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과 지내면서 주변에서 듣게되는 가장 거북한 말이 우리 아이들을 '천사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을 거의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실상을 모르는 정도가 클수록 천사라는 표현을 쉽게 하곤 합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거리가 멀기에 은근히 반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태균이 임신하고 열심히 읽었던 임신과 육아라는 책자에 나와있던 문구 중에 '자식은 악마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일단 태아가 형성되고 나면 태아는 절대 엄마의 상태와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것은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랍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소 공급이 부족하면 엄마의 몸을 긁어서라도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결론은 엄마가 무조건 잘 먹고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잘 공급해주라 라는 것이었지만 저는 이런 면을 떠나 자식은 악마라는 것에 상당히 동의를 하는 편입니다. 생물들의 종족보존은 그저 유전자코드에 맞춰 생식을 하는 경우와 모성애 유전자코드까지 프로그램되어 있는 생식을 하는 경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역시 생태계의 하위동물들에 많이 해당되고 상위포식자에게 상당부분 희생이 되어야 하니 개체수를 일단 많이해보고 볼 일입니다. 양육 과정도 생략되니 모성애도 필요없습니다. 그런 반면 후자는 생태계 상위에 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식개체수는 작으나 양육기간이 있기에 모성애라는 유전자를 장착하지 않고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양육기간으로 따지자면 인간만큼 긴 동물은 없습니다. 태아상태에서 가장 미숙하게 출생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본 양육기간인 24개월은 미숙한 태아가 자기신체 독립이 가능해지는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신체독립이라는 기본을 바탕으로 동물과는 완벽하게 차이가 나는 언어, 인지, 감정, 사회성, 학습, 정신세계를 발달시켜 가는 것입니다.
생태계 상위집단의 동물들은 모성애라는 것을 부계 유전자가 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부계 유전자가 엄마의 양육태도를 결정시키는지에 대한 유전적 코드에 대한 연구는 이미 끝나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공통적으로 태아의 성장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부계와 모계 Phlada2유전자의 작동상태가 모성애의 결정이라고 하니 태아성장 환경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 같은 부계유전자가 결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실 모성애 유전자가 고장이 났거나 시원치 않게 되면 자식을 위한 희생은 당연한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유전자 변이가 가속화되는 현대의 극심한 환경오염 시대에 모성애 유전자라고 왜 결함이 안 생기겠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모성애가 아닌데 길게 쓴 이유는 많은 어머님들을 대하면서 어떤 유전자가 우리 아이들같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적합할까 하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 아이들처럼 특수한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일반 아이들을 양육하는데도 똑같은 원리라고 생각됩니다. 유전적으로 가장 훌륭한 엄마는 모성애 유전자와 사회적 통증 유전자가 동시에 잘 작동되는 사람들입니다. 모성애 유전자는 아주 잘 작동되면서 사회성에 부족함이 있으면 대체적으로 자기자식만 생각하게 되고, 모성애 유전자는 약한데 사회적 통증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되면 내 자식 일보다 남의 일에 더 적극적이 됩니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사회적 뇌보다는 모성애 유전자가 아주 강한 종족이라고 보여집니다. 입양문화가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반증입니다. 서구사회는 입양문화는 사회보편적 현상이고 재혼가정에서의 만나게 되는 남의 자식 내 자식처럼 대하기는 사회적으로 당연한 문화입니다. 어찌보면 뇌구조가 모성애 쪽보다는 사회적 뇌가 훨씬 진화하는 쪽으로 발달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적 통증 감지와 활성화 영역이 잘 발달되어 있을수록 사회성은 건강하게 발휘될 수 있는데 사회적 통증은 곧 타인의 아픔과 감정을 공감하게 되는 기본 사회성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잘 양육하는데는 꼭 필요한 뇌의 영역이 사회적 통증 영역이라 보입니다. 어찌보면 모성애 유전자보다도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아이들 같이 특수자식을 양육하는데 모성애만 강하면 그야말로 악마로 성장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카르노신 조합 덕분에 수면시간이 안정된 것은 좋으나 아침 7시쯤 눈뜨면 두 꼬마녀석이 먹고살겠다고 서로 경쟁하듯 저를 끌어당깁니다. 한 놈은 밥달라 한 놈은 지독히 단것들 내놓아라 요구입니다. 새벽 휴식은 늘 이렇게 재촉으로 시작됩니다.
기숙을 해보면 어떤 아이도 자기를 낳고 키워준 엄마를 찾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그저 엄마가 되는거죠. 우리 아이들은 진짜 엄마가 아니라 지금의 양육자가 엄마일 뿐입니다.
이미 이불 요는 완이 새벽소변으로 오염되어있고 제지시켜도 계속 끌고다니는 베개는 거의 거지베개이고, 배만 고프면 숟가락 하나로 바닥에 떨어진 것도 서슴치 않고 주워먹으면서 그저 자기 기분에 따라 울고 웃는 이 악마적 행동들은 사회적 뇌가 좀더 크게 작동이 되었다면 좀더 일찍 방지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성애보다는 사회적 뇌 장착과 활성화가 잘 되어있는 사람에게서 진작부터 양육이 되는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모성애는 양육에 최고의 가치이지만 사회적 뇌와 평행을 이룰 때 그 가치가 더욱 배가된다는 것을 이제는 말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첫댓글 모성애와 사회적 뇌에 대해서 배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