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꾸역꾸역
1.관세음보살
아침
비포장 길에
지렁이 한마리 꿈틀거린다
어서 가라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오후에
살펴 보니
지렁이 그대로 있다
아직도 살아 있다
그늘에 옮겨 놓았다
다음날
다시 살펴 보니
사라지고 없다
관세음 보살
2.바다가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저보다 낮은 사람은 없습니다
내게로 오세요
바다가 되겠습니다
3.서울의 자존심
높고 푸른 하늘 아래
雲霧속
555m 123층
미래의 가치를 창출하는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4.쑥국
전주 한옥마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지친 몸 전통찻집에 맡긴다
쑥차 시켜 놓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쑥국 생각에
오래만에
어머니를 뵙고있다
쑥국 그맛
5.두고 가는 것
하늘 아래 첫 동네
티베트에서는
몸을 ‘루’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고 가는 것’이란다
그렇습니다
이 육신
저세상 갈 때 '두고 가는 것'이라고
강 건너면
나룻배는 두고 가는 것입니다
6.만지면 열리는 문
인묵 김형식
전철역 하객들
겟 자루 풀리듯 흩어져 가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 승객들
밀고 들어선다
승강기 잠깐
문이 닫히다 말고 다시 열린다
"그냥 두세요
만지면 열려요"
점잖게 끼어든 젊은이 뒤에
또 닫히다 열린다
홍당무 아줌마 앞
키큰 할아버지 이 빠지게 웃는다
그래 맞아
만지면 열리는 것이여
7.꾸역꾸역
아나콘다 뱃속에 사람이 있다
꾸역 꾸역 꾸역마다
꾸역꾸역 들고나는 사람들
진돗개 하나씩 손에 들고 있다
나는 지금 출근 중이다
책가방이 무거운 학생
청바지가 짧은 아줌마는
진돗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고
빨간 모자 할머니는 진돗개 안고 졸고 있다
임산부 보호석 옆자리에 앉아있다
미래의 유일한 희망이 자라고 있는 임부 뱃속
덜컥 덜커덩 눈까풀에 눌려 바깥세상 꺼내 자근자근 씹고 있다
난기류 속 승객들
자동차 급발진
빈번한 전기차 화재
뚜껑 열린 자연재해
입맛 지옥이다
낙토, 낙토는 어디에 있는가
비탈에선 세상
앞에,
대책 없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들
안전지대 찾아
들고나는 아나콘다 뱃속
꾸역꾸역
8.정금산인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덫에 걸린 짐승
애원하는 눈빛,
안돼 살려 줘야 한다
몽둥이 쥔 친구
돌맹이 든 이웃 무장해제 시키고
옛날 깊은 산속에서 길잃은
약초할머니 구해 주었다는 호랑이가 된다
꺾인 다리 질질 끌며 힐긋 뒤돌아 보고 산속으로 사라진 담비
햇살 고운 아침
정금산인 어슬렁 어슬렁
제 영역을 순찰 하고 있다
9. 녹명 鹿鳴,
인묵 김형식
먹이를 발견한 아기사슴이
배고픈 친구들을 부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
이세상 끝자락
소록도의 파도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