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우월 신화 다시 보기
남성다움이란 남성으로 태어난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질, 자격, 해야 할 도리 및 역할 수행과 밀접하다. 이는 남성 특유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오랜 공동 생활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져 정착되어 온 것이라 하겠다. 즉 남성다움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부장 사회를 떠받쳐 온 신화, 종교, 생물학, 심리학, 유교 및 금기담 등에서 남성다움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영웅 신화에 나타난 남성다움
칼라일이 역사를 영웅의 전기라고 말했듯, 역사는 전쟁의 시대, 철인의 시대, 강력한 지배자의 시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남성 영웅을 탄생시켰다. 영웅 신화에서 우리는 남성이 어떻게 여성을 누르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남성이 어떠한 성격을 이상으로 삼았는지 추측할 수 있다.
세계 영웅 신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영웅은 대부분 혈통이 고귀한 사생아나 고아로 태어나 온갖 영웅적이고 무용적인 시련을 겪는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의 성취와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거나 이루어낸다.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 데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 주며, 인간의 삶의 범주를 벗어난 힘겨운 체험을 하고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온다.
영웅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날 나이가 될 때까지 어머니에게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는다. 영웅 신화의 중심 테마인 아버지를 찾는 여정은 자기 자신과 운명을 탐색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몸과 마음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지만 개성과 운명은 아버지에게 물려받는다. 아버지를 찾는 일은 영웅에게 자신의 이력과 이름 및 근본을 찾는 일이다.
이러한 영웅 신화는 남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머니에게서 떨어지고 삶의 정력을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과정을 통과의례라고 하는데, 입사, 성년, 취임, 결혼, 죽음 등 생의 전환점에서 묵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맞는 의례다. 남성에게 통과의례란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한국 신화의 주인공도 시련을 극복하고 뛰어난 지도자로 성장하는 영웅의 전형을 보여 준다. 주몽은 천제의 아들인 헤모수와 물을 다스리는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기이하게도 알에서 깨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활을 잘 쏘아 파리를 백발백중 쏘아 맞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개, 돼지, 말, 새,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물들이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등 그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 능력 때문에 그를 키워 준 금와왕의 아들들의 시기를 받아 집을 떠나게 된다. 유화는 오곡 종자와 좋은 말을 주몽에게 주었고 그는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주몽 외에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나 4대 석탈해왕, 가락국의 수로왕도 역시 알에서 태어났으며 이들의 아버지는 천제나 태양 등 신적인 존재다.
이 신화에서 영웅의 능력과 성품은 무사로서의 힘, 활쏘기와 말타기, 지도자로서의 너그러움, 강직함, 용맹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석탈해와 주몽이 술법으로 힘을 겨루는 내용은 전사로서 영웅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웅을 더욱 이상적으로 신격화하기 위해 여성의 지혜와 힘을 왜곡시키거나 아예 빼 버림으로써 남성 중심의 신화가 되어 가는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곡식과 풍요의 여신인 유화 부인은 조력자로 축소되어 있고 부계를 강조하기 위해 여성에게서 태어난 사실을 알로 상징하기도 한다.
여성의 능력을 축소하는 현상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는 제우스와 헤라클레스를 들 수 있다. '신과 인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제우스는 일족의 수호신, 보호자로서 우주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이었으며, 자신의 머리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허벅지로 주신 디오니소스를 낳는 위대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호방하고 불요 불굴의 정신과 인내성을 가졌으며 또한 정직하다. 약한 자를 돕고 부정을 저지르는 자에 대해서는 격노하며, 반면 다정다감하면서 호색적이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아르고스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질투에 사로잡힌 아내 헤라가 책략으로 이를 방해한다.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왕이 되지 못하고 비천한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열두 가지 시련을 극복하여 불사신임을 보증받고 신들의 대열에 끼인 걸출한 영웅으로 숭배되었다.
이 영웅 신화에서 여성은 질투와 책략으로 영웅을 괴롭히는 방해자로 등장한다. 영웅은 방해자인 여성을 집어 삼킴으로써 능력이 더욱 강대해진다. 제우스가 아테나를 낳은 것은 아테나를 임신하고 있던 메티스(지혜)를 삼켰던 것으로, 디오니소스를 낳은 것도 그를 임신하고 있던 달의 여신 셀레네를 죽이고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집어넣은 것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해서 남성은 여성의 출산과 지혜를 소유한 완벽한 인간으로 탄생한다. 아마도 여성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감추고 신의 모습을 가장하고 싶은 남성의 심리가 남성 영웅의 탄생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후 역사에서 여성은 사라지고 남성은 세계를 지배하는 영웅의 모습이 되었다.
세계의 주인이 된 남성은 한 시대의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다양한 영웅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의 유형에는 전사, 지배자, 성인, 현자가 있다. 그들은 역발산 기개세의 초인적인 요소와 용맹과 지혜로움,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지닌다. 이들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로 대중에게 전파되어 왔다. 신화는 한 집단의 성원이 행동하는 데서 모범으로 기능하며, 그 집단의 제도에 위엄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힘을 지닌다. 어린시절 동화에서 잃었던 영웅의 모험은 남성의 삶에서 인생의 좌표가 되기도 하고 가치관의 혼란에 부딪힐 때 남성은 영웅의 행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한다.
현대에 와서 고대 영웅 전설이 영화화되고 전쟁 영화와 갱 영화가 흥행하는 데에는 전사적인 영웅상을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여기서 그들의 용맹함과 지혜로움, 강한 완력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남성의 꿈으로 등장한다.
"남자만의 고독"
을 쓴 로버트 블라이는 신화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상을 현대의 왜소해진 남성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평원을 달리던 자연인, 악을 물리치고 지배자가 된 전사의 꿈이 현대 남성을 고독과 소외에서 건져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사형 영웅의 화려함에 가려진 뒷면을 생각해 보자,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라는 말로 유명한 나폴레옹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평범한 농민 출신으로 호탕함과 솔직성을 지닌 그는 사병들의 신뢰를 받고 프랑스 대중을 흥분시켰지만, 점차 이기적인 지배욕과 권력 의지로 전쟁과 파괴의 길을 걸었다. 그에게 매료되었던 베토벤이
"인민의 주권자도 역시 속물이었다"
라고 후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징기스칸, 시저, 광개토대왕 등도 남성이 흔히 떠올리는 세계의 지배자가 된 전사들이다. 그러나 세계를 통합한다는 이들의 빛나는 신조는 모든 군사 행동에 대한 자기 합리화의 한 방편이 된다. 따라서 영웅의 빛 뒤에는 파괴와 많은 대중의 희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대중속에 묻혀 기계형 인간이 되어 버린 오늘의 남성에게 전사형 영웅은 이상화된 꿈이다. 수렵 시대의 사냥꾼처럼 호전적인 남성상을 부추기고 여성에 대한 우월 의식을 더욱 굳히는 남성의 이미지일 뿐이다. 이는 남녀 불평등으로 얼룩진 기나긴 인류의 역사가 이제 막 남녀 평등으로 나아가려는 시대적인 흐름을 거슬러, 남성 홀로 독주하며 주도하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