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형이 두명이 있었고 6.25때 여름 피난에서 내가 총을 맞은 후
큰 형의 등에 업혀 다셨으며
1951년의 1.4후퇴 겨울 피난에서도 나를 업고 피난 후 앓다가 죽었고
나에게는 작은 형만 남았는데
작은 형은 청주시 도립병원의 사무실에서 심부를 등의 일을 합니다.
그때는 아직도 일제의 잔해가 많아 사무실이라 하지 않소 서무실이라고 합니다.
청주 도립병원은 일본인들이 지은 매우 큰 병원인데
앞 2층 건물만 하여도 길이가 70m는 넘어 보이고 이층에는 원장실과 간호학교가 있습니다.
사무실 앞의 현관은 매우 넓어 내과 외과 산부인과등이 있습니다
벽에는 사람 키 보다 더 큰 시계가 움직입니다.
현관에서는 환자들의 병실로 가는 복도가 있는데
길이가 40m쯤 되어 보이고 그곳에 간호원실이 있고, 옆으로는 제1병동
의 환자실이 있습니다.
반대쪽의 제2병동에도 환자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간호원실 옆에는 식당이 있고 큰 창고도 붙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시 복도로 올라가면 제3병동과 제4병동이 나옵니다.
그외에 밖의 여러가지 건물들이 있는데
제2병동밖에는 시체실이 있고 수술 찌꺼기를 태우는 화장실도 있습니다.
그곳 마당에서는 자주 시체의 해부가 있는데 간호학생들이 둘러서서 의사의 설명을 듣습니다.
하루는 국민학교 6학년 남자아이가 친구와 싸우다가 가위에 눈을 찔려 사망 하였는데
그 아이의 해부를 처음 보게 됩니다.
제2병동의 끝 층게에 서서 마당에서 해부하는 광경이 한 눈에 보입니다.
의사가 아이의 뱃가죽을 잡아당기고 가위로 푹 찔러 뱃가죽을 오립니다.
그러자 바람이 잔뜩 들어가 창자들이 마구 튀어나와 배를 덮습니다.
의사는 간호사들에게 설명을 한 후 다시 창자들을 구겨넣고 듬성듬성 배를 꿰맵니다.
그 다음에는 칼로 귀옆의 머리가죽을 조금 벗겨내고 톱으로 해골을 썹니다.
그리고 양쪽에 작은 끌을 박고 망치로 톡톡치자 해골이 떨어지면서
비닐에 쌓인듯한 뇌가 흔들거립니다.
의사가 막을 찢고 뇌의가운데를 살펴 보는데
가위가 눈을 통하여 뇌에 까지 들어와 아이가 죽은 것으로 판명이 됩니다.
울타리 밖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틈으로 바라보며 울부짖습니다.
디음날에는 26세된 청년의 해부가 있는데
나는 냄새가 너무 역겨워 마구 토하기에 더 이상 보고싶지 않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