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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목재 경북 풍기
산줄기 : 백두자구지맥
들머리 :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 큰마마을
위 치 경북 풍기군 봉현면/예천군 상리면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사과꽃 향기가 고요한 마을 주치골에 은은히 감돌고 있다. 진원지는 동동주집 옆 과수원. 연분홍 꽃이 핀 가지 끝에는 어린 열매들이 동그랗게 원형을 이뤄 오종종하게 매달려 있다. 이 많은 열매 중에 단 몇 개만을 제외하고는 가지치기 때 모두 잘려 나갈 것이다. 그래야 몸을 제대로 키운 건실한 사과 한두 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 햇살 아래 발갛게 살찐 햇사과를 떠올리니 시큼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일행을 맨 먼저 반기는 것은 200년된 느티나무 10여 그루와 그 옆의 성황당이다. 두산리에서 매년 정월 14일에 제사를 지내는 성황당. 고리목재 너머 상리나 하리사람들도 풍기장을 갈 때면 으레 이 느티나무 앞을 지나고 또 때론 성황당을 향해 고개도 조아렸을 테지...생각해 본다.
3,8일자에 열리는 풍기장은 과거에 소천, 영주장 다음 가는 제일 작은 규모였다. 가장 큰 소천장은 정작 유명무실해 졌지만 그래도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는게 큰 위안이다. 시골에서는 인근에 큰 장이 서면 지금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고리목재에서 풍기장을 보기 위해 넘는 길손을 구경하기란 더이상 불가능하다.
두산리에서 고개에 얽힌 사연을 들려줄 사람을 찾던 취재팀은 옥녀봉자연휴양림의 박종대씨로부터 고개 언저리에 살았다는 이원덕씨(61세)를 소개받았다. 당시만 해도 흔히 있는 일이었듯 이씨와 박씨는 나이가 무려 5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재미있게도 둘은 지금 폐교가 된 당시 고항국민학교 동창생이었다.
"모래재에서 풍기장까지는 왕복 100리였습니다. 장날은 새벽 5시만 되면 콩, 팥, 감 등을 지고 가 반찬이나 속옷 가지, 또 김이나 미역 등을 사서 오후 3시나 돼서야 장터를 출발했는데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날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면 고개 언저리에 있는 주막집에 들러 술 한잔 하고 밤이 으슥해서야 집에 도착하곤 했지요."
90년부터 주치골에 살고 있는 이원덕씨는 본래 재너머 첫 마을인 모래재가 고향으로 영주땅을 잠시 떠나던 79년까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취재팀의 질문에 답하던 그는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며 상리의 초등학교(지금은 은풍초등교 은계분교)까지 20리길을 걸어서 학교 다닌 일이며 4톤 트럭으로 실어 나를 만큼 돌이 쌓여 있었다는 고리목재 성황단, 쌀이 귀해 고갯마루 주막집에서는 옥수수로 막걸리를 빚어 팔았다는 옛 기억을 쉼없이 떠올리는 것이었다. 결국 이원덕씨는 바쁜 농삿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어 일행과 함께 고리목재 산행에 동행키로 했다.
고개 이편과 저편이 풍기의 한 고을
지금이야 상,하리면(예천군)과 두산리(영주시 풍기읍)가 고리목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행정구역에 속하지만 본디는 한 고을이었다. 지금의 풍기는 고려때 기주(基州)라 불렸으며 공양왕 때에는 은풍현에 속했다.
역사 속에 풍기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태종 때, 태종 13년에 문종 임금의 태를 은풍(지금의 하리면 소재지)에 간직하면서 당시 은풍현과 기천현(풍기의 조선 태종 때 이름) 두 고을의 이름을 따서 풍기군으로 승격시켰던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문종 임금의 태실비는 지금 하리면 명봉리 명봉사에 모셔져 있다.
이때의 한 고을이 예천과 풍기읍으로 나눠진 것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이다. 그러니 고리목재란 옛 풍기고을 사람들의 풍기장 가던 길이라 하겠다. 주치골을 지난 고리목재 옛길은 옥녀봉자연휴양림 관리사모소 앞을 지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격 옛길 산행 출발지로 잡은 곳은 휴양림. 밤새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막에 누웠노라니 휴가를 떠나온 양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하고 넉넉해진다.
이틀 동안 비만 줄창 내리더니 취재 당일 아침엔 파아란 하늘이 드러나니 마음까지 환해진다. 휴양림 사무실 앞에 이유원씨(61세, 전 영주시청 행정지원국장)와 이원덕씨, 태백 김부래 주재기자 등 일행 4명이 모였다. 고리목재를 경유하는 산행을 해본 적이 있는 이유원씨는 옛길이 휴양림 뒤편의 오솔길로 이어진다고 미리 알려준다. 취재 일행은 박덕하 관리소장의 배웅을 받으며 '산책로' 안내판 앞에서 통나무 다리를 건너니 싱그러운 풀내음이 가득한 오솔길이 반긴다.
어제 내린 비로 팥배나무 꽃잎이 떨어져 길을 히얗게 덮고 있다. 낙엽송 조림지 앞에 이르자 이원덕씨는 옛날만 해도 모두 논이었는데 지금은 잡목으로 무성해진 숲을 가리키며 쓸쓸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 그는 앞쪽을 가리키며 "저 위에 집이 하나 있었는데 노부부가 막걸리를 팔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곳에서 더러 몰래 막걸리도 사먹곤 했지요" 라며 추억을 상기하듯 천천히 길을 따라 오른다.
두번째 낙엽송 지대 앞으로는 개울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한켠에는 병꽃과 벌깨덩굴이 벌써 화사하게 피었으니 숲에는 이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개울가 넓은 공터가 바로 그 주막터였다. 숲 터널을 뚫고 길은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소 경사가 생긴다 싶었을 때 오른쪽 숲 저편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양림에서 고리목재까지 나 있는 임도가 바로 옛길 가까이 지나가고 있었다. 금강애기나리 군락이 고개에 막 도착하는 일행을 환한 얼굴로 반긴다.
고개엔 나물 뜯는 아낙들만 오가고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가 완판 다른 세상을 만나듯 숲속에서 쑤욱 얼굴을 내미니 황량한 고리목재이다. 고개를 사정없이 잘라내고 임도가 세 갈래로 난 고리목재에는 4톤 트럭으로 실어나를 만큼 있었다는 성황단은 온 데 간 데 없다. 임도 현황 안내판이 서 있는 곳이 옛 성황단 자리인데 1994년 고개에 길이 나면서 모두 없어져 버렸다.
고리목재는 지형도에 고항치라 표기되어 있다. 고개 너머 예천의 첫마을 이름 역시 고항리다.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고리목재라 부르는데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다만 '괴동' 이니 '고루목' 이니 하는 용어가 큰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란 점에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고개에는 아낙 두어 명이 다리품을 쉬고 있었다. 상리에 산다는 두 촌부는 마을길을 따라 산나물을 뜯다보니 고갯마루까지 올라온 것이다. 도시락을 꺼내 먹는 사이 또 한 무리의 촌로들이 고개로 올라왔다. 어버이날이라 가슴에는 빨간 카네이션을 단 이들은 하리 은산 주민들이었다. 그중 이상대씨(62세)와 사과 농사 얘기를 나누던 이원덕씨가 옛 고향 소식을 물으니 고갯마루가 온정이 담긴 옛얘기로 풍성해진다.
반 시간 이상 정담을 나누던 촌로들이 되돌아내려가고 일행은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고항리 전경을 감상한다. 고개 너머 첫마을 모래재에는 주막집이 있었다. 1979년까지만 해도 풍기장을 보라 고개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3가구 뿐이지만 병자년 수해 전만 해도 40호 가까이 되었던 번화한 동네였던 것이다.
두산 쪽이 다소 경사진 반면 에천쪽은 경사가 없이 골짜기가 밋밋하다. 그러나 이런 지형과 달리 야트막한 고개에서 마을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와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이 골짜기가 심상치 않은 풍수를 지니고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가 생각났다. 예천에서 발행한 <내고향>이란 책자에는 일명 고얏골에 관한 명당설이 전하는데, 괴동의 옛이름인 고얏골은 과거에 큰 고약나무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이곳에는 괴화낙지(槐花落地)의 명당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골짜기 백석리 텃골 출신의 이자백이란 사람은 훗날 명풍이 되었다는 것은 지금도 공공연히 회자되는 마을 자랑거리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두산리는 막 사과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중인데 고항리에는 이미 지려하고 있었다. 버스종점이 가까워지니 어버이날을 맞이해 마을 경로당에서 잔치가 한창이라 했던 촌로들의 얘기가 생각났다. 그때 경로당 쪽으로 옮기는 발길을 이원덕씨가 잡는다. 그 당시 본교였다가 그후 은풍초교 은계분교로 지금은 폐교가 된 옛 학교터에 들렀다 가자고 한다.
교사 대신 연구소 건물이 들어서서 모습이 달라졌지만 낡은 소사건물과 운동장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풍속계와 잎이 무성한 오동나무 한 그루가 옛 학교 터였음을 알려준다. 경로당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어서 오라는 듯 왁자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학교를 빠져나와 마을로 드는데 환청인양 들리는 재잘거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불쑥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멀리 고리목재가 우리를 향해 빙긋 웃고 있다.
*고리목재 여행 길잡이
휴양림에서 고리목재 오르는 오솔길 아름다워
고리목재 옛길 여행은 풍기읍 봉현면 두산리에서 출발해 에천군 상리면 고항리까지 걷는 데만 2시간 가량 걸린다. 옛길은 소백산옥녀봉자연휴양림 안에서 시작된다. 휴양림 사무소 옆의 콘크리트 오르막길로 약 50m 가량 가다보면 '옥녀봉 0.9km, 산책로 2.5km' 안내판이 가리키는 오른쪽 오솔길이 고리목재로 가는 옛길이다.
고갯마루까지 가는 동안 갈림길이 한번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뚜렷한 길을 따르면 된다. 오솔길을 따라 오른 고리목재에는 두산, 대촌, 예천 방면으로 세 갈래 임도가 나 있다. 우선 1997년 완공한 길이 5.28km의 두산(휴영림으로 연결)-대촌 간 임도와 고리목재-저수재 방면(현재는 초항리까지는 개설) 임도이다.
고리목재에 서면 에천군 상리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휴양림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숲속 길인 반면 예천으로 내려가는 길은 과수원과 밭을 지나는 마을길. 비포장길은 모래재, 괴동, 고항초등학교(폐교)를 지나 고항경로당 건너편의 버스종저에서 끝나며 이곳을 옛길 산행의 종착지로 잡으면 된다.
*교통
승용차편/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나간다. 풍기읍 봉현면 소재지에서 단양 방면 5번 국도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소백산옥녀봉자연휴양림 표지판을 만난다. 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5번 국도를 타지 않고 국도 아래 굴다리 밑으로 통과하게 된다. 이후 휴양림까지는 곳곳에 설치된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편/ 영주→풍기 경유 →두산행 시내버스가 하루 두번 운행한다. 영주 휴천동에 있는 영주여객(054-633-0011) 터미널에서 06:25(07:00 두산 도착), 18:05(18:30 두산 도착)에 출발한다. 버스는 영주시내 중앙통을 거쳐 풍기읍사무소 앞을 경유해 두산리로 들어간다. 두산리 버스종저에서 휴양림까지는 ??km.
택시/ 풍기읍→두산 7,000원. 휴양림까지는 1만원이다.
*잘 데
걷는 시간이 짧아 가까운 인근 경북, 충북, 강원권에서는 당일 산행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옛길 두산리 소백산옥녀봉자연휴양림 안에서 시작되는 만큼 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옛길에 얽힌 얘기도 듣고 이튿날 산행에 나선다면 보다 옛길의 의미를 가깝게 느껴볼 수 있을 법하다.
또 풍기읍에서 숙소를 정할 수도 있으나 대신 읍내에서 두산리까지 들어오는 버스편이 하루 한번밖에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두산리의 소백산옥녀봉자연휴양림(054-636-5928/639-6543 관리사무소) 옥녀봉 자락에 위치한 이 휴양림은 콘도식 산막 8동(13평형 2개, 8평형 6개), 복합산막(방+회의실+식당+샤워장), 야영데크, 캠프파이어장을 고루 갖춘 아늑한 휴식처이다. 산막 1일 사용료는 8평 4만원, 13평 6만원. 복합산막은 방만 이용할 경우 1일 10만원이다. 기타 기본 입장료(300~1,000원)와 주차료(3,000~5,000원)는 별도이다.
7~8월 휴가철을 대비한 예약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주말에는 미리 전화 예약을 하는 게 좋다.
*먹을 데
고항치 상리면 고항리 모래재에 7월 오픈 예정인 향토음식점이 있다. 토종닭, 오리, 염소요리 취급(054-653-5828 한재율).
*가볼 데
명봉사/ 영조 11년인 1735년 만들어진 문종대왕의 태실비를 간직한 절로 하리면 명봉리에 있다. 신라 헌강왕 원년인 875년에 창건되었으며 1785년 사도세자의 태실도 한때 봉안했던 곳. 직지사 말사이며 한때 법화암, 내원암 등 부속암자와 500대중을 거느린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단일 참선도량으로 남은 비구니 사찰이다.
*특산품
은풍준시/ 은풍은 예천군 하리면의 옛 이름. 특히 이곳에서 난 홍시는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맛과 품질이 뛰어나 지금도 고을 특산품으로 첫손에 꼽힌다. 제철에 가면 꼭 한번 맛볼 일이 설령 철이 다소 지났더라도 냉장고에 홍시를 저장해둔 집들을 흔히 찾을 수 있다. 문의 하리면 사무소.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2년 6월호
[사네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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