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10(종려주일・씨뿌림주일)
마태복음 21:1~11
마침내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승리를 알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호산나!” “나를 구원하소서” 하며 외쳤습니다. 해피 엔드같이 보였습니다. 사실 예배 속에서의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리는 표변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사주를 받은 무리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고 저주를 외쳤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며 우리는 생각하지만 바로 그 무리가 우리입니다.
주님께 구원을 간구하며 찬미 예수를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가 끝나고 삶으로 돌아간 자리는 찬미보다는 저주가, 감사보다는 원망이 일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예배와 기도, 그리고 찬양은 우리를 덧칠하는 위선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을 죄 속에서 살다가 예배 속에서는 의로 덧칠합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우리의 반복된 모습입니다. 두꺼운 덧칠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 지금은 이 덧칠을 벗겨내는 참회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또 하나의 덧칠이 될까 두렵습니다. 덧칠하기는 쉽지만 진정으로 벗겨내는 일은 어렵습니다.
주님은 잘 믿는다는 제자들, 그러나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 순간까지도 그들은 자리 다툼을 합니다. 언제나 제사보다는 젯밥에 마음이 가 있습니다. 탐욕의 젯밥을 그럴싸한 제사로 가립니다. 그 제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욕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젯밥을 달라고 “주시옵소서” 기도할 뿐이지 “주님의 길에 눈을 뜨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하는 주님의 길을 보지 못하는 눈 먼 자입니다. 주님은 승리의 말을 탄 힘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겸손과 온유의 낮아진 모습으로 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군사적 힘의 나라 다윗 왕국을 회복하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외친 “다윗의 자손”에 우리를 슬쩍 끼워 놓았습니다.
이제 그 높은 말에서 내려 그 낮은 나귀, 아니 나귀 새끼로 갈아타게 하옵소서. 욕망의 권력에 눈이 먼 예루살렘 반대편 맞은편 마을로, 겸허한 나귀를 찾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