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軍政)의 문란을 담은 「1863년 5월 거제부 항리방군안(項里防軍案)」⑲>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아시다시피 19세기 조선 후기에는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인해 국가사회가 큰 혼란에 빠져, 민생(民生)이 고달프고 초췌해진 일이 있었다. 당시 조선왕조에는 국가 재정 수입의 3대 요소로 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 환곡)이 있었는데 이것을 통틀어 삼정(三政)이라고 하였고, 또 삼정의 문란이란? 바로 이 제도가 문란해져 올바르게 운용되지 않았던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백성 한 사람이 지는 조세의 부담이 크게 늘었고, 지방 수령이 부정부패와 탐욕으로 죽은 사람이나 어린아이에게 군역을 징수하거나, 부농이 뇌물로 군역에서 빠지면 빈농이 대신 채우는 모순이 발생하였다. 게다가 환곡의 이자도 30%까지 늘어 농민들을 괴롭혔다.
이러한 시기에 1863년 5월, 경상도 거제부(巨濟府) 하겸락(河兼洛 1825~1904) 거제부사가 직접 행정력을 집중하여, 「거제부(巨濟府) 항리방군안(項里防軍案)」을 발급하면서 '삼정의 문란' 중 가장 심각한 군정의 폐단을 뿌리 뽑으려고 했다. 이에 거제부사는 관리와 아전들이 돈을 받고 군역을 면제해 주던 관행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는 비리가 발생했을 때 관청의 아전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마을(里)'과 '면(面)' 단위의 주민들의 사회적 공론(公議)을 통해서, 직접 부족한 인원을 조사하여 채우게 하는 권한을 부여한 점과 투명성을 높이려 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었다.
○ 당시 거제부사는 「거제부(巨濟府) 항리방군안(項里防軍案)」을 통해 삼정(三政) 中에 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국가의 큰 정책 3가지는 전정(토지세), 군정(군역), 환곡(곡식 대여)인데, 그중에서도 군(軍)이 으뜸이라고 강조하며 신중하고 엄격한 관리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당시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지방관이 부임한 후 전정과 환곡은 큰 폐단이 없었으나, 오직 백성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수령으로서 차마 보기 힘든 한 가지 문제가 바로 군정이었음을 밝혔다.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징수하는 백골징포(白骨徵布)와 어린아이를 군적에 올려 군포를 징수하는 황구첨정(黃口簽丁)으로 인해 백성들의 울음 섞인 호소가 날마다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문건 내용에서 말하길, 철종 임금이 밤늦게까지(乙夜) 이 문제를 걱정하며 여러 번 간곡한 교서(絲綸)를 내렸고, 어리석은 백성들까지 지팡이를 짚고 나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폐단이 개혁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임금의 근심을 나누는 지방관으로서 밤낮으로 마음을 졸이며 임금이 가엾게 여기는 뜻에 부응하고자 노력했음을 드러낸다. 그런고로 지방관 본인이 직접 군적 문서를 대조하고, 빗질하듯 샅샅이 조사(擲之梳之, 査査又査)하기를 7개월이나 노력한 끝에 새로운 명부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혹시 중복되거나 누락된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이 절목(규칙)을 제정하니 이에 준해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삼가 하겸락(河兼洛 1825~1904) 거제 부사에게 존경의 념(念)을 올린다.
○ [참고 거제부사 하겸락(河兼洛 1825~1904)] 조선후기 거제도호부사, 신도진절제사, 강계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자, 또 학문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진주 출생으로 아버지는 하한조(河漢祖)이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을과로 급제, 1857년 수문장, 1856년 부사과(副司果), 1860년 훈련원첨정·어영파총(御營把摠) 1862년 거제도호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에는 순무사중군(巡撫使中軍) 이용희(李容熙)의 종사관이 되어 난리를 수습하였고, 1870년 신도진절제사, 또한 강계도호부사 겸 청북병마우방어사, 이후 향리의 화산에 정자를 지어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선현들의 심성에 관한 글들을 모아 「이기집설(理氣輯說)」을 펴내고, 조상들의 제사에 대한 기록을 모아 「봉선록(奉先錄)」을 편찬하였다. 저서로는 『사헌집(思軒集)』 4권이 있다.
덧붙여 1801년 신유박해 당시 9살이었던 유섬이는 순교자 유항검의 딸로 거제도호부 관비로 유배를 와서 유처녀 동정녀로 평생 고고하게 살다가 71세로 사망하자, 하겸락 부사가 임기가 다 되어 떠나게 된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사비로 비석과 무덤을 만들어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거제부사 재임 기간은 1862년 3월 29일부터 1863년 6월까지다.
● 다음 「1863년 5월 거제부(巨濟府) 항리방군안(項里防軍案)」은 거제부(巨濟府)에서 발급하고 항리(項里) 마을에서 수취한 방군안(防軍案)으로, 당시 향촌 사회가 어떻게 군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당시 조선 사회의 가장 큰 폐단이었던 군정(軍政)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지방관이 직접 군적(군인 명부)을 일일이 대조하고 수정하여 새로운 운영 지침(절목)을 만든 배경을 담고 있다.
또한 이 문서는 1862년 임술농민봉기 직후, 조선 정부가 삼정이정청을 설치하는 등 개혁을 시도하던 시기에 지방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군정 개혁이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특히 '항리(項里)'라는 특정 지역의 군총(군포 총수) 관리를 위해 수령이 직접 행정력을 집중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군정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지방관의 의지가 담겼다.
한편 이 「방군안(防軍案)」은 19세기 지방 행정 체계에서 군역(軍役)의 폐단을 바로잡고, 군액(군대 머릿수)을 채우는 방식(전대, 塡代)을 개혁하기 위해 내려진 지침이다. 당시 아전들이나 관료들이 뇌물을 받고 군역을 면제해 주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군역을 지우는 등의 비리를 막고 '마을 자치(里·面)'를 통해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하겸락(河兼洛) 거제부사는 '삼정의 문란' 중 군정의 폐단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관리와 아전들이 돈을 받고 군역을 면제해 주던 관행을 뿌리 뽑으려 했다. 비리가 발생했을 때 관청의 아전들에게 맡기지 않고, '마을(里)'과 '면(面)' 단위의 주민들의 사회적 공론(公議)을 통해 직접 부족한 인원을 조사하고 채우게 하는 권한을 부여한 점과 투명성을 높이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항리방군안(項里防軍案)」 마지막 부분에서, 항리 마을의 장정 31명을 조사한 결과, 31명 중 20명이 사망(故) 상태임에도 명단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군적 정비 과정에서 누락된 인원을 파악하거나 혹은 죽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매기던 당시의 가혹한 군정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1863년 5월 거제부(巨濟府) 항리방군안(項里防軍案)」** 원문
계해년(癸亥 1863) 5월 일, 항리방군안 및 통방군안 절목(項里防軍案統防軍案節目), 나라의 큰 정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군정(軍)·전정(田)·환곡(穀)이다. 이 삼정(三政) 가운데 군정이 으뜸이니, 어찌 신중하고 엄격하게 처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관(하겸락(河兼洛))이 (1862년 3월 29일) 이곳에 부임한 이래로 전정과 환곡에 관해서는 특별히 폐단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었으나, 오직 백성들이 뼈 사무치게 고통스러워하고 수령으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정사가 있으니 바로 군정 한 가지 일이다. 죽은 자에게 세금을 거두는 백골징포(骨徵)와 이웃에게 대신 거두는 이징(里徵)으로 인해 눈물로 호소하는 자들이 날마다 이르고 있다.
하물며 임금님(성상)께서 밤늦도록 근심하시는 바가 오로지 여기에 있어, 간곡하고 반복적인 명령(열 줄의 비단 전교)이 거듭 지엄하게 내려오니, 어리석은 백성들까지도 지팡이를 짚고 가서 듣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백골징포와 어린아이에게 세금을 거두는 황구첨정(黃口之徵)이 모두 옮겨지거나 혁파되기를 바라며 아침저녁으로 기쁘게 고대하고 있으니, 임금의 근심을 나누어 맡은 지방관의 처지에서 어찌 밤낮으로 마음을 졸이며 우리 임금님의 애틋하고 간절한 뜻에 부응하려 하지 않겠는가. 이에 친히 장부를 대조하고 빗질하듯 샅샅이 조사하며 살피고 또 살펴서, 7개월 만에 (새로운 군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혹시라도 중복되거나 누락된 걱정이 없을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이에 다음과 같이 절목을 만드니, 혹 이대로 준행된다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됨이 있을 것이다.
첫째, 군액에 결원이 생겼을 때, 백성이 관가에 보고하면 해당 부서(해당 색리)가 임의로 한가한 사람을 찾아 채워 넣었다. 그러다 보니 (뇌물을 주고받으며) 사람을 바꿔치기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이쪽의 흉터가 저쪽의 병역 면제 사유를 조작하여 면제해 주는 '소첩(小帖)'이 날마다 발행되었다. 결국 정작 면제받아야 할 억울한 사람은 면제받지 못하고, 백성들만 고통받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도망가거나, 늙거나, 사망한 자가 있으면 해당 마을(본리)에서 스스로 한가한 정남(丁男)을 찾아 보충하라. 만약 해당 마을에 사람이 없으면, 이임(이장)이 면임(면장)에게 보고하고, 봄·가을에 열리는 면회(面會) 날에 의논하여 우리 면 내의 다른 마을에서 한가한 정남을 조사해 결정하라. 이렇게 본래의 군적(군안)을 먼저 채운 뒤에 관가에 보고하여, 관청의 장부(군안)에도 이를 기록하게 하라.
둘째, 법을 무시하는 무리들이 온갖 간교한 수단을 써서, 산 사람을 죽었다고 하거나 가짜로 양반 자손이라 사칭하며 관가에 청탁하고 해당 아전들과 결탁하여 거짓으로 군역을 면제받는 일이 있다. 또한 아전들이 사사로이 사람을 끼워 넣거나 빼주며 면제 증서(소첩)를 보내주기도 한다.
앞으로는 마을(본리)과 면(본면)에서 이를 크게 공론화하여, 아전과 결탁하거나 간교하게 군역을 피하려 한 자들을 각별히 엄벌하라. 아전이 사사로이 군역을 채우거나 빼는 행위는 절대로 시행하지 못하게 하라. 군사(군역)는 국가의 군사이지, 어찌 관리가 사사로이 다룰 수 있으며 아전이 감히 간계를 부릴 수 있겠는가? 만약 사사로움과 간계가 개입된다면 백성이 어떻게 관리와 아전의 비리를 막겠는가? 결탁한 관리와 아전을 처벌하여 농간을 끊어버려야만 군역에 뒷 폐단이 없을 것이다.
셋째, 영문에 세금을 납부하는 달이 정해져 있으니, 시기를 놓치지 말고 각 달에 맞춰 이전처럼 수납하여 기한을 어기거나 일이 꼬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계해년(1863년) 5월 일 / 사또 하겸락(河兼洛) (사또의 수결)
[癸亥五月日 項里防軍案統防軍案節目 國之大政有三, 曰軍田穀 而三政之中, 軍爲首也, 可不愼且嚴哉 官莅兹以來, 故關三政田糴, 別無爲弊之可言而惟生民切骨之患, 司牧難忍之政, 惟一事也, 骨徵里徵, 泣訴日至, 何况聖上乙夜之憂, 只在於此十行絲綸, 諄複重至, 惟愚夫愚婦莫不有扶杖往聽, 而白骨徵, 黃口之徵, 皆冀移革, 朝夕欣望, 則其在分憂之地, 曷不夙夜憧憧以副我聖上惻怛之至意于於是親關文簿, 擲之梳之, 査査又査, 七閱月而告成, 然倘無疊漏之患耶, 是爲悚然也, 玆成節目如左, 或可以此準行有補於生民耶,
一, 軍額之有闕也, 民呈于官, 自該色得閑塡代, 則換弄隨生, 東疤酉頉, 小帖日出, 畢竟寃者不頉徒援生民之無全民, 自今爲始, 或有逃老故者自本里得閑塡代, 而如或本里無閑是去等, 該里里任捧面首及面任, 第於春秋面會之日, 別出意見, 查得閑丁於本面各里中, 而先填本里軍案然後, 乃報官家, 以疤官在軍案事.
一, 或有蔑法之類, 百計奸僞, 以生謂死, 假稱班裔, 請囑官家, 符同該色, 誣呈除頉, 而該色私自得閑, 此塡彼出, 送小帖是去等, 自本里本面大張公議, 各別懲罰其符同 官吏奸僞謀頉者是遣, 該色塡出軍切勿施行也, 軍者國家之軍也, 官何爲私焉, 吏何敢奸焉, 苟有用私用奸, 則民何頉官私, 民何禁吏奸, 罰其符同官吏絶弄謀免則該軍然後可無後弊事.
一, 營納自有月, 當不踰時列各其月, 當依前收納俾無愆期生梗之地向事. 癸亥五月日 使〔押〕]
**항리(項里) : 김춘종(노인), 김일언(사망), 임선봉(사망), 김장철(사망), 최한욱(사망), 임금돌(사망), 김성문(사망), 임철암(사망), 손필년(노군으로 차출됨), 오정의(사망), 임성욱(사망), 김원업(사망), 임철원(사망), 김부길(사망), 최극문(사망), ■■■(판독불가), 이용업(사망), *유지 또는 충원 : 이성필, 손유복, 서선철, 임출이, 김우관(사망), 김돌개, 박성록, [삭제 : 이영백], 박완이(통로군 또는 망군으로 차출됨), 장도권(사망), 박성률(사망), 최연주(노군으로 차출됨), 손학권, 장성인(사망). 합계 31명. 사(使) [수결/인장]
[項里 : 金春從老, 金日彦故, 林先奉故, 金長哲故, 崔汗旭故, 林金乭故, 金性文故, 林哲岩故, 孫必年櫓軍去, 吳正儀故, 林性郁故, 金元業故, 林喆元故, 金富吉故, 崔克文故, ■■■, 李用業故, 李成必, 孫有卜, 徐先哲, 林出伊, 金又官故, 金乭介, 朴性彔, [삭제:李永白]
* 統櫓軍 朴完伊望軍去, 張道權故, 朴性律故, 崔連周櫓軍去, 孫學權, 張性仁故, 合參拾壹名, 使〔押〕]
[주1] 방군(防軍) : 방수군(防戍軍). 수자리를 살면서 국경을 지키는 군사
[주2] 절목(節目) : 구체적인 시행 규칙이나 항목.
[주3] 백골징포(白骨徵布) : 죽은 사람의 이름을 군적에 올려놓고 군포를 징수하던 폐단
[주4] 황구첨정(黃口之徵) : 어린아이를 군적에 올려 군포를 징수하던 폐단
[주5] 사목(司牧) :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수령).
[주6] 을야지우(乙夜之憂) : 임금이 밤늦도록 국정을 걱정함.
[주7] 척지소지(擲之梳之) : (문서를) 던져 대조하고 빗질하듯 꼼꼼히 살핌.
[주8] 노군(櫓軍) : 수군(해군)에서 배의 노를 젓는 병사
[주9] 망군(望軍) : 높은 곳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초병(파수꾼).
[주10] ‘去’는 해당 군역에 차출되었다. ‘老’는 나이가 많아 군역에서 면제될 대상. ‘使‘는 지방관(수령)이 문서를 확인하고 최종 서명(수결)을 했다는 표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