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담긴 우주
스텔라 박
간만에 여행한다
오래간만에 방송 일을 쉬면서 긴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 못 가서 환장한 여자처럼 평소에도 난 멀리 떠가는 비행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생판 모르는 지구별 어느 공간에서 정신줄 놓고 눈에 새로움을 들여놓는 기쁨은 내게 삶의 원동력이자 그 자체로 놓칠 수 없는 삶의 목적(Reason d’être)이다.
오십 줄을 넘기고, 꺽어진 백 세를 갓 넘어 이제 정말 인생 후반전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바쁜 일상을 핑계로 미뤄두다가,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모든 여건이 허락돼 거의 두 달간 여행할 수 있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이지만 다니다 보면 또 집이 그리워진다. 선사시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다가 한 곳에 정착한 이후 인류 모두에게 개발된 새로운 습일 터이다. 사랑도 그렇다. 그렇게도 함께 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함께 하면 또 떨어져 있고자 한다. (나만 그런가?)
오랜 기간 여행을 하려면 정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 워낙 집을 떠나면 고생 시작이다. 여행지에서도 잘 챙겨먹고 중간 중간 쉬어 줘야 대장정의 오디세이를 할 수 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을 가지고 여행하다보니 계속해서 여행지 가까운 곳의 싼 숙소만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렇다가 하루 정도는 좋은 호텔에 묶으며 중간 재정비를 한다. 내 작은 아파트, 내 공간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런던에 반하다
그렇게 샹하이, 이스탄불, 리스본, 세비야를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은 여러 번 여행하고 4개월 넘게 동생네 집에 얹혀 살기도 했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만약 서구세계에서 꼭 가봐야 할 두 도시를 선정하라면 자신있게 런던과 로마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는 유럽의 고향이자 기원이고 런던 또한 그 뒤를 이어 유럽의 정신을 형성한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고수들조차 “런던이 최고의 도시에요.(London is the best city.)”라는 말을 많이 한다.
대영제국 시절, 온 동네에서 훔쳐온 방대한 양의 유물 앞에는 그저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그래서 런던 대부분의 박물관은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국제적인 협약으로 소장품의 반 이상을 다른 나라에서 가져왔을 경우, 입장료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덕분에 런던 여행자들은 인류 문화의 보고를 아무 댓가 없이 만끽할 수 있다. 물론 기부금은 언제든 환영한다. 아니, 여기저기에 “당신이 지금 돌아보고 있는 이 멋진 뮤지엄을 운영하려면 하루에만도 엄청난 돈이 필요하니, 기부 좀 해주세요.”라며 읍소하는 사인이 붙어 있어 염치있는 이라면 그냥 다니기가 좀 깝깝해진다.
또한 LA의 게티 센터와 마찬가지로 입장료는 무료이다만 구내 식당과 카페, 기념품점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세금을 털기 위해, 또는 진정으로 숭고하게 인류 문화 보전에 대한 열정으로 수많은 액수를 기부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세상은 그렇게 잘 돌아가고 있다.
대영박물관 나들이
여동생의 집은 런던 시내에서 기차로 약 20분 떨어진 윔블던 시. 런던 시내 관광을 위해 기차를 타고 나가도 됐지만 나는 동생 출근할 때 함께 그 차를 타고 나가며 밀린 대화를 나눴다. 동생의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30분이다. 그 시간에 나가야 살인적인 런던의 교통체증을 통과하고 주차장에서 10분을 걸어 8시까지 출근할 수 있다고 한다. 평생 프리랜서로만 살아와 마감 시간이 있기 전에는 마음대로 잠자리에 들고 났던 나로서는 거의‘새벽별 보기 운동’이나 다름 없었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그 날도 동생 차로 박물관 앞에 일찌감치 도착, 문 앞의 커피숍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개장 시간을 맞춰 들어갔다.
그런데 전날, 좀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싸돌아다니기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나인데도 몸이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찬찬히 뜯어본다면 한 달이라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유물들을 앞에 두고 난 2층의 코트 레스토랑(Court Restaurant)에 올라가 커피를 주문했다. 아무래도 몸에 카페인을 좀 넣어 자극을 줘야할 것 같았다.
미국인과 영국인은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는 것을 제외하면 참 다른 양상을 띈다. 같은 영어라도 정말 다르다. 발음은 물론,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터이다. 미국인들은 군더더기 빼고 본질에 접근하기를 좋아하는 실용주의자들이다. 영국인들은 말을 할 때에도 형용사와 부사를 엄청나게 사용하는 것처럼 차 한 찬을 마실 때도 앞에 가져다주는 게 정말 많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카페인으로 몸을 좀 깨우고자 더블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물을 시켰다. 웨이터는 우아한 선과 올리브 색의 문양이 들어간 잔을 받침 접시 위에 놓고 작은 크기의 포트에 뜨거운 물을 담아 앞에 살포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에스프레소 커피가 담겨 있는 잔에 뜨거운 물을 조금 따라 나만의 아메리카노를 제조한다. 그냥 아메리카노를 시킬 경우, 너무 옅어 물을 마시는 건지 커피를 마시는 건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아 이처럼 유난을 떤다.
뜨겁고 검은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들어가며 뇌를 자극한다. 마냥 드러눕고만 싶어하던 몸에 기분 좋은 긴장이 쫙 퍼진다. 대영박물관 카페의 열린 공간과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영국식 영어 대화, 수려한 외모와 정중한 몸짓의 종업원들… 모두가 참 잘 어우러져 있다.
나는 한 모금 한 모금, 마음을 다해 커피를 마신다. 밤보다 까만 액체를 눈으로 보고 코로 그 향기를 아주 깊게, 그리고 오랫동안 흡입한다. 폐부에 들여놓은 그 아로마가 기분을 좋게 한다. 그리고 시든 꽃 같던 나를 다시 파릇파릇하게 되살려놓는다. 입으로 한 모금을 마신다. 뜨겁던 액체는 혀와 입안에 감기며 꼭꼭 숨겨놓았던 여러 가지 맛을 드러낸다. 쓴 맛, 신맛, 단맛의 그 예술적인 조화를 그 어떤 음식이 대신할 수 있을까? (아마도 와인?)
진정한 몰입으로 연결되는 황홀감
이처럼 완벽한 한 잔의 커피는 우리들에게 황홀감을 선사한다. 황홀감(Ecstasy)이란 자아가 녹아 사라지고 진아와 세계가 일체되는 순간에 다름 아니다. 나는 사라지고 이 한 잔의 커피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빛의 속도로 체득된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고산지대에 위치한 커피 농장의 농부… 요즘은 농업노동자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커피 농장에 고용돼 하루 약 3달러의 싼 노임을 받고 하루 종일 땡볕 아래서 생고생 하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래도 좀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농부는 땅과 태양과 비에 감사하며 빨간 커피 열매를 수확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 키우고 그저 예쁠 것도 없지만 살뜰한 아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는 오늘도 커피 열매에 비료를 주고 가지도 잘라주며 정성껏 커피나무를 키운다.
그렇게 수확된 커피 콩은 햇볕에 말려지고 과육이 제거된 후, 수입업자에 의해 각 나라로 운반된다. 대서양, 태평양의 무역선에 커피 원두를 싣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파이프를 물고 있는 뱃사람들의 노고가 헤아려진다. 로스팅 회사에서 커피를 볶는 이, 포장을 하는 직공, 트럭에 싣고 프리웨이를 오가는 운전기사, 그리고 내 이웃의 커피숍에서 이를 받아주는 이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솟는다.
커피의 몸은 물. 빗물을 내려준 하늘, 그 물을 품고서 흐르게 하는 대지, 상수도 시설 관계자, 정수기 회사 모두가 고맙다.
또한 예쁜 커피 잔을 만든 도자기 회사, 그 재료가 된 대지의 흙과 불, 티스푼을 만든 이도 내가 완벽한 커피 한 잔을 마시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나는 더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커피에 넣어 마실 설탕과 우유 또한 커피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이 앞에 도달했을 터이다.
커피 한 잔은 진정으로 세계의 축약이었다. 내 영혼을 각성하게 도움을 준 이 아름다운 음료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는 지구별 전체를, 더 나아가 우주를 본다. 그리고 감사한다.
커피 의식
이와 같은 커피의 여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이 커피 세레모니이다. 한국의 다도, 또는 일본의 차도처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좌정하고 앉아 차를 내리는 모든 순간 순간을 마음 다해 하는 것처럼 몇몇 커피하우스들은 ‘커피 의식(Coffee Ceremony)’이라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좌정하고 앉아 생두를 프라이팬 위에 넣고 기름 없이 볶으면 생두 안의 지방이 우러나오며 탁탁 소리를 내며 까맣게 변한다. 태우기 직전까지 볶아낸 커피를 커피 분쇄기에 넣어 갈고 물을 끓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리면 마실 준비가 마쳐진다. 내 앞의 커피 한 잔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온 것인지, 짧게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는 매일 아침 행하는 종교적 의식에 다름 아니다. 직접 커피를 볶고 분쇄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 매일 이러한 커피 의식을 치룬다. 잠에서 깨어나 물 한 잔을 마셔 몸과 마음을 정화한 후, 커피를 내려 잔을 양손으로 감싸며 한 모금 한 모금을 마음 다해 마시는 것이 바로 커피 의식이요, 내 삶의 제사(Ritual)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세계를, 그리고 우주를 마신다. 그 순간 순간의 연속이 우리의 삶인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사족, 최초의 커피숍, 푸른병 커피
마크 펜더그라스트(Mark Pendergrast)가 지은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Uncommon Grounds: The History of Coffee and How It Transformed Our World)>라는 책 (나도 아직 읽지 못했다.)에는 최초의 상업적 커피숍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의 양치기 소년이 발견한 커피는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가 터키와 이슬람 세계의 기호품이 됐다. 1683년 오스만튀르크 군대는 비엔나에서 급하게 철수하느라 커피 원두 500자루를 버려두고 갔다. 비엔나 사람들은 이를 낙타 사료인 줄 알고 불에 태우려 했었다. 터키어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어 오스만튀르크군 진영을 오가며 스파이 역을 했던 폴란드 계의 콜시츠키(Franz George Kolshitsky)는 이것이 커피 원두임을 알았고 커피 내리는 법과 즐기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는 비엔나 시장으로부터 스파이 직무에 대한 공로로 받은 돈으로 버려진 500자루의 커피를 구입했고 그 해 비엔나 시에 ‘푸른 병 아래의 집(Hof zur Blauen Flasche)’이라는 커피숍을 열었다. 이 서구 지역 최초의 다방에서 커피를 맛본 유럽인들은 단박에 커피와 사랑에 빠졌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19년 후인 2002년, 미국 북가주의 오크랜드(Oakland) 지역에 문을 연 ‘블루 바틀 커피(Blue Bottle Coffee)’는 최고 품질의 원두를 볶은지 이틀 내에 공급하겠다는 커피 장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기업화된 스타벅스에 염증을 느낀 소비자들은 블루바틀 커피의 신선한 커피와 세심한 서비스에 반했다. 블루 바틀 커피는 미 서부 지역에서 급속한 속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어디 블루 바틀 커피뿐일까. 최상품의 원두를 갓 볶아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신흥 커피하우스들로 우리들의 하루는 향기롭게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