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相思花) 필 무렵
선운사에 가을나들이를 갔다. 도솔암까지 가는 길과 계곡 양옆에 상사화라 부르는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붉은 비단 폭을 펼쳐놓은 듯 장관이었다.
나는 지금 꽃길 걸으며 꽃무릇이 왜 일명 상사화라 부르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책에서 본 그대로를 옮기면, “꽃무릇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가을에 꽃이 피는 일명상사화며, 학명이 꽃무릇(Lucoris radiata HERB)이다. 산기슭이나 풀밭 등 그늘진 곳을 좋아하며, 절에서 뿌리를 이용하기 위하여 심는 여러해살이 풀이고, 주로 음지의 비옥한 토양을 좋아한다. 열매는 맺지 못하고 뿌리로 번식한다. 꽃이 떨어진 다음 짙은 녹색의 잎이 나와 겨울을 넘기고 다음 봄부터 시들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꽃무릇은 흔히 석산{石蒜(마늘 산)}이라고도 불리며, 9월 중순경부터 꽃이 피고, 9월 하순경에는 꽃과 꽃대가 시들기 시작하여 완전히 없어진 후 10월 중순경부터는 잎을 피워, 너무나 파래서 한기(寒氣)를 느낄 정도로 눈 속에서 파랗게 겨울을 난다. 푸르름은 이듬해 4월까지 가다가 5월부터 시들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9월 중순경 꽃이 피는 순환을 계속한다.“
잎 없이 꽃이 피고 꽃이 지면 파랗게 잎이 나오는 꽃무릇은 잎과 꽃이 지상(地上)에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 해서 일명 상사화(相思花)라 부르는 것인가 보다.
8월에 피는 진짜 상사화는 꽃 색깔이 연분홍이며, 꽃줄기 끝에 산형꽃차례가 4-8개가 달리고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속성은 상사화라 불리는 모든 식물이 같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개난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개상사화는 노란색인 것에 비해, 꽃무룻은 9월에 피고 꽃 색깔이 붉은 것이 다르다.
선운사의 꽃무룻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어느 가을날, 선운사에 불공을 드리러 온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그 고을에서 이름 난 명문가의 아름다운 규수(閨秀)였다. 그녀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 아들딸 많이 낳고 사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불공드리려 선운사에 왔다.
그녀는 소원성취를 위하여 지성으로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 앞을 지나면서, 단정하게 앉아 수도하는 한 스님을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규수가 보는 줄도 모르고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 그 청아(淸雅)한 모습은 여인의 가슴에 사랑의 싹을 틔우게 되었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수도하는 스님에게 사랑의 고백은 할 수 없었다. 꿈결에도 있지 못하는 사모하는 마음, 그건 어디까지나 짝사랑일 뿐이었다.
사모의 정은 더욱 깊어가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여인의 가슴에는 타다 남은 재만 쌓여갔다. 스님은 이미 속세를 떠났는데, ‘사랑도 병’이란 걸 알게 된 여인은 가슴속에 깊은 상처만 남게 되었다.
여인의 가슴에 스님에 대한 사모의 정은 그리움으로 쌓여 가고, 고백하지 못할 사랑인지 알면서도 선정(禪定)에 든 스님의 선방(禪房) 앞을 얼마나 서성였던가. 허나, 스님은 여인의 이 애틋한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정에 든 방안에는 야속하게도 청정한 기운만 감돌뿐이었다.
여인의 사모의 정은 점점 더 깊어가고.....은은히 울리는 풍경소리, 아련히 떠오르는 스님의 모습을 가슴에 안은 채, 소쩍새 소리 따라 서역삼만리(西域三萬里)이승을 하직하였다.
스님은 여인이 죽은 후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를 사랑하다 죽은 여인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어주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간 스님은 무덤 위에 붉고 곱게 핀 한 송이 꽃을 발견하였다. 스님은 그 꽃송이에서 여인의 슬픈 모습의 환영을 보았다. 여인은 가냘픈 미소를 지으며 도솔산(兜率山) 구름 위로 사라져갔다.
스님을 사랑하다 죽은 여인의 무덤가에 핀 꽃, 분명 죽은 여인의 영혼이 꽃으로 화한 것이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인줄 알면서도 자기만을 짝사랑하고 그리워하다 죽은 여인. 그 무덤가에 핀 꽃을 스님은 상사화(相思花)라 이름 하였다.
그 후 스님은 이승에서의 생이 다할 때까지 여인의 극락왕생을 빌어주었다.
그러나 꽃무릇은 이러한 전설적인 이야기 때문에 절 옆에 심어진 것이 아니다. 꽃무릇을 절에서 활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심는 것이다. 절 옆에 유독 꽃무릇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꽃무릇의 뿌리에는 알칼로이드라는 화학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은 방충제, 방부제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쓰이는데, 인후 또는 편도선이 붓거나 림프절염・종기・악창에 효과가 있고, 복막염과 흉막염에도 효과가 있다. 구토제로도 사용하며 치루와 자궁탈수 등에 달여서 환부를 닦으면 약효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서는 이 꽃무릇 뿌리를 녹말로 만들어 단청할 때나, 목판본이나 책 등을 발간할 때, 먹을 만들 때 재질(材質)에 바르거나 넣어 좀이 슬지 않고 나무가 썩지 않도록 방지하여 오래 보존하는 것이다.
선운사에 있는 ‘석씨원류’도 이 뿌리로 보존하였고,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이 뿌리로 보존해왔던 것이다.
또한 뿌리에서 독성을 제거하면 녹말을 얻어 식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자발 맞은 귀신 무릇 죽도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무릇 종류의 뿌리를 흉년에는 독성을 제거하고 죽을 쑤어 먹었다는 말이다.
불갑사 선운사 등, 절 주변에 꽃무릇이 많다. 그것은 방부제 방충제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심은 옛 사람들의 슬기다.
연유야 어찌 됐던, 꽃무룻은 여름이 시작되면서 잎이 사라지고,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의 문턱에서 꽃을 피운다. 잎도 없이 꽃대 하나하나마다 여러 송이의 큼직한 꽃송이들이 사방을 향해 청순한 요염(妖艶)을 자랑한다.
도솔암(兜率庵) 중간쯤에 있는 찻집 ‘모크샤’에 도착했다. 몸과 마음의 고뇌와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상태의 해탈(解脫)을 말하는 ‘모크샤’,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다. 선운사의 자연과 상사화의 군무(群舞)에 반쯤이라도 해탈의 경지에 머무르기를 서원(誓願)해본다.
팔짱을 끼고 옆머리를 어께에 반쯤 기댄 채 졸리는 듯 가는 눈을 뜨고 들어오는 여인이 이 가을 꽃무룻처럼 빨갛게 발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