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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10일 화요일
[(자)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로레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되찾은 양의 비유’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이사 49,14-16).
이사야 예언서의 이 말씀이 마치 오늘 복음 말씀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잊으시거나 포기하셔 버리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당신을 떠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소중한 자녀들이며, 당신 사랑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 사랑을 믿으며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마태 18,13)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주인공이 됩니다. 기도가 사라져 버린 삶에 다시 기도가 시작된다면, 그 또한 하느님께 더없는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의무와 짐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없는 기쁨을 드리는 여정입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바빌론에 유배 중이던 이스라엘에게 하신 이 위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러니 절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품고 우리의 목자이신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양이 되어 오늘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이번 판공 성사는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대림절만 되면 각 본당 마다 성탄 판공 성사가 운영됩니다. 판공 성사 표까지 배부가 되고, 봤는지 안 봤는지 체크가 되니, 거의 반강제적인 제도라고 불평하실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발걸음을 자비하신 하느님께로 돌려놓고자 하는 은혜로운 제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특강 다니는 곳 마다 목청껏 외치고 있습니다. 고백소에 들어가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안에 자비하신 주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길 잃은 어린 양 한마리 되찾는 것을 당신 삶의 가장 큰 보람이요 기쁨으로 여기시는 주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마태 18, 12-13)
지난 세월 고백소 안에서 보낸 시간을 돌아보니 참으로 맞는 말씀 같습니다. 낚시꾼들이 잔챙이를 잡을 때는 기분이 별로지만, 대어를 낚으면 기분이 엄청 좋습니다. 고백 사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우들이 큰 죄를 털어놓을수록 기쁩니다. 30년 냉담자의 고백을 듣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뿌듯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많은 교우들이 걱정들 하시는데, 고백소 안에 계신 신부님께서 내 목소리를 듣고 내가 누군지를 알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이 엄청난 죄를 들으시고 충격받지 않으실까? 그래서 어떤 분들은 목소리를 평소와 다르게 변조까지 하십니다.
부탁드리건데 절대 그런 걱정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백 사제들은 누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대신해서 죄를 사해드리고, 교우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새 삶을 시작하기만을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님께서는 우리로부터 값지고 좋은 선물도 기쁘게 받으시지만, 우리의 죄, 수치스러움, 꿈에도 생각나면 부끄러운 흑역사, 혹독한 실패, 이런 모든 부정적인 것들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고백성사를 통해 우리는 그 작업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고백소 안에 앉아 우리 교우들이 이렇게 고백성사를 보셨으면 하는 것을 몇가지 적어봤습니다.
1. 내 죄만 고백한다.
2. 그분의 죄는 그분이 고백하도록 놔둔다.
3. 그분의 부족함은 주님 자비의 손길에 맡긴다.
4. 고백 사제 뒤에는 자비하신 하느님도 함께 앉아 계심을 굳게 믿는다.
5. 주님께서 내 죄를 적당히가 아니라 온전히 사해주심을 확신한다.
6. 고백 사제들은 들은 바를 신속히 망각한다는 것을 믿고 안심한다.
7. 제일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죄부터 고백한다.
이번 성탄,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에게서 탄생하셨듯이 우리 각자 안에서도 탄생하시기 위해 우리 각자 영혼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통해 영혼을 말끔히 정화시키고, 매일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도 계속 정화시킨다면,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거룩하고 흠없는 지성소,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적당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본당에서 ‘죽음 교육’이 있었습니다. 죽음 교육의 첫 시간에 김소엽 시인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죽음 교육의 목적은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거였습니다. 죽음 교육의 목적은 잘 익어가는 거였습니다. 죽음 교육에서 ‘인생의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좋았던 일, 보람 있었던 일, 행복했던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 아쉬웠던 일, 불행했던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어우러지는 쌍곡선이라는 말처럼 많은 분이 행복했던 기억, 불행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평탄했던 저의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희망과 절망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그래프에서 안 좋았던 시간은 극복하고, 좋았던 시간은 반복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죽음 교육에서 ‘솔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개는 장수하는 새에 속한다고 합니다. 40살 무렵이 되면 솔개는 부리는 커지고, 날개는 무거워지고, 발톱이 무디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솔개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가서 6개월간 인고의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먼저 커진 부리를 바위에다 부딪친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로 나온 부리로 무디어진 발톱을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발톱이 나온다고 합니다. 무거워진 날개 깃털을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깃털이 날개를 덮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면 솔개는 새로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음 30년을 힘차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솔개’처럼 살아야 합니다. 솔개가 부리를 바위에 부딪쳐서 없애 버리듯이 낡은, 우리의 습성을 없애야 합니다. 솔개가 약해진 발톱을 뽑아 버리듯이 나약한 우리의 습성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솔개가 무거워진 깃털을 뽑아 버리듯이 못된 우리의 습성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그날이 오면 유배가 끝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평등의 세상, 자유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제가 살았던 서울도,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깊다면 서울도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언덕이 높다면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메워진다면, 언덕이 평평해진다면 어디에 있어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날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분명 골짜기가 있습니다. 학력, 지역, 이념, 직업, 계층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너무 깊어서 넘어가기도 힘들고, 넘어오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기도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듯이 우리의 삶도 짧은데 우리는 골짜기를 메우기보다는 더 깊게 만들곤 합니다. 이런 골짜기를 메우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산과 언덕이 있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라는 바벨탑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교만, 욕심, 허영, 위선, 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탑을 낮추어 평평하게 하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이야길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슬픔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유함과 가난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운과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잃어 방황하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보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리라.”
<하나를 찾아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오 18,14)
잃어버린 하나를
기꺼이 찾아나서는
애틋한 마음 안에
하나는 이미 있기에
누군가 못된 마음으로
굳이 없앤다 해도
그리하여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 없다 해도
잃어버린 하나를
애써 품는 마음 안에
하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늘 그렇게
마음에 품고 있는
잃어버린 하나를
찾아나서는 이에게서
어느 누구도 하나를
결코 빼앗을 수 없나니
잃어버린 하나를 향한
첫걸음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 멜키아데 (Melchiades)
신분 : 교황, 증거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14년
같은이름 : 멜키아데스, 밀시아데, 밀시아데스, 밀씨아데, 밀씨아데스, 밀티아데,밀티아데스
밀티아데(Miltiades)라고도 불리는 성 멜키아데는 아프리카 출신인 듯하며, 311년 7월 2일에 교황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8월 17일)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다.
성 멜키아데 교황의 재임 기간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가 밀비오(Milvio) 다리 위에서 막센티우스(Maxentius)를 격퇴하고 승리함으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랜 박해가 종식되던 시기였고(312년), 따라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통해 로마 제국 내의 종교 자유를 획득한 중요한 시기였다(313년).
그러나 그와 동시에 도나투스(Donatus) 이단이 아프리카에서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교회 내의 혼란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는 교황의 거처로 황제가 선물한 파우스타 황후의 궁전(현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도나투스 이단을 단죄하였다.
선종 후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 묻힌 그의 축일에 대해 로마 순교록은 12월 10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1월 10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 그레고리오 3세(Gregory II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741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시리아 사람 요한의 아들인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유능한 로마(Roma)의 사제였다.
그의 학덕과 성덕이 너무나 유명해서 선임 교황인 성 그레고리우스 2세(2월 11일)의 장례식 도중에 환호하는 군중들의 갈채 속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선대 교황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두 차례의 교회회의를 통하여 이단을 단죄하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를 도와 독일 선교에 힘을 쏟았으며,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까지 파견하는 열성을 보였다.
또한 성화상 파괴 운동에 저항하는 의도로 여러 성당을 장식하는 화려한 성상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는 성인들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자신이 세운 구원자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된 성 베드로 대성전의 소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에드문도 제닝스 (Edmund Gennings)
활동년도 : +1591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에드먼드, 에드몬드, 에드문두스, 에드문드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런던 출신인 성 폴리도루스 플라스딘(Polydorus Plasden)은 프랑스의 랭스(Reims)와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사제 수업을 받고 1586년에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즉시 잉글랜드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성 에드문두스 제닝스(Edmundus Gennings, 또는 에드문도)와 함께 체포되어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들은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일원으로 시성되었다.
성녀 에울랄리아 (Eulalia)
활동년도 : +304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메리다(Merida)
같은 이름 : 에우랄리아
성녀 에울랄리아는 에스파냐에서 큰 축일로 지내는 동정 순교자이나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메리다 태생으로 12살 때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하여 순교하였다. 메리다 지방의 집정관은 어린 그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여러 번 종용하고 또 살려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이교도의 신에게 제사지내기를 거부하고 많은 고문을 받고 운명하였다. 그때 성녀 율리아(Julia) 역시 그녀와 함께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에스파냐의 시인 푸르덴티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운 시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였고, 흰 비둘기가 그녀의 입술에서 나와 하늘을 날았다고 노래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에스파냐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등지로
빨리 전파되었고, 성 알델무스(Aldhelmus)는 잉글랜드(England)에서, 성 베다(Beda)는 성녀 에텔드리나에게 보내는 찬미가에서 그녀를 찬미하였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도 순백한 그녀의 영혼을 노래하였다. 바르셀로나(Barcelona)의 성녀 에울랄리아(2월 12일)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 요한 로버츠 (John Robert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영국(UK)
활동연도 : 1577?-1610년
같은이름 : 로버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로버츠(Joannes Roberts)는 1577년경 영국 웨일스 북서부의 산악지역인 스노도니아(Snowdonia)의 귀네드(Gwynedd)에 있는 트로스피니드(Trawsfynydd)라는 작은 마을에서 요한(John)과 안나 로버츠(Anna Roberts)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웨일스인으로 고대 영국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는 지역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느 나이 많은 수도승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그 수도승은 1537년 헨리 8세(Henry VIII) 왕이 강제로 수도원을 해산하기 전까지는 돌겔리(Dolgellau) 외곽에 있던 치머 수도원(Cymer Abbey)에서 생활했었다. 그 덕분에 성 요한 로버츠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지만 가톨릭에 대한 호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그는 1595년에 옥스퍼드(Oxford)의 성 요한 대학(St. John’s College)에서 수학한 후 런던에 있는 법학원인 퍼니벌스 인(Furnival’s Inn)으로 가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유럽 대륙을 여행하던 중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해 법학과 이전의 신앙을 뒤로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598년에 그는 에스파냐로 가서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승의 삶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웨일스의 해안가 산악지역 이름을 따서 메리오네스(Merioneth)의 요한 형제로 불렸다.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수도원으로 가서 수련기를 마치고 1600년 말에 첫서원을 했다. 이어 나머지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사제품을 받고 1602년 12월 말 동료와 함께 영국 선교를 향해 출발했다. 영국 정부 스파이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603년 4월 영국에 입국했다. 그는 또한 에스파냐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속한 영국 수도승들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런던(London)에 도착하여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5월 13일 강제로 추방당했다. 그는 프랑스 북부의 두에(Douai)로 갔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재입국을 시도했다. 그는 런던에서 페스트 희생자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1604년에 네 명의 지원자와 함께 에스파냐를 향해 출항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다행히 그는 사제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 풀려난 후 다시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는 즉시 잉글랜드로 되돌아왔다. 1605년 11월 5일, 한 판사가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에 연루된 토마스 퍼시(Thomas Percy)의 첫 번째 아내인 퍼시 부인 집을 수색하던 중 그를 발견하면서 또다시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있는 게이트하우스(Gatehouse) 감옥에 갇혀 몇 달 동안 조사를 받고 화약 음모 사건과는 무관함이 밝혀졌지만 1606년 7월 다시 추방되었다. 14개월 정도 두에에 머무는 동안 그는 다양한 경로로 에스파냐의 수도원에 입회한 영국인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을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성 그레고리우스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성 요한 로버츠는 1607년 10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12월에 체포되어 웨스트민스터의 게이트하우스 감옥에 갇혔는데, 몇 달 후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1년 정도 런던에 머물다가 1609년 5월에 또 체포되어 뉴게이트 감옥으로 갔다. 그는 이번에는 처형의 위기에 처했지만, 프랑스 대사가 대신 벌금을 제공해주어 추방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다시 에스파냐와 두에를 방문했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1610년 12월 2일 어느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제의를 입은 채 뉴게이트 감옥으로 끌려갔다. 여러 번의 체포와 추방 그리고 재입국과 선교활동을 반복하던 그는 결국 1610년 12월 10일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사제가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는 것이 금지된 국법을 어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런던에서 페스트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열정적으로 사목했던 그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사형 집행인이 마지막에 처형자의 심장을 들고 “반역자의 심장을 바라보아라!” 하고 외치면 사람들은 보통 “국왕 만세!”로 응답했는데, 이날은 아무도 응답하지 않고 죽음의 정적만이 흘렀다고 한다.
성 요한 로버츠는 시복은 1886년 12월 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선포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12월 10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한편 웨일스 지방에서는 5월 4일 외에도 기존의 10월 25일을 ‘웨일스의 6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별도의 축일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