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시나리오.

[풍걸]

간판: 없음

주연: 엔젤라(곱게 나이 들어가는 귀부인)

조연: 타조(머리 산사태는 났지만 신사적 도의는 갖춘 멋진 중년남)

그 외: 엑스트라 다수

S#1. 저녁 무렵, 바다정경 근사한 해운대 해변 어느 고급카페

1번 카메라가아뜩하게 보이는 유리창 밖 바다정경을 근사하게 부각시켜 끌어당기고, 대머리

중년남에게서 천천히 미려한 부인을 클로즈업 확대.

(특히 앵두 빛 선명한 입술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예지적인 눈매에 초점)

오랜만에 만난 엔젤라와 타조가 따끈한 커피를 정겹게 홀짝이며 오붓하게 마주 앉아 있다.

타 조: 엔젤라씨, 님 얼굴 참 오랜만에 뵙는군요. 거의 몇 년쯤 되었겠지요?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시네요.

엔젤라: (타조 말을 무심히 흘리며) 그런가요. 간만에 부산에 들러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니 참도 

            스치는 감상이 무량하게 느껴지는군요. 타조님도 그동안 나이를 먹지 않았 군요.

타 조: (우쭐해 하며) 하핫! 과연 그럴까요. 머리는 더 벗겨졌는데요 뭘.그래도 듣기 좋게

          치켜주시니 기분이 슬금 좋아지는군요.

엔젤라: 타조님, 산비탈 진 그런 곳에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누가 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얼굴인지 도통 구분할 수 않는 편이 훨씬 더 남성적이고 매력적이랍니다.

타 조: 그런가요. 오래 산 것도 아니지만 희한한 칭찬을 들으니 그냥 눈물이 다 찔끔 납니다.

         그 말씀 눈사태 난 친구들이 들었다면 아마 기쁨에 넘쳐 졸도 했을 걸요.

엔젤라: 너무 감격하면 몸에 해로워요. 요참에 제가 훈시나 좀 해야겠네요.(붉은 입술을 혀 내밀어 

           살짝 적시며) 모름지기 인생이란 건 말이에요 알게 모르게 여러 모로 변하고 있어요.

           삶을 움직이는 수레바퀴는 결코 한곳에 멈추질 않아요. 그 바퀴가 어디로 굴러갈 지는 그

           누구도 미리 장담할 수 없어요.

엔젤라는 결연한 표정을 띄우고 타조는 숙연한 표정으로 귀 기울인다.

엔젤라: 그러나 희망만은 절대 버리면 안돼요. 해를 싣고 달려오는 백마가 가까이 왔을지 어느

            누가 알겠어요.

             (타조가 수업 받는 학생처럼 가만 듣고 있다)

 엔젤라: 인생이란 원래 시작부터가 미완의 행로를 벌레처럼 기어 다니다 끝나고 마는 것이야요.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세상을 살아가다 발목 잡힌 짓거리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하고 종쳐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 유순한 타조아저씨야.

타 조: 사실 저도 어느 누구처럼 조용한 시골마을의 마음씨 좋은 글선생이 되고 싶었지요.

          (어떤 희미한 흔적을 끄집어낸다) 제게도 한때 가슴 뜨겁게 박동 치던 청춘의 소망이

          있었답니다. 릴케라는 체코태생 의 시인을 흠모하며 그분의 시를 즐겨 읽었지요.

          (식어버린 커피 잔을 다시 만지작 거리며) 귀족출신이신 그분은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인

          로댕의 곁에도 잠시 머물렀 지요.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여행에서 대문웅(大文雄)이신

          톨스토이를 만나 정신적 지침도 가르쳐 받으셨고. 여기다 풍부한 언어기교까지 가미시킨

          이분의 열정은 가히 낭만파작가 중 으뜸에 이르게 하였답니다.

바닷물 향기 은근한 해운대 어느 카페의 후미진 창가에서 엔젤라와 타조가 서로의 대화를 푸념처럼 널어놓는다.

엔젤라: 이야! 타조님은 남의 이야기만 잘 듣는 줄 알았더니 말 한번 시작하니 무척

            달변가이시네요. 정말 좋은 대화를 나눴어요. 언젠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그 속에

            갇혀 있던 희망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 지친 사람들의 삶은 훨씬 밝아지겠지요.

   (타조는 좀 머쓱해 하고 엔젤라 코발트빛 넘실거리는 먼 바다로 눈길을 던진다)

2번 카메라는 두 사람 눈길을 따라가며 해운팔경 중 하나인 해운대상(동백섬에서 오륙도방향)을

앵글에 담는다.

엔젤라: 오다 보니 광안리해수욕장 쪽으로 사람들이 엄청 몰려가던데요?

타 조: 오늘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랍니다. 근처에 발 디딜 틈도 없을 걸요

엔젤라: 저는 그런 곳은 체질적으로 맞질 않은가 봐요. (마지막 남은 한 모금 커피를 홀짝인다)

타조: (문득 생각난 듯) 엔젤라님!, 혹시 그 사람 소식 들어 봤나요?

엔젤라: (남실 흘리는 눈동자로 타조를 쳐다보며) 그 사람이라니 누구요?

타 조: 왜 있잖아요. 그 판쵸라는 인물 말입니다.

엔젤라: 판쵸? 아! 그 요상한 인물. 그런데 갑자기 그 인간은 왜요?

타 조: 어쩌다 만나면 코 삐뚤어지게 한잔 꺾는데 꼭 엔젤라님 안부를 묻더군요.

엔젤라: 그으래요. 전 전혀 몰랐었네. 그럼 이왕지사 연락해서 같이 좀 데려 나오시질 않고서요.

타 조: 아- 안 돼요. 나만 보면 말이지요, ‘야 타조, 누가 니보고 얼굴은 어디고 머리는 어디까지냐

         하고 묻거든, 세수하는데 까지가 얼굴이다라고 소상히 설명 해줘.’ 카면서 사람 속을 확

         뒤집거든요.

엔젤라: 호홋! 묘한 구석이 좀 있긴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재미있던 친구 같아요. 그런데 왜죠?

타 조: 햐! 엔젤라씨는 그 녀석에게 그런 정도 심상뿐이군요. 저는 은근한 교류가 좀 계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가요... 대한애국진보보수카페에서 그 친구에 관해 이상한 소문이

          떠돈답니다.

엔젤라: (한 쌍 검은 눈동자를 그윽이 반짝이며) 무 무슨 소문요?

타 조: (확신가지 않는 표정으로) 녀석이 갑자기 남미 어디론가 이민을 떠났다나 뭐래나요.

엔젤라: 쿡! (마시던 커피를 갑자기 토한다)

타 조: 어허, 통 관심 없었던 것은 아닌가 보네요.

엔젤라: (무엇 얼른 감추는 표정으로) 생사람 잡는 쓸데없는 비약은 금물이랍니다.

           녀석이 원래 그런 인간이었지만 그런데 갑작스레 이민은 왜 갔을까요?

타 조: 사정이야 저도 잘 모르지요. 운전을 좀 배울 생각이나 하나, 휴대폰도 십수 년이나 지난

         것을 지금도 애지중지 들고 다니거든요. 하루 십분 이상 켜놓는 적이 없고, 불쑥

         나타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수해버리는 하여튼 기묘한 구석이 많은 인간입니다.

엔젤라: (무표정하게 창밖 멀리 시선을 돌리며) 많은 나라들 중에 남미라니...

타 조: 이제 생각나는데 녀석이 오래전부터 남미 고대문명에 관심이 많긴 하였어요.

엔젤라: ...

        (말문 닫은 얼굴 위로 찬란한 저녁 석휘가 조금씩 뿌려진다)

타조도 같이 엔젤라가 흘리는 눈길을 따라 바다 먼 곳을 쳐다본다.

3번 카메라는 해 떨어지는 서편의 하늘에 맞닿은 금빛바다와 석양가루를 가득 화면에 담고 그 눈부신 빛깔을 신묘하게 빚어낸다.

타 조: 조물주가 창조한 참도 경이로운 정경이군요.

엔젤라: ... (별 대꾸 없다)

넋 나간 두 얼굴 위로 다시 금빛석양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 퍼부어진다.

S# 2. 두 사람, 가로등이 밝혀주는 해변 솔밭 길을 걷고 있다.

타 조: (걸음을 멈추고) 엔젤라씨, 제가 좋은 곳으로 모셔다 저녁 살게요.

엔젤라: (같이 멈춰 서서) 아니. 고마워요. 가까운 곳에 친정 쪽 언니가 살고 계신데 이미

           약속을 해버렸지요. 호의 참 고마워요. 부산을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만나지요 뭐.

타 조: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그럼 늦기 전에 얼른 가 보셔야죠. 제가 시간을 축낸 것 아닐까요?

두 사람 조우를 약속하며 헤어지고, 엔젤라는 혼자 해변 솔밭길을 조금 더 걷는다.

그리고 조금 후 가로등 희미한 길옆 어딘가에 흐트러진 모습으로 걸음을 멈춰 선다.

카메라는 이때 외롭게 어두워진 엔젤라의 표정을 잘 묘사시킨다.

엔젤라: (해변 가로등 그늘에 숨어 서서 혼잣말로) 나쁜 놈. 수십 년 만에 훌쩍 나타나 어쩌고

           저쩌고 촐싹거리더니 한 마디도 없이 이민을 가...

카메라가 그녀 눈가에 이는 알 수 없는 번란을 놓치지 않는다.

엔젤라: 아! 왜 나의 심기가 무너져 내릴까...마치 무슨 희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생각해보니 이 이상한 증세는 타조에게 녀석의 소식을 전해 듣고부터네.

            (망연자실하며) 녀석이 정망 영영 떠나버린 것일까...

엔젤라: 앗!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랄 만큼 신경이 예민해져 있고 무심코 손거울을 꺼 내 얼굴을 비쳐본다)

엔젤라: 이거 영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네. (질급하며 자신을 힐난한다)

            내가 미친년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퀭한 눈 비벼보며 지친 가슴을 단단히 묶으려 애쓴다)

           지금 난 아무래도 무슨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해...이 갑작스레 생긴 병은 아마 그 바보녀석

           때문일 거야. 어머나! 설마하니 내가...!

          (엔젤라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녀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기묘한 변화의 주체를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잘 영상묘사 시킨다.

엔젤라: (다시 중얼거린다) 설마하니 내가 속앓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인가?

            아니! 이럴 수가! 참으로 기막힌 일이 나도 몰래 내 안에서 움트고 있었구나.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아! 안 돼. 아마도 난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거야.

           틀림없어. 어서 빨리 이 몹쓸 꿈에서 깨어나야 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는다)

엔젤라: 아이얏! 이를 어쩌나, 실망스럽게도 꿈은 아니구나.

이 기막힌 표정을 카메라는 멋지게 부각시킨다.

엔젤라: (자신을 원망하며) 아! 오랜만에 해운대바다를 찾아와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 카메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걸어오는 한 패의 젊은 남녀들을 앵글에 담아 끌어당기고, 젊은 아베크족 여럿이 요란하게 웃으며 점점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 중 부주의한 아가씨 한 명이 엔젤라와 어깨를 부딪치고 무안해한다.

엑스트라 1: (허리 공손히 굽혀 사과하며)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저의 실수를 진심으로 용서구합니다.

엔젤라: (가볍게 웃으며) 호홋! 실수라니요. 전혀요. 정말 보기들이 좋으시군요.

           나에게도 젊은 분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지요. 상관치 말고 어서 재밌는 시간들을 즐기세요.

엑스트라 2: 고맙습니다. 어머님은 정말 이해가 넓으시군요. 감사합니다. 혼자이시면 우리들과

                  같이 어울려 이 근사한 해변을 걸어보아요. 어쩐지 좀 쓸쓸해 보이시는군요. 곧 저쪽

                  하늘아래에 근사한 장관이 펼쳐질 것이에요.

엔젤라: 참으로 친절하고 다정하신 젊은분들이로군요. 하지만 제가 끼어든다면 주제를 모르는

           것이지요. 아까운 시간 어서들 좋은 한때를 만끽하십시오.

아베크 젊은이들 모두 손을 흔들며 엔젤라 곁에서 멀어져간다.

엔젤라: (이 젊은이들로 인해 가슴에 새로운 불길이 확 펴 오른 듯)

           아! 잊고 있었구나. 저 바다를 모두 퍼 담을 수 있는 미래라는 큰 그릇이 내 맘자리에

           차려 있다는 것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이 그랬던가. 내일은 내 일의 태양이

           뜨고 내일의 바람이 분다고.

폭죽소리: 뻐벙 뻥!

갑자기 고막 울리는 커다란 폭음이 들리고 광안해변 하늘 쪽이 온통 화려한 불꽃으로 차려 입는다.

카메라는 이 화려한 밤의 장관에 보름달처럼 활짝 밝아진 엔젤라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시키고 화면 아래에 시 한편을 겹쳐 비춘다.

석휘(夕暉) 젖은 바다마차 내 청운도 실었는가

빈 가슴 열어 고동 울리면 하늘의 문이 열린다

바람 누운 역정(驛程)에 세상 슬픈 비 흩뿌리며

접어라 거두어라 눈물 흐린 별리의 숙운을                                끝.

                                               그저 심심풀이로. 풍걸.

[자유전사]

와우!
풍걸님이 작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수준의 글을 그것도 심심풀이로 써 주신 거라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일송정님과 깊은 교유를 하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정말 멋졌습니다!

작중 여성이 우리 애국전사 엔젤라님과 같은 이름을 쓰신게 또한 더욱 뜻있고 감칠 맛 납니다.

감사합니다!

[풍걸]

눈까풀이 무거워 옆 동네 온천에서 좀 담갔다가 지금 돌아 왔습니다.
수정을 별 못해 오타와 띄워 쓰기 실수 용서해 주삼 .

[ok 일베]

카~
오랫만에 눈가에 이슬이 맺히도록
즐거이 웃게해 주셨습니다. 판초, 타조님

이런 풋풋한 웃음을 지어본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릅니다.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풍걸님

[풍걸]

좀 부끄럽습니다.
수련을 더 한 뒤에 좋은 모습 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풍걸]

누구나 다 쓸 수 있지요. 유치함을 지적치 아니하셔 고맙습니다.
햄벅 약속은 지킵니다.

[엔젤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
사춘기시절에 읽었던 풋풋한
이야기들이 생각났습니다.

보통 솜씨가 아니시군요!!
정말 멋진 글입니다.

[풍걸]

함부로 닉을 빌려 죄송합니다.
출연료는 꼭 드립니다.

[ok 일베]

동명이인 이지요?

[풍걸]

나도 몰라요.

[ok 일베]

ㅋㅋㅋ

[풍걸]

수심 200M용 스쿠바전용 세이코 자동기계시계를 드려도 되는지요?
세상이 하도 험해서 미리 물어볼려고요.
한때 기계시계가 전자시계에 밀릴 때 한 자루 수집해 두었다가 다 갈라주고 남은 것중 일부 임.
필요하심 우선은 보관코 있겠음.

[ok 일베]

Okay
Thanks for your warm heart
Always Be Happy & Be Careful

[풍걸]

물론 한번도 사용치 않은 새 것임. 그럼 기다리고 계삼.
저는 지금 마누라 심부름 가야함. 살아보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인간이 따로 없더군요.

[엔젤라]

네 출연료 당근 받아야지요 ㅋㅋ
멋진 글에 놀랐습니다!!

[풍걸]

저도 당근.

[ok 일베]

직접 출연 하시면 게런티는 수직상승?!

[풍걸]

주 ok일베영화사

[엔젤라]

[망망대해]

한참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풍걸]

인연의 잔을 꺾게 될 때 바다의 모험담도 들려드리지요.
저는 동지 여러분들을 벗으로 생각한답니다. 햇님을 받드는 한 그릇에 담긴.
이복 저복 다 챙겨가지십시오.

[일송정]

저는 잡글은 조금 긁적이지만 시나리오는 문외한이에요.
우리 친구(김영무)가 문인협회 희곡분과위원장인데 이 친구가
연극 희곡을 많이 썼어요.주로 대학로에서 많이 활동하는데 늙어서
요즘은 뜨악해요아주 좋은 글 많이 배우겠습니다

[풍걸]

일송정님은 제가 사숙하는 분이십니다.
얼마전 시나리오관련서적 몇 권 사서 읽어보며 습작도 안되는 부끄러운 글을 올린 것인데
저를 벌벌 떨게 하지 마십시오. 컴에 앉으면 일송정님의 글을 제일 먼저 찾습니다.
지도편달하여 주시면 고마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어 백수하십시오.

[ok 일베]

정감 가득 한
느낌이 팍팍 돋아
맘이 훈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