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산수원애국회가 2026년 9월 15일 청천면 청안면 부흥지역에서 제3차 정기산행을 개최했다.청천청안부흥 지역은 한석수 괴산산수원애국회 공동회장의 담당 지역으로 관리 운영되고있다.
이날 행사에는 33명이 예약되었지만 같은 날 청천산악회도 산행과 중복 된 것과 독감. 코로나 유행등 건강문제로 최종 26명이 참석했다. ㅠㅠ 같은날 산행한 청천산악회도 30명을 넘지 못했다고 집행부 회원이 전화로 알려주면서 산수원으로 참가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해주었다.
전화 받고 난 후 다음10월20 일부터 11월5일까지 4차 산행을 준비 하고 있는데 다시 같은 날 잡아서 단순하게 놀고 즐기는 산악회를 넘어 한민족 선민의 대한민국의 금수강산부터 애국하고 효정으로 지역 어르신을 모시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차별화된 단체로 확실하게 자리 잡아야 겠다고 승부욕 발동이 되었다.
이번 산행은 단순한 지역 모임을 넘어, 한민족 선민의 금수강산을 사랑하고 애국의 마음을 담아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뜻깊은 산행이였다.
특히 3차 산행장소는 백제 멸망 당시 일본은 군사 27,000명과 군선 400척을 파병했던 백강구 전투(663년)와 관련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이는 단순한 외교가 아니라 “아버지 나라 조상들 성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백제를 구하기 위한 구국의 파병”이었다고 당시 백제 왕족 후손인 천지천황이 일본 사기에 적혀있는 장소로 선정하였다.
당시 일본의 아스카 수도는 10명중 8명이 백제계 도래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당시일본은 백제 도래인들이 일본 왕실과 호족으로 자리 잡아 혈연·운명 공동체를 형성했던 시기 이다. 그래서 당시 일본 경제가 파탄 날 정도의 구원병 파병이 가능했던 것이다.
백강구 전투 패배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 불완전한 삼국통일이 되었다. 이후 한민족선민의 역사는 중국의 외세 개입으로 중화사상으로 왜곡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한민족선민의 역사는 본질을 잃어버렸고 외세세력의 역사관들이 현재역사로 이어지고있다.
백강구 전투 역사까지는 한국과 일본은 원수국가가 아니라 혈연 운명 형제공동체 역사였다는 한민족선민역과관을 오늘날 한국과 일본하나 되어 외세 개입 없는 주제적인 한민족 선민의 사상인 홍익인간 경천애인으로 통일 대한한국을 준비 되어야 한다는 한민족 선민으로써 책임을 버스안에서 교육을 하며 강조했다.
산행 중 5명의 회원님들과 줍킹을 하면서 환경운동을 시도했다.
이러한 배경속에 정한 산행 지역을 회원들과 함께 걸으며 전망대 올라서 당시 백제를 구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참전한 구원병을 간단하게 위로하는 의미 깊은 시간을 가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 마음을 모아 국가를 위한 애국”이라며 서로를 격려했고, 다음 산행에서는 철저히 준비해서 33명 이상이 참석하게 하자고 다짐을 나누었다.
참가자 소감문
참가자 A: “청천산악회와 같은 날이라 걱정했는데, 우리도 26명이 함께해 의미가 컸습니다. 나이보다 중요한 건 애국의 마음이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 느꼈습니다.”
참가자 B: “백제와 일본의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산행이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역사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민족 선민의 백성으로 책임을 다시 다짐했습니다.”
참가자 C: “날씨도 좋고 한목사님 내외분이 정성스럽게 준비도 잘 되어 있어서 즐겁게 산행했습니다. 특히지역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더욱 뜻깊었습니다.”
참가자 D: “다음 산행은 날짜를 더 잘 조율해서 청천노인회 산악회보다 더 많은 인원이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임이 지역사회에 의미 있게 공헌하는 산행으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괴산산수원애국회 3차 산행은
소수면 9월10일,청천청안부흥 9월15일,
송면 문광면 9월 18일, 칠성면 9월 17일,
연풍면 9월 19일, 불정면 9월 29일,
감물면 9월 28일, 괴산읍 9월 30일
10 개읍면별로 날짜를 달리해서 총8회로 버스한대씩 총예상인원 240 명이 산행예정입니다.
https://youtu.be/0ULZmrsx7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