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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 감사
사 43:18-21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
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찬송하게 하려 함
이라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52주일 가운데 첫 번째 주일입니다. 이 시간은 아주 의미있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다 똑같지 않습니다. 매시간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간을 토막 내서 일년을 12달로, 한 달을 30일로, 하루를 24시간으로 끊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시간이 다하면 다시 새 마음으로 시작하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이라서 이 본문으로 한해를 시작하였으면 합니다. 본문은 바벨론 포로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묵시의 말씀입니다. 동시에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묵시의 말씀입니다. “보라 이전 것은 기억하지 말며 옛날 것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마시게 함이라.”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묵시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해방될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새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니 얼마나 소망이 넘치는 순간이었겠습니까? 금년 새해 첫 주일에 이 말씀으로 감사하며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새날 주심 감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에 소망이 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새 시대에 필수적인 것은 지난 기억에 묶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새 시간에는 새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18절 말씀에서는 어제의 미련과 기억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보라 이전 것은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은 생각하지 말라.” 새해는 새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어제의 아픔, 지난날의 바벨론 생활, 포로생활의 미련을 잊으라는 말입니다. 새 시대는 새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신년은 10월입니다. 새해 첫날을 “로쉬 하샤나” 라고 합니다. 로쉬는 머리를 의미합니다. 짐승의 머리와 사람의 머리를 로쉬라고 합니다. 공동체의 리더도 로쉬라고 합니다. 또, 하샤나는 첫해, 신년이라는 뜻입니다. 즉 로쉬 하샤나는 첫 해의 머리, 즉 새해 첫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 첫날 떡국을 먹는데 이스라엘은 꿀을 바른 사과를 먹었습니다. 여기에는 새해에 어려움 없이 모든 일이 꿀과 같이 달콤하고 형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신년에는 뿔로 만든 나팔을 붑니다. 여기에는 올해도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하는 해가 되게 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새 시간을 맞이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새해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새 기대 주심 감사
새해가 시작되면 모두가 기대를 갖게 됩니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고 기대도 계획도 없다면 이것은 불행입니다.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기대를 갖고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내가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꿈은 가능하면 크게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해방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때 본문에서 백성에게 꿈과 비전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하리라.” 꿈은 좋은 것입니다. 꿈은 내가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어느 낚시꾼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고기가 잡히면 놔주고 작은 고기만 골라서 어망에 담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후라이팬이 작은 것 밖에 없어서 큰 고기는 구울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불행은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새해에 무슨 계획을 포부를 꿈을 갖고 계십니까? 이희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 유학을 했는데 가난했기에 고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의 꿈은 오늘 현실이나 처지에 비해 꿈이 너무 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줄을 믿고 크게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기도가 저절로 응답되는 것이 아니니까 응답받기 위해서 내가 해야할 일들을 찾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두가지 실천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로는 예배생활에 생명을 걸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단을 아주 잘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때부터 철두철미하게 실천해 갔습니다. 먼 곳에서 회의가 있어도 주일에는 반드시 본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출장을 가서 회의를 했습니다. 가까운 곳이면 회의를 하다가도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초점을 예배에 두었습니다.
두 번째는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자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십일조를 철저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십의 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십의 이조를, 십의 삼조를, 그리고 나중에는 십의 사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먼저 십일조를 하고 후에 주어질 것을 기대하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 기다림이 그렇게 행복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치 순교하는 사람처럼 내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삶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남의 흉내나 내거나 형식적인 신앙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는 나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라야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의 꿈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에 그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세계무역센터협회 수석부총재로 세우셨고 그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한번은 워싱턴에서 뉴욕 무역센터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뉴욕공항에 내렸습니다. 그런데 순간 배탈이 났습니다. 그는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오는데 또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기를 여러번했습니다. 그러다가 회의 시간에 늦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통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무역센터가 911테러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신다고 믿습니다. 내 미래를 뜻을 목숨을 관심을 하나님께 드리면 그 드림은 싹이 날 것이고 열매가 날 것이고 결과가 아름다울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과일나무를 심었으면 과일이 열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심으면 하나님께서 맺게 하실 것입니다. 내 믿음은 개갈 안나게 하면서 바라기는 철석같이 바라니까 염치없는 것이고 내 삶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좀 큰 신앙인이 되려면 생각, 꿈, 기대를 크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 집, 내 사업, 내 교회만 잘되게 해 달라는 비젼이나 기대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런 편협한 꿈만 가지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나 한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먼저는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주위를 향해 그 복이 퍼져가게 해야 합니다. 야곱이 운명직전에 자식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야곱이 요셉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요셉의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말은 요셉의 손이 내 집을 넘고 내 나라를 넘고 세계로 흘러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꿈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업 잘되고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정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한국의 경제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도움을 주는 사업체를 이끌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고 이런 꿈을 가진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고 사사로이 치부를 하겠습니까? 우리는 새해에 이런 꿈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면 그 꿈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새 비젼 주심 감사
본문은 백성들에게 포로생활에서 큰 꿈을 갖게 하십니다. 큰 소망을 갖게 하신 내용입니다. 70년동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고 절망스럽고 고국이 그립겠습니까? 그런 백성들에게 해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비전을 꿈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리고 한가지 주의를 주셨습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라.” 70년 포로생활동안 노예생활을 하였으니 무슨 일인들 없었겠습니까? 마음에 상처가 있고 미움이 증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 시대에는 그 마음을 가지고 살면 큰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옛날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새해인데 작년의 뼈아픈 일을 못 잊으면 안됩니다. 잊어야 합니다. 본문은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 너희로 마시게 하리라.” 이 계시를 전달받고 그 백성들 얼마나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큰 꿈을 꾸었겠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는 기대이고 희망이고 꿈이고 비전입니다. 그러면 이런 계시와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이룰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뭔가 실행할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꿈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꿈을 이루려는 의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의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미지의 세계로 선교사로 나가기도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도 때로는 생명을 내 놓고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랬고 세례요한도 그랬고 디모데도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꿈이 그런 의지를 가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의지신앙이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신앙이 주는 의지 때문에 때로 어려운 일을 해 내기도, 개척의 길을 가기도, 새로운 일을 창조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의지를 가지고 덤비면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어떤 청년이 대기업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주일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바뻐서 주일날도 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때 직장을 옮겨가기가 쉽습니까? 다른 직장에 가려고 응시하고 면접을 보면 왜 대기업에서 옮기려고 하느냐고 질문을 하며 의야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주일을 지키기 어려워 옮기려 한다고 말을 하면 보통 사람들은 정신 나간 놈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합격은 커녕 그 말 한마디에 낙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젊은이 당당하게 의지를 밝혔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의지가 뭔지를 시원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시원하게 자기 의지를 밝혔습니다. 직장에서는 이런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합격통지서가 날라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면접관이 장로였다고 합니다. 이 장로가 생각할 때는 오늘 이런 젊은이라면 틀림없이 자기 몫을 감당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청년은 내 중심, 내 철학, 내 신앙이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여신 것입니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를 도왔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길이 열렸습니다. 심지어 감옥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그에게 열린 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요셉이 잘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을 배치하셨고 돌보게 은혜 입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중심이 분명하게 하나님 안에 있었기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보내셨고 은혜입게 하셨고 길을 여심으로 그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이 길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인위적인 수단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시행착오를 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몇해 전 인도네시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초청해 준 장로님과 운동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내하는 아이들은 점심시간인데도 먹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가 해서 먹을 것을 줬는데도 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왜 안 먹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이 회교도들이 지키는 라마단 금식기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보니까 먹으라고 했더니 한사코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섬뜩하고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얼마나 왕성했습니까? 그 때에는 십자군을 만들어 회교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회교도들의 수는 급감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는 점점 확장되어 로마에서 터키 이스탄불에 본부 이전을 하고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에는 웅장한 베드로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에는 웅장한 소피아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렇게 그 시대는 평안했고 안일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태평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회교도들이 왕성해졌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점령해 왔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방심하고 영적 잠을 자는 사이 회교도들은 터키를 점령했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습니다. 소피아 성당도 회교도들이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시대에 그려놓은 벽화들, 그림 양식들을 덧칠을 해서 지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회교도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회교도들에게 밀리고 또 밀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지적 신앙 신조가 무너져서 그렇습니다. 모두 적당히 믿자는 적당주의 때문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주간에 금식하라고 하면 한끼 굶으면 정신을 잃는다고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교도는 아이들조차도 기꺼이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기독교가 점령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자꾸만 내 계획, 내 방법대로만 살려고 하지 말고 새해에는 본문을 의지하여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내게 주시는 묵시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랍합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반드시 내가 과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해에는 우리 주님과 함께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께 의존하십시오. 매사를 상의 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감화 하시는 대로 행동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 삶의 현장에 길이 나타날 것이고 물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
이규왕 목사 : 이전과 이후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루하루는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요, 둘째 날이요, 셋째 날이요 라고 한 것처럼 하루해가 지는 저녁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그 다음 날의 시작이었습니다.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금년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한해가 가버리는 끝자락만이 아니라 오는 새해가 시작되는 첫 자락을 붙잡는 끈과도 같은 것입니다.
옛말에 어리석은 자는 일의 시작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끝을 흐지부지하지만, 현명한 자는 그 일의 결과까지 유의한다 고 하였습니다.
한 해를 접는 마지막 주일인 오늘 우리는 한해 동안을 하나님 앞에서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을 유의하여 보고 이후에 소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살펴보면서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다짐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1.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하루해가 저물어 퇴근 시간이 임박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관처럼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시계일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 흘러 또 한해가 저물어 묵은 달력을 내리고 새 달력의 겉장을 떼는 이 맘 때는 시계처럼 반드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며 역사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당해야 할 역사적인 책임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계시하여 주는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바로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일한 민족으로 식민지 생활을 하던 애굽 땅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내시고 그들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으며 마침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왕국을 세워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타락하여 하나님 대신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버렸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우매해져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미련한 존재가 되버렸습니다.
(사 42:17)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사 42:18)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그와 같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은 마침내 멸망을 당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
은 민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멀리 바벨론 땅까지 포로로 잡혀가서 온갖 고초와 불같은 시련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사 42:22)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지난 날 그와 같은 어려움을 가져다 준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 때문이었는가 하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1) 불순종이었습니다.
(사 42:24)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2) 죄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사 42: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 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3) 말씀에 유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같이 잘못된 삶을 살고 있을 때 선지자들을 보내어 깨우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관심 있게 귀를 기울여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사 42: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로 말미암아 이전에 그 같은 하나님의 징계와 시련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혹시나 그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무슨 소망이 없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일에 대한 소망을 없었습니다. 갈수록 어렵기만 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 지난 날 아프고 괴롭고 두려웠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날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신년 새 해에도 그러한 일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날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아왔던 죄를 회개하고 그로 인해 더 이상 불안 해 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를 잊어 버리라, 잘못된 과거와의 고리를 끊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2. 이후에 새 일을 대망하며
오늘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이전의 이스라엘의 처지를 광야와 사막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광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광야나 사막은 넓지만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 처한 인생은 주리고 목말라하는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2) 광야를 가는 나그네는 아무리 길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갈바를 알지 못해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는 길이 불안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가는 나그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물과 떡과 쉴만한 그늘과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지도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는 길은 마치 메마른 광야와 사막을 가는 나그네처럼 시간이 흘러 갈수록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리고 목마른 상황이 더 심해질 뿐입니다.
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전과 달리 이후에는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것은 현재 이스라엘처지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섬 가운데 처한자 같고, 광야 사막 길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주리고 목말라해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이후에 그들을 위해 새 일을 계획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 43:16)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사 43: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그 새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오랜 세월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길을 열어 마침내 고국으로 되돌아오게 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회개치 않으므로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지만 그 가운데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광야 생수와도 같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생수가 되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로를 믿으면 구원함을 받는 영원한 생명수가 되어주셨습니다.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우리는 그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 세계적으로 처해있는 상황이 광야나 사막이 아닌가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인생길을 가고 있는 오늘 우리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새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곧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나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새 길이 무엇이며 이제부터 내가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책임과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3. 이제부터는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새 일을 준비하실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준비되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아니오! 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만 받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시고, 감당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며,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과 이길 힘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 일을 준비해주시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그처럼 이스라엘을 지으시고 택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신 까닭은
1) 위로는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백성이 되고, 아래는 온 세상 만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널리 전파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 42: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세상 만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이 친히 택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3)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 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아온 죄의 행위는 미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과거를 단절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이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며, 그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하나님을 선전해야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으시고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새 일을 계획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하나님은 때가 되니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 새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 새 일이 곧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태어나신 것이며, 그 예수 그리스도가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인생들을 살리는 영원한 생수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께서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셔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물을 깃는 여인에게 말씀하신 생수입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 영원한 생수는 곧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이셨습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름이 없는 오늘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새 일을 행하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인생 길에서 주리고 목마른 자일지라도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흘러 넘치는 생명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 7:37)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결 론
한달 봉급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이 어디다 다 써버렸는지 마치 도둑을 맞은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2001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무엇인가를 위해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 될 만한 일이 없이 세월을 허비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 살아온 지난 세월을 후회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며 살기보다는 새해에는 그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부진 각오와 다짐이 요구됩니다.
또한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질병이나 사고나 실패나 상처로 인해 많은 고통이나 물질적인 손해나 생명의 위협과 같은 일들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같은 일이 새해에도 되풀이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와 무거운 마음을 가지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비록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았을지라도 나를 지으시고 나를 택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오늘까지 붙잡고 계시는 까닭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전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빌 3:13)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 이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던 부정적인 삶을 청산하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잘못된 죄와 습관을 버리고, 잘못된 친구를 정리하고, 잘못된 과거를 단절해 버려야 합니다.
지난날에 있었던 슬픔이나 미움이나 실패를 금년에도 끌어드리지 말고 흐르는 강물에 종이배를 띄우는 것처럼 과거 속에 흘려 버리고 잊어야 합니다.
☛2) 지난 한해에 몇 사람이나 전도를 하고, 얼마나 감사를 하고, 얼마나 남을 위해 봉사와 구제를 하고, 얼마나 교회 봉사를 했습니까?
그 답은 들어보나 마나 죄송합니다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도 물질도 남은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직까지 나를 불러 가시지 않고 살려 두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일에 더욱 정성을 다하기로 다짐하고 구체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헌금은 어떤 마음으로, 각 기관 봉사와 구제는 어떤 태도로, 전도와 선교는 어떻게 해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3) 나는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며, 나에게 약속하신 새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가)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성도간에 대화입니다.
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의 삶입니다.
이제부터 새해를 그렇게 살아가려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에게 이후에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보다 더 좋은 새 일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말 것입니다.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