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포수가 돼라, 그래야 호랑이 잡는다"
성철스님의 일갈... 그 진정한 의미는?
#풍경1
성철 스님(1912~93)은 해인사에서 백일 동안 법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1967년 12월 4일부터 68년 2월 18일까지 법문은 100일가량 이어졌습니다.
당시 해인사 산중에는 청중으로 빼곡했다고 합니다. 그걸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이라고 부릅니다.
성철 스님은 1980년 말에 제자인 원택 스님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책 원고를 한 뭉치 내밀며 “법정 스님께 가서 윤문을 부탁드려라”고 했습니다.
성철 스님을 22년간 시봉한 원택 스님은 법정 스님을 찾아가 윤문을 청했고, 법정 스님은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 조계종 종정에 오른 성철 스님(왼쪽에서 두번째)이 법정 스님(왼쪽에서 세번째)을 만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성철 스님을 22년간 시봉한 원택 스님이다. *출처=중앙포토
성철 스님은 1981년 1월에 조계종 최고 지도자인 종정(宗正)이 됐고, 이듬해 1월에 원고는 출간됐습니다. 그 책이 바로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입니다. 이 책의 출간은 성철 스님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풍경2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가 나왔지만, 절집에서는 하소연이 많았습니다. 숱한 불교 경전에서 깨달음의 요체를 뽑고 또 뽑고, 거기에 성철의 견처를 덧붙여 쓴 책이 『선문정로』입니다. 그런 만큼 내용이 무척 깊고, 또 어려웠습니다.
『선문정로』가 세상에 출간된 지 무려 40년이 흘렀습니다. 최근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와 세상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부산 동의대 강경구 교수(중국어과)가 10년에 걸쳐 『선문정로』를 더 친근한 우리말 현대어로 풀고, 해당 문구의 앞뒤에 대한 해설을 덧붙여 『정독(精讀) 선문정로』를 최근 출간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강경구 교수의 소감은 이랬습니다.
“이런 시대에 화두 하나쯤 들고 다니면 어떨까.
그렇게 들고 다니던 화두가 어느 순간,
나의 숙제가 되면 좋지 않겠나.
『선문정로』는 성철 스님의 고요한 철학서가 아니라,
수행자인 우리를 윽박지르는 매질이라고 본다.”
#풍경3
기자 간담회에서 원택 스님이 들려준 일화입니다. 성철 스님이 하루는 시봉을 하던 제자 원택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이놈아, 백두산에 호랑이가 많이 있다는 이야기 들었지?”
“네에, 스님”
“그럼 그 호랑이를 어떤 포수가 잡겠나?”
“활 잘 쏘는 사람이 잡겠지요.”
“틀렸다!”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원택 스님에게 성철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활 잘 쏘는 놈은 지(자기) 목숨이 제일 중하다고 생각하고, 범이 으르렁거리면 제일 먼저 도망간다. 그럼 누가 범을 잡겠나. 결국 무식한 포수가 호랑이를 잡는다.”
성철 스님은 왜 이 대답을 던졌을까요.
그렇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우리 각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마음의 정체를 깨닫는 일이 호랑이를 잡는 일입니다. 그러니 호랑이를 잡을 때까지 활을 손에서 놓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쉽진 않습니다. 우리가 잡으려는 호랑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매 순간 내 안에서 으르렁거리며, 쉬지 않고 어슬렁거리는 놈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앞에 있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내 안에 있는, 그런 호랑이가 우리의 마음입니다.
정체를 몰랐을 때는 우리가 호랑이에게 쫓기며 살지만, 정체만 알면 우리가 호랑이를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무식한 포수가 돼라”고 주문합니다. 호랑이를 잡을 때까지 활과 화살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사실 나의 바깥에 있는 호랑이는 잡기가 어렵습니다. 가령 백두산에 가서 호랑이를 잡으라고 한다면, 우리가 잡을 수 있을까요. 호랑이를 찾기조차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호랑이는 다릅니다. 어차피 내 안에 사는 호랑이니까, 언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활을 손에서 놓지만 않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그걸 강조한 겁니다.
성철 스님 말처럼 활 잘 쏘는 포수는 먼저 도망가 버립니다. 실은 호랑이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호랑이가 있다는 걸, 그걸 잡을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은 그래서 무식한 포수가 되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 호랑이가 있음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걸 잡을 수 있음을 무식할 정도로 믿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활을 놓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활을 놓는 순간, 우리는 끝없이 호랑이에게 쫓기며 살게 될 테니까요.
※ 이 기사는 중앙일보 종교담당 백성호기자의 <백성호의 현문우답>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