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BC6년5월14일경에 태어나셔서 서기30년4월3일경,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의 청원으로 열린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판결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 형벌을 받고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부활하여 사도들에게 세 번 나타나시고 승천하셨다. 예수님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그 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을 하였고,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통해 신도수가 3천명이나 더해졌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 또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쓰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서기31년경에 발생한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계기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유대교의 대박해가 있었고, 사도들 외에는 모든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다메섹,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흩어지게 되었다. 대박해의 중심인물은 유대교에 열심인 사울이라는 청년이었는데, 그는 대제사장 가야바에게서 신임장을 얻고, 다메섹에 사는 예수쟁이들을 체포하러 떠났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며,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 이후에 사울은 회심하여 예수님을 변증하게 되었다.
사울은 우선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에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갈1:17). 그는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3년 후(서기34년)에 아레다 왕(재위 BC9~AD39)의 행정장관이 사울을 체포하기 위해 지키고 있었던 다메섹 성을,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탈출하였고,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15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렀으나, 예루살렘교회의 감독이며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은 보지 못하였다(갈1:18~19).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행9:26~27)."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의 기록이 약간 다르지만,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고,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쓴 편지임을 감안해야 한다. 이것이 회심 후 바울의 제1차 예루살렘방문이다. 그런데 사울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예수님에 대해 변론하다가, 그들이 스데반 집사를 죽였듯이 사울을 죽이려하므로 형제들이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사울의 고향인 다소로 피신시켰다(행9:28~30).
한편 대박해를 피해 흩어진 제자들 가운데 구브로와 구레네인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파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제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고, 바나바는 혼자서는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기 힘들므로,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제자들을 가르치니, 그들은 안디옥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길리기아의 다소는 수리아의 안디옥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대로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으므로(서기46년~48년), 서기46년경에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예루살렘교회에 부조금을 전달했고, 그들은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회심 후 바울의 제2차 예루살렘방문이다.
서기47년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뜻에 따라, 안디옥교회를 출발하여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 총독으로 있는 구브로(Cyprus)를 시작으로 하는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때부터 성경 사도행전은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뀌고 있다.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 바예수(예수의 아들)를 혼내주었고, 밤빌리아의 버가에서는 바나바의 조카인 동역자 요한(or 마가)이 전도여행에서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하여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유대인들의 박해로 그 지역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갔다.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주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손으로 기적을 행하게 하시니 허다한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복음을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유대인 박해자들이 두 사도를 죽이려하므로 루스드라로 도망하였다.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선천성 앉은뱅이를 걷게 만들자, 그 지역 사람들이 헬라인들의 신들인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강림하셨다면서 바나바와 바울에게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리려한 일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대중들에게 충동질하니, 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 내쳤다. 그런데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깨어나 일어났고, 이튿날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 후에 지금까지 왔던 길로 해서 밤빌리아의 버가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교회로 돌아왔다.
회심 후 바울의 제3차 예루살렘방문은 서기48년에 예루살렘교회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1절에는 "14년 후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로 언급되었다. 디도는 헬라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았다. 유대교의 율법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 결과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는 중에, 예루살렘교회의 감독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안디옥에 도착하면, 베드로는 그들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식사 자리를 피했고, 그 자리에 베드로와 함께 했던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들도 그렇게 하였다. 이에 사울은 회중 앞에서 베드로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예루살렘 회의가 열리게 된 계기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에 온 어떤 사람들이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바울 및 바나바와 적잖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 및 몇몇 사람들을 예루살렘교회에 보내어 이 문제를 상의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교회의 이방인 제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결정하였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 말고는 유대인이 지켜야 하는 율법의 의무를 이방인 제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이로써 복음은 날개를 달고 빠르게 전파되었고, 복음은 로마제국 하에서 고통 받고 있었던 약자들에게 삶의 존재이유를 심어주는 한 줄기 희망을 주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