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再會溪堂(재회계당)/다시 한 번 溪堂에서 모이다.
글/李炳壽
번역/羅千洙
錦西咫尺有琴臺(금서지척유금대)/錦西의 지척에 거문고 타는 자리[琴臺]가 있는데
爲是知音種種來(위시지음종종래)/ 음악을 알고자 하기 때문에 온갖 사람들이 온다네.
才子工勤新滌硯(재자공근신척연)/재주가 있는 남자는 새 벼루를 씻어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主翁情勸故含杯(주옹정권고함배)/주인 영감도 예전에 술잔을 머금듯 정을 권하네.
閏年五月今猶早(윤년오월금유조)/윤년 오월이 이제 아직 이르지만
勝日斜陽去莫催(승일사양거막최)/좋은 날 비스듬히 지는 햇빛 가는데 재촉하지 마세.
如使賓朋常此會(여사빈붕상차회)/만일 손님으로 대접하는 좋은 친구로 하여금 항상 이처럼 모이게 한다면
地行誰道有塵埃(지행수도유진애)/가는 땅에 누가 길에 흙먼지가 있다고
하겠는가.
<해설>
◯種種(종종)은 여러 가지, 온갖,
種種來는 문맥으로 보아 “온갖 사람들이 온다네.”로 중간에 “사람들”이란 말을 삽입해 넣으니 후미 구절이 풀렸다.
◯錦西(금서)는 어디를 지칭할까.
그렇다면 溪堂을 먼저 알아야 한다.
錦城邑誌에 題詠편에 溪亭이란 亭子가 있다.
이 溪亭이 조선조 말까지 존재한듯하다.
혹여 후세 선비들이 溪亭을 의 위치에 溪堂이라 부르며 시를 짓고 놀지 않았을까.
溪亭의 위치는 이 글에서 표현한 錦西(錦城의 서쪽)에 있었다.
溪亭은 仁祖조 때의 대문장가 南磵 羅海鳳의 精舍였다.
溪亭은 나주(금성)읍성의 西城門 밖 가까이 寒溪天변 곁, 月井峰 산록에 있었다.
이 시문의 표현과 딱 맞아 떨어진다.
첫댓글 겸산 李炳壽(1855~1941)
1865년 대원군 시절 전국 47개만 남기고 650여 서원을 철폐할 때 南磵 羅海鳳의 精舍도 훼철되지 않았을까요?
계간사가 훼철되었을 것이나, 정사마저 헐렸을까? 서원, 사우가 철폐된 것이니 분명 계정이란 정자는 남았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