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전 성훈
신의와 고지식함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선생이 쓴 ‘사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여자와 사귀고 있는 미생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 날은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 다리 밑이었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때는 1년 중 장마가 드는 철이라 비는 계속 오고 물은 불어나고 있었지만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덧 강물이 불어났다. 몸이 물에 잠기는데도 약속 장소를 한 발짝도 떠나지 않은 미생은 물이 목 위로 차오르자 다리 기둥을 부여잡고 버티기를 계속했다. 사내는 익사해 죽었다. 사람들은 사내의 죽음을 보고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신의를 지킨 사내로군!’ 또 하나는 ‘어리석은 사내로군!’라고 보는 눈을 달리했다” 장자(長子)는 미생의 이야기에 대해, “미생 같은 자는 물에 쓸려 내려가는 돼지에 불과하다. 또는 깨진 그릇을 손에 들고 걸식하는 자와 같다. 하찮은 명분을 좇아 목숨을 가볍게 여긴 일은 본성을 망각한 자의 소치다.”라고 혹평했다. 또 어떤 이는 “믿음직하기가 미생과 같은 사람은 사람을 속이지 않았을 뿐, 다른 것은 취할 게 없다.” 라고 평하기도 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항목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또는 보는 관점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다르다. 품성과 인격, 성격과 행동, 가치관을 우선하는 경우도 있고, 가정환경과 가문의 배경 아니면 경제력 등을 첫째로 뽑기도 한다.
‘신의(信義)’, 즉 믿음과 의리를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꼽을 수 도 있다. 믿음과 의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이자 사회생활의 고귀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를 믿을 수 있을 때 그와 어울려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를 최고의 반열에 놓기에는 세상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상일이란 부엌칼로 두부나 무 베듯이 간단하고 단순 명쾌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와는 반대로 대부분 서로의 이익과 욕심이 교묘히 뒤섞여 있다. 반짇고리함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도저히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너무나 하찮은 이유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생’의 행동을 신의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우매함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 이것은 처한 입장에 따라 그때그때 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다.
신의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신의를 저버리고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인가? 사람들은 늘 자기의 처지나 소속된 단체나 조직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한다. 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지극히 중요하고 커다란 분란의 소지를 가져오는 일이나 사건을 처리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이자 말 그대로 ‘적폐’인 구태의연하고 설익은 진영 논리에 빠지기 보다는 무엇이 사회나 국가를 위하는 길인지, 후대까지 물려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국민과 사회를 이끌어야만 국가가 존립할 수 있으니까. (2017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