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참치 육상 양식
전에 배를 탈 때 점심 주 메뉴가 평일은 소, 돼지, 닭고기 순으로 바뀌고 일요일은 참치회나 생선류를 주었다.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조리사들이 해주는 음식이라 별로 나무랄 것 없이 집에서 보다는 훨씬 잘 먹는 편이었다.
그런데 촌놈이 배를 처음 타고 먹어보는 참치회는 물컹하니 별로 입에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라면이나 끓여달라 했다.
참치회를 맛들이는데 몇 년은 족히 걸렸다.
사실 단체 급식에서 주는대로 먹어야지 음식 가리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다가 배를 그만 타고 육상에서 묵고사니라 빨빨거리고 다닐 때 참치 전문 체인점이 생긴 걸 봤다.
몇 달을 그냥 지나치다가 하루는 저녁식사 겸 소주 한잔할 거라고 어린 아들과 함께 참치집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참치집에 손님이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주방장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맛보라고 참치 부위별로 조금씩 썰어주는데 감칠맛이 났다.
그래서 평소 주량보다 더 마셨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니 주독이 별로 없이 개운했다.
내게 참치와 소주가 맞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서서히 참치 마니아가 되어 손님 만날 때 종종 가게되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Zapata 선배님을 만날 때도 참치횟집에서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다.
알젠의 봄 형 그리고 무늬만여우공주 님과 따님 끄리스띠나 양 만날 때도 동원참치횟집에서 조우했는데 계산할 때 수표 두 장으로는 부족해서 조금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참치마니아에 아주 좋은 소식이 보도되었다.
서귀포시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미래양식연구센터에서 ‘참치 수중 가두리 양식’을 4년 전에 세계 처음으로 성공하였고, 현재 이곳에서는 바다에서만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참치를 육지에서 키우는 ‘참치 육지양식’, 또 알에서부터 성숙한 어미 참치로 성장시키기까지 일련의 양식 과정 모두를 바다가 아닌 육지양식장에서 진행하는 ‘참치 완전양식’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참치의 산업적·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참치 성장 연구’와, 다수의 참치 자원을 언제든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핵심기술인 ‘참치 산란 유도 기술’ 등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 분야에서 일본과 호주, 남유럽 국가 등 주요 수산 강국들이 주목하고 있을 만큼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다.
지름 20m의 수조 안, 바닥이 그대로 보일 만큼 맑은 물속을 빠르게 유영하는 1~1.5m가 되는 크기의 시커먼 물고기 21마리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양식되고 있다.
놀랍게도 21마리의 참다랑어 중 12마리는 바다물고기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다에 가본 적이 없이 육지에서만 자란 참치들이다.
이 12마리 참다랑어들은 2011년 12월 미래양식연구센터에서 참치 연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지승철 박사가 몰타의 바다에서 직접 참다랑어 알 80만개를 채취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공부화에 성공하며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참치 치어로 키워 냈다.
1년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0.0015%의 생존 확률을 뚫고 건강하게 살아남은 12마리 참다랑어가 수조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두 살이 된 이 참다랑어들은 무게 15㎏까지 자랐다.
미래양식연구센터 지승철 박사는 ‘이 참다랑어들이 향후 2~3년 정도 육지 수조에서 더 성장하면 적어도 60~70㎏까지 커지고 그때는 산란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지 박사의 말처럼 2~3년 후 이 12마리의 참다랑어가 60~70㎏까지 건강하게 성장해 산란까지 하게 되면 한국은 일본에 이어 오로지 양식만으로 ‘부화-치어-성장-어미참치-산란-부화-치어…’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참치 완전양식’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한 나라가 된다.
즉 이 12마리 참다랑어는 참치 양식의 최고 기술로 알려진 ‘참치 완전양식’을 한국도 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어족 자원이 되고 있다.
이 12마리 외에 나머지 참다랑어 9마리 역시 1년7개월여 전에 제주 바다에서 치어일 때 잡아와 지금까지 육지 수조에서 키워 생존시킨 것들이다.
이 참치 역시 ‘바다에서 태어난 참치도 육지 수조에서 생존·성장할 수 있다.’는, ‘육지양식’이 가능함을 증명해 주는 우리의 소중한 어족 자원이다.
육지양식에 성공한 이 21마리의 참다랑어는 식용이나 수출 등 판매용이 아니다.
‘참치 산란 및 부화 기술 개발·확보’, ‘참치 성장 촉진 연구’, ‘육지양식 기술 개발’ 연구를 위한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목적도 있다.
이 21마리 참다랑어는 고부가가치 미래 식량 자원인 우량 참다랑어의 ‘알’, 즉 ‘참치 종자’를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인공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참치 종자 확보용’으로 육지에서 인공 양식되고 있다.
지승철 박사는 “이 21마리 육지양식 참다랑어가 완전한 성체가 돼 ‘종자용 참치’로 무사히 자라면 한국 수산업에 상당한 경제적·산업적 가치를 안겨 줄 수 있다.”고 했다.
지 박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참치 육지양식 연구의 경제적·산업적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참치 한 마리가 낳는 알 천만 개 중 1%만 온전히 부화시켜 살려도 어미 참치 한 마리로 십만 마리의 참치를 양식할 수 있습니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종자 확보용 육지양식 참치 한 마리가 최소 수십에서 최대 수백억 원대의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셈이지요.”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에서 참치 양식 연구를 하고 있는 오성립 박사는 상당한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는 참치 육지양식이 경제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말했다.
“바다에서 참치 치어를 잡아다 육지양식했을 때 생존율을 60~70%까지 끌어올리는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정도면 참치 무게 1㎏당 4만~5만 원만 받아도 상업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수십에서 수백억 원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현재 일본과 호주 등 세계 수산 강국들이 참치를 두고 벌이는 경쟁은 ‘참치 전쟁’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세계 수산업에서 참치가 최고의 부가가치를 낳는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 1월 5일 일본 최대 수산시장인 도쿄 쓰키지 어시장에서 무게 222㎏짜리 참치 한 마리가 무려 1억5,540만엔(당시 환율로 한국 돈 18억7445만원)에 팔린 사건은 참치의 경제적·산업적 가치를 잘 설명해 준다.
마케팅 차원에서 비싸게 응찰한 것이었으나, 당시 경매된 참치는 1㎏에 70만엔, 한국 돈 844만원에 이르는 것이었다.
현재 국내 최고 등급 소고기 1㎏ 가격이 9만 원 대이다.
이 18억 원짜리 세계 최고가 참치 기록은 세계 수산 강국들 사이에 ‘참치산업’이 왜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올랐는지를 재차 확인해준 예인 것이다.
현재 참치는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점점 귀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이 완전양식에 도전하고 있는 최고급 참치 어종인 참다랑어는 어획은 고사하고 멸종을 우려할 만큼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
결국 주요 수산국들은 ‘참치의 멸종을 막자.’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참치 남획 방지와 어종 보호를 위해 ‘대서양참치보존위원회(ICCAT)’,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EC)’ 등의 국제기구까지 만들었다.
이 국제기구들이 매년 주요 수산국들에 참치 잡을 수 있는 어획량 한도를 배정하고 있다.
문제는 수요는 넘치는데 어획량 한도는 적고 그 한도조차 줄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참치를 잡아 파는 단순 어획 경쟁으로는 더 이상 참치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일본과 호주, 남유럽 국가 등 주요 수산 강국들의 참치 전쟁은 참치를 기르는 ‘바다양식’과, ‘우량 참치 종자 확보’, 육지에서 참치를 키우는 ‘육지양식 연구’ 경쟁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현재 참치 전쟁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970년 일본수산청 원양과와 긴키대학교를 중심으로 참치 양식을 시작했다.
1970년대 초 바다 수면에 양식장을 설치해 참치를 키우는 ‘수면 가두리 참치 양식’에 성공했고, 1979년에는 양식으로 100㎏짜리 참치를 키워 냈다.
또 당시 바다에서 채집한 참치 알의 인공 부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2002년에는 ‘산란-부화-치어-성장-어미참치-산란-부화…’라는 참치 양식의 전 과정을 양식장 안에서 모두 진행하는 이른바 ‘참치 완전양식’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참치 완전양식’은 참치를 굳이 태평양·대서양의 먼 바다에 고비용이 드는 대규모 참치 선단을 보내 잡아 올 필요가 없게 만드는 첨단기술이다.
일본의 뒤를 쫓는 곳이 호주다.
호주는 1990년부터 참치 양식을 시작했고, 본격적인 참치 연구는 2000년에 시작했다.
특히 2009년 참치 중 비교적 고급 참치인 남방참다랑어의 ‘육지양식’을 시도하며 참치 연구와 양식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당시 호주의 연구 성과는 타임지가 선정한 2009년 세계 100대 발명 중 2위에 올랐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몰타, 터키 등 남유럽 지중해권 국가들 역시 참치 연구와 양식 강국으로 꼽힌다.
이들 남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 중반 공동으로 참치 양식을 시작했다.
참치 연구를 시작한 건 이보다 늦은 1990년대부터다.
남유럽은 잔잔한 지중해와 연중 따뜻한 기온이 유지돼 참치가 살기에 최적의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참치 연구와 양식을 늦게 시작했지만 주요 수산 강국들이 놀랄 만큼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지승철 박사는 “참치는 작은 자극에도 자기 목숨을 내던질 만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빛과 소리, 진동 변화에 아주 민감합니다. 때문에 육지양식에서 빛과 소리, 진동을 모두 동반한 여름철 천둥과 번개는 가장 큰 위험 요소입니다. 장마나 태풍 때 천둥과 번개가 치면 참치들이 놀라 육지양식 수조의 벽을 시속 80㎞ 속도로 들이받습니다. 육지양식장에서 참치들이 그렇게 죽습니다. 참치의 이런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더 개발하면 한국의 참치 연구와 양식 수준도 더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치는 수면으로 뛰어오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만 조절할 수 있으면 ‘수중 가두리 양식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일본과 호주, 남유럽 국가들의 참치 양식은 양식장을 수면에 노출시키는 수면 가두리 양식장입니다. 그런데 이 수면 가두리 양식은 태풍이나 강풍, 번개, 계절에 따른 급격한 수온 변화, 각종 오염에 쉽게 노출됩니다. 때문에 양식하던 참치가 모두 죽는 치명적 약점이 있는 거지요. 문제는 태풍, 강풍, 수온 변화는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겁니다. 닥치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단 말이지요. 참치 양식에서 이런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수면이 아닌 수중에 양식장을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2009년 수중 가두리 양식장을 시도한 겁니다.”
당시 일본 등 선발주자들은 한국 연구진이 시도한 수중 가두리 양식이 당연히 실패할 것으로 생각했다.
지 박사 팀은 제주 남쪽 수심 45m 바닷속 중층 수심 약 20여m 지점에 다이아몬드형 수중 가두리 양식장을 설치했고, 약 3㎏짜리 참다랑어를 넣어 양식을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제 막 참치 연구를 시작한 한국이 세계 최초로 수중 가두리 양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당시 약 3㎏이던 참다랑어들이 현재 30㎏까지 컸고, 약 500~600마리가 수중 가두리 양식장에서 잘 살고 있다.
지 박사는 ‘실패할 거라던 일본이, 한국의 성공 사례를 확인한 지난해부터 수중 가두리 양식장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참치 연구의 히든카드도 착착 진행 중에 있다.
‘육지양식’과 ‘완전양식’이다.
미래양식연구센터 안에 직경 20m, 깊이 4m짜리 대형 수조를 만들어 21마리의 참치를 육지에서 양식하고 있다.
2~3년 후 이 21마리의 참치가 어른 참치로 성장해 산란을 하고, 이 알을 인공부화시켜 치어로 키운 후, 이 치어가 어미참치로 성장하기까지, 한 사이클을 성공시키면 한국은 ‘육지양식’과 ‘완전양식’을 동시에 달성하는 명실상부한 참치 연구 및 양식 강국이 되는 것이다.
이미 인공부화를 통한 치어 생산에 성공했고, 육지양식 수조에서 송사리만 하던 참치 치어를 2년 동안 키워 크기 1~1.5m 무게 15㎏까지 성장시켰다.
‘육지양식’과 ‘완전양식’의 성공이 머지않은 것이다.
한국은 일본이나 호주·남유럽처럼 참치 생존에 적합한 연중 15~20도 이상의 수온을 유지하는 바다가 없다.
가장 따뜻한 바다인 제주 바다 수온도 겨울엔 13~14도에 불과하다.
전문 연구 인력도 절대 부족하다.
그럼에도 주요 수산 강국과 경쟁국들이 주목할 만큼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다.
척박하다고 할 만큼 참치 연구에 불리한 환경에서 참치 연구를 하고 있는 지승철 박사는 ‘척박하다고 손놓고 있을 순 없는 일이고,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이, 더 끈질기게 연구에 집중한 것이 짧은 시간 기존 강국도 주목하는 연구 성과를 이끌어낸 힘’이라고 말했다.
Cancao do mar(바다의 노래), Dulce Pon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