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 불안과 이해 관계의 충돌
이덕하
2010-03-25
정신분석가 John Bowlby는 애착에 대해 세 권의 책을 썼다.
『Attachment and loss, Vol. 1: Attachment(1969)』
『Attachment and loss, Vol. 2: Separation(1973)』
『Attachment and loss, Vol. 3: Loss, sadness and depression(1980)』
Bowlby는 애착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의 정신분석 이론을 버리고 진화 심리학적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1950년대부터 Niko Tinbergen, Konrad Lorenz, Robert Hinde와 같은 행태학(ethology, 동물행동학)자들과 교류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세 책을 출간하기 전인 1950년대부터 애착에 대한 진화 심리학적 가설을 몇 편의 논문에서 발표했다. 현재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의 애착 이론의 골자를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그는 현재 진화 심리학계에서 널리 쓰는 개념인 진화적 적응 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edness, EEA)라는 용어도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그를 진화 심리학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Bowlby는 아이가 부모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부모 옆에 있어야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분리 불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보육원에 있어도 생존에 별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했던 과거 환경 즉 EEA에서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언제 맹수나 다른 부족민이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와 떨어져 있다면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진화한 인간이 어릴 때 부모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감정들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분리 불안 장애는 장애인가 아니면 전략인가?
분리 불안(separation anxiety)은 아기 또는 어린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있을 때 심한 불안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보통 아이는 심하게 운다. 분리 불안 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는 이런 불안이 병적으로 심한 것을 말한다. 둘 사이의 구분이 애매하다. 도대체 어느 정도 심하게 불안을 느껴야 장애로 분류할 수 있단 말인가?
진화 심리학에 익숙하지 않은 심리학자들은 문제성 행동을 보이는 경우 무턱대고 장애나 병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대다수 심리학자들이 정신병질자(psychopath)를 뭔가 고장 난 사람으로 본다. 반면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은 정신병질이 진화한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장애나 병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해로운 기능부전(harmful dysfunction)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자. “해로운”은 가치가 함축되어 있는 개념이며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반면 “기능부전”은 과학의 교권에서 해명될 수 있는 문제다. 진화론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기능부전이다.
만약 정신병질이 남을 등쳐 먹는 전략으로서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면 정신병질자의 싸가지 없는 행동은 기능부전이 아니라 진화한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다. 같은 논리를 분리 불안 장애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부모와 떨어질 때 다른 아이보다 훨씬 심하게 불안해함으로써 부모를 자신 옆에 놓으려고 하는 것이 전략일지도 모른다.
분리 불안의 기능은 무엇인가?
Bowlby는 분리 불안의 문제를 다룰 때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해 관계의 충돌은 무시한 듯하다. 부모와 떨어져 있을 때 심하게 우는 것은 뭔가 착오가 생겨서 부모와 떨어졌을 때 부모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고 본 것이다. 나는 분리 불안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이럴 때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이해 관계의 충돌이 개입되지 않는다. 부모가 실수로 또는 불가항력적인 이유 때문에 자식과 떨어져 있게 되는 경우가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었을 것이다.
Bowlby가 애착과 분리 불안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Attachment and loss』 2권을 출간한 이후에 Robert Trivers는 「Parent-offspring conflict(1974)」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이 나온 이후로 진화 심리학자들은 조화와 사랑만 있을 것 같은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이해 관계의 충돌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분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이해 관계가 충돌할 일이 많다.
남자의 경우 짝짓기 노력과 자식 돌보기 노력 사이에서 갈등한다.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많은 상대와 성교했을 때 엄청난 번식 이득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여자가 한 달에 백 명과 성교한다고 백 명의 자식을 임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한 달에 백 명과 성교했을 때 극단적으로 운이 좋으면 백 명의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가 다른 여자를 꼬시러 다닌다면 자식을 돌보는 데 소홀해지며 이것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빠가 멀리 가려고 할 때마다 심하게 울어댐으로써 저지한다면 아빠의 전략을 어느 정도 좌절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엄마의 경우에는 어떤가? Trivers가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을 다룰 때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이유기의 갈등이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젖을 늦게 뗌으로써 동생이 더 늦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 이득인 반면 엄마의 입장에서는 젖을 빨리 뗌으로써 동생이 더 일찍 태어나게 하는 것이 이득이다. 인간을 비롯한 여러 포유 동물의 경우 자식이 젖을 자주 먹으면 임신이 되지 않는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젖을 먹지 못한다. 따라서 동생이 더 빨리 태어날 가능성이 크다. 분리 불안은 엄마와 꼭 붙어 있음으로써 결국 동생이 빨리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든 아빠든 바람을 피우면 가정 불화가 생기기 쉽고 심각할 때에는 이혼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따라서 엄마와 아빠를 자신 곁에 붙잡아 둠으로써 바람을 못 피우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이 분리 불안의 기능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해 관계의 충돌을 고려하면 분리 불안 장애로 분류되는 어린이들의 행동도 해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어린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 다른 어린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희생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