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 전은경 옮김 / 들녁
재미있다는 지인의 추천과 함께 야간열차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들었다.
내가 야간열차를 이용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학이었고 겨울이었다. 두터운 옷을 입고 비교적 한산한 화장실 근처의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 하룻밤을 보냈다. 서울행 야간열차는 10시간 이상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에 탔고, 서울역에 이른 새벽에 내렸다. 서울역에 내리면서 내려 갈 때는 이 열차는 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하행선도 결국 야간열차를 이용하고 말았다. 밤을 이용하기 때문에 하루를 벌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편하게 잠들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뭔가 끊임없이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주는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덤으로 해가 뜨는 것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기대는 모든 불편함을 참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진통제였고 향정신성 의약품이었다.
소설책을 읽는 것이 이처럼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한 줄 한 줄, 한 문장 한 문장을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이렇게 부담이 된 이야기책은 기억에 별로 없다. 나에게 힘을 요구하는 책이지만 놓을 수도 없었다. 마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금속 그릇에 젖은 손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작가의 의도나 내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책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다. 책을 대여한 후에 바로 읽지 못한 이유로 반납 일자가 가까워졌다. 일반 소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인데, 다시 한 번 더 읽어 볼까 하는 생각 때문에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연장 신청을 했다. 다행히도 다른 분이 대여신청을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책 말미에 붙어있는 부록들이 있다. 저자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철학교수라는 것이다. 어쩐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후, 기록이 조금 미비하더라도 한 번 읽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니, 다음의 책 소개에는 "유럽 문학의 현대고전이 된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문제가 있는 작품인가보다. 진정 고전이라면 언젠가 또 인연이 닿아 내 손에 들어올 것이로 생각하며 바로 다시 읽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고전문헌학 교사인 그레고리우스는 출근하던 중에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한 포루투칼 여인을 마주치고 그 여인의 '포르투게스'라는 한마디에 삶이 흔들리고 만다. 그 흔들림을 안고 접한 포르투칼 의사인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에 빠져든다.
"_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련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산경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 27쪽, [언어의 연금술사] 중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 28쪽, [언어의 연금술사] 중
책을 구매한 그레고리우스는 모든 것을 접고 그를 알기 위하여 야간열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간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 단 한 번 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 44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학교 교장에서 보낸 편지에 그는 명상록의 위 글귀를 인용한다. 결국,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떠남은 자기를 인식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의 떠남으로 그가 이루고 유지하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성실"은 포기한 것일까? 자유롭게 선택한 길이지만 잠시 그 길에서 벗어난 것 또한 진정한 자유에 속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현실에 충실한 자만이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5주 후 그는 돌아온다. 떠날 때는 눈이 내리고 사람들은 외투를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벗고 다닌다. 그러나 여전히 햇빛은 창백했다.
돌아온 후,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 모두 낯설다. 아마도 프라우가 썼던 글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가 말하는 것처럼 상상한 것과 현실과의 차이 때문일까.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는 언뜻 보면 쉽다. 57세의 나이지만 기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뜨거움을 깊이 숨겨두었던 사람의 일탈(?) 또는 자기 찾기 정도로 갈음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아마데우 프라우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데우가 남긴 것, 글을 따라 관련된 사람을 만나는 설계가 그렇다. 그레고리우스는 언어학자이고 자신을 다시 만나는 길에 있는 것과 아마데우라는 사람을 그의 글로서 알아가는 것과 묘한 대비가 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마데우는 귀족이며 그의 말은 평범한 언어(글)이다. 그레고리우스는 평민이나 그의 말(글)은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그리고 불어 등으로 고급지다. 재미있는 것은 그레고리우스가 야간열차를 타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것과 아마데우가 쓴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도 모른다(485)."는 또 다른 대비로 보인다.
이제 두 번째 주인공, 아마데우를 살펴보자.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의사의 길을 가야 했던 아마데우의 삶에서 그를 변화시킨 사건이 몇 개 있다. 그의 누이동생을 살려낸 것이 하나이고, 의사로서 독재자의 살인마를 살려낸 일이 두 번째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으로 가족과 관계가 단절되고 평생 여동생에게 필요 이상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받는다. 두 번째 사건으로 사회에서 스스로 격리되고 저항운동에 가담한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에 접한다. 저항운동 조직에서 친구(조르지)가 좋아하는 여인(에스테파니아)을 사랑하게 된다. 아마데우와 관련 있는 주요 등장인물이 더 있으나 생략하기로 한다. 아마데우는 그가 가진 "동맥류"로 인하여 최후를 맞는다.
소설은 집으로 돌아온 그레고리우스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여행을 떠난 뒤로 줄곧 어지럼증에 시달려왔다.
"_영혼의 그림자.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에 대해 하는 말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 가운데 어떤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이 여행이 언젠가 끝이 나기는 할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 183쪽, [언어의 연금술사] 중
"_기차가 언제든지 탈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끔 감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를 놀라게 하는 생각은 대부분 이것이다. 그러나 자끔 작렬하는 어떤 순간에는 이 생각이 마치 복을 내라른 번개불처럼 나를 뚫고 간다. - 487쪽, [언어의 연금술사] 중
"_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에 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서로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서로에게 알려주는 게 이 단어가 지닌 완벽하고 중요한 의미에 맞는 이별일 테니까요." - [언어의 연금술사] 어머니와의 실패한 이별 중
그레고리우스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재미있는 책이라구요? ㅠㅠ. (2016.10.12. 평상심)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독후감만 봐도 아주 생각할 것이 많은 책같네요. 독후감을 몇번을 읽어야 좀 알듯말듯 합니다.
나를 위해 기록을 남김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인데, 타인도 읽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간과합니다.
실력이 짧죠. ㅠㅠ
요즘 깨달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가 쓴 글도 결국 타인의 글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쓴 몇 년전의 기록을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왕왕 있습니다.
역시 글을 쓴다는 것, 뭔가를 남긴다는 것은 - 메모의 수준이라도 - 참 어렵습니다.
@평상심 저는 그런의미에서 즉 내가 쓴 글을 나중에 보면 내가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나 하는 느낌이 들길래 자꾸 메모를 남깁니다.
오랜 후에 보면 글이 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떨때보면 이당시는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평상심님 글 잘쓰십니다. 좋은글 자꾸 남겨주세요.
님의 필력이 놀랍니다.
마치 고문을 받듯이 읽어셨군요.
..지적 추리소설..
스위스 고교에서 선택과목으로 라틴어. 그리스어를 배운다는 점,
고교 제자였던 부인과 결혼하고, 이혼하고 느끼는 감정..
영화로도 봤는데요 원작에 못미친 듯하더군요
영화가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보셨군요.
영화에서 아마데우가 죽어가는 동생을 살려낼때 옆에 있던 가족의 얼굴이 궁금합니다.
어떤 모습이었기에 그가 가족으로부터 멀어져야 했을까...
에스테파니아 역을 맡은 배우도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