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꾸역꾸역
1.관세음보살
아침
비포장 길에
지렁이 한마리 꿈틀거린다
어서 가라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오후에
살펴 보니
지렁이 그대로 있다
아직 살아 있다
그늘에 옮겨 놓았다
다음날
다시 살펴 보니
사라지고 없다
관세음 보살
2.바다가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저보다 낮은 사람은 없다
내게로 오세요
바다가 되겠습니다
3.서울의 자존심
높고 푸른 하늘 아래
雲霧속
555m 123층
미래의 가치를 창출하는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4.오수의 단꿈
나는 더위가
언제 절정에 이르는지
잘 안다
폭염에 지친 육신 둘 곳 없어
안절부절하다가
죽부인 껴안고 잠이 든
칠월 여름날 오수의 단꿈
나는 과감하게
폭염을 쓰러뜨리고
그녀의 속적삼 풀어헤친다
아, 이 뜨거운 가슴
부채 하나로 숲을 헤집고
계곡을 찾아든다
시원한 물놀이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는 변강쇠
까무러진 폭염
곁에 앉아 신선이 된
나는 더위가 언제
절정에 이를 줄을 잘알고있다
5.쑥국
봄나들이 중이다
전주 한옥마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지친 몸 전통찻집에 앉아있다
요즘 쑥이 제철 아닌가
쑥차 시켜 놓고
어머니의
쑥국이 생숭하다
오래만에
어머니를 뵙고있다
쑥국 그맛
6.두고 가는 것
하늘 아래 첫 동네
티베트에서는
몸을 ‘루’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고 가는 것’이란다
그렇습니다
이 육신
저세상 갈 때 '두고 가는 것'이라고
강을 건너면
나룻배는 두고 가는 것입니다
7.만지면 열리는 문
전철역 하객들
겟 자루 풀리듯 흩어져 가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 승객들
밀고 들어선다
승강기 잠깐
문이 닫히다 말고 다시 열린다
"그냥 두세요
만지면 열려요"
또 닫히다 열린다
" 여자도 마찬가지여"
끼어든 젊은 익살
키큰 할아버지 이 빠지게 웃는다
그래 맞아
만지면 열리는 것이여
8.꾸역꾸역
아나콘다 뱃속에 사람이 있다
꾸역 꾸역 꾸역마다
꾸역꾸역 들고나는 사람들
진돗개 하나씩 손에 들고 있다
나는 지금 출근 중이다
책가방이 무거운 학생
청바지가 짧은 아줌마는
진돗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고
빨간 모자 할머니는 진돗개 안고 졸고 있다
임산부 보호석 옆자리에 앉아있다
미래의 유일한 희망이 자라고 있는 임부 뱃속
덜컥 덜커덩 눈까풀에 눌려 바깥세상 꺼내 자근자근 씹고 있다
난기류 속 승객들
자동차 급발진
빈번한 전기차 화재
뚜껑 열린 자연재해
입맛 지옥이다
낙토, 낙토는 어디에 있는가
비탈에선 세상
앞에,
대책 없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들
안전지대 찾아
들고나는 아나콘다 뱃속
꾸역꾸역
9.정문골 호랑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덫에 걸린 짐승
애원하는 눈빛,
안돼 살려 줘야 한다
몽둥이 쥔 친구
돌맹이 든 이웃 무장해제 시키고
옛날 깊은 산속에서 길잃은
약초할머니 구해 주었다는 호랑이가 된다
꺾인 다리 질질 끌며 힐긋 뒤돌아 보고 산속으로 사라진 담비
햇살 고운 아침
정문골 호랑이 어슬렁 어슬렁
제 영역을 순찰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