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馬의 큰 눈망울에 봄이 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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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산 미니어처, 조랑말, 한라말 등 작은 말만 모아 놓은 대구 달성의 포니목장. 말 크기가 작아 서너 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도 승마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 |
땅 위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났다. 벚꽃은 이미 꽃비를 내렸고, 진달래도 연분홍 자태를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봄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꽃샘추위가 들이닥쳤다. 꽃샘추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맹렬했다. 졸지에 장롱 속에 넣으려던 코트를 다시 꺼냈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아이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보채는 계절이다. 어른보다 아이가 자연의 생리를 더 잘 아는 것이다.
봄바람을 타고 대구 달성으로 향했다.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자동차로 1시간 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가는 길은 이미 봄맞이가 끝난 상태였다. 도로 곳곳에서 꽃비가 내렸다. 땅은 새로운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내보려는 듯 붉은 기운을 한껏 품었다. 그 속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피어나리라.
한라마·포니·조랑말 등 말 13 마리
진달래로 유명한 최정산에 자리
연날리기·바이크 등 체험거리 풍성
인근 미술광장·조길방 가옥 볼거리
한일우호관에 양국 교류사 한눈에
■포니목장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도 있었다. 가끔은 놀라고, 가끔은 즐거워서 어찌할 줄 모르는 소리였다. 아이들 앞으로 말들이 달렸다. 그런데 그 말이 묘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도 절대 크지 않은 조랑말이었다. 어른 눈높이로 보면 말보다 큰 개에 가까웠다. 그런 말들이 드넓은 산정에서 방목되고 있었다. 용기 있는 아이가 타고 싶다고 조르면 주인은 말을 끌어와 태웠다. 아이는 처음에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말과 친숙해졌다. 갈기를 쓰다듬고, 왼쪽 발로 배를 툭 걷어차기도 했다. 그리고 또 웃었다. 아마 흐뭇한 감정의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포니목장은 생각보다 넓었다. 주인 박경희 씨는 "모두 16만 평"이라고 했다. 그중 5만여 평이 현재 목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은 모두 13마리. 아직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보고 즐기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로 조금씩 다른 종류 같아서 물었다. 박 씨는 "영국산 미니어처와 한라마 각 4마리, 포니 3마리, 조랑말과 당나귀 각 1마리가 있다"고 답했다. 조랑말은 어깨높이 140㎝ 이하의 작은 말을 뜻한다. 영국산 미니어처는 이보다 더 작다. 어깨 높이 99㎝ 이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도 손등으로 말 어깨를 툭툭 건드릴 수 있는 높이다. 그러니 무서워하는 아이가 거의 없다.
포니목장은 2013년 5월 문을 열었다. 대구 지역에는 조금 알려졌지만 아직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박 씨는 "그동안 소목장으로 사용됐는데 외환 위기 이후 사실상 폐쇄된 상태로 방치돼 산꾼들이 아니면 목장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니목장은 비슬산과 함께 달성군의 명산으로 잘 알려진 최정산(889m) 정상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과거 산성이 있었으나 1940년대 이후 소를 사육하는 목장으로 개발됐다. 산꾼들에게는 진달래로 유명한 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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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조길방 가옥. |
조랑말을 구경하며 목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조랑말 승마 외에도 체험 거리가 많다. 박 씨는 "연날리기, 사륜 바이크, 주말농장, 낚시, 동물 먹이 주기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동호회라면 이곳에서 서바이벌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승마는 어린이를 주 대상으로 하는데, 목장을 한 바퀴 크게 도는 것으로 체험비 1만 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 외에는 대부분 아직 무료다. 박 씨는 "목장을 캠핑장으로도 이용하기 때문에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을 여러 개 만들었다"고 답했다. 캠핑 사이트는 총 40면(사이트당 3만 5천∼4만 원, 성수기 5만 원). 그래도 주말이면 거의 다 차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
최근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많아 피자 만들기와 밤하늘 별자리 찾기 등의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운이 좋으면 베트남산 미니 돼지를 따라가며 함께 놀 수도 있다. 박 씨는 "영국산 미니어처처럼 미니 돼지도 몸집이 작아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캠핑장 주위에 풀어 놓으면 아이들이 돼지를 졸졸 따라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목장 입구까지 도로가 조성돼 자동차로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밖에 가볼 곳 포니목장이 있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일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볼거리가 의외로 많다. 그중 하나가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이다. 목장에서 내려오면 10분여 거리에 두 곳이 모여 있다.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은 같은 사람을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운 모하당 김충선 장군이다. 이곳은 유독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데, 그 이유가 김충선 장군이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이라는 것. 본명은 사야가다. 그는 늙어서 이곳으로 내려와 살았는데, 무덤이 녹동서원에서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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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서원. |
녹동서원에는 그의 위패와 문집 목판, 고종으로부터 받은 교지, 고향인 일본 와카야마 현에서 기증한 재래식 총 등이 보관돼 있다. 서원 옆에 2011년 새로 조성한 한일우호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일 교류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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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광장의 작품. |
여유가 있다면 인근의 대구미술광장과 조길방 가옥도 둘러볼 일이다. 대구미술광장은 폐교를 고쳐 만든 시각예술인의 창작 스튜디오인데, 운동장을 야외조각공원처럼 꾸며 일반인 관람이 가능하다. 조길방 가옥은 대구미술광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동차를 대구미술광장에 세워두고 운동 삼아 산을 올라 조길방 가옥을 구경하기도 한다. 조길방 가옥은 난을 피해 숨어든 조 씨들이 지은 집으로, 흔하지 않은 조선 시대 초가다. 작은 창호에 질박한 초가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주택 발달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글·사진=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여행 팁 포니목장(053-767-9411)은 부산에서 대구부산고속도로 청도나들목∼20번 국도∼서상교차로∼연지로∼양원삼거리∼가창로∼주리먹거리촌 순으로 가면 승용차로 1시간 40분 걸린다. 녹동서원과 달성 한일우호관(053-767-5751)은 포니목장 진입로에서 가깝고, 대구미술광장과 조길방 가옥은 가창저수지를 돌아가도 목장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따라서 포니목장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면 당일 코스로 이들 여행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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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찐빵만두나라의 만두와 호빵. |
가창면사무소 주변으로 10여 개의 찐빵가게가 포진한 '찐빵거리'가 있다. 청도에서 대구 수성구로 가는 길목이다. 원조, 옛날, 고향 등의 수식어를 썼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집은 역시 '호찐빵만두나라'(053-767-1007)다. 제과점을 하던 서노영 씨와 세 아들이 함께 만드는 찐빵인데, '호찐빵'은 호빵 같은 찐빵을 뜻한다. 호빵처럼 부드러우면서 찐빵 맛이 난다는 얘기다. 팥소가 너무 달면 한 개만 먹고도 질리는데, 이 집 빵은 그렇지 않다. 특히 호박찐빵이 오묘한 맛을 낸다. 호박찐빵 외에도 쑥찐빵, 고구마찐빵, 옥수수찐빵 등이 있다. 만두도 함께 파는데 개인적으로 찐빵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찐빵 4∼5개 2천500원, 만두 7∼11개 2천500원.
백현충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