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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10
복된 소식이 있는 날 / 김창인 목사
이 시간에 열왕기하 7장 1절에서 10절 말씀을 가지고 '복된 소식이 있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9절을 보면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이라는 본문의 말씀이 있어서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복된"이라고 바꾸어 서 제목을 '복된 소식이 있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은 정말 복된 소식이 있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제자들이나 따르는 사람들이 자기네들도 '죽지 않을까?' 해서 얼마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는지 그만 숨지 않았습니까?
또 제자들은 크게 낙심하고 좌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즉 주일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이제는 '죽음의 세계 건너편에는 바로 이런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목숨을 내놓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의 날에 기쁜 소식은 사망을 생명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런 복된 소식이 주어지는 날이 주일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난감한 일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참 복된 소식'을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었던 '복된 소식'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신다는 뜻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성경은 우리와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복된 소식인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복된 소식은 무엇인가를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약속의 복된 소식(1-2).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이라는 그 자체가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 구약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정말 좋고, 많은 부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많은 약속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약속은 흔히 세 가지로 얘기합니다.
첫째로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메시아, 즉 여인의 후손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여인의 후손이란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서 즉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육신의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후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약속하셨고, 벌써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 문제를 모두 해결하시고, 구원을 완성시키신 후에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이 약속 자체가 우리들에게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들에게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죽을 대신에, 내가 저주받아야 할 대신에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저주를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사 그 의를 우리에게 주셔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고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구원을 다 완성시켜 놓았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이성을 가지고서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이는 앞에서 "네 죄를 위해 죽는다."라고 해도 모르는데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우리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또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입니다.
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령을 받아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되고, 2000년 전에 나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들에게 오셔서 그 사실을 믿게 하므로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고, 예수님의 천국이 나의 천국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약속하심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축복입니다.
세 번째로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 해도 천국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에 우리가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가셨고 끝나면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가 먼저 죽으면 우리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영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것은 아직 우리에게 주어지지도,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나 하나님의 입술의 말씀은 꼭 열매를 맺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꼭 주어질 천국을 믿습니다.
이 세 가지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 즉 약속입니다.
그밖에도 온갖 축복과 좋은 것들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도 좋은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스라엘을 통해서 약속해 주시는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에서 2절을 보면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의 배경을 설명하면 이스라엘과 이웃해 있는 아람나라 대군이 북 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해 옵니다. 그래서 농촌을 휩쓸고, 각 성읍들을 휩쓸고, 모든 좋은 것들을 약탈하고, 빼앗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포위한 것니다. 즉 북왕국 이스라엘은 거의 다 빼앗기고 수도인 사마리아만 남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마리아 성읍에 본래 살던 사람들, 또한 아람나라 군대에 밀려 사마리아 성읍 안으로 피난온 사람들 때문에 그 성읍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찰 정도였습니다.
이 상태가 하루 이틀이면 살 수 있을 테지만 몇 달을 포위된 상태에 있는지라 살수가 없습니다.
먹을 식량과 마실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여자 둘이 여호람 왕에게 나타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무슨 문제?"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오늘은 내 자식을 잡아먹고 내일은 네 자식을 잡아먹기로 하였는데 내 자식만 잡아먹고 자기 자식은 내놓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해결해 주십시오".
자식까지 잡아먹을 처지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성읍 안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굶주려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아주 비참하고 난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기적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본문과 같이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즉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책임지실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둘째는 '내일 이맘때'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때'까지 정해놓으신 것은 때에 적합한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돈을 아무리 많이 주고도 고운 가루 한 스아를 살 수 없는데 내일 이맘때가 되면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즉 구체적인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한 스아는 우리의 '되'로 4되가 됩니다.
또한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라고 하였습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아주 구체적입니다. 넷째 믿는 만큼 받는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장관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엘리사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만 하고, 절대 먹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의 귀한 축복의 약속일지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받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믿는 대로 받는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런 약속을 해주셨다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흔히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선거공약을 100여 가지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은 선거공약을 하지만 그 공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과 몇 가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부도 공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선거공약을 모두 지킬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의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지키지 못할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다 하면 일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 약속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큰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약속의 복된 소식이다.'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롱펠로우가 하루는 식당에 갔습니다. 주문을 했더니 음식이 빨리 나오지를 않는지라 묵상을 하고 있는데 시상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메모지를 꺼내 시 한 수를 썼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나와서 먹고, 돌아갈때 그 메모지에 싸인을 해서 집주인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롱펠로우의 시를 출판하기 위하여 여기저기서 그의 시를 수집하는데 그 음식점 주인이 시 한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파는 것도 아니고 잠깐 빌려주는 것이었는데도 그때 돈으로 6천불이었습니다.
그때 돈으로 6천불이면 오늘날의 3만불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이 음식점 주인은 횡재했습니다. 그리고 롱펠로우가 죽었습니다. 죽은 후 롱펠로우의 모든 유품들을 경매 입찰할 때 메모지 한 장의 시 한수가 얼마에 팔렸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120만불에 팔렸다고 합니다. 120만불이면 우리 나라 돈으로 얼마입니까? 엄청난 거금을 받았습니다.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싸인을 했느냐?"입니다.
만약 제가 롱펠로우와 같은 문장으로 시를 쓰고 '김창인'이라고 싸인할 때 누가 사가겠습니까? 120만불은 고사하고 120불만 달라고 해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말했고, 누가 썼느냐, 누가 싸인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하나님께서 싸인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내일 이맘때 반드시 이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 라는 약속입니다. 난감한 입장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처럼 난감하고, 죽는 날만 기다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주어진 축복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죽고 싶은 심정을 갖고 나온 분은 없습니까? 또 절망적인 상황에 있지는 않습니까? 이럴 경우 무턱대고 기도하지 마시고, 앉아서 원망 불평도 하지 마시고 이 본문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죠지뮬러가 어려운 일을 당해서 기도해야할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반드시 성경에서 문제의 해답을 먼저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놓고 기도하고,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리면 문제 해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축복의 언약, 즉 약속의 복된 소식인 줄로 믿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해결의 복된 소식(3-7)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심' 그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아니하였을 때 두 명의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왔느냐"고 했더니 한 여인이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한 집에 살고 있는 두 여자입니다. 제가 먼저 아들을 낳은 다음 저 여인도 3일 후에 아들을 낳았고, 얼마동안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저 여인이 얼마나 잠을 험하게 자는지 아기를 깔아뭉개는 바람에 아기가 죽고 말았습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여인이 죽은 아이를 내 품에 갖다놓고, 내 품에 있는 산 아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분명히 내 아들입니다." 라고 합니다.
다른 여인도 하는 말이 "대왕이여, 전혀 아닙니다. 말도 안됩니다. 이 여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 아들은 내 아들이고, 죽은 아들이 이 여인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본래 지혜가 많은 지라 "그래? 그러면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라고 말합니다. 큰칼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산 아들을 둘로 쪼개라고 합니다.
"둘로 쪼개어 나누어 가지면 공평하지 않느냐?" 라고 합니다.
산 아들의 어머니라면 어떻게 절반을 쪼개는 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대왕이여, 그리 마시고,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여인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쪼개서 나누어 가져야 공평합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을 할 때 솔로몬이 "쪼개자는 저 여자는 바로 죽은 아들의 어머니요. 산 아들은 이 여자의 아들이다. 이 여자에게 주어라."고 합니다.
깨끗이 해결됐습니다.
난감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지만 왕이 개입하였더니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만약 저 같았으면 지혜가 부족하여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칼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누가 가지고 오며, 절반을 쪼개라고 했을 때 누가 제 말에 순종하여 절반으로 쪼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에게 권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솔로몬 대왕의 권세를 누가 당하겠습니까? 지극히 높은 권세를 가진 왕,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지혜를 가진 왕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개입해서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전혀 뒤탈이 없는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난감한 일도 왕이 개입했더니 해결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한 문제도 만 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개입하실 때, 뒤탈 없이 깨끗이 해결될
수 있고 또 뒤가 더 좋다는 교훈인 줄로 믿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에서 7절을 보면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마리아가 포위를 당하고 성읍 안에서 굶어 죽어 나가는 송장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문둥이 넷이 있었는데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람 진으로 갈 수도 없기 까닭에 성 어귀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견딜 수가 없게 되자 '아람진으로 가서 먹을 것을 주면 살고, 죽이면 죽자.' 라는 심정으로 아람 군대의 진으로 가 보았더니 장막마다 각 처에서 약탈해 온 온갖 군량 물자, 군수 물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는 한명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모두 도망을 갔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설명하기를 아람나라 군대들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아람나라 군인들의 귀에 하나같이 많은 병거소리, 말들이 떠들며, 울며 달려오는 소리, 큰 군대가 행군하며 달려오는 소리들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람 군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규모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는 물건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급히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군대를 동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아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헷 사람의 군대를 사온 적도 애굽 군대를 사온 일도 아닙니다. 개미 한마리도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이런 소리를 듣게 하시므로서 스스로 도망하게 만든 것입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해결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총한방 쏘지 않고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기 까닭에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되고, 뒤탈 없이 얼마나 좋게 해결이 되었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망신스럽고 난감한 일을 당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업이 망한 까닭에 가족들이 모두 흩어 져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 시간에도 죽고 싶은 심정으로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사마리아 성에 갇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믿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사 깨끗이 완전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도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순간 여러분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사 해결해 주시고, 뒤끝이 더욱 좋게 도와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해결의 복된 소식입니다.
톨스토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정 러시아 때입니다. 어떤 대지주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땅이 있었는데 그 땅에 농사를 하려고 하면 농노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주인이 그 많은 땅을 관리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관리인을 두기도 하였습니다. 이 관리인의 이름이 미하일 세묘노비치입니다. 여기서 미하일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미가엘, 즉 천사장의 이름 그대로입니다. 이름은 천사의 이름을 가지고서도 고약하기는 천하에서 제일입니다.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농노들에게 일은 어떻게 하면 많이 시킬까해서 더 시키고, 돈은 조금이라도 덜 주고 일을 빨리 아니한다고 때립니다. 이러면서 그 주인의 마음에 잘 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이럴수록 농노들에게는 더욱 힘이 듭니다. 살아남을 재간이 없습니다. 압박과 설움과 구타와 착취를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농노들이 모여 "우리는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겠다. 이러다 보면 우리가 모두 죽고 살아남을 수 없으니 저 관리인을 먼저 처치하자."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하며 의논합니다. "밭의 땅을 파서 묻어버리고, 그 위를 갈면 누가 알겠느냐? 그리고 주인이 물어보면 우리는 모른다고 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옛날 제정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가 국교이기 까닭에 주인도, 관리인도 모두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농노들도 교회에는 나갑니다. 그런데 그 농노 중에서 표트르 미혜예프라고 하는 예수 잘 믿는 독실한 크리스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악한 사람에게 악으로 갚고, 선한 사람에게 선으로 갚고,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고, 너희들은 사랑만 하고, 너희 할 일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만약 우리가 원수를 갚게 된다면 크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만 더 참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지켜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하고,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봄철이 돌아왔고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쯤되면 하루 쉬게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 관리인은 주인에게만 잘 보이려고 일을 시켰습니다. 이때 그 표트로 미혜예프는 쟁기를 들고 밭을 갑니다
. 부활절이기 때문에 새 에는 촛불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한낮에는 촛불을 켜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낮에 밭을 갈면서도 촛불을 켜 놓습니다.
쟁기 위에 촛불을 꽂아 놓고 밭을 갈면서도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부르며 밭을 갑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밭을 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눈을 뜨고 기도합니다. 성경말씀은 암송했던 것을 반복하면서 뜻을 새기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못된 관리인이 여기저기 돌아보는 중에 이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관리인이 심각하게 하는 말이 "내가졌다. 네가 이겼어."라고 합니다. 그 순간 타고 있던 말이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뛰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말에서 거꾸로 떨어진 까닭에 목이 부러져 죽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사정을 알게 된 주인은 그때부터 농노들을 아주 후대했다고 합니다.
내 기분대로, 내 속상한 대로, 내 방법대로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 겁니까? 들통나겠지요. 살인자가 되고 함께 죽게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날 뒤탈 없이 깨끗이 해결되고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도 어렵거나 난감하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여러분들의 방법대로만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하시고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문제에 개입하시고, 깨끗이 해결해 주시고, 오히려 뒤끝이 좋아지는 해결의 은혜, 즉 해결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나눔의 복된 소식(8-10).
이 말을 다른 말로 '증거 할 복된 소식'으로 바꾸셔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해결해 주셔서 살길이 열렸으면 이제는 그 사실을 증거하여 함께 삶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에서 10절을 보면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용인즉 이 네 문둥이가 아람 진에 가 보았더니 먹을 것이 태산같이 쌓였는데 성안에서는 굶주리고 죽고 있는 상황입니다. 즉 한쪽에는 죽는 길이요 다른 한쪽에는 살길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자기네들만 먹고 마시고 감추고 감추는 것은 벌받을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만약 이 소식을 증거하지 않고, 즉 전해 주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께 벌받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길이 여기에 있다고 이 복된 소식을 성안으로 들어가 증거하였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죽는다, 살고 싶으면 빨리 나와라."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나와 실컷 가져갔고 먹고 남은 것은 팔았습니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살길이 열렸고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으니 빨리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영생을 얻고 함께 영원히 살자."고 하는 복된 소식을 증거 해야 됩니다.
즉 불신의 장망성에 있으면 망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살길은 예수 안에 따로 있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너무 어려운 IMF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아람군에 의하여 포위된 사마리아 성의 상황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살길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믿는 대로 받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약속으로 끝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처럼 우리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살길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예수 안에 있다고 증거하여 영원한 삶을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 성밖에 살길을 마련해 놓지 않았었습니까?
이처럼 예수안에 살 길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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