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의 축구스타 클래식 11.
토탈사커 독자 여러분들은 벨기에!하면 어느 선수(추억의 선수 중에서)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는지? 명수비수 에릭 게레츠? 파워 넘치는 스트라이커 얀 클레망스? 아니면 천재 미드필더 엔조 시포? 이 선수들 모두 8~90년대 벨기에를 대표했던 선수들인데..... 필자인 저는 벨기에! 하면 이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골키퍼 쟌 마리 파프!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는 월드컵에서 만큼은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 이유는 탄탄한 수비진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골키퍼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벨기에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세계 클라스 골키퍼를 연이어 배출한 나라다. 70년대 피오, 80년대 쟌 마리 파프, 90년대 미셸 프레우돔메 등.
이 가운데 최고는 역시 쟌 마리 파프다!(사진) 쟌 마리 파프를 빼 놓고 벨기에 축구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국내 축구 팬들(특히 젊은 팬들)사이에서는 프레우돔메의 지명도가 가장 높지 않을까 싶은데, 유럽 쪽에서는 프레우돔메 보다 쟌 마리 파프를 훨씬 더 높게 평가있고 있다. 80년대 벨기에 축구 약진의 배경에는 쟌 마리 파프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니까.....
파프는 벨기에 리그 중위권 팀인 베베른에서 성장했다. 22세에 벨기에 대표팀에 발탁 되면서 70년대 세계적 골키퍼 피오의 뒤를 이어 벨기에 대표팀 골문을 지키게 됐다. 78-79 시즌에 베베른은 강팀인 안더레흐트와 스탕다르트 등을 누르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해 파프가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면서 인지도를 높혔다.
파프가 세계 축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EURO80 때부터다. 이태리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벨기에가 예상을 뒤엎고 결승전까지 진출해 서독에게 지며 준우승을 했는데 이 대회에서 파프가 벨기에 주전 골키퍼로 활약을 했다.
2년 뒤인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파프는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벨기에는 개막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전대회 우승팀인 아르헨을 1대0으로 잡는 이변을 연출했는데 이 게임에서 아르헨의 마라도나-캠페스-디아스-알디레스 등의 막강 공격진이 맹공을 퍼부었으나 벨기에 수비진을 좀처럼 뚫지 못했다.
철옹성과 같은 벨기에 수비진을 리드한 선수는 다름아닌 골키퍼 파프였다.(아르헨戰에서의 벨기에가 터뜨린 골은 월드컵 개막전 20년 만의 골이라고 한다.) 아르헨을 잡은 벨기에는 이어 벌어진 엘살바도르戰에서도 1대0으로 승리했고, 3차전에서는 헝가리와 1대1로 비기며 2차 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2차 리그에 들어서 그만 파프가 부상으로 출전을 못하게 됐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주전 수비수 게레츠 마져 부상을 당해 벨기에는 결국 보니에크의 폴란드에게 0대3(보니에크에게 헤트트릭 허용.), 브로크힌이 이끄는 소련에게 0대1으로 지고 말았다. 그러나 벨기에는 이 대회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4년 후 월드컵에서의 파란을 예고했다.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맹활약 후, 파프는 서독 최고의 명문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을 했다. 파프는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 하자마자 분데스리가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고, 그 기세를 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이어 나갔다. 파프는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멕시코 월드컵에서 벨기에는 비교적 운이 좋은 조(멕시코-이라크-파라과이)에 편성이 됐다. 주최국인 멕시코와의 첫 게임에서 1대2로 패했으나 두 번 째 게임에서 이라크를 2대1로 이겼고, 파라과이와는 2대2로 비기면서 아슬아슬하게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쟌 마리 파프의 진가는 16강전부터 발휘됐다. 16강전에서 벨기에는 강호 소련과 맞붙었는데 이 게임은 유럽을 대표하는 골키퍼인 파프와 다사예프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소련이 골을 넣으면 벨기에가 추격하는 식으로 게임이 진행됐는데 치열한 난타전 끝에 벨기에가 소련을 4대3으로 이기며 4년 전 빚을 깨끗이 갚았다.(스페인 월드컵에서 벨기에가 소련에게 0대1로 패배.) 이 날 소련의 스트라이커 베라노프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벨기에의 기세를 꺾진 못했다.
벨기에는 8강전에서 덴마크를 5대1로 이기고 올라온 스페인을 맞아 접전 끝에 1대1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후 승부차기 에서 5대4로 이겼다. 당시 벨기에는 내심 승부차기를 기다렸고, 또한 승부차기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코칭 스탭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골키퍼 쟌 마리 파프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죽지세로 4강에 오른 벨기에! 또한 물이 오를 때로 오른 쟌 마리 파프도 '마술사' 디에고 알만도 마라도나 앞에서는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 4강전에서 아르헨과 맞붙은 벨기에는 이 날 마라도나에게 2골을 허용하면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대회에서 마라도나를 제대로 마크할 수 있는 팀과 선수는 없었으니까....
벨기에는 3-4위전에서 플라티니, 질레스 등이 출전하지 않은 프랑스에게 4대2로 패했으나 벨기에로서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특히 쟌 마리 파프는 세계적 골키퍼 답게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울러 미래의 스타 엔조 시포(당시 19세)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우수한 골키퍼 중에는 여러 타입이 있는데 파프는 냉정한 전략가 혹은 지휘관이 아니라 온화한 성품으로 팀(특히 수비진)을 리드하는 골키퍼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수들로부터 인망이 무척 두터웠다. 벨기에 축구 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고 있는 쟌 마리 파프는 골키퍼로서는 비교적 단신(180cm)이었으나 공중볼 처리가 대단히 능수능란했고 또한 탁월한 반사 신경을 자랑했다.
파프는 플레이 면에서 뿐 아니라 관중들에게의 서비스 정신도 투철한 골키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파프는 각양각색의 모자를 자주 쓰고 나와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햇빛을 가려주는 창이 달린 야구 모자를 비롯해 경찰 모자 등 특이한 모자도 쓰고 나왔다.
또한 파프는 경기 중에(파프의 소속팀이 일방적인 게임을 할 때)간혹 페널티 에이리어 부근에 비둘기가 앉아 있을 때 멋진 다이빙 캐치로 비둘기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 주는 등......정감어린 쇼맨쉽도 심심치 않게 발휘했다. 경기 중에 관중들이 파프! 파프! 이름을 부르면 그 쪽 스탠드를 향해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고......파프는 팬들을 늘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선수였다.
파프는 82년~88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을 했는데 84년 시즌을 마친 후에 팀의 간판이자 유럽 최고의 공격수인 칼 하인츠 루메니게가 SERIE-A 인터 밀란으로 이적을 하면서 팀에 비상이 걸렸었다. 전문가들은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이 크게 다운될 걸로 예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루메니게가 빠진 바이에른 뮌헨이 84/85, 85/86, 86/87년에서 연거풔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쟌 마리 파프는 디터 헤네스, 로타 마테우스와 함께 팀을 리드하면서 리그 3연패에 큰 기여를 했다.
전성기를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낸 쟌 마리 파프에게 있어서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아마도 86-87시즌 챔피언스컵 우승을 놓친 일일 것이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결승전에서 FC포르토와 맞붙었는데 경기 전, 예상은 바이에른 뮌헨의 압도적 우세였다. 그러나 FC포로토에게 그만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파프는 88년에 모국인 벨기에로 귀국, 그 이듬해 터키에서 한 시즌 정도 활약한 후에 은퇴를 했다. 쟌 마리 파프의 뒤를 프레우돔메가 이어받은 것이다.
쟌 마리 파프(Jean-Marie Pfaff) 국적: 벨기에 나이: 1954년생 포지션: GK 신장: 180cm 소속팀: 베베른(63-82)-바이에른 뮌헨(82-88)- 스탕다르트 리에쥬(88-89)-터키 트라브존스포르(89-90)
벨기에 대표팀 데뷔: 1976년 A매치 기록: 62시합 월드컵 출전: 82, 86년
주요 타이틀 83/84 독일컵 우승 84/85 분데스리가 우승 85/86 분데스리가 우승 86/87 분데스리가 우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