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서적 중에 《징비록>, <고사촬요>, <여지승람>은 이미 들어왔다 하고 <병학지남>,
<통문관지》가 새로 일본에 들어왔다고 한다. 다 왜관에 있는 조선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서
구해 준 것들이다.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농간하는 폐단이 이러하니 몹시 통분하다."
(1748년 조선통신사 조명채, 봉사일본시문견록>, 건(乾) 4월 13일)
<징비록>은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 보고서다. <고사촬요>는 조선 관습 백과사전이고
<여지승람》은 조선 지리서다. <병학지남》은 조선 군사 훈련서이고 《통문관지>는 조선의
외교실무서다. 위 글은 1748년 영조 24년에 일본으로 떠난 조선통신사 조명체가 쓴 글이다.
일본에 가보니 이러저러한 책들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어 분하다는 말이다.
정신이 똑바로 틀어박힌 외교관이라면, 이런 책이 일본에 유통되는 사실이 아니라 일본 병서와
일본 풍습백과가 조선에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어야 했다. 조선 지식인은 일본에 대해 알려 하지
않았다. 조선 집권층은 일본에 대해 오랑캐라는 비난으로 일관하며 일본에 문을 닫고 살았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조선이 망했다. 일본은 흥했다. 흥한 일본이 조선을 망가뜨렸다. 500년을 이어가던 조선이 갑자기
망했다. 총 한 번 쏘지 않고,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도장 몇 번 찍어주고 망해버렸다.
도대체 · 왜 · 왜 · 왜.
교과서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조선왕국은 지금도 찬란하게 역사를 선도하며 생존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왜 조선이 망했는지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착한 조선이
어느 날 악한 일본에 억울하게 망하고 말았다고 알고 그리 살고 있다. 그래서 좋은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망할 것인가. 18세기 외교관 조명제처럼 통분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쪽발이라 비하하며 통쾌한 정신 승리를 구가하며 살 것인가.
정의가 언제나 이긴다면 굳이 역사를 공부할 이유가 없다. 그냥 살면 그게 정의다. 하지만 역사는
절대 정의롭지 않다. 언제나 힘 센 놈이 이긴다. 그래서 역사를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기억해야
하고 학습해야 한다.
후손들이 그런 황당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서애 류성룡이 쓴 책이 <징비록》이었다. 미래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기 위해 지난 잘못을 징계하려고 쓴 책이 《징비록》이다.
다시 말해, '실패에 관한 보고서'다.
- 박종인 저, ‘대한민국 징비록’ 프롤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