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년, 얀 반 에이크
국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2011년 달력 프로젝트를 기억하는가? ‘도전! 달력모델’이라는 경쟁 포맷을 통해 유명 사진작가들과 무한도전 멤버들이 월마다 다른 콘셉트로 달력 메인에 들기 위한 경쟁을 치러 화제가 되었던 특집이다. 3월의 콘셉트는 명화 패러디였는데, 이때 정준하가 모델을 맡은 작품이 바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었다.
15세기 플랑드르(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지역) 미술의 거장인 반 에이크 형제는 자연에 충실한 섬세한 묘사를 위해 유화를 자주 사용하고, 완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미술사 속 거장이다. 형 후베르트가 일찍 세상을 뜬 후 그의 동생 얀은 계속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 <헨트 제단화>, 1432년, 반 에이크 형제(열었을 때)
15세기 플랑드르(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지역) 미술의 거장인 반 에이크 형제는 자연에 충실한 섬세한 묘사를 위해 유화를 자주 사용하고, 완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미술사 속 거장이다. 형 후베르트가 일찍 세상을 뜬 후 그의 동생 얀은 계속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얀 반 에이크는 펠리페 3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하나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거의 없고, 그의 손으로 그린 것이 확실한 작품 중 전해지는 것은 1432년부터 사망한 해인 1441년까지 10년 동안 제작한 25개의 그림뿐이다. 남아있는 그림의 주제는 종교화, 특히 성모상과 초상화가 대부분이며 일관적인 양식을 보인다. 형제의 표현은 너무나도 섬세하여 극사실적인 표현을 넘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매혹적인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당시 회화의 주류는 안료를 달걀 노른자에 개어 그리는 템페라화였지만, 유화도 시도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그들을 유화의 발명자라 할 수 없지만 유화 특유의 깊고 풍요로운 색채, 섬세한 입체감, 생생한 질감을 완벽하게 구현한 화가로는 독보적이었다.
얀 반 에이크의 사실주의와 새로운 플랑드르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은 15세기 플랑드르 제단화 중 가장 큰 <헨트 제단화>다. 이 제단화는 동생 후베르트가 작업을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426년에 사망하면서 1431년에 형 얀이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손을 댔고, 그 다음해에 완성했다. 확실히 중세와 이들이 그림이 다른 점은 인물이 이상화되지 않고 개성을 가진 존재로 재현되었다는 점이다. 아담과 이브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 이외에도 닫힌 화면에 그려진 주문자 부부의 실물크기 초상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2인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얀 반 에이크의 대표적인 초상화다. 작은 화면에 금속, 모피, 옷감, 유리와 벽 등 서로 다른 재질을 가진 물건을 극도로 섬세하고 정확하게 재현한 화가 특유의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림 속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많은 학자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증명하는 일종의 증명서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결혼 이미지들에는 항상 사제나 공증인이 등장하며 그림의 배경이 일반 가정집이라는 점에서 이는 결혼식이 아닌 약혼식을 재현한 그림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약혼식은 가까운 장래에 두 남녀가 결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기본적인 의미 외에도, 양가가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친척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재정적, 사회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계약이었다.
▲ 2006년, 페르난도 보테로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아래>무한도전에서 패러디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런 외적인 해석도 흥미롭지만, 이 그림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거울을 끌어들여 화면 너머 그림의 감상자가 있는 곳까지 그림의 공간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60㎝ 남짓한 그림 안에 골고다 언덕에서 겪은 예수의 10가지 수난이 거울 테두리에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그 안에 오목 거울로 그림 밖에 있어야 할 화가와 조수까지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구성은 17세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등장하기까지 능가할 만한 것이 없는 이 그림만의 혁신적인 면모다. 또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실내의 한 구석을 배경으로 빛의 효과를 섬세하게 표현한 것은 베르메르의 회화
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이후 그려질 전신 초상화, 실내 정경을 담은 장르화, 정물화 세 가지 분야 모두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구자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원래 그림과 반대로, 이 작품의 패러디들은 <무한도전> 달력 촬영처럼 대부분 실소를 짓게끔 익살스럽다. 가장 유명한 패러디로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있는데, 엄숙했던 원래 그림과 달리 남자는 사진을 찍듯이 손으로 ‘브이’를 하고 있고, 웅장하던 샹들리에는 단촐한 알전구가 되어 있으며 여자는 아예 임신 중이다. 부의 상징이던 오렌지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모자는 우스꽝스럽게 과장되어 천장을 뚫을 듯이 커져 있다. 이런 패러디들이 많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원작 안에서 소소하게 바꿀 요소들이 많다는 걸 뜻한다. 처음 볼 땐 무심하게 스쳐지나갈지 몰라도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7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은 그림은 수많은 비밀들을 품고 우리가 그것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