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사람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오백 년을 살아온 측백나무
소설가 이승우의 작품 가운데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제목만으로 충분히 공감하게 됩니다.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자기의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리 큰 관심을 들이지 않는 게 사실 아닌가요? 조금 더 확대하면 다른 지방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도 정작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흔히 있지요. 최소한 제게는 그렇습니다. 다른 고장의 나무들을 찾아 내내 돌아다니지만, 우리 마을의 나무들에 대한 관심과 정성은 그만큼 따르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 일요일 도시의 초록 빛 아침을 단장하는 나무 ○
얼마 전 《나무편지》에서 부천 소사본동 은행나무 소식을 전해드린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습니다. 봄 오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원고 더미에 밀려 멀리 나서지 못하는 이 즈음, 시간을 그리 많이 들이지 않고 찾아볼 수 있는 나무를 찾아 나섰습니다. 바로 제가 사는 경기도 부천시의 노거수입니다. 먼 곳에 있는 나무들을 수굿이 찾아다녔지만, 고작해야 몇 십 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서 있는 나무들은 잘 찾아가지 않았지요. 돌아보니, 제가 사는 곳에 서 있는, 많지 않은 노거수들을 일일이 찾아본 게 벌써 십 년 쯤 지난 듯합니다. 그간의 안부가 궁금해 짬을 내서 찾았습니다.
어제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부천시의 아름다운 나무 가운데 하나인 부천 여월동 측백나무 앞에 다가갔습니다. 부천시 보호수 제5호인 부천 여월동 측백나무는 사진에 보이듯이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생김새만으로도 우리나라의 모든 측백나무를 통틀어 거의 첫 손에 꼽을 만큼 좋은 나무이지요. 또 오래 된 측백나무가 그리 많지 않은 사정을 감안하면 수령으로도 우리나라 최고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에 이 지역 사또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심은 나무로 알려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백 년 세월을 살아온 노거수입니다. 다른 종류의 나무에 비해서도 그리 모자랄 게 없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 조선 연산군 때에 고을 사또가 심고 키워 ○
사방으로 10미터 쯤 나뭇가지를 펼친 여월동 측백나무는 높이가 10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3.4미터 정도 됩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이 지역의 꽤 유명한 식당 마당 가장자리입니다. 이른 아침, 그것도 일요일 아침이어서 식당에는 인기척이 없습니다. 식당으로 오르는 언덕 길 한가운데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나른하게 해바라기에 한창입니다. 나무 앞에 마련된 식당 주차장 자리는 텅 비어 한적합니다. 여월동 측백나무는 주차장 한쪽에 마련한 식당의 장독대 끝 자리 소박한 정자 뒤편에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이 근사한 생김새의 측백나무가 바라다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나무는 건강한 편입니다만, 세월 흐르면서 나무에도 적잖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썩어 텅빈 자리는 충전재로 잘 메워 보호하고 있지만 현재의 생육상태는 큰 문제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 자리이긴 하지만,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막다른 곳 담장 곁에 서 있는 바람에 마음 먹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나무 곁에 다가서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식당을 찾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매연을 뿜을 주차장과도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 그것도 나무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1992년 잎마름병 위기도 주민들의 관심으로 극복 ○
옛날에는 이 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잘 달여낸 물을 마시면, 임산부의 하혈 등에 큰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이야 더 좋은 약들이 많이 있으니 그럴 일 없겠지만, 예전에 명약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에는 이 나무에서 약을 구했던 거죠.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워낙 귀하게 여겼기에 가지를 자르려면 반드시 나무에 제를 올리고, 나무의 허락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제를 지내는 절차가 없었다면 아마 이 나무의 가지는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나무를 잘 보호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나무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1992년 봄의 일입니다. 그때 나무는 잎마름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나무의 아름다운 자태가 스러지기 시작하자, 그해 가을에 주민들이 직접 부천시 녹지 담당자에게 이를 자세히 알리고, 임업시험장과 나무 전문가의 자문을 받으며 치료에 나섰습니다. 지금 나무 줄기에 드러난 외과수술 자국은 바로 그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 나무는 이듬해 봄에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해 다시 마을 수호목으로의 위용을 되찾아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관심으로 지켜온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천시에는 먼저 보여드렸던 소사본동 은행나무를 비롯해 오늘의 여월동 측백나무와 함께 여덟 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서울 면적의 12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면적인데다, 대부분 신도시로 재개발한 지역에 이 정도의 노거수 보호수가 살아있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물론 보호수 주변 사정은 대개의 도시가 그렇듯이 넉넉하거나 다른 볼거리가 풍요로운 건 아닙니다. 일부러 나무를 찾아 나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에서 삶의 역사를 안고 긴 세월 살아온 나무를 가까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 서강대 평생교육원 나무인문학 강좌에 초대합니다 ○
오늘 《나무편지》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 나무인문학 강좌 개설 소식입니다. 그러고 보니 삼년 째 진행하는 강좌입니다. 봄학기와 가을학기로 나누어 진행해온 이 강좌는 소수의 인원이 나무를 보다 깊이있게 살펴보고, 함께 답사도 하는 즐겁고 알찬 모임이었습니다. 올해도 오는 삼월부터 월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세 시간에 걸쳐 강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봄 학기에는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하는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나무와 문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아래에 강좌 신청 페이지 링크하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bit.ly/2SZXpJS <== 서강대 평생교육원 나무인문학 수강신청 페이지
봄의 기미가 뚜렷한 숲으로 지금 떠납니다. 가능하면 오래 봄꽃 봄나무 곁에 오래 머무르겠습니다. 다녀와 완연해진 봄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봄의 기미가 뚜렷하게 올라오는 숲으로 떠나며 2월 18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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