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한 번 올라가서 그 녀석 손을 좀 봐줄까유?"
"됐어! 그 얘긴 더 하고 싶지 않아. 자식뻘 되는 녀석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긴 하지만...... 책이 많이 안 팔리면 뭐 어떤가? 내가 이 나이에 더 유명해지면 뭘 하고, 돈을 벌어야 얼마나 많이 벌겠는가? 자넨 부지런히 낮에 일하고 밤엔 글을 쓰게. 그대신 너절한 연애 이야기, 특히 이혼을 몇 번 해서 애들 성이 각각 다르다느니 하는 따위 얘기를 소설이랍시고 쓰거나, 고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역사소설이랍시고 내놓을 생각도 말고, 알겠는가? 염병할! 좌우지간 나야 그저 자네와 한 번이라도 더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면 됐지. ........그런데, 자네 말이야. 쥐뿔도 모른다는 말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아는가?”
“모르겄는디유.”
“옛날에 어느 집에 백년 묵은 쥐가 있었는데, 도술을 부려 주인으로 둔갑을 해서는 진짜 주인을 내쫓고 마누라까지 꿰차고 주인 노릇을 했다는 거야. 그러다가 진짜 주인이 도사의 도움으로 백년 묵은 쥐를 처치하고 주인 자리를 되찾은 다음에 마누라에게 이랬다는 걸세. ‘쥐불알도 모르는 게!’ 하고 말일세. 쥐불알이 쥐불로 줄었다가 발음이 변해서 쥐뿔이 됐다는군. 어때, 재미있지?”
“으흐흐흐흐! 요렇게 요상시럽게 재미있는 야그는 오늘 선생님한테 첨 듣습니다요!”
"좌우지간에 자네 두 번 다시는 흑도에 발을 넣고 '학교'에 들락거리면 안 돼네? 내가 취재를 해보니까 자네가 한때는 충청도에서 최고의 싸울아비였다면서?"
"아이구, 선생님! 옛날 얘기는 지두 더 듣구 싶지 않구먼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지가 맴을 잡았으니께 이렇게 새사람이 되려는 게 아니겠시유?"
"그래그래, 아~주 좋아! 요즘은 '깜'도 안 되는 자들이 설치니 이 사부도 심사가 매우 불유쾌해요! 에잇, 잡추들 같으니라구!"
"아이구, 존경하는 선생님! 진정하시라니께유!"
그러는 사이에 술병이 모두 비고 본격적으로 낚시에 들어간 것이 자정을 막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근래 보기 드문 불상사(?)를 당한 것이 새벽 두 시쯤이었다. 왼쪽 대가 거의 30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기에 떡밥을 갈아주려고 대를 드는 순간, 오른쪽 대가 덜컥! 하는 짧은 예신(?)을 남기고 마치 투창수가 던진 투창처럼, 궁수가 쏜 날살처럼 쌩하고 끌려 나가는 것이었다. 얼마나 힘차게, 날쌔게 끌고 나가는지 미처 잡을 새도 없었다.
“아니, 저럴 수가!”
“우왓, 선생님!”
사제의 입에서 똑같이 비명도 아니고 신음도 아닌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자동으로 제동이 걸리는 받침틀인데, 고기가 워낙 대어이니 전혀 제 구실을 못 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뒷줄을 매놓는 것인데, 하는 후회가 지진 뒤의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잉어를 놓친 것도 아니고, 어제 낮에 내려오는 길에 새로 장만한 낚싯대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이 사람 평해조사가 그래도 명색 조력이 40년인데 낚싯대 한 대 잉어가 끌고 갔다고 해서 그렇게 가슴이 미어질 졸장부는 아니다. 또 그동안 이렇게 물고기들에게 빼앗긴 낚싯대가 어디 한두 대였던가.
정말로 가슴 아픈 이유는 월척인지 4짜인지, 아니면 잉어인지 가물치인지 정체를 불문하고 그 고기의 운명이 새삼스럽게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이 넓은 봉재지 어디를 가서 그 불쌍한 고기를 찾아 아가리에 걸린 바늘을 빼내줄 것인가 그것이 못내 안타깝고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낚싯대를 끌구 갔으니 이제 워쩐대유?”
충청도 제자가 물었다.
“어쩌긴, 짧은 대 하나만 가지고 하면 되지 뭐.”
“그러나 저러나 선생님, 그 괴기 말예유. 아가리가 찢어지도록 아플텐데 참말로 불쌍허구먼유! 지 맴두 오지게, 미어지게 쓰라리구먼유!”
“이심전심이구나!"
"이명박 맴이 전여옥 맴이라구유?"
"그게 아냐! 네 녀석 나이는 마흔이 넘었어도 이 사부를 닮아서 인정이 많다는 말이지. 불쌍한 고기를 위해서 한 잔 해야겠는데, 술 남은 건 없는고?”
“으흐흐흐! 이런 사건이 터질 줄은 몰렀지만, 지가 선생님 건강 생각혀서 반 병을 꼬불쳐 놨구먼유. 흐흐흐….”
“그럼 빨리 가져오게!”
그리고 두 사람의 사제는 좌대 방안으로 들어가 한두 시간을 자고 새벽에 다시 나왔다. 봉재지의 밤은 어느새 신새벽에서 먼동이 훤하게 터오는 새아침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여보게. 허 군. 다음부터는 꼭 뒷줄을 매놓아야겠지?”
“네, 선생님! 이 넘두 앞으론 꼭 뒷줄 가지구 다녀야겠네유! 잉어든 붕어든 무거운 낚싯대를 끌고 돌아댕길라문 주댕이가 얼마나 아프겄시유?”
“아이구, 이쁜 제자 놈! 말은 청산유수로 잘도 하네! 앞으로 말은 네가 선생 해라!”
“으흐흐…. 그런데 선생님, 여자들 히프가 왜 큰지 아셔유?”
“아니, 그건 또 무슨 난데없이 개 풀 뜯어먹는 소린고?”
“여자들 히프가 큰 이유는 요강에 빠지지 말라고 크다는구먼유. 이히히히, 또 여자들이 걸을 때 히프를 좌우로 많이 흔드는 건 가운데 중심잡는 추가 없어서 그렇다네유! 으흐흐흐! 이히히히히!”
“와하하하하! 거 말이 되는 소리구먼! 그런데 말씀일세. 그러고 보니 이 사부가 크거나 작거나 여인네 히프를 만져본지도 꽤 오래됐네 그려!”
"우히히히히!"
두 사제의 웃음소리가 밝아오는 봉재지 수면 위로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그런데, 물고기들에게도 귀가 있다면 혹시나 산타마리아 성당의 종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관음사의 풍경소리처럼 들렸을까.
첫댓글 나는 수양이부족하여서겠지만 낚시하고는 거리가 멀어서요. 예전에 직장 상사의 권유로 낚시도구를 장만하고 딱한번 사용하고는 베란다에서 자리만 차지하다 버린적이있긴 한데요. 그래서 그런지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한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노후가 편치 않아 한 달에 한두 차례 머리 식히러 물가에[ 나가 앉는 거라오. 낚은 붕어나 잉어는 방생하고 돌아오구요. 전혀 대단하지 않다오.
전문카페가 아닌 평법한 우리 36카페에서 국내유명 작가 황원갑 형의 친필의 콩트를 본다는것 대단한 영광입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원갑 형의 건필을 바라겠습니다
유명작가라니 과찬이십니다! 그냥 그립고 정겨운 옛친구들이 재미읽게 읽어주시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잘읽었습니다.원갑이형의 글은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36동문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다니 글 쓴 보람이 있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