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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 4-11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1) 2) 3)
1) 1960 - 마산상고생 김주열 시체로 발견돼, 마산서 3.15부정선거 규탄 시위 가열 1960년 4월 11일 한 낚시꾼이 3·15부정선거에 반대하는 마산부정선거반대시위에 참가했던 고등학생 김주열(金朱烈, 1943~1960)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체는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이에 마산의 모든 시민이 규탄·궐기하여 연 3일에 걸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의 시체를 부검할 때 참가한 한 외과의사는 "사인은 미제 최루탄(길이 17㎝, 폭 3㎝)이 안부에 박힌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의 시신은 1960년 4월 13일 밤 11시 마산을 출발해 14일 아침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군 금지면 용정리에 도착하여 마을 선산에 묻혔다. 그의 죽음은 제2차 마산시위와 이승만정권을 붕괴시킨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2) 1926 - 미국의 원예개량가 버뱅크(Burbank, Luther) 사망 버뱅크 [Burbank, Luther, 1849.3.7~1926.4.11] 매사추세츠주 랭커스터 출생. 그곳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주의 우스터의 공장에서 2년간 일하였고 21세 때 C.다윈의 저서 등에서 자극을 받고 작물개량사업을 시작하였다. 그의 최초의 성공은 버뱅크 감자(1872)로, 이것은 세계에서도 우수한 품종으로 되어 있다. 1875년에 그는 원예에 유리한 토양조건을 갖춘 캘리포니아의 산타로자로 이주하고, 세계 각지로부터 많은 품종을 주문하여, 과수·화초의 선택, 교배에 의하여 다수의 품종을 개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88년부터는 육종(育種)에 전념하고 밤나무·호두나무 등의 가구·건축용재의 품종 개량에도 진력하였다. 특히 가시 없는 선인장의 개량과 해국(海菊)을 품종개량한 순백색의 샤스타데이지(Shasta daisy)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직감력을 가졌으며, 넓은 지식과 과학적 고찰, 독특한 수법으로 일생을 육종개량에 전념하였다.
3) 1919 - 국제노동기구(ILO)설립 [어제의 오늘]1919년 국제노동기구(ILO)설립ㆍ아무리 권고해도 정부는 모른체 제1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1919년 4월11일, 세계각국의 대표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가 창립됐다. 제1차대전 직후 31개 연합국과 독일이 맺은 강화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해 국제연맹 산하기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16개 전문기구의 하나로 편입됐다. UN기구 가운데 최고령을 자랑하고 있다. ILO는 국제노동기준을 협약과 권고의 형태로 제정해 결사의 자유·단결권·단체교섭권·고용평등 등 노동기본권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의 준수를 감독하는 기능을 한다. 1991년 남북 UN동시 가입을 계기로 ILO의 152번째 회원국이 된 우리나라도 ILO 협약과 권고의 자장 아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ILO의 협약과 권고는 국경 넘어 노동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국들의 고질적 조약불이행, 각종 반인권적 부당노동행위는 ILO가 넘어야 할 산 중의 하나로 지적된다.
선택한 단체에서 완전한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정규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가 해고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등에 대해서 “해고된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을 원직복직시키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ILO의 권고는 이번이 세 번째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이영경 기자 /경향신문 2011-04-10 21:31:5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102131535&code=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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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6 -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히나스테라(Ginastera, Alberto) 출생 히나스테라 [Ginastera, Alberto (Evaristo), 1916.4.11~1983.6.25]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일찍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음악원에서 A.팔마에게 사사하고 작곡가로 데뷔,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민속음악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작품을 썼으나 점차 무조주의(無調主義)로 기울고 그 뒤 다시 전위적인 작풍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치밀한 구성력과 풍부한 감성, 그리고 폭넓은 음악성에서 비롯된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참신한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대 아르헨티나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작품에는 관현악곡 《올랸타이》(1940) 《협주적 변주곡》(1953), 기악 앙상블반주에 의한 가곡 《투쿠만의 노래》, 오페라 《보마르소》(1967), 발레모음곡 《파남비:나비》 외에 피아노협주곡 ·하프협주곡 ·피아노소나타, 그리고 많은 피아노곡과 가곡 등이 있다.
2) 1951 - 트루먼, 맥아더를 유엔군최고사령관직에서 해임 1951년 4월 11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고 제한전을 수행하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주한 유엔군 사령관직에서 해임했다. 이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맥아더가 사령관에 발탁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맥아더는 1950년 9월 대담하게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10월에 북한으로 진격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인한 1·4후퇴로 잠시 서울 이남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맥아더군이 공세를 전환하여 북쪽으로 재진격하던 참에 해임소식이 들려왔다. 해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을 떠나 처음으로 귀국한 맥아더는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1) 2) 3)
1) 1985 - 알바니아의 국가원수 호자(Hoxha, Enver) 사망 호자 [Hoxha, Enver, 1908.10.16~1985.4.11] 그는(Enver Hoxha)1908년 10월 16일 알바니아 기로카스터르에서 태어나 반대자들에게 즉결처분을 자행한 극단적인 스탈린주의자였다. 그는1930년∼1936년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귀국 후 교사로 있으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41년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분할한 뒤, 알바니아 공산당 창립에 이바지하여 1943년부터 당서기장, 알바니아 총리,외무장관등을 역임하다가 1954년부터 노동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으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알바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보호를 받는 공산공화국이 되었다. 이런 보호에 분개한 그는 스탈린과 티토 사이의 적개심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1948년 유고슬라비아와 결별했다. 1960년부터 알바니아와 소련의 관계가 나빠지자 구소련에서는 그를 완고한 교조주의자(敎條主義者), 개인숭배의 찬미자라 하여 압력을 가하였으나, 약소국인 알바니아의 자력갱생을 위한 영웅으로서 온 국민의 경애를 받았다. 반면에 그는 중국과는 경제적,정치적인 이유(모스크바를 자극하는 수단)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이 동맹관계도 중국의 미국 관계개선을 위한 `3개의 세계`이론으로 인해 오래가지는 못했다.
2) 1961 - 팝 가수 밥 딜런(Dylan, Bob), 가수로 데뷔 밥 딜런(Dylan, Bob, 1941~ )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다. 미네소타주(州)에서 출생하였다. 유대계이다. 고교시절부터 로큰롤을 부르고 기타를 쳤으며, 그 후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나가 당시 유행했던 포크송운동에 뛰어들어 1962년 《바람에 날려서 Blowin’in the Wind》를 발표, 인기가 높아지면서 당대의 총아가 되었다. 이 노래는 딜런 자신의 본의와는 달리 공민권운동에서 널리 불리면서 그는 이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는데, 딜런은 이렇게 되는 것을 싫어한 듯 1965년부터는 로큰롤의 요소를 대폭 도입한 《미스터 탬버린 맨 Mr.Tambourine Man》 등으로 음악적인 방향전환을 명시하여 화제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주춤해지고, 1980년대가 되면서는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져, 데뷔 당시에 가졌던 반체제적인 이미지는 크게 사라졌다.
3) 1939 - 미국 배우 클라크 게이블 결혼 이 때가 최고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3년 뒤 비행기 사고로 새 아내 롬바드를 잃게 된다.
2008 - 이소연 씨, 우주 임무 본격 시작 우주인 이소연 씨가 오늘 새벽 국제우주정거장 탑승에 성공해 본격적인 과학실험 임무에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식물생장 실험장치와 초파리 실험 장치를 우주정거장 벽에 설치했습니다. 우주인의 얼굴 변화 실험 등을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10가지 한국 우주식품으로 저녁을 함께 하게됩니다. YTN -사이언스TV [2008-04-11 17:55:07] http://www.sciencetv.kr/theme/theme_view.php?s_mcd= 0101&key=200804111755024419&tcd1=05&tcd2=01 - 한국특수교육 100주년 기념 (1994.5.20 발행) 2008 -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4월 11일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4월 11일부터 시행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가 입법운동을 전개해 제정된 법률이다. 6개의 장, 50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경험하고 있는 직접차별에서 더 나아가 간접차별과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 등으로 확대됨으로써 차별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러한 차별의 개념을 장애인의 일상생활 전반의 영역으로 적용하여, 차별을 받은 피해자가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포함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장애인의 교육영역에 있어서는 교육 책임자에게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 장애인의 교육 접근권은 지금보다 더 확대될 것 전망된다. 또한, 장애인의 이동 및 교통수단에서 있어서도 명확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어 그 동안 장애인의 이동권을 방해했던 시설물이 좀더 편리하게 장애인의 입장에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장애인의 권리구제를 위한 장애차별시정기구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인권적 관점에서 장애인 관련 정책과 제도과제를 발굴하여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현장중심의 장애차별사건 조사를 확대하여 장애인과 함께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앞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인권증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이며, 이 법률의 시행을 통하여 장애인의 권리는 더욱 굳건한 토대가 확립될 전망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지역사무소 정책홍보관실 2008-04-17 http://www.daegu.go.kr/Boards/BoardsBoardList.aspx?classNo=0&no= 1816&rNo=1816&page=1&list=10&infoID=302&subInfoID=302
2006 - 한국의 영화감독 신상옥(申相玉) 사망 신상옥 [申相玉, Shin Sangouk, 1926.10.18~2006.4.11] 영화감독 신상옥(申相玉)씨가 4월11일 오후 11시39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신씨는 1952년 영화 ‘악야(惡夜)’로 감독에 데뷔했으며 1953년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결혼했다. 1978년 홍콩에서 납북돼 1986년 북한을 탈출했고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평생을 영화계에 몸담아 왔다. 대표작으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성춘향’,‘ 상록수’,‘ 연산군’,‘ 빨간 마후라’ 등이 있다. 신씨는 최근 간이식 수술을 받은 뒤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은 부인 최은희씨와 2남 2녀가 있다.
1995 - 대종교 안호상 총전교와 김선적 종무원장, 단군릉 참배 위해 방북 안호상 대종교 총전교 방북 1995년 오늘, 대종교 안호상 총전교와 김선적 종무원장이 북한에 입국했다. 옥류관 등을 참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또 방북 닷새째인 4월 15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한의 박성철 부주석을 만나 남북한 공동으로 개천절 기념일을 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시 승용차로 경찰병원으로 이송돼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1979 -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 Dada Oumee) 물러나다 1971년 1월 25일 아프리카 우간다 공화국의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의 성공으로 군사권을 장악해 대통령이 되었으며, 1976년에는 종신 대통령이 되어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아시아인과 다른 종족을 박해하는 등 인권을 유린했다. 폭정으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1978년말 탄자니아를 침략했다. 그러나 1년 뒤 탄자니아 군대와 우간다 민족해방전선(UNLF)이 우간다를 침공해 수도 캄팔라를 장악했다. 아민은 리비아로 피신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랑고족 지도자 밀턴 오보테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아민을 몰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웨리 무세베니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반정부 투쟁을 벌였다. 1986년 여러 차례의 권력 충돌 끝에 무세베니가 우간다 최초의 직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75 - 국립민속박물관 개관 1975년 4월 11일 국립민속박물관이 문공부장관을 비롯한 문화계 학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됐다.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이 경복궁안에 마련한 민속박물관은 생업실, 공예실, 식생활실, 주거실, 복식실, 신앙의례실 등 8개 상설전시실을 갖추고 전통적인 민속자료를 수집, 전시하며 생활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는데 중심역할을 하게 됐다. 민속박물관은 민속자료 5천6점을 중앙홀과 8개 전시실에 나누어 진열했다. 전시자료는 대부분 조선왕조시대 후기 18,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치는 유물들이었다. 이 박물관은 3억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2년 만에 세워졌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민속박물관이 설치된 것은 해방 후 이루어진 민족박물관이었으나 6.25동란으로 문을 닫은 뒤 수장품은 경주박물관 창고에 사장되고 말았다. 이때 개관한 민속박물관은 지난 1966년에 문화재관리국이 소규모의 한국민속관을 열었던 것을 박물관규모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박물관의 전시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5시까지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景福宮) 경내에 있는 민속박물관. 연건평 3781.8㎡. 소장유물(所藏遺物) 7,089점(1990.3.31. 현재). 조직은 전시과·관리과로 되어 있다. 연혁을 보면, 8·15광복과 함께 송석하(宋錫夏)의 노력으로 개관되었던 남산민족박물관이 1950년 국립박물관으로 흡수된 후, 16년 만인 1966년 10월 4일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局)에서 경복궁 수정전(修政殿:303.6㎡)에 1600여 점의 민속자료를 수집하여 임시 기구로 민속박물관의 개관을 보았다. 개관하였으며, 1979년 4월 13일 국립박물관 소속으로 직제가 개정되었다. 1982년 옛 중앙박물관 건물로 이전하고, 1992년 시설공사를 벌여 지하 1층, 지상 3층에 옥탑층을 갖춘 건물로 단장하였다. 마련하였다. 1995년 12월 말 현재 1만 6000여 점이 유물이 역사실·생활1실·생활2실에 나누어 전시되고 있다.
1925 - 미국 소설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출간 [역사속의 인물]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 ‘호화별장, 롤스로이스, 주말 파티….’ 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등장하는 상징물이다. 사치와 퇴폐로 점철된 쾌락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순진한 청년 개츠비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주류 밀매로 거부가 되고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줄거리다. 요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사랑과 야망, 집념 스토리의 원조격이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1896~1940)는 1925년 오늘, 뉴욕에서 이 소설을 출간했다. 문학평론가들은 환호했고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다소 어려워 작가 생전에는 2만5천부도 팔리지 않았다. 작가의 삶도 개츠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 속에 자신의 경험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잘생긴 외모와 부, 재능에 걸맞게 방탕한 생활을 했다. 1934년 장편 ‘밤은 상냥하다’가 실패하면서 그의 삶은 급전직하했다. 빚을 갚기 위해 할리우드로 건너가 시나리오까지 썼으나 알코올 중독과 병마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고 했던가. 박병선 사회1부장 lala@msnet.co.kr 매일신문 2009년 04월 11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6362&yy=2009 -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80주년 기념 (1999.4.13 발행)
1919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새로운 자료 발굴) 국사편찬위 “臨政 창립일 4월 13일 아닌 11일” 일제에 빼앗기고, 6·25전쟁 중에 유실되고, 화재로 소실되고, 국내외 각지로 흩어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기록을 집대성한 1차분 자료집이 출간됐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는 3·1절을 기념해 임시정부의 헌법, 임시의정원 문서, 한일관계 사료집을 수집해 정리한 7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과 독립신문 별책자료집 등 8권을 동시에 펴냈다. 2009년까지 총 50권으로 완간될 이 자료집의 1차분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국한문판과 중문판의 원본을 실은 별책자료집이다. 독립신문은 한국인 독자를 위한 국한문판(상해판 198호)과 중국 독자를 겨냥한 중문판(발행추정치 상해판 40호+중경판 7호)으로 각각 발간됐다. 1987년 독립기념관에서 펴낸 독립신문자료집에는 국한문판의 경우 177개호만 실렸으나 이번 자료집에는 189개호로 늘어났다. 그동안 한글 번역문으로만 소개된 중문판의 경우 상해판 원문 5개호와 중경판 6개호의 원문을 수록했다. 또 이번에 온전한 형태의 독립신문 창간호를 찾아내 함께 실었다. 한편 임정의 창립기념일이 지금까지 알려진 4월 13일이 아니라 4월 11일임을 보여주는 자료도 발굴됐다. 1945년 4월 의정원 회의 속기록에 보면 4월 11일 의정원과 국무위원회 합동으로 제26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료집 편찬위원장을 맡은 김희곤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4월 13일이란 날짜는 일제가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 상하이 임정 사무실을 급습해 임정 자료집을 약탈해간 뒤 그 목록만 정리돼 있는 ‘조선민족운동연감’에 나온 한 줄의 기록에 의존한 것에 불과하다”며 “임정이 자체적으로 기념일로 삼았던 4월 11일로 창립기념일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군사와 외교, 임정 관련 국내외 언론보도 등을 정리해 5차에 걸쳐 50권을 발간한 뒤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동아뉴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2006-02-24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2230056 (99) http://artiaco.com/home/bbs/board.php?bo_table=artnews&wr_id=206&page=6
1918 -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교육자 바그너(Wagner, Otto) 사망 바그너 [Wagner, Otto, 1841.7.13~1918.4.11] 오스트리아의 건축가·교육자. 유럽 근대건축운동의 창시자이며 지도자로 꼽힌다. 초기에는 널리 유행하던 신르네상스 양식을 사용했고 1893년에 빈 종합도시설계 공모에 당선되었으며 1894년 아카데미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곧 교육자로서 전통을 깨고 기능·재료·구조를 건축설계의 기본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그의 주요작품으로는 아르 누보 양식의 빈 고가전철 및 지하철 철도역(1894~97)과 우편저축은행(1904~06)이 있다. 장식이 거의 없는 우편저축은행은 특히 중앙 홀의 곡선 유리지붕은 현대 건축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인정받고 있다. 처음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점차 널리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의 강의내용은 1895년에 〈현대 건축 Moderne Architektur〉으로 출판되었다. 1905 - 헝가리의 시인 요제프(József, Attila) 출생 요제프 [József, Attila, 1905.4.11~1937.12.3] 부다페스트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17세 때 시인으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한 때, 빈 ·파리로 유학하고 귀국한 후 빈곤 속에서 사회적 부정에 대한 분노와 항의, 실의와 절망을 표현한 많은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그는 비합법하의 공산당에도 접근했으나 생활고와 정신병의 두려움, 혁명운동 속에서의 사상적인 혼미 등으로 끝내 철도자살로 생애를 마쳤다. 1,000여 편의 작품은 시집 《미(美)의 거지 A szépség koldusa》(1922) 《뒷골목의 밤 Külvárosi éj》(1932) 등에 수록되어 있다. 1899 - 미국의 화학자 줄리안(Julian, Percy) 출생
1869 - 노르웨이의 조각가 비겔란(Vigeland, Gustav) 출생 1862 - 미국의 법률가, 정치가 휴스(Hughes, Charles Evans) 출생
1825 - 독일의 사회주의자, 노동운동 지도자 라살(Lassalle, Ferdinand) 출생 1814 - 나폴레옹, 무조건 퇴위에 서명, 엘바섬으로 귀양 1769 - 프랑스의 장군 란(Jean Lannes)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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