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김난주 譯/북로드 2017년판/313page
현대의 소멸해가는 지방 소도시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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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나 도심지 주변 개발지 위주로 현대문화가 변화해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 점차 그 기능을 잃고 소멸해가는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애환은 일본이나 우리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읽다보면 마치 이 땅의 소외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과 마을 이름을 한국적인 것으로 바꾸어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다.
무코다 야스히코(주인공, 이발소 주인)가 운영하는 이발소의 방식은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의 이발소에서 행해지는 영업방식과 너무나 똑같다. 같은 마을에 사는 지인이 손님으로 찾아오면 반갑게 맞으며 먼저 머리를 깎아주고, 이어서 주인의 아내 교코가 기다리다 면도를 해주며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그것뿐인가. 마을이 작다보니 이발소는 주인의 어릴 적 친구나 지인들이 가끔 들러 마을의 길흉사나 가십거리를 잡담형식으로 풀어가며 시간을 보내는 공적 역할도 톡톡히 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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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며 경제 규모가 적어지자 젊은 사람들은 주변의 큰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가게 된다. 그렇다 보니 할 일 없는 노인들과 몇 가지 기본적인 생산 업무에 종사하는 장년들로 마을은 나날이 활기를 잃어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정체하기 마련이다.
부모들의 땅이 여전히 남아 있어 농사를 생업으로 맡은 젊은 사람들은 짝을 찾기가 어려워 멀리 중국에서 결혼 상대자를 맞이하는 일도 벌어지고, 아직도 일본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집안의 장자가 나이 든 아버지의 가업을 맡아 고향으로 귀향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해 갈등의 골은 사그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야스히코의 장남 가즈마사가 갑자기 잘 다니던 도회지의 회사를 난데없이 그만두고 아버지의 이발소 가업을 맡겠다고 귀향하며 조용하던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하고 연이어 조그만 소동과 갈등이 발생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그 가업을 이어간다는 일본 전통의 숭고한 가치관을 실현하려는 아들 가즈마사의 의중이 주인공 야스히코는 영 탐탁치 않다. 하지만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에 불쑥 찾아와 자신의 고집을 억척스럽게 이어가는 아들에 대해 노모와 아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모처럼 찾아든 집안의 활기를 고맙게 반기는 눈치라 야스히코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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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덥지 않은 아들과 또래의 젊은이들이 마을을 살리겠다고 축제를 거창하게 밀어붙이고 이미 오랜 경험을 통해 그 결과가 뻔 할 것을 말리고자 나서는 야스히코와 그의 친구들, 마을에 하나 뿐인 술집에 화려하게 등장해서 새로 술집을 개업해 젊은이뿐만 아니라 야스히코 또래 장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아름답고 섹시하기 조차한 고향 후배 사나에.
멀리 중국에서 신부를 데려왔지만 두문불출 인사를 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다이스케, 그런 다이스케와 중국인 신부를 마을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편입시키려 나서는 노인들과 야스히코의 활약상.
조그만 마을에 난데없이 영화사에서 스타급 아름다운 여자 영화배우를 데려와 촬영을 한답시고 연일 마을을 달구자 들떠버린 마을 사람들과 술렁거리는 일상. 마을 출신의 젊은이가 도시에서 사기행각을 벌여 쫓기다 마을로 숨어든 사건 등등....
마을은 전과 달리 변한 것은 없어 보이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과 소동들로 연일 떠들썩하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지방 소도시에서나 볼법한 사람사이의 인정과 따스한 관심 등이 이야기를 훈훈하게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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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꾸다 히데오’는 오래 전 ‘공중 그네’라는 소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작가로,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이미 평판으로 보나 인기로 보나 꽤 지명도가 있는 작가다.
그의 글은 이미 평단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평이하고 쉽게 이해 가능한 문체다. 더구나 한국적 현실과 너무 비슷해 착잡하고도 훈훈한 마음으로 읽어가며 오늘날 소외되고 주변부로 밀려난 지방 소도시의 어두운 현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가의 기저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한 마음이 그 해결책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가져보았다.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