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토지박물관이 동천왕 양위교서 벽비라 명칭한 유물
고구려유물의 명문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글자 판독은 해석할 내용을 좌우하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글자 판독이 잘못 되었다면 해석을 아무리 잘 하여도 제대로 번역이 될 리 만무하니까요. 그래서, 100% 명문사진이 공개되어있는 경우는 기존의 판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문의 명문을 나름대로 검증해 보려고합니다.
그래서, 동천왕 양위교서 벽비라고 알려지는 유물의 인터넷 공개 명문에 대해서 공개된 사진을 확대 판독해 인터넷에서 알려진 명문이 맞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구길수님이 사진상의 명문내용을 나름대로 판독해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림 2. 공개된 벽비사진의 확대사진
♦ 기존의 동천왕 양위교서로 추정된다고 토지박물관 공개한 벽비의 명문내용에 대한 판독문 전문 ( ) 안은 명확하지 않은 문자에 대해서 사용했습니다.
1행[12자] : (正)(始)武止宮不從固諫食(蒿)而
2행[12자] : 死殊(還)亡命(慾)(6)存其固都(將)
3행[12자] : (誠)不耐城往丸都遣訖(繼)造邑
4행[11자] : 都(護)位殊(麓)(酋)(魏)(正)始七年
5행[ 3자] : 百殊 宣
위 명문은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을 바탕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판독문입니다.
아래, 명확하지 않은 문자들에 대해서만 따로 모아보았습니다.
그림 3. 판독시 검증이 필요한 문자들
▶ 벽비사진으로 보는 미확정 글자
1행 : (1), (2), (3) 2행 : (4), (5), (6), (7) 3행 : (8), (9) 4행 : (10),(11),(12),(13),(14)
먼저, 1행부터 확인해보면 문자 (1)은 '正' 이라고 기존에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아래 확대사진을 들여다 보아 주시면,
사진상의 'A'부는 분명히 'ㅜ'가 아닌 'ㄱ'형태로 꺽여 있습니다. 'B'부 또한 자세히 들여다 보면 횡으로 뻗은 'ㅡ'이 'I'의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正'자는 왼쪽의 'I'은 위를 덮은 'ㅡ'획까지 미치지 못하여 닿지 않아야 하는데 닿아 있고 'A'부의 형태와 'B'부의 형태가 다르므로 사진상의 문자와는 다른 점이 3가지나 있어 사진상의 문자가 '正'자의 벽비제작당시의 옛 한자원형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유사한 글자를 찾아 보면 12간지중의 하나인 '丑'자가 있습니다. '丑'자와 사진상의 문자와의 유일한 차이는 'B'부에서 횡으로 뻗은 'ㅡ'의 길이가 짧다는 것 뿐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사진상의 한자를 '丑'자의 옛 표기형식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문자 (2)는 '口'자의 웟부분이 거의 웟부분과 붙어버렸지만 벽비에 글자를 만드는 과정상의 실수나 옛 표현방식으로 보아서 '始'자로 판독한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문자 (3)도 첫번째 '口'자가 문자 (2)와 유사한 이유로 사진처럼 되었으리라 생각되어 '蒿'자로 판독한 것이 역시 맞다고 생각됩니다.
두번째 행의 첫 문자인 (4)는 현재 이러한 글자가 없어서 어렵습니다. 기존의 판독은 '還'자로 해석했는데 형상이 전혀 다른데 어떤 근거로 그리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상으로 볼때 辶(책받침) + 不(아닐 부) 혹은 辶+衤(옷 의) 가 두 부분이 합쳐진 한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不'자로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른쪽이 혹같이 선이 붙어어 있어서 衤(옷 의)에서 맨 위 획이 마모되거나 옛 한자원형에서는 맨 위획이 없지 않았나 추정하여 '辶+衤' 의 조합자로 선택했습니다.
(5)는 기존에 '慾'자로 보았지만 왜 이런 오독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정해놓은 해석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실수 한 것 같습니다. 사진상의 문자형상은 마음 심이 빠진 '하고자할 욕'이라는 '欲'으로 보거나 혹은 谷(골 곡) + 久(오랠 구) 의 조어로 보아야 맞습니다. 일단은, 현재 있는 글자로 추정하여 '欲'으로 읽고자 합니다.
문자 (6)은 역시 현재 있는 한자로 추정이 곤란한데 사진상의 문자 형상으로 가능한 조합을 추정하여 보면 金(쇠 금) + X + 衤(옷 의) 로 보거나 혹은 金(쇠 금) + X + 木(나무 목) 의 조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상당히 어렵지만, 일단 '金 + X + 木'의 조어로 판독하겠습니다.
2행의 마지막 문자 (7)은 문자의 왼쪽 부분이 마모되어서 읽기가 여렵지만 명문으로 보거나 남은 오른쪽 자구로 보아서 기존의 '將'자란 판독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으로 3행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3행의 문자 (8)은 (7)처럼 역시 왼쪽부분이 약간 마모되어 있지만 '誠'자로 판독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문자 (9)는 역시 현재 알려진 문자는 아닙니다. 일단 현재 남아있는 유사한 한자를 찾아볼때 왼쪽부분이 조금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가는 실'의 뜻인 '糸'의 옛 형태로 판단하여 '継'로 판독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마지막, 4행입니다.
문자 (10)은 추정이 어려워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다만, 왼쪽 윗부분은 일본어 히라가나의 'ぅ'와 거의 동일한데 'ぅ'가 고대 부여의 고유한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문자 (10)은 옛 부여시대부터 내려온 동이만이 쓰던 고유한자로 보아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자 (11)은 '麓'자와 형태가 일치하고 다만 맨 아래 '比'부분의 끝의 삐침이 없을 뿐이므로 과거 '麓'자의 옛 형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문자 (12)는 기존의 판독은 '두목 추' '酋'인데 웟 부분이 자획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지만 옛 원형글자로 볼 수 있을 정도이므로 그대로 '酋'자로 판단합니다.
문자 (13)은 맨 아래 '心'의 삐침이 특이하지만 기존의 판독처럼 옛 한자로 현재의 '魏'자로 볼 수 있습니다.
문자 (14)는 1행의 문자(1)과 동일하고 다만 'ㅡ'가 'l'를 횡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다른 두가지 이유로 '丑'자로 판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판독결과에 따라 전체 문장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행[12자] : 丑始武止宮不從固諫食蒿而 2행[12자] : 死殊(辶+衤)亡命欲(金+X+木)存其固都將 3행[12자] : 誠不耐城往丸都遣訖継造邑 4행[11자] : 都(10)位殊麓酋魏丑始七年 5행[ 3자] : 百殊 宣
기존의 판독은 2행의 (6)번만 판독을 하지 않았지만 저의 판단으로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줄 때까지 2행의 (4) (6) 과 4행의 문자 (10)은 판독을 보류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기존의 판독과 다른 큰 차이점은 '正'으로 판독한 것을 '丑'자로 판독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2행에서 기존의 판독문에서 '慾'자로 오독한 문자 (5)를 '欲'자로 바로 잡은 것입니다.
누구라도 이 벽비를 고구려 어느시대 누구의 것인지 알고자 판독문을 근거로 해석하실 때 기준이 되는 판독문이 되어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다른 견해 그리고 옛 고구려시대 한자에 대해 깊이가 있으신 분들은 좋은 의견을 주시어 보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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