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starlight) 내리는 겨울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나요? 겨울 밤하늘의 사냥꾼, 오리온자리가 품은 별들의 요람으로 큰개자리와 작은개자리 시리우스에 이른다. 영롱한 하늘의 별빛 소리 없이 내려와 머리와 어깨, 두 손에 잡히던 어릴 적 밤하늘이 몹시도 그립다. 혹시나 밤하늘에 별빛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두리번거려보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에 실려 오는 찬 공기가 얼굴을 때릴 뿐 그 시린 별빛은 보이지 않는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본지도 오래다. 양치기 목동과 별자리 이야기를 나누던 스테파네뜨 아가씨가 가장 예쁘고 가장 빛나는 별이 되어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알퐁스 도데의 단편『별』에 감춰진 순수한 꿈이 까만 밤에 영롱한 이슬을 머금는다. 철학자 칸트의 묘비에는 “내게 가장 경이러운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저 하늘 위에 총총히 반짝이는 별들과 내 마음의 도덕 법칙입니다.”라고 썼다.
시인 윤동주는『序詩』에서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노래했고 돈 맥클린은 빈센트를 통해 고흐가 ‘당신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영혼이 아팠는지 얼마나 그들로부터 갈망했는지....“라고 속삭인다. 동생 테오에게 “나는 별을 보면 항상 꿈을 꾼단다. 왜 우리는 별에 더 가까이 갈 수 없을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으므로 죽음이 우리를 별까지 데려다주는 수단이란다.”라는 애틋한 편지글을 남겼다. 하느님이 그 옛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했단다. 2천 년 전 동쪽 밤하늘에 나타난 세 개의 오리온 별자리와 일렬로 늘어선 시리우스별을 길잡이로 세 동방박사 가스발(Gaspal)과 멜키오르(Melchior), 그리고 발타사르(Balthasar)는 별이 지는 서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마태오 복음서 2장 2절에서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이 황금과 유황, 몰약을 예물로 가지고 온 세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안내했다. 지난 8일이 그날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냈다. 나는 지난날 몇 차례 들른 센 강변 시떼 섬의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을 가진 노트르담 대성당 성모 마리아 경당에서 빛으로 알려주는 장식,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에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 박사들 머리 위에는 이들을 인도한 메시아별이 반짝이고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는 손을 들어 예물을 받으며 축복하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노트르담의 꼽추』로도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꼽추의 사랑만큼이나 빛나는 프랑스 고딕 건축의 정수를 자랑한다.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는 일찍이 별의 밝기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밤하늘에 가장 밝은 북극성을 비롯한 20개의 별을 일등성으로 흐릿하게 바람에 흔들리며 깜박이는 별들을 육등성으로 분류했다.
그는 당시 1000개가 넘는 별의 위치를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히파르코스는 지구가 평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했었다. 나머지 태양 달 등 다른 행성들은 지구의 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보라, 문명의 커튼, 과도한 빛공해(Light Pollution)와 날로 농도가 짙어지는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그뿐인가. 어둠을 이기는 빛도 과하면 공해다. 빌딩의 숲과 상가 건물의 간판을 비롯한 가로등과 과도하게 밝은 상가 조명등, 교회 십자가와 대형스크린 전광판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바람에 한밤에 매미가 낮인 줄 알고 우는 동안 우리는 별빛 쏟아지는 매력적인 밤하늘을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강둑에 앉아 은하수와 별똥별이 사랑을 나누던 그 밤하늘이 새삼 그립다. 불빛 뒤의 어둠이 더욱 짙고 공허할 뿐이다. 오늘 따라 도시의 현란한 불빛 치장보다 깜박이는 순수한 별빛을 마음에 되새긴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우리나라는 지방마다 겉치레의 행사와 보여주기 경쟁이 극심해졌다. 그 중에는 산과 바다를 건너 잇는 케이블카와 멀리에서도 볼 수 있는 대규모 불꽃축제와 경관조명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조선 산업의 불황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진 거제시가 “오는 2019년까지 50억 원을 들여 장승포항에 야간경관조명 설치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을 통해 장승포항을 거제 해상관광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활력 있는 빛경관을 조성해 머무르는 관광으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경관조명 테마는 거제시의 시화(市花)인 동백꽃의 형상화로 이를 위해 항만 주변의 빛을 밝혀 붉은 꽃잎을 연상케 하고 대형 써치라이트를 밤하늘에 쏘아 올려 부산에서도 보일만큼 거대한 동백꽃의 수술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당장 이달부터 해안길에 LED 경관조명등 406개를 설치하여 어두운 항구를 훤히 밝힌다고 한다. 묻고 싶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유지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살릴 수준 높은 문화의 방법을 생각해본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자연을 훼손하는 유치한 조형물보다는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면 어떨까? 이탈리아와 독일, 미국, 이스라엘 연구진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이 세계의 빛공해 정도를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바 있다. 주요 20개국(G20) 중에 빛공해가 가장 심한 나라는 이탈리아로, 전 국토의 90.3% 지역이 빛 공해에 시달리고 우리나라는 89.4%로 2위를 차지했다. 빛공해 지역이 거주지와 겹치는 비율을 계산한 ’인구별 노출량‘으로 볼 때는 사우디아라비아가 1위, 우리나라가 2위로 나타났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빛공해는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여리고 순수한 밤하늘의 별빛이 도심의 강렬한 불빛에 묻히어 우리의 어린 날 귀신 나오던 까만 밤정경을 잃어버렸다.
날로 극심해지는 빛공해는 빛의 침입(light trespass), 과도 조명(over- illumination), 눈부심(glare), 빛의 혼란(light clutter), 밤하늘에의 영향(sky glow)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의 건강한 삶과 동식물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2012년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을 제정하고 그 이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접수된 빛공해 민원은 모두 9199건에 달했다. 인공적인 빛은 햇빛, 달빛, 별빛과 같은 자연적인 빛에 맞게 적응해 온 동식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아침 해가 뜰 때 홰를 치는 닭이 한밤중에 울고 철새들이 도시의 불빛을 별빛으로 착각해 떼죽음을 당한다든가 산란을 마친 게와 거북이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뿐인가. 이스라엘의 조사에서는 빛공해가 심한 지역에 사는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무려 73%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지나치게 밝은 빛이 생체리듬을 교란해 야행성으로 변화시키고 호르몬 변화를 일으킨다는 임상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루다 헤일 수 없는 외로운 밤하늘의 별자리를 떠올리면 가슴이 동심으로 달군다. 그러나 잠결에 꿈을 꾸고 쉬어야할 밤이 너무 밝다. 밤하늘의 밝아짐과 눈부심으로 은하수 건너편의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얼굴이 점점 사라져간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밤이 너무 밝아 우리 아가들이 잠드는 시간에 창문에는 달빛과 별빛에 실려 오는 은구슬 옥구슬을 그려볼 수 없고 연인들의 세레나데를 들을 수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발 시와 사랑과 추억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밤하늘의 별빛만은 있는 그대로 두었으면 좋으련만. 빛이 기어이 어둠을 이긴다. 진실이 어떠한 거짓도 이긴다는 뜻이다. 오늘밤 따라 은은한 간접조명 아래 돈 맥킅린이 노래하는 ‘Vincent’(Atarry starry night)를 들으며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별보다 더 높은 하늘 위의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마음껏 헤아린다.
첫댓글 정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빅의 집은 숲속에 있어 밤이 되면 까만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로 고개를 젖히고 별을 보며 밤 산책을 즐기고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한국에 가면 이 별빛들이 제일 아쉬울 것 같아요. 까만 밤하늘에 별을 바라보며 현실의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마음은 저 별빛이 온 먼 우주 공간을 생각하고 창조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드리게 됩니다. 훼손되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오래 오래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경제 발전에 가리워져 별빛도 볼 수 없는 밤하늘이 안타깝습니다.
어둠의 탐욕, 권력, 거짓이 진실의 빛을 이기는 이 어두운 시대에 살고 이기 때문에 겪는 시련이 아닐까요?
지금보다 좀 모자라고 못 누리고 살더라도 밤하늘의 별빛을 우러러 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의롭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 아닐까요?
국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삼 열정적으로 마음의영성 카페에 글을 올리시어 카페의 별이 되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설 잘 지내십시오.^^*
나는 누워서 문을 밀면 별이 보이는 자리에 침대를 두었습니다.
가끔 별을 보고 싶을 때가 문득문득 있기 때문이지요.^^
참나리 선생님께서는 행복하십니다.
부산에서는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 게 오래됐습니다.
까만 밤하늘이 망망대해의 심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