신으로 깊이 사랑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집에 들리는 그가 미완성의 내 그림에 진심으로 관심을 쏟으면서,
“야, 임마 붓 놓고 술 한잔 하자!”
하며 내 어깨를 쥐어박거나,
“언제까지 혼자 빌빌거릴 거야? 내가 여자 하나 소개하랴?”
따위의 농담만은 아닌 말을 떠벌리다가도 어머니가 나타나면 조용히 근엄해져서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입을 닦는 그를 나는 좋아했었다.
어쩌다 30년도 전에 시앗 하나 보아 따로 살림나선 떡판 같은 아들 둘을 낳곤 한 달에 한두 번씩 집에 들러 성질 칼칼한 어머니의 한에 맺힌 저주스런 원성을 듣다가 생활비를 놓고 쫓기듯 돌아가는 그였지만 나는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결혼 당초부터 장차의 교수(敎授)직이 당신의 천직이라며 직장을 놓지 않는 어머니의 엄격하고 고집 세고 강한 성격과 그녀가 그를 내조하는 따뜻한 아내이기만을 원한 그의 다감한 성품의 일면이 서로 상충됨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런 상태인 채 이혼(離婚)은 않고 있었으며 (어머니가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재 30대 중반의 장년들로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는 이복(異腹) 형제들은 어머니의 차남과 3 남으로 호적 에 올려져 있는 형 편이었다.
하여간에 나는 그와 장남(長男)이면서 중소기업가인 그의 사업에는 일체 무심한 환쟁이로 화실에서 처박혀 있었고(내 자질과 성품이 사업과는 동떨어져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예순 넷의 나이로 임종(臨終)을 한 달여 앞두고 투병중이었다.
명은 말기의 간암(肝癌)이었으나 당사자인 그는 심한 간염(肝炎) 정도로 알고 있다고 주위의 가족들은 믿고 있었으며 그의 충격을 염려해서 누구도 본 병명(病名)을 그에게 일러 주지 않았다.
자유직종의 환쟁이인 나는 그의 병상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장남이라거나 구
속된 일이 없어 그의 곁에 밤낮으로 머문다기보다 얼마후면 드디어 스러지고 말 그의 체취가 진정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 또한 내가 당신의 눈길 닿는 곳에 있어주는 것을 원하고 있었으며 통증이 가실 때는,
“이 방에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것을…….”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의 이런 마음씀은 당신께서 인정하는 중견화가인 내기 책이나 들고 그의 곁에서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미안해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보담도 조부(祖父)의 반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당신의 소년 적 아픈 기억과 함께 그의 분신(分身)인 나의 작업광경에서 그때의 공허함을 메꾸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바램도 궂은 긴 장마 중에 어쩌다 반싹 햇빛 드는 날이 있듯 짧은 순간에 그쳤고 그는 여전히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나날이 악화되는 신체의 병세에 따라 정신도 비례하는 듯 그는 극도로 과민해져서 매일 한번씩 들러 회사의 상황을 보고하는 두 이복동생에게 벌컥벌컥 화를 잘내고 이틀에 한번 꼴로 들리는 둘쨋부인과(그녀는 매일 들렀지만 아버지가 못마땅해 하여 하루 걸러큼씩 들렀다) 4·5일에 한번쯤 짧게 들러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다 돌아가는 어머니에게도 전에 없이 오금박는 듯한 소리를 하며 이죽거리기도 했다.
사실 그의 간병도 30년을 함께 산 둘째부인이 들어야 할 것 같았으나 그는 그녀가 맡지 못하게 하고 병원측에 보조원을 청해 시중케 했었다.
그는 그것이 차라리 마음 편한 것처럼 행세했지만 그러나 본댁인 자존심 센 내 어머니와 나의 잦은 방문을 의식에 두었던 모양이었고 내가 그의 곁을 지키자 자신의 치리가 아주 잘된 것으로 믿는 듯했는데, 그는 새삼 두 여인을 보두 함께 빈정거리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주치의사는 그의 이러한 과민현상을 그가 어떻게도 꼬집어 확신하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불안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증상은 점점 심해질 수도 있고 씻온 듯 없어질 수도 있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의 특징일 수 있으니 가족들은 그의 섭한 맡에 개의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가족들 중 두 이복동생은 그에게 자신의 병이 악성 인 불치병(不治病)임을, 앞으로 한 달 가량밖에 더 생존할 수 없음을 알리고 주변정리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들은 재산상속 특히 회사의 주식이나 운영권 따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그들은 차남, 3남이긴 했어도 실제 그를 도와 회사를 키운 실력자들인데 내가 법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장남이고 더우기 그가 세 아들 중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불안감은 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솔직이 말해 그들은 내가 밤낮으로 아버지 병상 옆을 지키고 있는 사실조차 못마땅해 했고 온갖 수발을 도맡을 평생 내조자인 자기 어머니를 두고 병원 보조원이 왜 필요하냐고 병상의 그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그의 마지막 주변정리에서 실제적으로 그를 내조한 그들의 어머니가 법적부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행여 상속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그들을 불안케 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 그는,
“철딱서니 없는 것들…… 아비의 심중을 헤아려볼 생각은 않고 잿법에만 눈독을 들이고선……. 쯔쯔쯔…….”
하고 중얼거렸었다.
그런데 삼사 일 전부터 두 이복형제와 그들의 어머니는 마치 모의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임종(臨終)을 알려서 정신 괜찮을 때에 주변정리를 하도록 말해야 한다고 일시에 강조했고 나와 주치의사는 좀 더 신중을 기하자고 했다.
불치의 환자일수록 지푸라기라도 움켜쥐고 싶어하고 또한 자신이 중증이라는 사실을 가능한 느끼고 싶어하지 않으려 하는데 볼치를 굳이 알림은 충격일 수밖에 없고, 그의 임종을 더욱 앞당기는 결과만 낳는다는 게 나와 의사의 의견이었다.
“이런 현상은 그 질명의 내용을 꿰뚫고 있는 의사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져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의 병이 불치의 흑색종임을 통고받은 어느 의사가 처음에는 크게 동요를 겪다가 그러나 관계 책을 찾아보곤 그중 약 3%는 5년 이상 사는 예도 있다는 기록을 읽고 자신을 그 3% 속에 끼는 것으로 착각하여 운명하기 수일 전까지 열심히 근무했다는 얘기도 있읍니다. 나머지 다수의 97% 속에 자기는 절대로 끼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이 악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의사의 이런 설명이 따르지 않더라도 나는 그가 ㅏ기 질병에 대해 착각하고 과소(過小) 판단하려 드는 마음을 진작부터 읽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한차례의 통증이 끝나자 주치의사를 보고
“내 병이 위중하지요?”
라고 물었고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위중하지만 극소수는 10년 넘게 사는 사람도 있읍니다.”
라고 하자 그가 보일듯 말듯한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었다. 의사가 말한 극소수
란 1%도 안 되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퍼센티지였지만 그는 결코 ‘극소수’를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그러한 자기 질병에의 과소평가와 도피인식은 그런 것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그는 가능한 행복했던 과거를 되살리고 당장도 그 과거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려 들고, 특히 의사가 그의 병증상에 관해 의논하려는 눈치를 보이면 잽싸게 빛났던 자기 과거로 화제를 돌리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이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앞으로는 이러이러한 조치 치료가 필요하다.” 는 심각한 표정의 의사 얼굴을 불안한 시선으로 응시하면서도 막상,
“내가 죽느냐? ”
고는 묻지 않았다. 이렇듯
‘자기는 죽지 않는다.’ 결코 ‘죽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표현이 그의 연약한 혼신에 절절이 묻어져 있는데, 어떻게 ‘당신은 말기 간암이다. 한 달 안으로 당신은 죽는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나는 고개를 혼들었다.
그들은 의사와 특히 나의 완강한 반대의견을 듣고는 더 우기지 못했으나 편치 못한 심중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표정이 심히 우그러졌고 성격이 화급하고 다혈질인 3남은 좌불안석 이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런대로 그들은 더 강조하지는 않았으나 환자의 상태에 환자 이상으로 시시각각 과민해져서 그것만으로도 예민한 환자의 심기나 느낌을 곧잘 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병세는 당연한 과정으로 나날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호전되기는커녕 시시각각 더욱 심해지는 증상에서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운명 (運命)을 감지한 듯 (진작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내색 하지 않았었다), “한발짝 먼저 가는 것뿐이거늘…….”라는 소리를 혼자 읊조리기도 했고, 병문객들에게 죽음을 막지 못하는 인간 무능의 서글픔과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읊조리기도 하는 등 차츰 변화스런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내가 죽다니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냐.”, “왜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느냐”, “내가 죽는데 너희들은 희희낙낙 살아 있다니 이런 억울하고 불공평한 데가 어디있냐.” 등의, 딱 잘라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도 중얼중열 분절이 끊어지는 단어들을 대충 얽어보면 그런 내용들인 끊는 단절의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특히 어머니와 그의 둘쨋부인에게는 그런 자신의 적나나한 원색적 심층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보여 그들을 거침없이 섭섭하게 만들었고 둘쨋부인은 그의 병상을 두들기며 흐드득 소리내어 울기까지 했다.
유별스런 현상은 그가 나에게 보이는 무한한 사랑의 표시였다. 말이나 행동은 아니었어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운 정이 넘쳐 있었다.
정(情)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눈빛은 오래도록 나에게 정성들여주지 못한 자기 과거에 대한 회한(悔恨)과 연민(憐憫)의 눈길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간절한 애원의 눈빛 같기도 했다.
나는 그의 그런 시선을 접할 떼마다 그의 두 손을 그러쥐고 가슴이 저리는 아픔만 느꼈다. 그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 육신이 어느. 정도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지만 달리 어떤 방범은 없었다.
다행히 의사는 그에게 계속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본 질환 말고도 피부발진이라든가 감기 따위가 끊임없이 동반했는데 의사는 그런 부수적인 질병 발생에도 정성을 기울여주었다. 이러한 주치의사의 치료자세를 보고도 그는 ‘내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토록 아껴주는 것이겠지!’라는 아전인수격의 자가해석을 내려 금방 감동스러워지고 눈물까지 글썽거리기도 했다.
주치의사는 나를 비롯한 우리의 가족들에게 한두 달 전만 해도 환자는 자제력이 강한 이성적인 사리판단으로 장차의 (임종)에 대한 자기의 의지를 보이기
도 했는데, 죽음이 목전에 닿을수록 경제적 사회적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
서 나타나는 죽음을 전적으로 거부(拒否)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최하류층에서도 나타나는데, 의료보호를 받아야 할 이들 극빈환
자들은 백혈병(白血病)을 빈혈(貧血)이라고 우기고 위암(胃癌)을 위염(胃炎)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며 내가 왜 죽느냐, 당신들이 죽을 병을 나에게 덮씌워 참말로 나를 죽이려든다며 악을 쓴다고 했다.
나는 주치의사가 무심코 던진 말에서 병원의 수입면에 도움은커녕 적자의 요인이 되게도 하는 영세환자들에게는 의사들이 설령 그 병이 악성질환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럴수록 병명을 우정 알려주는 것 같은 감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씁쓰름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백혈병흘 빈혈이라 울부짖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더 살고픈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우선 병원의 거대한 힘의 내쫓김에서 떠밀려나지 않으려 절규하는 사력의 발버둥으로 예상할 수 있어 가슴을 저미게 했다.
결국 그의 말은 귀한 생명의 대우와 귀하지 아니한 생명의 대우로 지극히 대조적인 상황이건만 의사는 깊은 헤아림 없이 함께 비유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반문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의사는 이어서 그의 연구실에
불러들인 우리 가족들에게 전혀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그러니까 의사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10여일밖에 생존하지 못하는 그가 두 달 전 입원 초에 사후(死後) 자기의 신장(腎藏)을 병원측에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며 유인물의 서명서를 꺼내보였던 것이다.
그 서명서는 장기(臟器) 의학회에서 인쇄한 각 장기제공자들의 서명날인지로서 사후에 신장을 제공하겠다는 그의 친필사인이 분명히 기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적잖이 놀라와하며 서로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의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뜻있는 많은 분들이 장기제공을 지원하지요. 영원히 스러질 자기의 육체 일
부가 다른 병든 이를 살린다는데 마지막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더러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이식(移植)되어 계속 살고 있음은 자기가 죽지 않고 계속 생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위를 하면서지요.”
의사는 유독 의아해하는 나를 주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하, 과연 아버님다우시군! 아버님의 신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아버님이 자기
생명의 은인이 되겠고 아버님의 죽음은 사회에 훌륭하게 선전되겠군! 그런데……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은 돌아가신 후에 실시될 텐데, 장례식 거행에는 지장이 없겠지요?”
회사의 상무로 있는 차남이 의외로 밝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의사가 물론 그
렇다며 차남 못잖은 활기로운 음성으로 응수했다. 둘째부인과 3남이 긍정이 된다는 듯 고개들을 끄덕였고.
나는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의사를 돌아보았다.
“저희 아버님이 장기 제공을 서명할 그 당시 자신의 병이 불치라는 걸 알고 계시는 것 같던가요?”
“글쎄요…… 하지만 인식치 못하셨다 해도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은 죽는 것이니까 자기에게 먼 사후(死後)라 해도 서명은 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 아버님이 장기 제공을 먼저 제의하셨나요? 아니면 병원측서 요구하셨
나요?”
“그야, 저희 병원에서는 입원환자가 입실하면 으례 그 유인물을 돌리지요만,
절대 강요는 안하지요.”
“저희 아버님께서 밝은 표정으로 서명하셨나요?”
그때 차남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아, 그런 거야 서명이 다 된 이제 와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아버님은 평소에도 장기 이식엑 관해 관심이 많으셨고 언젠가는 당신의 시력이 아주 좋음을 자랑하시며 ‘내가 죽으면 이 눈을 안구은행에 기증해야겠군.’ 하는 말씀도 하셨으니까요.”
“오! 그러셨습니까? 정말 훌륭하신 분이시군요!”
의사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이며 빛나는 것 같았다.
“좋은 가문이시군요!”
의사는 연달아 차남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낯으로 당장에 어울리지도 않는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삽시간에 의합이 잘 맞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에 없이 연신 벙글대는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장을 이식받을 사람이 이 병원에서 언제나 대기하고 있겠군요? 저희 아버님이 사망하실 날을 기다려서 말입니다?”
“미리부터 입원 대기하는 건 아니지만 수시로 연락은 가능하지요.”
“기회 보아 아버님께 서명 날인 여부를 여쭤보겠읍니다. 그리고 본인께서 서명하셨더라도, 유가족이 반대하면 장기적출은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
다.”
“아니…….”
의사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거두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본인의 심중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가족인 저도 더 어떻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읍니다.”
그때 차남이 아버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엉뚱한 수작이냐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론 아버님의 장기제공은 당신의 평소 지론이셨다구! 여타 가족이 이러쿵 저러쿵 할 성질이 아니라고 봐요.”
“그래, 자네가 나보다 아버님을 더 잘 알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일단 확인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
차남은 그 말에는 더 대꾸 않고 여느 주장하던 환자에게의 병명 알림을 다시 큰소리로 역설했다.
“어떻습니까? 이제 아버님께 명명을 알려드리고 의연하게 마음의 준비를 미리 갖도록 하시는 게…… 끝내 당신이 회복될 것으로 알다가 임종을 맞게 되면 사후에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일어날 텐데요?”
“자네는, 그 문제를 왜 이렇게 재촉하는건가? 복잡할 게 뭐가 그토록 많지?
나는 반대일세. 이유는 아버님의 임종이 분명히 당겨질 것 같아서야. 우리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버님은 느끼고 걔시는 것 같았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자기만의 은밀하게 닫혀진 인식(認識)이랄까 그런 것을 느끼시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덧들여 충격을 드릴 필요는 없지 않겠어?”
“우리가 왜 말씀드립니까? 그것은 박사님의 임무인데요. 그리고 아버님 생명은 풍전등촉인데 하루 이틀 더 고통을 당하시는 것보다 고통을 덜어드리는 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자네는 무엇이 그리 급한가? 할 말 안할 말 다하게…… 조금만 더 참게. 나는……. 아버님을…… 하루라도 더 가까이 뵙고 싶다네…….”
내 음성이 고성으로 터졌다가 다시 한숨과 함께 무겁게 가라앉아져서인지 아무도 더 응수하지는 않았다.
그때 외사가 내 말을 거들었다.
"아까도 장시 말씀드렸읍니다만, 환자께서는 현재 죽음을 눈앞에 보는 환자들의 심리상태 즉 그 과정의 심부에 접어들어 계십니다. 분명히 얼마남지 않은 임종을 느끼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려들지 않으실 뿐이지요. 죽음을 부정(否定)하고 왜 하필 내가 죽어야 하느냐며 분노하고 이어서 ‘그래 인정은 한다, 하지만·…….’ 하면서 신(神)과 하늘과 운명 따위와 ‘자식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제발 아니, 한 달만 더…….’ 식으로 빌며 협상하다가, 그러다가 ‘그래, 이제 내 차례다.’ 하는 반체념과 자기 죽음에의 애도로 우울해 하고 끝내는 ‘이제 더 무슨 소용 있으리.’ 하는 완전 체념을 동반한 용납(容納)의 시기가 오는 것인데, 현재 환자께서는 그 과정이 혼합 현상으로 순서 없이 오고 있어 가족들이 조금은 고단하겠지만 그러나 참으셔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환자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담, 당신께서 상속문제 등 주변정리도 생각하셨겠는데……."
3남이 중얼거렸다.
“글쎄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읍니다만 그러니까 두 달 전 오, 그렇지요. 장기제공에 서명하시던 그. 즈음에 어느 변호사 한 분이 들락거리셨던 것을 기억합니다만……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고문변호사를 두시지 않으셨는데…….”
차남과 3남이 동시에 긴장하며 의사의 얼굴을 뚫어지듯 쳐다보았다.
의사는 거듭 고개를 내저으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고, 우리 가족들이 그의 연구실에서 나가주기를 원했다.
그가 우리를 불렀던 목적은 아버지가 신장을 병원에 제공하겠다고 서명했으니 사후에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복잡한 표정들로 의사의 연구실을 벗어났다. 의사의 ‘장기제공…….’ 보다 ‘변호사…….’ 운운이 던져준 여운이 켰기 때문이었다.
솔직이 나는 그린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많지 않았다. 설령 내가 장남이면서
차남 3남처럼 당신의 보살핌이나 정을 얻지 못한 아픈 동정(同情)으로 회사의 운영권을 맡긴다 해도 (그가 그럴 수 있는 감상주의자도 아니지만) 천만에 뿌리칠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기어이 그것을 내가 인수해야 억울하게 버림받은 지난 삶의 보상을 받는 것처럼 집요스립게 강조했지만 나는 생각이 그렇지 않았다.
애당초 어면 상황에서 차남 3남이 그의 후계자들로 주위에 인식되고 부상되었던가는 알 바 없이 각자의 분야를 십수 년 따로 살아온 이제 와서 그림 아닌 타전문분야의 습득은 나에게 매력도 취미도 욕구도 관심도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그의 병실로 들어섰다.
그가 힘살 없는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로 갔었느냐는 물음일 것이었다.
“산책 좀 하고 왔습니다…….”
그가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네가 왔으니 이제 안심하고 한숨 눈을 붙이겠다는 듯이.
연이어 나머지 가족들이 우르르 병실로 들어섰다. 의사가 말한 그 변호사가 누구인지를 그에게 듣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는 그들의 턱에 닿는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명히 깊은 잠은 들지 않았으련만 눈을 뜨지 않았다.
그들은 머뭇거리다가 저녁에 들르겠다는 전갈을 보조원에게 중얼거리곤 병실 밖으로들 나갔다.
보조원은 날렵하게 그들 앞서 병실문을 열어주고 밖으로 함께 나갔다가 들어왔다. 나는 30대 초반의 그 병원보조원이 그들에게 이미 진작부터 매수되어 나와 아버지의 일거일동을 자초지종 보고하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것 역시 개의치 않았다.
보담도 그가 신장을 제공하겠다고 서명한 사실이 그의 진의(眞意)인지의 여부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가 제공하려 했을 것이라는 심중은 들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그를 자극함 없이 문의해볼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련데 바로 그날 밤으로부터 그의 상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그는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극심한 동통에 진땀을 홀리며 고통스러워 했고 전신을 뒤트는 비명속에서 진통제만을 계속 요구했다.
신경도 한 발작씩 확실하게 다가드는 죽음에의 공포로 극도로 날카로와지는듯 사뭇 발악에 가까운 몸태짓과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얘, 얘야, 나 좀더 살 수 없겠니 ? 나, 나 좀 살려다오…….”
나는 히우적이는 그의 앙상한 팔들을 품안으로 끌어안으며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회복되실 것입니다.”라는 허황된 말을 안타깝게 들려주곤 했다.
나는 그를 다독이면서 내가 너댓 살이던가의 유년적에 심한 배앓이로 그에게 업혀서는(그는 내가 여섯 살 떼부터 시앗을 얻어 딴살림을 났었다) 내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길길이 날뛰며 고함쳤었다는, 그의 말을(그는 간간히 그런 내 유년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떠올렸다.
그때 그는, 병원은 다녀온 이후이고 아이는 계속 길길이 뛰고 하여 어떻게도 할 방도가 없어 그만 선자리에서 덥석 땅바닥에 매를 깔고 제발 당신이 아기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간절하게 빌었더니 신통스럽게도 등짝의 아기 울음이 서서히 그쳐지고 자기 또한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때의 그 상황이 당신에겐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했었다.
진정 나도 그의 모진 고통이 차라리 나의 것이면 싶은 때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간곡한 마음뿐이었을 뿐 그는 여전히 사경(死境)을 헤매는 죽음 직전의 환자였고 나는 그의 무력한 아들일 뿐이었다.
어머니의 독선 속에 휘둘려 더운 정을 모르고 성장한 나는, 마흔 살의 질긴 나이에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그가 죽으면 혈혈단신의 고아가 될 것이라는 서러움에 절어 있었고 가능하면 내 유일한 더운 핏줄인 그가 더 살아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그를 뼛속 깊이 사랑했던 것이다.
그는 최후의 몸부림이듯 이틀간을 극심하게 고통스러워 하더니, 사흘째부터는 거짓말처럼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신기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회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완전 체념의 상태인 마지막 용납(容納)의 시기로 접어든 듯싶었다. 단 며칠, 몇 시간이라도 더 살고파하던 마지막 생명 희구(希求)의 줄을 투두둑 끊어버리고 패배를 자인(自認)하며 모든 것에의 체념 상태로 차라리 핑화(平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실제 이러한 무념(無念)의 순간이 그의 인생의 진정한 승리이며 평화이지 않을까도 싶었다.
더욱 놀라운 현상은, 통증은 어저께 그저께보다 더 격심할 텐데도 일언의 신
음이나 진통제를 놓아달라는 말도 일체 없었다. 의식은 선명하게 맑아 있는데도 대화를 통한 인간관계에 애타하기는커녕 관심이 없는 듯싶었고, 가족들이나 문병객들이 안타까와 하며 손을 잡으면 “갈 때가 되었네, 잘 있게.”라는 인사를 아무런 표정없이 건네곤 했다.
마치 그. 어떤 느낌이나 감정샘도 없는, 정상의 움직임을 초월한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 같은 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가슴으로 울고 조바심을 켰다. 그는 이제 드디어 완전히 떠날 준비를 완료한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러한 지극히 고요한 적요(寂寥) 상태에서 만 48시간을 더 지냈다.
그러는 동안 주치의사는 바쁘게 돌아쳤고 가족들은 하루에 몇차례씩 그의 빙을 들락거렸으며 마침 차남과 3남이 함께 있는 자리에 여느 그 변호사가 나타나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잠겨드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분이…… 장익현 변호사님이시다. 내가 죽고 난 일 주일 후에…… 이분이, 나의 마지막 뜻을 녹음한 테이프와 유언장을 공개할 것이다…….”
변호사가 슬픈 얼굴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고, 그는 변호사의 두 손을 그러잡고 “……부탁한다…….”고 말했 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10시경.
그는 수면상태로 점 어들 듯 깊은 혼수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울러 동공(瞳孔)이 산대, 고정(散大固定)되고 호흡이 정지되어 갔다.
그때 주치의사가 과묵한 음성으로 “운명 하셨다.”고 선언했다.
병실 안이 갑자기 비명과 울음소리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어안이 병 벙했다. 의료팀들은 흰 광목천으로 그의 몸을 덮었고, 이어서 들것 위에 그의 몸을 옮겼다.
그를 다루는 그들의 손길이 어찌나 잽싸고 숙련되었던지 상기도 그의 손을 붙들고 있던 나는 그를 불러볼 짬도 없이 뒤로 밀쳐지며 그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이미 들것에 옮겨져 병실을 나가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이, 이봐요오, 환자가 숨을 쉬고 있어요, 맥박이 뜁니다, 체
온이 있어요오!”
그 러나 들것은 이미 임원실 복도를 성큼성큼 가로지르고 있었고 내 소리는 가족들의 울부짖음 속으로 묻혀들고 말았다. 장기제공을 위해 수술실로 옮겨지는 그를 마지막 하관(下棺)을 지켜보듯 둘쨋부인과 고모들의 유독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로 병실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나는 허겁지겁 들것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새 대형 엘리베이터 속으로 잠겨들었고 나는 그 쇳덩이가 다시 위로 솟구쳐 올라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비상제단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그. 방법이 지름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허둥거리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 다짐하면서도 가슴과 팔다리가 제멋대로 휘청거리고 떨려져서 무엇보다 곧바로 계단을 밟아내릴 수가 없었으며 내가 허둥대는 위치가 자그마치 7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섰고, 그것은 마치 아래에서 솟구치고 있어 얼마
간 더 가슴을 닳이며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막다른 꼭대기층인 12층에서 그것은 바직바직 타는 내 속과는 상관없이 꽤나 더 멈추어 있었고 매 층마다 꼬박꼬박 서는 등 화급한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상태인 채 내 앞에 머물렀고 그런 속도로 수술장이 있는 1층에 닿았다.
예상대로 그를 실은 들것은 이미 혼적 없이 어느 수술방으론가 스러지고 없었다. 다섯 개도 넘는 대수술실이 위치한 복도로 뛰어들려 했다. 그러나 수술장이 진열된 복도 입구의 둔중한 문은 붙게 잠겨 있었고, 그것을 마구 두들기는 내 어깨를 병원 수위들이 거칠게 돌려세웠다.
“이봐요, 나 좀 들어가게 해주시요. 707호실 환자가 아직 살아 있단 말이요오, 맥박이, 호흡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신장을 적출한다고 이곳으로 옮겨왔단 말이요오.”
“이사람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구만?”
허우대가 큰 두 명의 수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나 여하간에 병원 측에 이롭지 못하다는 사실만 인지하면서 나를 잡아당겼다.
“이거 놓고 문좀 열어주시요, 집도가 시작되기 전에 어서 만류해야 된단 말이요!”
하지만 나는 더욱 거칠게 다루는 그들에게 멱살을 잡히다시피 수술장 입구에서 밀려쳤다.
긴 복도의 대기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짙은 호기심의 눈초리를 담고 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병원 현관의 상담과로 가보시오. 여기는 일반인이 출입
못하는 곳이요.”
나는 호흡을 잦혀올리며, 어깨를 하염없이 처뜨리고 말았다. 흡사 행패꾼 취급하듯 무작정 떠밀어내는 이들과 어차피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돌쳐서 병원창실을 찾았다. 수술중지를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병원 책임
자뿐이리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지만 병원장은 출타중이었고, 다음으로 달려간 진료부장실의 실장은 의대 강의에 들어가고 없었다.
그렇게 돌아치는 동안 시간은 30여 분 이미 지나버렸고 나는 가슴에 새까맣게 탄 멍울이 얹혀진 채로 다시 7충 병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당숙부와 함께 입원실 복도에서 내 향방을 몰라 서성거리다가 다가 들었고, 입원실에는 둘쨋부인과 차남 3남 그리고 그들의 부인과 종형과 고모 둘이 훌쩍이고 있었다.
둘쨋부인은 언제 그토록 애통하게 흐드러지게 울었더냐 싶게 눈귀에 물기 한 점 없이 며느리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고, 당숙과 종형이 다가서며 장례 준비를 서둘러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디를 갔었던가?! 자네의 얼굴이 말씀이 아니군……너무 상심 말게…….”
방안의 누구도 좀 전의 내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여읜 설움으로만, 넋빠진 듯 탈진해 보이는 나를 위로할 뿐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말을 잃은 채 망연하게 앉아 있었다.
“일단은, 수술실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려야죠.”
둘째가 당숙과 종형을 번갈아보며 그렇게 응수했다.
“그렇군! 장지 (葬地)야 마련되어 있고 기타 준비는 장의사에서 할 테니, 우선 알릴 곳의 명단작성부터 해야되겠군. 그것 이전에 가만, 몇 일 장으로 할 것인가? 5일장으로 뫼셔야지?”
당숙과 종형은 사뭇 나를 죄이듯 연달아 물어왔다.
나는 홀연히 일어섰다.
“가만요…… 당숙부님! 세상에 아버님의 부음을 알리기 전에, 우선 확인해야할 일이 있읍니다. 이제는…… 어차피 엎질러진 물입니다만…… 그러나 결코 묵인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슨…… 말인가?”
입원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나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어머니가 당숙부에 이어 재우쳤다.
“무슨……일이냐?”
“아닙니다, 제가 의사를 만난 후에…… 말씀드리겠음니다…….”
납덩이 빛깔의 내 얼굴과 심히 무겁고 침울한 꺽쉰 내 음성이 그나마 떨려서 나와서인지 주위가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런데 때맞춰 주치의사가 입원실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모든 일올 무사하게 아주 잘 완료했다는 지극히 당당하고 만족스러운 빛깔을 하고 있었다.
“장기적출 수술도 성공리에 끝났읍니다. 시신(屍身)은 곧 영안실로 옮겨져……."
나는 목덜미를 시뻘겋게 붉히고 그의 가슴팍올 내 가슴팍으로 밀어붙일 듯 그의 코앞으로 다가서며 말머리를 잘랐다.
“저하고, 이야기 좀 나눌까요? ”
흥분을 삭이는 씨근거리는 내 숨소리와 서슬푸른 몸짓에서 그는 거절할 수 없는 뭔가를 느낀 듯 내가 팔을 끄는 대로 입원실 밖으로 따라나왔다.
“연구실로 가는 것이 좋겠군요.”
물론 그의 개인 연구실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럽시다. ”
그는 선선히 응했다. 그의 연구실은 마침 전화를 받고 방을 지키던 여학생이 자리를 비우고 없어 안성마춤이었다.
“앉으십시오.”
의사는 나를 내객용 의자에 앉도록 손짓했다. 나는 앉지 않았다.
“말씀해 보십시오. 선생께서는 분명히 맥박도 뛰고 있고 체온도 있고 호흡도 끊어지지 않은, 살아 있는 환자에게 죽음을 선언했고 수술장으로 옮겨 갔읍니다.”
“환자는 사망했었읍니다.”
의사는 눈빛 한 점 동요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럼,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미약하나마 그런 증상을 혹시 느꼈을지도 모르겠군요.”
“느낌이 아니라 분명히 살아 있었어요. 혼수상태에서 동공만 고정됐을 뿐이지 전부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선생은 장기를 적출케 한 것입니다. 신장을 떼내게 함으로써 생명을 단축시킨 것입니다.”
“고정하십시오. 제 말씀을 오해하시면 아니됩니다. 선생의 말씀처럼 맥박이 뛰고 체온이 있었다 해도 그것은 분초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환자는 뇌사(腦死) 상태로서 곧이어 호흡이 멎고 심장박동이 영원한 불가역적인 기능정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칠라에 선생께서 느끼셨을지 모르나 그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환자의 죽음올 부정하고픈 심리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누구보다 팽배하여 과민해 계셨으니까요.”
나는 입귀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시지 마십시요. 그 순간의 내 심경은 엄숙할 만큼 평정의 상태였고 호흡과 체온 맥박은 눈으로 귀로 손끝으로 직접 보고 돋고 촉지한 것입니다. 도대체, 선생의 주장처럼 그럼 뇌사(腦死)만으로 죽음을 판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심장과 폐가 미처 죽지 않았는데 뇌의 기능만 정지되었다고 환자를 시체실로 옮길 수 있나요?”
의사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뜻 아니한 문제로 선생과 죽음의 정의(定義) 문제를 새삼 논하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죽음이란 심장과 호흡기능과 뇌반사의 영구적 소실을 말합니다. 흐흡과 심장박동이 정지되고 뇌의 기능이 소실되어 불가역적일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눈부신 의학의 발달로 호흡과 심장박동을 인공적으로 연장시킬 수 있게 되고 또한 장기이식 수술의 발달로 심장과 폐장을 다른 사람의 것과 대치시킬 수도 있게 됨에 따라 기존의 죽음정의가 노전을 받게 되었지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리 신체의 기본적 생명유지창기(生命維持臟器)인 뇌, 심장, 폐 중에서 심장과 폐는 인공기기로 재생시키거나 이식시킬 수도 있지만 뇌(腦)만은 절대로 불가능하므로 이러한 뇌의 죽음이 폐와 심장에 분초로 앞선다 해도 죽음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설이 주장되고, 아울러 죽음의 통일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현시점에서 뇌사 이외에 없다는 것이 노정되고 있지요."
“점점 어려운 얘기로군요. 아니 그렇다면, 뇌의 전기능이 소실되면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인데도 장기를 적출해냄이 정당하다는 겄입니까?”
나는 ‘호홉도 하고 있고.’란 말을 슬그머니 생략하고 (그가 숨을 내쉬었던 것도 같고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도 같고 생각수록 불확실했다. 그.러나 내가 잡고 있었던 그의 손목에서 맥박은 분명히 뛰고 있었다) 심장박동만 강조했다.
또한 뇌사환자에게서 장기를 적출해내는 것은 바로 살인행위(殺人行爲)가 아니냐는 목에까지 차오르는 거친 표현은 죽였다.
나의 상식으로는 죽음의 범률적 인정은 심장사(心臟死)나 폐장사(肺臟死)이지 뇌사가 아니라는 점과, 뇌사상태는 살아 있다고도 죽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생사중간(生死中問)에 속하는 상태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82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흐름은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읍니다. 또한 기타 대부분의 나라도 범에 의한 규정은 없어도 의학적인 죽음, 죽음
에의 사실상 인정을 하고 있고 더우기 장기제공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 활용되고 있읍니다. 뇌사란 잠깐 말씀드렸지만, 뇌의 전 기능이 소실되고 깊은 혼수에 빠지면서 자발적으로 호홉이 정지되고 동공이 산대되며 고정되고 뇌간반사가 소실된 실제적인 죽음상태입니다. 인공호흡기나 인공심장박동기 등으로 생명 연장 장치를 하지 않는 한 호흡과 심장이 자동적으로 멎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블가역적인 죽음과정으로 돌입한 상태란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혹시 뇌사와 식물상태가 심한 의식장애를 동반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혼돈하시는지도 모르지만, 뇌사는 뇌의 두 기능 즉 식물적인 기능 (호홉, 순환, 대사기능)과 동물적인 기능(운동, 정신기능 등)을 포함한 뇌전체 (대뇌, 소뇌, 뇌간)의 기능소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선생의 부친께서 분명히 뇌사로 사망하셨기 때문에 죽음을 판단한 것이고 그리고 환자와의 생전 약속을 이행한 것뿐입니다.”
의사는 끝까지 당당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 당당함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경직된 마음이었다.
그의 말대로 뇌사가 절대로 소생되지 않은 죽음이라치더라도 내 손끝에 짚혀지던 그의 맥박이며 체온이며가, 또한 죽음의 선언과 동시에 쫓기듯 수술장으로 밀고나가던 서슬로 보아 그 행위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 있는 신선한 창기적출을 위해서라 치더라도 정당한 정상의 행위라고는 절대로 확신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의식의 혼수상태로 빠져들었다 해도 분초나마 더 살고 싶어 했던, 분초나마 더 그의 살아 있는 체취를 느끼고 싶어했던 우리 부자(父子)는 억울한 인공적 단절을 당했다는 절통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의사의 말끝을 물고 늘어질 심사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목으로 꾸역꾸역 차오르는,
“선생의 역설대로라면 식물상태와 완전 뇌사상태의 분별을 위한 검사과정이라도 있었어야 했잖소. 완전뇌사인지 아닌지를 당신의 일별로 판단할 수 있었단 말이요? 그리고 세계의 흐름이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든 말든 우리나라 죽음의 법적인정도 그렇단 말이요? 합리주의적 선진국들이 심장과 폐의 죽음보다 뇌사를 죽음으로 더 인정하든 말든 맥박이 있고 체온이 있는,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면 호흡도 할 수 있다는 사람을 어떻게 시체라 할 수 있단 말이요? 그것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절대로 소생하지는 못한다 해도 말이요.”
라는 아우성을, 그냥 꿀꺼덕 삼켜버리고 말았다.
어떤 속 후련하고 한(恨)과 원통함이 풀릴 명쾌한 해답을 얻는다 해도 결국 그는 영원한 불귀(不歸)의 객(客)으로 떠난 것을……
― 아버지……
나는 심히 고통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어깨를 처뜨렸다.
의사는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완전한 죽음의 상태란 신체의 세포사(細胞死)와 장기사(臟器死), 기존의 개체사(심, 폐, 뇌사)가 합치를 이루었을 때를 말합니다. 더욱 확실한 개념은 신체에 체온이 내리고 얼룩점(屍斑)이 생기고 굳어지거나(屍剛) 풀어져 허물어지고(自家蠣解) 부패(腐敗)되는 변화가 일어날 때이지요. 사실 심장과 폐장의 기능이 정지되어 심장박동도 호흡도 멈추어지고 뇌반사도 소실된 범률로 인정된 죽음의 상태라 해도 신체의 세포나 각 장기들의 기능은 훨씬 후에 죽어지므로 실제보다 죽음을 앞당겨 판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종래의 법률로 인정된 죽음의 정의도 실제는 완벽한 신체 소멸인 세포사(細胞死) 보다는 앞당겨져 있으니, 인간이 실용주의적 인 면에서 편의주의에 의해 죽음을 판단했단 말인가?
그래서 뇌사(腦死)의 죽음 정의도 그런 입장에서 판단기준에 모순이 없고 현 의료발달에 부응하는 의도에서 합리적인 것이라면 종래의 정의(定義)보다 앞설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의사는 끝까지 구김이 없었다.
첨단의 의료발달로 인한 당겨지는 죽음의 정의 더우기 장기의식을 위해 그것을 백 프로 활용하고서도 저토록 당당함은 생전의 환자에게 유난히 관심 기울여 신경쓰던 그것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것일까.
미묘한 것은 의사가 당당할수록 조금씩 아주 천천히 완만해지는 내 감정의 언저리였다. 그러나 내 심장과 손끝에 꽂혀진 그의 맥박과 체온은, 여전히 선홍색 불덩어리로 내 뼛속 살속 핏속을 후비고 돌았다.
그때 연구실 문이 요란스럽게 두들겨쳤다. 차남과 3남이 이마에 힘줄을 모으고 들어섰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입니까? 장기 제공이사 아버님이 서명하셨다고 분명히 말씀 남기셨으니 말 될 바 없고, 또 무슨 끈적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좀 간단하게 편리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없나요? 시신은 영안실에 옮겨져 있는데, 장례는 치르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아, 그리고 박사님! 나중에 따로 인사 올리겠읍니다만 그동안 저희 아버님 떼문에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고맙습니다!"
차남이 의사 앞에 허리를 90도로 꺾으면서 마치 의사가 환자를 회복시켜 퇴원이라도 하게 된 환자 가족처럼 밝은 표정에 꺾고 펴는 몸짓이 활달하고 흔쾌해 보였다.
“아, 뭘요.”
의사는 차남의 깍듯한 인사치레에 간단하게 대답하곤 나를 돌아보았다.
“우선 장례를 치르셔야조. 미진한 얘기는 이후에 다시 나누도록 하시죠.”
나는 여전히 침묵한 채 머리를 빠트리고 앉아 있었고, 회진을 돌아야 한다는
의사는 그런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며 그의 연구실을 벗어났다.
차남 3남도 의사를 따라나갔다.
곧 이어 종형과 당숙이 들어와서 내 양팔을 잡아끌어 일으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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