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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자 마귀(03)
말씀: 살후2:4, 벧전5:8
마귀론의 핵심은 마귀는 영향력, 사상, 정신, 초자연적인 힘과 같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엄연한 인격적 존재란 사실입니다.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personal)이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마귀는 악(惡)이 아니라 악한 자란 사실입니다. 악과 악한 자는 완전히 다릅니다. 속임수와 속이는 자는 다릅니다. 거짓과 거짓말쟁이는 다릅니다.
악은 비인격 존재를 정의하지만 악한 자는 인격적 존재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마귀는 악이 아니라 악한 자이며, 거짓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이며, 속임수가 아니라 속이는 자입니다. 악, 거짓, 속임수는 악한 자 마귀가 일하는 활동 방식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와 싸우는 것이며, 속임수보다 속이는 자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적 분별력을 갖추고, 주의 훌륭한 군사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귀는 대적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군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마귀는 자신보다 더 높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도전하며, 반역하고, 대적합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이며, 동시에 대적자입니다. 모두 예민한 영적 감각과 선악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날 현 시대는 마귀의 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절정기에 달해 있는 터라 저항하고 반역하고, 불순종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저항이란 말이 미덕이 되어 버린 시대요, 불복종이란 말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떠듭니다.
여러분의 주변을 보십시오, 가정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대적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대적하고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공공연하게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대적합니다. 지역 교회에서는 공공연히 목자를 비방하고 인신공격하며 반역을 도모하며, 대적합니다. 사회 어느 분야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은 위에 있는 권위자를 비방하고, 욕하고, 대적하는 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점에서 유죄입니다. 이점에서 저는 거의 날마다 주님을 대적하며 죄를 지으면서도 죄의식과 두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한 저는 완전히 마귀의 영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젊은 혈기로 거의 20년 이상 정치인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신문이나 T.V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분노하기도 하고, 비방하기도 하고, 욕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매우 불쾌하고,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위정자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욕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이점에서 제가 마귀 들린 자요,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에 대적하는 대적자란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죄악의 굴레에 살고 있었습니다.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가 보낸 자들에게 하듯 하라.](벧전2:13~14).
여러분은 사실 이 나라 대통령을 구약의 대언자들, 신약의 사도들을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지방정부의 시장이나, 구청장이나 경찰서장 등은 지역 교회 목회자와 마찬가지로 주께로부터 보냄 받은 주의 사역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이나 권위자들을 존경하고 비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을 주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지 않으면 저와 마찬가지로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며, 속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왕정 시대냐고 반발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시대 상황이 어쩌고, 역사적 배경이 어쩌고 하면서 자신의 반항심과 불복종의 거스르는 영을 합리화하거나 변명하지 마십시오. 반역과 거스르는 것은 마술과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씀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와 평등을 교육받은 세대들은 결단코 순종하지 못하는 성경 말씀 가운데 하나가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혼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나니 현존하는 권력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롬13:1-2).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복종을 명했으며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심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에 있는 권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들입니다(롬13:4). 여러분들은 교회에 헌금이나 십일조를 하지만 정부에는 훨씬 더 많은 세금을 강제적으로, 의무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 이는 성경의 명령입니다.
현대 인본주의 철학과 교육을 받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강력하게 평등을 외치지만 성경은 단 한 곳에도 평등이란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평등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어휘 목록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전에는 공평이란 말은 있어도 평등이란 말이 없습니다. equality(같음, 평등)란 단어가 나오는 유일한 예는 고린도후서 8:14입니다. [다만 균등의 원리를 따르려는 것이니 곧 이제 이번에는 너희의 넘치는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공급하고 또한 그들의 넘치는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공급하여 서로가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후8:14). 이는 성도들이 서로 넘치는 것으로 서로의 부족을 보충하라는 의미이지 서로 평등하다거나 같아야 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속화, 이 세상의 영, 이 세대의 정신을 대적해야 합니다. 세상 문화는 마귀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철학과 교육은 성경을 반대하고 성경은 세상의 가르침을 단호히 배척하고 대적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전하는 말씀을 정신 바짝 차리고 마음에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으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마음에 변화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시간 저는 “마귀를 대적하라”는 주의 명령에 따라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대적하고, 우리는 마귀를 어떻게 대적해야 하는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반(反) 철학적이며, 반-교육적이요, 반-사회적이며, 반-여성 주의적이지만 완전히 성경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세상에 동화되지 말아야 하며(롬12:2)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며(요일2:15)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약4:4).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사는 나그네입니다. 사람들이 지고(至高) 지선(至善)의 절대 가치인양 높이 떠드는 ‘평등’은 성경적 가르침도 교리도 아닙니다. 우리는 상호 평등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복종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때부터 상호 복종의 관계 속에 두셨지 상호 평등의 세계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대적자 마귀가 사람들을 서로 대적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방법이 ‘같아지려는 마음’, ‘평등’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마귀의 속성이 바로 평등이요, 같아지려는 마음입니다.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사14:14). 이런 마귀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여자를 어떻게 속였습니까? 복종의 관계에서 평등의 관계로 전환을 약속한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창3:5). 짐승은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사람은 신들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피조 세계를 각 종류대로 서로 의존하고 복종하는 관계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요, 조화요, 안식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신들과 같아지고자’ 하는 마음에 끌림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평등을 부추겨서 사람들을 서로 대적하게 하며, 하나님께 복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인과 종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복종의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복종의 관계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혹시 자매님들이 이런 교리가 듣기 싫다면 마귀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이나 목자들이 달콤한 소리를 해도 결코 같지 않으며,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매들을 비하(卑下)하거나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다니는 자매들은 정신 바짝 차려서 들어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남편에 대한 여러분의 위치는 복종의 위치이지 대등한 위치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나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남편과 아내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고통과 수태(受胎)를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속에서 자식들을 낳을 것이며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겠고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며](창3:16)라고 선포하셨음에도 말씀을 부정하고 불신과 불순종하면서 남편과 동등, 평등, 대등의 위치를 점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삶 자체가 이미 불법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과 맞먹는 위치가 아니라 다스림을 받고 가르침을 받고,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골3:18).
그리스도인 자매들이 그리스도의 덕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세상 부부들과 가장 큰 선명한 차이점, 뚜렷한 구분 점을 보여 줄 수 있는 부분은 ‘남편에 대한 복종’입니다. 이 부분에서 세상과의 차이를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말로도 주위 사람들을 전도할 수 없으며, 복음 전파에서 효과적인 성령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불복종하는 자매가 구령의 일꾼이 되고, 구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에게 불복종하는 아내의 삶은 삶 자체가 이미 불법인 것입니다. 전 생애를 불법 속에서 보내시겠습니까? 아내는 순종하는 위치에 있을 때 가장 존중받으며, 아름답게 보이며, 성령 충만과 더 많은 은혜를 받는 법입니다.
어떻게 복종하는가?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4). 어떤 자매는 이 말은 ‘나에게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는 못산다!’ 항변합니다. 남편이 존경스럽지 않으면 자기를 낮추어서 복종하면 됩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남편과 같아지려는 마음, 남편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을 주는데 이것이 바로 대적자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늘 ‘대적하라!’ 외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파괴하고 엎어 버리도록 대적하는 것입니다. Christian 자매들은 자신의 이런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대적자 마귀의 노선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부부싸움이란 말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 말입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와 다투고 싸울 수 있습니까? 대적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마음을 버리고 순종하는 마음을 지니십시오.
믿음의 여인 사라를 보십시오. [옛적에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 자기를 단장하였는데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主)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같이 너희가 잘 행하고 어떤 놀랄 만한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딸들이 되느니라.](벧전3:5~6). 그녀는 결코 평등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며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평등 관계가 아니라 복종 관계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으로 모든 크리스천 자매된 아내들에게 보여 주는 성경적 부부관계의 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과 신하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주인과 종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적자 마귀는 평등하다고 가르칩니다. 평등을 쟁취하라고 부추깁니다. 이들은 평등의 관계가 아니라 복종의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노조가 경영권에 참여하겠다고 데모를 합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파트너로 인정하려고 합니다. 대등한 지분, 대등한 권리를 주장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 주인인 자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6:5),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 주인인 자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볼 때만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대적자 마귀는 계속해서 대적하도록 만드는데 대표적인 무기는 바로 평등입니다. 너와 나는 똑 같다!는 시대정신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분란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적자 마귀가 심어주는 반역의 영 때문입니다. 만인대제사장 교리는 목자와 교사의 권위를 없애라는 평등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을 평등 교리로 가르치는 것은 유혹하는 영과 마귀들의 교리입니다. 우리는 권위주의는 단호히 반대하지만 권위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스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은 결코 배움을 얻을 수 없으며 제자가 아닙니다.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국민은 국민의 자격이 없습니다. 목자의 권위를 부정하는 교인은 그 교회에 더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목자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왜 앉아서 설교를 듣고 예배를 봅니까? 그는 건수를 잡아 대적하기 위해 앉아 있거나 예배대신 다른 부수적인 유익이나 목적 때문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그런 자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분의 말씀들로 그분을 붙잡으려고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 중의 어떤 자들을 그분께 보내매”(막12:13)
목자의 권위가 부정되면 어떻게 가르치고, 꾸짖고 권면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크레데 교회의 첫 감독으로 사역하는 디도에게 “모든 권위”를 가지고 일하도록 했습니다. [이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꾸짖고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딛2:15). 여러분은 모두 ‘목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틀림없는 성경 기록이니 그것을 부인하는 성도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목자를 하나님이 여러분 위에 세운 목자라고 믿습니까? 생각 좀 해봐야 됩니까? 목자와 성도는 평등한 대등 관계가 아니라 순복과 복종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니콜라파의 교리가 아닙니다.
제가 권세를 행사하거나 대접받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복종하라.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벧전5:5). 목자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 낮아져 섬기고, 군림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대적하는 것은 대적자 마귀의 작품입니다. 권위를 부정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만연한 마귀들의 문화인 인본주의입니다.
목자에게 순복하고 존경하는 일은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회계 보고 해야 할 자들인 것같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나니 그들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히13:17). [너희는 그런 자들에게 복종하고 또 우리와 함께 도우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종하라.](고전16:16). 교회는 가정과도 같고 군대와도 같습니다. 일사 분란한 지휘체계는 필수적입니다. 말씀을 잘 주목해서, 신중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인간적으로 어린 아이부터 나이든 어른까지 다 있는 것같이 영적으로도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있습니다. 성경은 일곱 단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 어린 아이들, 아이들, 젊은이, 어른, 아비들(장로들), 연로한 자들이 나옵니다. 영적 갓난아기들은 갓 거듭났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각별한 주의를 가지고 돌보아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갓난 아이 주변에서 함부로 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치게 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갓난아이는 선악의 분별이 없고, 오직 돌봄을 필요로 하지만 그 자체가 즐거움이요, 기쁨의 대상입니다. 교회에 새 신자가 오는 것은 집안에 아이가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자라나야 합니다.
이제 젖먹이가 조금 자라면 어린 아이들이 됩니다. 어린 아이 역시 돌봄이 필요하지만 이때부터는 기본적인 배움이 필요합니다. 말도 배워야 하고, 대소변 가리는 것도 배우고, 칭찬을 들을 때도 있지만 주의도 듣습니다. 조금씩 말귀를 알아듣고 배워갑니다.
다음에는 아이들입니다. 이들은 부모가 시키는 일을 할 줄도 압니다. 선악을 분별하고, 눈치가 있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감각이 생깁니다. 맞기도 많이 맞습니다.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 동시에 배움의 속도가 가장 빠른 시기입니다.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시기이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납니다. 이렇게 해서 청년들이 됩니다.
청년은 열정의 시기입니다. 이때는 가장 열정적인 배움의 시기이며 영적 가치관, 성경관이 형성됩니다. 대신 노련함이나 경륜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들이 교회에 넘치면 생기가 돕니다. 이 시기를 지나 아비들이 됩니다. 영적 자녀를 낳을 수 있고, 키울 수 있고, 돌보아 줄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생기는 나이입니다. 영적 책임감을 무겁게 느낍니다. 이들은 장로의 직분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 나이든 자들로서 모든 세대를 다 아우를 수 있습니다. 연로한 자들은 갓난아기를 돌보아 주며, 어린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며, 청년들의 존경을 받고, 어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같이 호인(好人)들이고, 믿음이 좋고, 장성한 분량의 어른들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야 아직도 몇몇 성도들은 어린 아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특히 자매들의 믿음은 너무나 연약한 수준이란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갓난아이는 무조건 돌보아 주어야하지만 하은이 만큼 큰 아이(4-5살)는 한 손에는 당근, 한 손에는 매를 가지고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매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거나 징계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철없이 덤벼들고, 떠들고, 순종하지 않다가는 멍이 들도록 맞을 것입니다. 아이가 되면 말은 거의 다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시키는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서 아이가 되면 뭔가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청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매질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일을 맡기겠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조언을 구하고, 돕는 자로서의 역할을 맡기겠습니다. 장로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권위를 부여하겠습니다. 때로 강단에서 성경 공부와 설교를 맡기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영적으로 나이든 자(the aged)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자매들은 젊은 여자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형제라면 교회 내의 자신의 일을 남에게 맡기고 부탁할 수 있고, 선한 것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몬1:9).
[연로한 남자들이 맑은 정신을 가지며 신중하고 절제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 면에서 건전하게 하고 연로한 여자들도 그와 같이 거룩함에 합당하게 처신하도록 하며 거짓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말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맑은 정신을 가지며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며 신중하고 정숙하며 가정을 보살피고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아니하리라.](딛2:2~5).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에게도 교회 내에서 반역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많은 악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너도 그를 조심하라. 그가 우리의 말들을 크게 대적하였느니라.](딤후4:14~15).
알렉산더는 바울이 하는 말을 몹시 대적했습니다. 어느 누가 감히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대적할까 싶지만 바울은 알렉산더로 인해 곤욕을 치렀고, 주님께 그를 심판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대적자 마귀는 알렉산더를 통해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남은 사도였던 그에게 대적하는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내에 있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썼지만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행하는 행위들을 기억하리라. 그가 악한 말들로 우리를 헐뜯고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며 자신도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자들도 금하여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요삼1:9~10).
영적 지도자를 공격해 오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같은 교회 내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마귀가 누구를 대적으로 삼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이 성장하고 직분을 맡게 되고, 책임을 가지게 되면 마귀의 이용 도구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언행에 조심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에 몇 번씩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적자 마귀에게 쓰임 받고,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 성도들 가운데 누구도 대적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세를 대적했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당대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평민들이 아니라 회중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할의 아들이요 고핫의 손자요 레위의 증손인 고라와 르우벤의 자손들 곧 엘리압의 아들들인 다단과 아비람과 블렛의 아들인 온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어떤 자들과 함께 즉 회중 안에서 유명하여 명성이 있는 자들로서 그 집회에 속한 이백오십 명의 통치자들과 함께 모세 앞에서 일어나니라. 저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함께 모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넘치게 행하는도다. 온 회중 곧 그들이 각각 거룩하며 [주]께서도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자신을 [주]의 회중보다 높이느냐? 하매] (민16:1~3).
대적자 마귀는 영향력 없는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대적자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지도자와 맞설 수 있는 사람, 명망가, 영향력 있는 사람, 충분한 파괴력을 지닌 사람을 대적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세와 아론과 동일한 영적 직분을 지녔다고 평등을 주창했습니다. 주님이 정해 주신 복종의 관계를 깨뜨리고 모두 같아지자는 평등의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일으킨 대적의 명분을 보십시오.
3절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함께 모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넘치게 행하는도다. 온 회중 곧 그들이 각각 거룩하며 [주]께서도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자신을 [주]의 회중보다 높이느냐? 하매](민16:3). 백성들이 얼마나 솔깃할 만한 주장입니까? 교회의 권한을 교인들에게로! 자신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쟁취하기 위해 오늘날 흔히 사용되어지는 반역자들의 모토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지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마귀가 섭외할 수 있는 포섭대상이란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목회자가 해산의 고통을 치르며 오랜 시간 기도와 가르침을 통해 일꾼이 되었다 싶어 집사나 장로로 세우면 목사와 같은 동급이라고 생각하여 순종과 복종 대신 대적합니다. 그가 아이였을 때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옛날을 억압받고 살았다고 생각 합니다.
모세는 왜 나를 대적하느냐? 며 자기를 변호하고 방어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고라에게 이 일은 [주]를 대적하는 일임을 선포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너와 네 온 무리가 [주]를 대적하려고 다 함께 모였도다. 아론이 누구이기에 너희가 그에게 불평하느냐? 하니라.](민16:11).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서 있었기에 그들은 사람에게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불평한 것이요, 그들은 분명 대적자 마귀에게 속해서 대적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종의 관계에서 평등의 관계를 주장하던 고라는 산채로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민16:31-33). 250명의 통치자들은 산 채로 불에 타 죽었습니다(민16:35).
이들의 죽음으로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할 백성들은 며칠도 아닌 바로 그 다음 날 모세와 아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또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여 이르되, 너희가 [주]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민16:41). 이들은 같은 성도요, 같은 형제인데 모세와 아론 너희가 이럴 수가 있느냐? 사랑으로 대해 주어야지 하는 식입니다. 백성들의 이런 말 역시 마귀의 대적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심판하셨는데 무려 만 사천칠백 명이나 죽었습니다(민16:49). 주님은 대적자를 엄중히 심판하심으로 이 일이 사람이 아닌 마귀에게 속한 일이요 사람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대적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 feminist(여권 신장론자)들이나 여자로서의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은 시험에 들 수도 있고, 강한 거부감이 들고, 질겁하겠지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加減)없이 있는 그대로를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공부했지만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대등과 평등의 관계가 아니라 복종의 관계입니다. [더욱이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자는 잠잠히 있을지니라.](딤전2:12).
어떤 신학자의 말대로 이 구절은 후대에 첨가되거나 편집된 구절이 아니라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남자가 여자를 위해 창조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되었나니](고전11:8-9). 아마 여자 목사나 지도자들은 이런 성경구절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이것을 알기 원하노라. 즉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전11:3).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자를 다스리는 권위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자는 잠잠히 있을지니라.](딤전2:12). 모든 부분에서 남녀평등은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평등, 진보된 사회를 위한 큰 족적을 남긴 것 같지만 그것은 세속의 철학이요, 인본주의의 산물일 뿐 하나님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마귀는 서로 대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과 마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역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복종의 관계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듭난 모든 성도들의 아버지이시듯이, 마귀는 모든 불신자들의 아버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자기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요8:44).
영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마귀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마귀의 자녀가 있습니다. [이것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며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도 그러하니라.](요일3:10/행13:10참조). 세상 사람들은 마귀에게 철저히 복종합니다. 그들은 결코 마귀와 동격이나 평등의 관계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 행로를 따라 걸었고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활동하는 영(靈)을 따라 걸었느니라.](엡2:2). 대적자 마귀는 자기 자녀들의 대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도와 마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역시 평등의 관계가 아니라 복종의 관계입니다. 마귀가 성도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귀를 제압할 권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그분께서 자기의 열두 제자를 함께 부르사 그들에게 모든 마귀들을 제압하고 질병들을 고치는 권능과 권위를 주신 뒤](눅9:1). 마귀는 한 때 자신이 권위를 부리며, 마음대로 하던 자기 자녀였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서 도리어 자신을 제압하고, 권위를 행사하는데 분노하여 절대 복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한 때 자신이 주인으로서 누렸던 지위와 권위를 우리에게 행사하려 합니다. 반면 성도들은 ‘이제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선포하며 마귀를 대적합니다. 성도들은 마귀를 대적하라는 명을 받았고, 그를 쫓아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벧전5:8-9). 피하거나 타협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가 마귀보다 더 높은 권위에 있습니다.
때로 무서운 부하가 상관을 이겨 먹으려고 대적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이기려고 대적합니다. 반체제 세력이 정부군을 전복하려고 대적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이기려고 대적합니다. 양들이 목자를 이기려고 대적합니다. 이때 더 높은 권위에 있는 자들이 물러서면 정말 지게 됩니다. 이 때 단호하게 대적하면 결코 지지 않으며, 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마귀는 대적하면 도망갑니다. 대적해야 할 때 가만히 있으면 그는 패배할 뿐 아니라 패한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됩니다. 구원을 받아 완전히 자유하게 된 자가 거듭나기 이전에 모시던 자신의 주인을 다시 섬기게 됩니다. 영은 곤고해집니다. 평안과 기쁨이 마음속에서 마른하늘에 안개 걷히듯이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감정은 메말라지고, 정신은 쇠약해지고,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몸은 작은 스트레스조차 이길 힘이 없어지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역시 완전히 망가지고, 파괴됩니다. 목소리는 높아지고, 매사에 짜증이 섞이고,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며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대적자 마귀에게 진 결과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을 터뜨립니다. 기도하며 진지하게 지혜를 모으는 대신 각자의 자아가 돌출합니다. 모두 서로가 서로를 대적합니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이 역시 평등 관계가 아닙니다.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같은 성도들끼리의 관계에서 주님은 평등을 명하신 것이 아니라 상호 복종을 명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만 하느니라.](요13:14). 발을 씻기는 일은 집안의 종이 주인에게 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곁에 있는 성도를 주인인 것처럼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숙이고 발을 씻어 주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복종하라.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벧전5:5). 주님은 장로들에게는 순종하고, 성도들 간에는 서로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진리는 근본주의 교회들에서도 좀처럼 가르쳐 지고 있지 않는 진리입니다. 성도들은 서로 복종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평등의 인간관계를 제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복종과 의존의 관계를 설정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엡5:21). 상호 복종의 관계 속에서만 성령의 하나 됨이 있고, 진리 안에서 일치와 연합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서로 섬기고, 서로 짐을 나누어지고(갈6:2),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세워주고, 서로 훈계하며, 모든 일에 혼자가 아닌 서로서로 삽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영적 가족 관계요, 성도들의 인간관계입니다.
대적자 마귀는 이 관계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 말다툼하고, 서로 영광을 받고(요5:44), 서로 고소하고[고린도 교회, 오늘날 교회의 고소 고발 사건이 매우 많다], 서로 물고 삼키며(갈5:15), 서로 대적하고, 서로 노엽게 하며 서로 시기하며(갈5:26), 서로 거짓말하고(골3:9), 서로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고(딛3:3), 서로 불평하고(약5:9) 결국은 서로 죽이려 합니다(계6:4).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위에 탄 자가 땅에서 평화를 제거하는 권능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들이 서로 죽이게 하려 함이라. 또 그가 큰 칼을 받았더라.](계6:4).
대적자 마귀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큰 환란 기간입니다. [그가 신성모독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자기 입을 벌려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계13:6). 복음서에 나오는 마귀들은 주님을 두려워하고 떨었지만 큰 환란 때 마귀는 최후의 발악을 합니다. 용과 그의 천사들은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과 문자 그대로 치열한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마귀는 자신의 사역자들과 우리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마귀가 사람을 이용하여 대적하는 것은 우리 주님이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신 말씀에 잘 나옵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임을 당해 주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도구가 되어 대적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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