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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그림과 놀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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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놀다]
박승미 시집 / 문학아카데미 시선 249 / 문학아카데미(2013.02.2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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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난
박승미
추사의 화첩 속
물길 산길
굽이굽이 돌고 돌아서
당도한 곳에
난 한 촉
추상秋霜 같으시다
말을 잃고
행여 그림자라도 밟을 세라
뒷걸음쳐 나왔다.
바다를 품다
박승미
자산어보를 읽다가
오징어의 먹물로 썼다는 글씨가 의심스러워져
싱싱한 갑오징어 먹물을 붓에 찍어
화선지에 댓잎을 그려 보았다
먹물이 화선지를 만나자 황송하게도
금빛으로 찬란하더니
물기가 마르면서 황금빛은 걷히고 갈색이 완연한데
말 그대로 자연색이라
댓잎이 갈대숲 사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듯
그만 바람에 색이 날아갈까
두르르 화선지를 말아 놓았다
님기다림에눈물이마를날없던한여인이있으니
인편에받은님의편지온통하얀여백만있더라
그리움이북받쳐서편지위에얼굴묻고섧게울다
보니눈물로젖은편지가구구절절사랑이라하니
화선지를 펴 보았다
바람인 듯 그리움인 듯
흑산도 그 먼 섬이
내 안에서 출렁이는 자산어보,
바다를 품은 책을 그만 덮는다.
청자국화무늬피리
박승미
전라북도 부안 청자박물관
국화무늬피리는 서화담에 즐겨 불던 피리가 아닐까?
오백년 시간을 거슬러
오늘 내 앞에 그분이 현신하신 듯
도포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부나비처럼 유리벽에 수없이 머리를 부딪다
예서 나를 만나 모처럼 풍류를 나누고자 하심이면
그대는 피리를 부세요
이 몸은 난은 치지요
아니면 시를 읊을까요?
에돌아 들려오는 피리소리에
마음이 촉촉하게 젖고 잇는데
저 달은 왜 저리도 크고 밝은지
그 깊이 또한 알 수 없음이
그분을 못 잊어 그리던 내 마음이라
나 오늘밤은
마음속에 정자 한 칸 지어 놓고
황진이가 되기로 했다.
화가 이정웅의 붓
박승미
그의 붓질은 도깨비의 장난 같다
옛날에 벽에 걸어 놓은 붓이 싸리빗자루처럼
밤이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먹물을 찍어 획획 찬바람 소리 따라 글씨를 써
집집마다 현판을 걸어 놀았다는데
이정웅의 붓질을 보며 ‘이건 도깨비장난이야’
한 마디로 밀어 붙이고 싶다
그의 듬성듬성 빠진 머리하며, 꾸미지 않은
그의 글씨를 보면 도깨비의 사촌지간쯤 되지 않을까
황당해 지면서 나도 도깨비 하나 잘 만나
시의 물고를 확 터주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마음
없지 않은 데
‘이건 도깨비 장난이야’ 밀어 붙일
불침 한 대 맞아 보는 게 소원이다.
사과를 그리다
박승미
사과를 그리다가
사과의 무게도 같이 그리다
사과를 반 쪼개 놓고
사과의 씨를 중심으로 둥글게 그리다 보면
사과가 활짝 웃는 얼굴이,
다 그린
사과의 명암을 그리지 않는 것은
사과는 이미 내게로 와 나의 무게가
사과의 당도는
사과의 무게보다 무겁다
사과의 빨간색은
사과의 자비다
사과를 그리고 싶을 땐
사과의 자비가 그리운 때다.
어미 모母
박승미
엄마다!
술래처럼 달려나가는
아이의 등 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일필휘지로 써 놓은
어미 모母자가
둥지 같다.
벼랑의 중심
박승미
루벤스는 로마의 자비에서
옥에 갇힌 아비를 찾아가
젖을 물리는 딸을 그렸다
늙으신 부모와 나 사이에서
재롱떠는 어린자식을 밀어 놓고
미음도 못 넘기시는 시모님께
젖을 물리는 그림을
돈황 석굴에서 보았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고려장 이야기의 삽화는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 무지 두려웠지
천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이
사람 사는 세상을
밀고 당기면서 그렇게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게
중심을 꽉 잡고 있구나.
딸이 웃고 있다*
박승미
수다스럽지도 않고
말 한 마디도 가려서 하는 딸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다가
과일 쟁반을 들고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베개로 입을 가리고 배꼽아 빠져라 웃었다
왜?
저 애를 저렇게 웃기는 책은 어떤 책일까
다가서는 내 가슴을 향해
딸아이는 손가락질을 했다
어리둥절하여 가슴을 내려다보니
내가 들고 있는 쟁반 위의
사과, 복숭아
내 두 가슴이 어우러져
폴 고갱의 정물이,
딸이 웃었다
쟁반 위의 과일이 웃었다
거울 속의 그 여자가 웃었다.
* 그림 제목
살 데 이야기, 풀꽃
박승미
손바닥 만한 마당이
솔솔 이야깃거리로 심심치 않다
‘꽃구경 하러 오세요’
말이라도 얼마나 좋아
봄이면 꽃모종 들고 가 이웃도 사귀고
한번은 지나가던 연인들이 들어와
나팔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갔다
구석구석 초록이면 잡초도 좋아서 뽑지 않았더니
이름 모를 곤충들이 모여들고
꽃집 아줌마로 불리는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한지
장미라던가 철쭉 목련같은 큰 꽃은 없지만
이름도 없이 작고 예쁜 풀꽃들이
별빛처럼 곱게 피어
저들과 키를 맞추려고 쪼그리고 앉으면
아장아장 곁으로 모여 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 댄다
그들이 ‘살 데’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누옥이라니
여간 고맙지가 않다.
강아지풀
박승미
강아지풀을 보면
요리 귀여운 풀이 되어
어여쁜 이의 살 속으로 몰래 숨어들어
꽉 물어 주고 싶다
갓길에 앉아 아비가 어린 아들의 손톱을 깎아 주고 있다
하나하나 다 깎고나니 이 녀석
제 손가락으로 아비의 눈을 찌르고 코를 찌르고
귓구멍을 쑤시고 제 아비의 얼굴을 간지럼 태우며
깔깔깔 한참을 재미있고 신이 났다
아비도 ‘요놈 봐라’하며 강아지풀을 뜯어서
아이의 손등을 살살 간지럼도 태우고
목으로 조심조심 올라가 보니
솜털이 보송보송한 강아지 한 마리가 꿈틀
두 팔로 목을 감고 기어오르는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갓길이 온통 난장판이다
강아지풀이 지천인 갓길을 돌아보다가
‘내 강아지’하고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 목소리
분명히 들은 것 같기도 해서
그날처럼 갓길을 숨이 차도록 달려 보았다.
오래된 의자
박승미
내 책상 의자가 요즘 들어
삐그덕 소리를 자주 낸다
사람나이로 환갑이 지났으니
관절이 심상치가 않겠지
하루를 못 넘기고 눈이 마주치면
와 하고 입이 턱없이 크게 벌어져서는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아져
바꿔볼까?
유혹도 없지 않았는데
그의 시선이 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 같아서
함께 살아온 정은 어쩌나 싶고
의자에 앉았다 하면 깜빡 잠이 들어 버리면
그렇게 잠이 달 수가 없으니
나에겐 요람이요, 불침번이며
피를 나눈 동기 같다
이제 의자는 너와 내가 아니고
너이면서 나
하나로 묶어
더 오래 살 부비고 살 일이다.
사람이 좋다
박승미
뜰 안에 자라고 있는
꽃, 나무, 햇빛이며 바람까지
나는 그들의 어미다
먼길을 돌아온 날은
많이 기다려 준 것이 고마워
아예 가슴이라도 풀어
다 내주고 싶다
다리가 잘린 강아지에게
바퀴가 달린 목발을 만들어 주고
지하 감옥에서 풀꽃을 키우며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어느 수인의 수기
그렇게 나를 낮추고
산 것들의 어미로 살아가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사람이라서 참 좋다.
마음 공부
박승미
그림을 그려놓고
부분 부분을 지워버리다 보면
지워버린 자리가
안개 걷힌 풍경 같다
꽃을 그려놓고
꽃은 꽃동네
나비는 나비동네로 보내주는
나의 마음 공부
깨끗이 비워낸 자리는
기다림이 있어 좋다
지워버리기부터 시작하는
나의 마음 공부.
성지, 갈매못
박승미
바닷가 성지다
그 바닷가
순교한 자리에 얽룩진 피가
물에 씻겨 내려가지 못하고
보약돌을 붉게 물들여 놓았다
조약돌 하나 주워서 손톱으로 긁어 보니
돌가루가 적색임을 확인하는 순간
바닷물에 손을 적셔보았다
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돌의 무게만큼 내려앉는 마음의 무게,
갈 매 못
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먹이는
생명의 물이 출렁이는
바닷가 성지다
눈을 감으면 내 안에
붉은 조약돌 그 바다가 넘칠 듯 출렁거려.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박승미
고흐의 그림 <구두>,
신으면 참 편안하겠다
너무 가벼워서 신고 날 수 있을지도 몰라
오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해서
만신창의가 되어 더는 못 가고 벗어 놓은
바람이 물어가 버릴까
빗물에 쓸리어 버릴까
떨어질세라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해부하듯이 스케치를 했다
멋지던 장식은 다 떨어져 없고
밑창은 달아서 혀를 날름거리지만
구두끈만은 길게 풀어 놓았다
이제 고흐의 구두는
살아 온 고단한 날들로부터의 자유다
구두를 다 그려놓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다 드림, 그 미학
박승미
간디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느껴진다고
베르디의 증손녀는
할아버지의 명성에는 더 이상 침묵하면
매일 아침 싱싱한 꽃을 할아버지 방에 꽂아 놓는 일
그 이상 소중한 일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2011년, 75세의 화가 이우환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나도 많이 자랐다’
비로소 자기 작품에 대하여 말문을 열었다
가보지 않은 산처럼 높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머리 숙여졌다
다 드리고 남은 빈 그릇에
떨어진 나뭇잎이나 주워 담으며
지나가던 구름이 쉬어가기를 기다리면서
더 바랄 게 없노라
진솔한 말 한 마디 하게 될까? 나는, 언제쯤
아무 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다 갖게 되더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흉내라도 내 볼까 싶다
나 오늘 다 드림, 그 아름다움의 미학을
조심조심 가슴에 새겨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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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人의 말
『마음心』이후
고여 있던 또 하나의 마음을
내놓는다.
그러나 아직 밑바닥에 고여 있는
못 다한 말들,
언제고 그들을 위한
씻김굿을
크게 벌일 일이다.
2013년 입춘을 지나며
박 승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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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미 詩集 [※그림과 놀다※]
박승미 시인의 시 세계 -
풍류와 관능, 그 능청스러운 향기
윤 정 구
1. 들어가며
박승미 시인의 시 중에 가장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것은 「모과」연작일 것이다.
허리끈을 풀어놓고 누운 여자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
이 봐
하고 툭 치면
응
나?
하고 돌아눕는
살진 여자의 누드
-「모과1-누드」전문
오브제와의 일체화를 통하여 제 마음 속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현대시의 전범(典範)이라면, 그에 통달한 진인(眞人)하나를 만난 것이 어느덧 18년 전이다. 펑퍼짐하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은근하고 육감적인 모과를 가짐으로서, 시단은 넉넉해지고 우리는 평면의 시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시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되었다.
『너는 모과다』이후『완전한 포옹』『마음 심(心)』을 거쳐 관능을 감추고 선계(仙界)를 주유하더니, 문득 관능과 마음의 진경을 동시에 보여주는『그림과 놀다』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한 세기가 훌쩍 뛰어넘어 갔는데, 난19세기로 물러서 있다. 답답한 사람이다. 미련한 사람이다.”자꾸 마음에 걸리는 2002년 상재한『완전한 포옹』책머리의 자서 일부이다. 얼핏 보면 박승미 시인은 미련한 시인이다. 등단 26년을 꾸준히 시를 써온 시인은 시인의 의무를 이행하기라도 하듯 5,6년마다 한 권씩 시집을 상재하였다. 다른 잡지를 기웃거릴 줄도 모르고, 다른 출판사에서 시집을 낼 줄도 모르는 양, 그저 막무가내로 ‘문학아카데미’를 지켜내었다. 시인은 시와 시집으로 말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기본을 미련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 시를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인데, 왜 그것들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어요?” 골목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불쑥 던지는 “안 그래요?”하는 말씀을 들으면, 큰누님 같은 시인은 답답하고 미련하기는 커녕,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박승미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주섬주섬 생각날 때마다 툭툭 던지는 단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시인이 슬쩍 묻어놓은 지뢰밭에 닿게 된다.
한 마디로 박승미 시의 주특기는 능청스러움 아닐까? 칼칼한 모시발 속으로 살짝 보이는 안방마님의 요염함처럼, 절제된 풍류 속에서도 슬쩍 풍겨나오는 관능의 매력이야말로 은근하기 짝이 없다. 한국적 정서에 가장 어울리는 미감이라고나 할까? 노골적인 악마주의 시가 주는 뜨거운 혐오와는 다르게, 시침 뚝 따고 던지는 능청스러운 도발(挑發)은 우리로 하여금 경계심을 버리고 빠져들게 하는 전혀 새로운 불가항력의 마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2.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시집 첫 장에 실린 시「추사, 난」은 두서너 단어로 이루어진 단문(短文)의 아홉 행 아홉 연의, 두 문장으로 이루어 졌다.
추사의 화첩 속
물길 산길
굽이굽이 돌고 돌아서
당도한 곳에
난 한 촉
추상(秋霜) 같으시다
말을 잃고
행여 그림자라도 밟을세라
뒷걸음쳐 나왔다
-「추사, 난」전문
추사의 화첩을 보고 있다. “물 길 산 길/굽이굽이 돌고 돌아서” 어렵사리 “난 한 촉”을 만난다. 그런데 그 한 촉의 난이 “추상(秋霜)같으시다” 어찌나 추상같으시던지, 말 한 마디 못하고, “행여 그림자라도 밟을세라/뒷걸음 쳐 나왔다.” 이것이 이 시의 서사적 구조의 전부이다.
시가 짧아지고 단순해지는 것은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단순히 추사 화첩 속의 난을 만나고, “말을 잃고” 뒷걸음쳐 나온 것이 어떻게 저리 의젓한 시가 될 수 있을까?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아무래도 추상(秋霜)과 행간(行間)속에 들어 있을 게다. 추상같은 꾸지람에 말 한 마디 못 드리고, 뒷걸음 쳐 나온 기억이 우리 세대에게는 다 있지 아니한가? 이 시대에 다 사라진 강골(强骨)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냥 여기(餘技)로 난을 치고 묵죽을 치고 매화를 치는 시인 자신을 추사 선생이 갑자기 일갈하는 것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풀어진 정신을 호령하신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독자도 있으리라. 여하튼 추상 속에서 무엇을 들을지는 독자의 몫으로 비워놓고, 행간을 띄워 천천히 음미하며 한 발자국씩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오도록 배려하였다. 여러 가지로 「추사, 난」은 저간의 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싱싱한 갑오징어 먹물을 붓에 찍어
화선지에 댓잎을 그려 보았다
먹물이 화선지를 만나자 황송하게도
금빛으로 찬란하더니
물기가 마르면서 황금빛은 걷히고
갈색이 완연한데
말 그대로 자연색이라
댓잎이 갈대숲 사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듯
그만 바람에 색이 날아갈까
두르르 화선지를 말아 놓았다
-「바다를 품다」부분
오징어 먹물로 쓴『자산어보』를 읽다가 화선지에 갑오징어 먹물로 댓잎을 친다. 오징어 먹물은 지금도 문방구에서 살 수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걸고 넘어가도 뾰족한 진전이 없자, 마치 <꽃구름 속에>란 이흥렬의 노래가 명랑한 곡조에서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며 한 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아온 사람들”하고 낮고 우울한 곡조로 조를 바꾸듯, 시인은 조를 바꾸어 님 기다림에 눈물 마를 날이 없던 한 여인을 등장시킨다.
복받친 여인을 실컷 울게 하다가 구구절절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지지고, 볶고, 그러느라 어느 사이 좀은 구질해진, 상처 입은 사랑보다야, 지나고 보면 절절한 그리움이 나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도 송정란 교수가 지적한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 감수성”과 박승미 시인의 깊은 속내인 화해 지향의 긍정심을 읽을 수 있다.
인편에 받은 편지에는 온통 하얀 여백만 있었다. 흑산도에 귀양 와서 보처자(保妻子)를 못하는 지아비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자산은 그렇게 흑산도에서 한많은 생을 마쳤다. 신이 인간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면, 인간은 그 불행을 의연한 태도로 맞을 수 있다고나 할까? 불행을 뛰어넘는 자신의 출중한 재주를 어쩌지 못하여 자산은 망망고도에서 역저 『자산어보』를 완성한 것이다.
A에서 B로 변하였던 곡조는 다시 A'로 변주하면서, 그리움의 섬 흑산도와 고통의 바다를 품어 안은『자산어보』의 정석적인 마무리로 독자를 편안하게 잠재운다. 당시로는 귀할 수밖에 없는, 단순한 생물학적 물고기 분류라고 생각했던『자산업보』가 시인을 통하여 뜨겁고 애절한 사랑으로 채워지는 마법의 순간이다.
하얀 모시치마에 치자 물을 들였다
치마폭을 쫙 펴서 다림질을 한 다음
양쪽 솔기에 봉을 끼워 들창에 걸고 보니
발에 햇빛은 걸러지고
바람은 소소히 받아들여
내 안에 사는 맛이 달라지는데
가는 정 오는 정이 정성스럽고
목소리는 낮춰지고 조심조심
발걸음은 사뿐사뿐
알 수 없는 향기가 솔솔 스며드는 듯
느낌이 좋다
먹물이 남았다는 핑계로
발에 난 한 촉을 그려보았는데
미풍 사이사이로 가야금 소리가
내친김에 낙관까지 찍어 놓고
풍류에 젖어
내가
내 치마폭에서 놀더라
-「묵란」전문
「죽」「바다에 난을 치다」와 함께「묵란」은 묵향에 취한 시인의 근황을 말해준다. 하얀 모시치마에 치자 물을 들리고, 솔기에 봉을 끼워 창에 건다. 햇빛도 거러지고 바람도 소소히 받아들여 목소리가 낮아지고 발걸음도 사뿐해진다. 사군자를 배우는 시인은 먹물 남았다는 핑계로 모시 발에 난 한 촉을 그렸더니, 어디선가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난을 치는 것이 살풀이춤을 추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서러움에 두 어깨가 들썩거리도록 울어대는「바다에 난을 치다」와 마음이 허술해지면 댓잎 스치는 소리에 먹을 갈게 된다는「죽」등은 묵향에 젖어 사는 시인의 정신 지향점을 알게 해준다. “그러한 시품(詩品)이 결코 과장되거나 꾸며진 것이 아니라, 바로 시인의 실체적 존재 그 자체”라는 송정란 시인의 지적대로 멋진 풍류시인의 풍모를 그리며, 몇 안 되는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꿈을 이룰 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3. 시화에 깃든 조선의 마음
박승미 시인의 “시가 사물을 사물 자체로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각적 묘사 위에 경험적 삶의 진실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윤석산 교수의 지적은 박승미 시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해주고 있다. 정확한 소묘를 바탕으로 그려낸 세밀화와 같이 독자를 친근하게 끌어가면서도 그 끝자락이 예기치 않은 미지의 큰 세계에 닿아있어, 비몽사몽(非夢似夢)의 백일몽처럼 독자는 일상과 꿈의 세계를 복합 체험하게 된다.
비단에 솜을 얇게 펴 넣고
한 땀 한 땀 누벼 놓은 비단 보자기는
내가 가장 아끼는 혼수품이다
머릿장 안에 있기를 수 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듯
가끔 꺼내서 얼굴도 파묻어 보고
고이 접어 끌어안아도 보고
-「비단 보자기」부분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혼수품 ‘비단 보자기’를 이리저리 보듬고 아끼며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들여다보이는 아름다운 시편이다. 고단한 살림살이 짬짬이 한숨 돌려가며 쉬어가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가는 시인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가끔씩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며 얼굴을 묻어보는 속절없는 시간 속에 유한한 존재로서 안타까움도 손에 잡힐 듯 아름답게 그려졌다.
시인은 수다한 서사를 접고, 치밀하게 계산된 간결한 묘사로 한 두 장면을 보여줌으로서 나머지 정황을 충분히 짐작토록 하는 특기를 십분 발휘하고 있다.
젖을 물려 놓고
맨살을 쓰다듬어 주시던
어머니 손길 같은
물살.
물살을 이불자락이듯 붙잡고
아직도 꼼지락거리는
나는 물풀이다
-「살 데 이야기, 물풀」부분
원관념을 숨기고 오브제를 통한 묘사만으로 생생하게 뜻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시편들이『그림과 놀다』에는 가득하여 읽는 이를 놀랍게 한다. 어쩌면 태생적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자상한 손길을 기억하는「물풀」은 그런 원천적인 사랑에 싸여 평생을 견디고 있는 인간의 본원적 사랑에의 희구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수아비를 카라얀으로 그리고 있는「명지휘자 허수아비」에서 시인은 구름이 악보를 적어 놓은 계단식 논에서 위대한 자연의 교향악을 듣고 있다.
“오선지를 펼쳐 놓은 듯/계단식 논 위에/지나가던 구름이 악보를 적고 있다//바람소리는 대금을 위하여/비가 내리면 음표들이 올챙이처럼/논바닥을 헤엄쳐다니는//…중략…//온 들판에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구름이 악보를 적어 놓고 간 논배미에/허수아비/그는 명지휘자 카라얀을 닮았다”고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의 트인 귀가 부럽다.
만지면 물이 될 것 같다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연시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기를 고정시켜 놓고 보니
뚝 뚝 떨어질 듯
김창렬의 물방울이
씹지 않고도
순하게 넘기는 연시는
물같이 만만하다
누구에게나 만만한
내 약점이
번번이 벌점이 되어 돌아와
나 오늘
만지면 물이 될 것 같다
-「연시」전문
캔버스에 번지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표면장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김창렬의 물방울 그림은 물방울에도 생명을 부여했다는 글로벌한 평가를 받았다. 김창렬의 물방울이 모든 것을 쉽사리 빨아들일 수 있는 흡입능을 가진 낡은 소서지로 변주 되면서 때로는 깨져버린 물방울의 모습과 함께 몇 개 남은 나머지 물방울의 안간힘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듯, 시인은 파란 하늘 옆에 사진기를 배치하여 실존의 느낌을 더하고, 연시 옆에 김창렬의 물방울을 배치하여 존재의 가벼움을 설명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준다.
파람 하늘에 남겨진 연시가 김창렬의「물방울」이 되고, 삼위일체가 된 나까지도 물방울이 될 것 같다는 시인의 진술은 “씹지 않고도 순하게 넘기는 연시의 만만함”과 “누구에게나 만만한 내 약점”이 동일화 되어 논리적이나 감성적으로 별다른 저항 없이 수월하게 받아들여지게 한다.
단순한 연시와 물방울 사이에 나약한 화자의 솔직한 진술을 놓아, 관념에 빠질 뻔한 시를 단숨에 삶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문학적 친근감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빠르고 느림, 둥근 것과 모난 것, 굽은 것과 곧은 것, 가벼움과 무거움, 소밀(疏密)과 허실(虛實)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완미(完美)에 도달하려는 전통적 동양 미학과 일치한다. 소위 “굳세고 졸박하고, 동시에 여유롭고 편안한 운치가 있다”든가, 굳센 것은 마치 산이 서 있는 듯하고, 부드러운 것은 마치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과 같으며, 구름이 바쁘게 지나듯 하다가도, 멈춘 것은 마른 나무에 의지한 듯하다“는 오래된 표현은 그러한 강온 양면의 그네를 이용하여 드높은 정신의 하늘을 날려는 동양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의 붓질은 도깨비의 장난 같다
옛날에 벽에 걸어 놓은 붓이 싸리빗자루처럼
밤이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먹물을 찍어 휙휙 찬바람 소리 따라 글씨를 써
집집마다 현판을 걸어 놓았다는데
이정웅의 붓질을 보며 ‘이건 도깨비장난이야’
한 마디로 밀어 붙이고 싶다
그이 듬성듬성 빠진 머리하며, 꾸미지 않은
그의 글씨를 보면 도깨비의 사촌지간쯤 되지 않을까
황당해지면서 나도 도깨비 하나 잘 만나
시의 물꼬를 확 터주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마음
없지 않은데
‘이건 도깨비장난이야’ 밀어붙일
불침 한 대 맞아 보는 게 소원이다
-「화가 이정웅, 붓」전문
도깨비장난 같은 화가 이정웅의 붓질을 보며, 예술의 정석과 파격의 사이를 거닐어보는 시인은 정성껏 걸어온 정석의 길에서 이제쯤 도깨비라도 만나는 시의 비약을 꿈꾸어본다. 때로 0.1㎜의 보획(補劃)으로 글씨가 확 살아나듯, 1.0%의 파격으로 검은 소나기와 함께 하늘에 오르는 황룡의 비밀을 보았듯, 예술의 길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불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휙휙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글씨, 벽에 걸린 싸리빗자루 같은 붓, 듬성듬성 빠진 머리가 도깨비장난과 어우러져, 어릴 적 그리도 많았던 도깨비가 자연스럽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옛사람이 높은 선비의 맑은 향기를 그리려 하되, 향기가 형태 없기로 난을 그렸던 것이다. 아리따운 여인의 빙옥(氷玉)같은 마음을 그리려 하되, 형태 없음으로 매화를 그렸던 것이다. 한 폭의 대(竹)를 그리면 늠름한 장부, 다시 붓을 바꾸어 한 폭을 그리면 소슬한 바람이 상강(湘江)의 넋을 실어오는 듯했다. 갈대를 그리면 가을이 오고, 돌을 그리면 고박(古樸)한 음향이 그윽하니, 신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기에 예술인 것이다”라는 윤오영의 명문은 동양에서의 예술혼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예술의 완성이란 얼마나 지고한 절벽 위의 정자 짓기던가. 문인화를 공부하며, 시를 공부하며, 도깨비 불침을 그리는 시인의 심정은 모든 시인들이 꿈꾸는 간절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거미줄에 달빛이 걸리고
밤새 녹아 내려서
이슬이 되는 아침
그 이슬 한 방울이
거미의 영혼이다
시詩다.
-「시詩다」부분
거미줄에 걸려 벌벌 떠는 한 마리 벌레가 되어 달빛에 취하여 밤새 녹아내려 이슬로 맺힌 거미의 영혼이 시라는 아픈 상징은 수많은 메타시(metapoetry)의 절창이라 할 수 있다.
불가에서 선정(禪靜)에 들어 도를 깨우치는 것을 묘오(妙悟)라 하듯, 시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시학여학선(詩學如學禪)이란 말을 기억하게 하는 이 시는 온몸을 던져 시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안타까운 희생의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4. 성찰의 시, 도발의 시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종교적인 성찰이다. 시가 더욱 깊이 있어졌다고 할까? 시인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삶의 근원이기도 할 죽음에 대하여 문득문득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일까? 철학이 아니므로 그것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시인은 결코 가볍지 않게 죽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문을 밀고 나가보니
성의처럼 하얗게 눈이 쌓여
눈 위에 엎드려
친구親口하고 일어난 자리에
화선지에 먹물이 번진 듯
한 폭의 수묵화
-「수묵화」부분
영화 <위대한 침묵>을 보고 썼다는 「수묵화」는 제목과 같이 종교적 제의를 완전히 벗어나 엄숙한 자연법에 친구(親口)하고 있어 특별한 감동을 준다. 성의(聖衣)로 읽어낸 강설의 이미지가 그대로 수묵화가 되어 우리를 침묵으로 우러르게 한다.
우연히 시인과 세례명이 같은 박 율리안나의 연미사에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성찰하며 눈물 흘리는 「나의 연미사」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얻은 모티프(motif)를 시인은 놓치지 않고 깊은 성찰의 깨달음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은 대상과의 미적, 심리적 거리를 알맞게 유지하여 객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집중 조명이 필요한 특정 부분을 줌업(zoom-up)하여 간결한 터치로 포커싱(focusing)함으로써 묘사의 효과를 쉽게 얻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영락없는 참새 새끼들이다
저들끼리 간지럼 태우며
낄낄대는 모습하며
잠삼이 배내옷처럼 넉넉해
슬며시 손 넣어 보고 싶은
‘스님 성불하세요’
합장하며 예로 대하니
‘성불하세요’
합창으로 답례도 하시고
-「여여동자」부분
내 전생이 자리한 곳일까
산사에 오르면
젖어미 찾듯 먼저 요사寮寺로 발길이
별당처럼 조용히 내려 앉은
낮은 처마엔 제비가 집을 지어 놓고
연신 먹이를 나르고 있다
인기척을 찾아 뒤곁으로 가면
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물확엔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 꽃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고
풍경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너 왔니?’
정다운 목소리가
요사寮寺에 들어서면
‘살 데’를 찾아 떠돌던
나그네처럼
신발끈을 먼저 풀고 싶다
-「살 데 ld야기, 요사寮寺」전문
위의 두 편의 시에서 보듯, 시인의 종교적 성찰은 귀의하고 있는 가톨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교적 성찰에서 깊은 공감을 얻고 있다. 까까머리 개구쟁이들의 합창 “성불하세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여여동자」나 전생인 듯 신발끈을 풀고 싶을 정도로 편안하게 느껴지는「살 데 이야기, 요사寮寺」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바닥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자비심을 읽을 수 있다.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난 인간 이해의 폭넓은 큰사랑에 공감하며,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인사동 화랑에서 유화 한 점을 샀다/탁자 하나에 의자하나/밀어서 여닫는 유리문이 전부인/단순한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탁자에 앉아 글을 쓰다가/창문을 마음껏 밀어 놓고/온 세상을 내다보기/해바라기며 먼 산 바라보기/바람은 수시로 불러들이고/달빛 바라기를 하는 밤이면/베토벤을 걸어 놓고//때때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중략…//열네 줄의 소네트를 쓰지//아침이면/안개가 시야를 가려/표류하는 한 척의 배가 되는”「전망 좋은 방」을 읽노라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림의 안팎을 자유자재하면서도 시적 정서의 주관성을 객관화하기 위해 활용되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안으로 들어가 화자=오브제를 100% 실현하고 있는 시인의 신기가 놀랍기만 하다. 그림 속에서 달빛을 보고, 베토벤을 듣고, 소네트를 쓰고, 아침이면 표류하는 한 척의 배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환상적인가.
“모과가 노랗게 물이 드는 동안/나도 어느새 가을 물이 깊에 들어가//세상에 모든 모과는 다/배 아파 낳은 내 자식 같다”고 느끼는 「모과, 그 이후 이야기」는 또 얼마나 따듯한가. 시인의 따듯한 시선과 자유로운 변신을 엿볼 수 있는 짧은 시편들에서도 복제가 불가능한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박승미 시인의 참빛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은 역시 관습적이지 않은, 규범을 벗어난 모범생의 매력이 아닐까? 그것은 성찰의 시와 대조를 이루면서 시집을 빛내고 있는 도발의 시편들이다.
한마디로 과묵한 남정네다
배포까지 커서 술도 말술이라는 소문이
내 일찍이 계집아이 때부터
아재 아재하며 따르다가
철이 들면서는 내외를 한답시고
오다가다 마주쳐도
얼굴이 빨개져 도망치는 쑥맥이었는데
주전자에 술 받아들고 가
하얀 버선목 살짝살짝 내보이며
한 사발 권해볼까 하는데
짐작컨대 그 양반
나 못지않게 얼굴 빨개져서 허둥대면
못 이기는 척 말붙여 봐?
내 좋은 남정네 속마음 짚어 보는데
말술인들 아까울까
이참에 큰맘 먹고 ‘오라버니’
넌지시 한 번 불러 봐?
-「소나무」전문
모과 연작 이후의 새로운 수확이다. “못 이기는 척 말 붙여 봐?” “이참에 큰맘 먹고 오라버니!/넌지시 한 번 불러봐?” 구어체의 활용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시인이 몇이나 될까? 시어가 친숙할 뿐만 아니라 의미와 분절(分節), 행가름과 구두점까지도 시의 효과가 극대화 되도록 고려하고 있으면서도, 시의 천연덕스런 전개오 독자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
“아재 아재하며 따르”던 그를 내외한답시고 얼굴이 빨개진 채 모른 척 지내다가 이제는 넌지시 다가갈까 떠보는 오라버니가「소나무」란 제목으로 얼마나 흥미롭게 그려져 있는지! 모과 시인다운 사랑법이다.
“사내라면/욕심냈겠지/훔치고 싶었을 거야/앞 뒤 안가리고 따라가고 말지/내가,/허리띠를 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지//굵고 분명하고 믿음직스럽고/여유 만만한 포용력하며/그늘 좋은 한 그루 나무”로 묘사된 「김수근의 공간사옥」과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도발의 시편들이 아닐까? 소나무로, 또는 그늘 좋은 한 그루 나무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또 얼마나 신선한 의미의 확장인가? 다시 말해 관념시와 물질시의 주․ 객관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원초적 감각과 절제된 관념을 통합하여 균형을 이루는 형이상학적시(metaaphysical poetry)에 성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시편들이기 때문이다.
결론하자면 박승미 시인의 새 시집『그림과 놀다』는 그동안 시인을 대표하던 <모과 시편>에 이어 한국적인 해학과 풍류를 담뿍 그려넣는 <그림 시편>을 시인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칼칼한 모시발 속으로 살짝 보이는 안방마님의 요염함처럼, 절제된 풍류 속에서도 슬쩍 풍겨 나오는 관능처럼 시침 뚝 따고 던지는 능청스러운 도발(挑發)의 시세계는 아마도 박승미 시세계의 확장은 물론 우리 시에도 오래도록 다이내믹한 자장을 일으키리라 믿는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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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풍류와 관능, 그 능청스러운 향기
미학과 풍류도의 시편
박승미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그림과 놀다』가 문학아카데미시선 24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바다를 품다> 제2부 <벼랑의 중심> 제3부 <살 데 이야기> 제4부 <다 드림 그 미학> 등 4부로 갈래졌고,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박승미 시인의 “풍류와 관능, 그 능청스러운 향기”를 상찬하는 윤정구 시인의 해설이 수록되었다.
오브제와의 일체화를 통하여 제 마음 속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현대시의 전범(典範)이라면, 그에 통달한 진인(眞人) 하나를 만난 것이 어느덧 18년 전이다. 펑퍼짐하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은근하고 육감적인 모과를 가짐으로서, 시단은 넉넉해지고 우리는 평면의 시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시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되었다.
『너는 모과다』이후『완전한 포옹』『마음 심(心)』을 거쳐 관능을 감추고 선계(仙界)를 주유하더니, 문득 관능과 마음의 진경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림과 놀다』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결론하자면 박승미 시인의 새 시집『그림과 놀다』는 시인을 대표하던 <모과 시편>에 이어 한국적인 해학과 풍류를 담뿍 그려넣는 <그림 시편>을 시인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칼칼한 모시발 속으로 살짝 보이는 안방마님의 요염함처럼, 절제된 풍류 속에서도 슬쩍 풍겨나오는 관능처럼 시침 뚝 따고 던지는 능청스러운 도발(挑發)의 시세계는 아마도 박승미 시세계의 확장은 물론 우리 시에도 오래도록 다이내믹한 자장을 일으키리라 믿는다.
― 윤정구(시인)
박승미 시인의 신작시집은 얼핏 보기에 단원이나 혜원의 풍속화를 연상시키지만 그림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함축미와 여백, 능청스러움과 구어체가 자유자재로 관능과 성정을 장악하는 멋스러움과 맛깔짐이 일품이다. 한마디로 말해 달관의 경지에 오른 시인의 작업은 앞으로도 구비구비 장강을 돌며 한국인의 심성에 서린 미학과 풍류도를 밝혀낼 것이다.
―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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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미 시인∥
∙ 1987년『현대시학』등단.
∙ 시집『땅위에 닿지 않는 기쁨』『너는 모과다』『완전한 포옹』『미음 심心』
『그림과 놀다』.
∙ 2005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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