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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신앙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칠성신앙'이라는 매우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 칠성신앙은 고대 이래로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고유 신앙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이 우주에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야 한다.
(얼굴에는 일곱개의 구멍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옛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칠성님'에게 소원을 빌어 왔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물론 수명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북두칠성은 우리 조상들이 믿던 삼신 상제님을 별로 나타낼 때 붙여지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칠성신앙은 신교신앙의 하나였다.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표현들로서는 칠성님 외에도 칠성신, 칠성여래(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등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북두칠성을 섬겼다.
북두칠성은 배달국과 단군조선시대, 그리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는 물론 고려와 조선의 별이었다.
고조선 시대에 만든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이미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 고구려 왕릉의 천장 벽화에서는 북두칠성의 형상이 다량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광개토대왕비 상단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호우, 중원 누암리 출토 제기(祭器) 등 각종 고구려 유물에서는 정(井)자도 함께 발견
된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96. 8 SBS가 방영한 「왕도의 비밀」에서 고구려의 상징 문양으로 제기한 우물 정(井)
자는 북두칠성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것이다.
최인호씨는 이 井자를 백두산 천지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井을 땅에 적용시킬 때는 맞을
것이나 하늘에 적용시키면 북두칠성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광개토대왕을 비롯한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하늘 북두칠성의 자손 즉 천손민족으로 적고 있다.
고려시대 고분에도 북두칠성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우리는 격암유록과 토정비결에서 말세 도탄의 위기에서 사는 방법으로 한결같이 석정 水(石井: 돌우물 물)
또는 석정곤(石井崑)이 거론된 것을 알았었다.
이 석정수는 바로 북두칠성의 정기가 고인 우물이다. 석정곤의 곤(崑)은 곤륜산의 약자다.
옛날 사람들은 북두칠성이 상조금궐 하부곤륜(上照金闕 下覆崑崙: 칠성경)이라고 하며,
위로는 금궐(호천금궐: 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을 비추고 아래로는 땅의 중심인 곤륜산을 비추는 곳에
있다고 하였다.
이 곤륜산은 북두칠성의 정기가 비추어지는 지구 모든 산의 조종(祖宗: 아버지격)이다.
명나라 사람 주장춘은 곤륜산의 제4지맥의 왕기(旺氣)가 백두산 지맥을 통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증산(甑山)
이 모악산 아래에서 출현한다고 하였다....중략
북두칠성에 얽힌 얘기를 하다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우물 정(井)자 얘기까지 발전했지만,
아뭏튼 북두칠성은 우리 한민족의 열렬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천문을 살펴 기록으로 남긴 가장 큰 이유도 북두칠성을 숭상한 데에 있었다.
북두칠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가지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요 세계 최초의 나라인 환국은 7명의 환인이 3301년 동안이나 통치했는데,
이 7대에 걸친 7명의 환인들은 북두칠성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또는 칠성당, 칠성전)이라는 전각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 사찰내에만 존재하며, 원래 불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것이다.
이 전각은 한민족의 칠성신앙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사찰내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옛날 마을에 있던 칠성당도 바로 북두칠성의 성신을 모셔놓고 기원하던 사당이다.
민가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독대 한 옆이 칠성당(칠성단) 자리가 되어 정안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던
터전이었다.
앞에서 기술했듯이 중국 한족은 동이족의 주성인 북두칠성을 신앙하다가 진(秦)나라 이후 중원을 지배
하고 동이족을 북방으로 몰아내면서 금성을 주성으로 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이라는 널판을 관 밑바닥에 깔고서 그 위에다 시신을 눕혔다.
여기서 죽는 것을 '칠성판 짊어지고 간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 칠성판은 널판에다 북두칠성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아래와 같이 7개의 구멍을 뚫거나 먹으로 표시를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장례풍습은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이것은 그 영혼이 본래 온 고향별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가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이 지내던 초재(醮齋)도 칠성님께 올리는 인사와 기원이었다.
이 칠성신앙인 초재는 조선 중종·명종조에 유명무실해졌다.
우리나라 역사상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로는 김유신(등에 칠성무늬), 강감찬
장군(문곡성), 정몽주(어깨 위 칠성모양의 검은 점 7개), 안중근(가슴에 흑점 7개, 그래서 칠성이 응했다
하여 '응칠'이라고 불렀다) 등이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과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28수(宿) 별자리를 본 따 조경한
독창예술품인 동시에 북두칠성 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의 대표작품이었다.
우선 광화문 앞과 경복궁 안에 있는 해치('해태'라고도 호칭)는 자미궁(자미원을 궁궐에 비유한 표현)의
남쪽 하늘을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경복궁 근정전 실내는 자미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내전 안의 장식 색깔은 자미원을 상징하는 검붉은 자주색, 비취색이다.
임금의 용상 뒤에 있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는 용상이 해와 달의 음양과 다섯 개 산의 목화토금수
오행(五行) 즉 하늘의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천장에는 용 두 마리가 각 28개의 발가락(하늘의 28수를 상징)으로 여의주(임금)를 호위하고 있다.
창덕궁의 인정전 실내도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형상이다.
소요정(逍遙亭) 네 개의 기둥에 일곱자씩 쓰인 글귀는 자미천을 묘사한다.
소요정 앞의 어정(御井: 임금샘)은 북두칠성 모양을 나타내는(자미원을 태을천 太乙天이라고도 한다)
을(乙)자 모양으로 물길을 팠다.
소요정의 북쪽에 있는 청의정은 삼신신앙의 바탕인 원방각(○□ )형으로 지었다.
소요정의 동쪽에 있는 정자는 이름을 아예 천지인 삼신을 뜻하는 태극정이라고 지었다.
이와 같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고궁은 북두칠성이 있는 하늘의 궁궐, 자미궁을 본 따 지은
대궐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던 정신적 지주였던 칠성신앙을 몰아내기 위해 칠성
신앙의 대표작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총독부를 지으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칠성
신앙을 포함한 온갖 전통신앙을 탄압하여 없애 버렸다.
오늘날 우리의 전통신앙을 미신으로 보는 것은 근대에 와서 서양 기독교의 영향외에도 일제의 이와같은
음모의 영향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총독부는 95. 8. 15일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철거되어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민족정신의 정기를 바로 세운 쾌거였으나, 궁궐만 복구하였을 뿐 아직도 우리는 경복궁 조성에 간직되어
있던 진짜 의미인 칠성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은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대다수 한국인은 경복궁에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으니 또 한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북두칠성과 북두칠성이 속한 태을천(자미원)이 우주에서 어떠한 위치와 역할을
하기에 우리민족이 오랜 기간 그렇게 열렬히 신앙하여 왔고 궁궐조성에까지 그대로 모방하였는 가를
알아보자(중국에서도 북경의 자금성은 자미원을 본 뜬 것이고, 자미원의 색깔인 자줏빛 옷은 황제 이외
에는 입지 못하는 황제의 색깔이었다).
우주 근본자리(태을천)의 우주영파 편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하늘을 오늘날과 달리 독특
하게 분류했다(고대 천문학).
하늘의 중심에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태을천)이 있고, 그 밖으로 28수(宿) 안의 태미원과
28수 밖의 천시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천문의 분포를 3원, 28수 그리고 300의 성좌(별자리)와 1,460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미궁은 하늘의 핵심으로 상제가 머무는 곳이며, 이러한 자미궁은 제후격인 28수(동서남북 각 7개)의
호위를 받고, 28수는 28수대로 해와 달, 목, 화, 토, 금, 수성의 7개 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
하늘이 구천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자미궁을 구천(九天)궁궐이라고도 하며, 이를 본따서 땅의
궁궐을 구중(九重)궁궐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늘의 모든 별들의 중심(자미원)에는 북극성이 자리잡고 있고, 바로 가까이에서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모시고 그 주위를 24시간을 두고 한 바퀴씩 돌면서, 하늘의 뭇별을 다스리고 있다.
북두칠성은 자미원에 흩어져 있는 각 별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별들을 연결하는 힘은 북두칠성이 보내는
중력의 힘이다.
북두칠성은 자미원 밖으로는 28수와 태양계 별들을 다스린다.
북두칠성을 따라서 28수와 오위(五緯: 목, 화, 토, 금, 수성)가 따라 움직인다.
모든 별들은 이 북두칠성의 힘에 이끌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북극성은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중심이다.
태양계는 태양계의 모든 별들을 거느리고 태양계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북극성 주변을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즉 태양계는 북극성 주변을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태양계는 북극성이 주재하는 우주에서 볼 때 하나의 점인 것이다.
이 우주는 제 마음대로 도는 것이 아니고, '5·7·1 묘연(妙衍)'의 천부공식에 의해 정연하게 움직인다.
즉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운행관계도 5·7·1 묘연하고, 북두칠성 자체의 존재구조도 5·7·1 묘연하며,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28수(28수의 중심엔 작은 곰 별자리로 불리는 북극5성이 떠 있다)와 북극성의 관계
또한 5·7·1 묘연하다.
다음은 지구와 북극성의 관계를 살펴보자.
북극성은 우주의 북쪽 끝인 황도북극에서 동쪽으로 23.5도 각도인 천(天)의 북극에 떠 있다.
지구의 축은 이 북극성 을 향하여 23.5도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반복한다.
문왕팔괘를 보면, 하늘(乾)이 서북쪽에 있고 땅(坤)이 서남쪽에 있는 데 이것은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말한다.
지구는 황도 북극을 향하여 스스로 바로 서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북극성과 반대편의 23.5도
각이 되는 곳에 있는 직녀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세차(歲差)운동을 한다.
또한 북극성도 항상 같은 위치에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126. 천의 북극과 황도 북극〉
우리는 제 3부에서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 것은 별자리 28수의 배치가 3양 2음 운동을 하기 때문
이라고 배웠다. 또한 3양 2음으로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보다 많아 선천인류 역사가 남성이 주도하는
분열과 발전의 상극의 과정을 걸어왔다는 것도 배웠다.
천문(天文)이란 하늘의 글월이란 뜻이다.
하늘에 글자가 써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는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 대한 어떤
예시(豫示)가 천체의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선조들은 본 것이다.
즉 우리 조상들은 신교 정신에 따라 하늘에는 절대적인 주재자가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
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祭天)의식이 오늘날 우리 생활속 깊이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천지인 합일 사상에 따라 인간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야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고,
하늘은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영혼이 돌아갈 고향으로 믿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빛이 1→3(삼원색)→7(일곱 무지개)로 전개되고 우리 몸이 1→3(삼혼三魂)→7(칠백
七魄, 7개 챠크라)로 짜여 있듯이,
우주도 1(우주 본체)→3(자미원, 태미원, 천시원)→7(북두칠성 또는 4×7=28수)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다.
즉, 북두칠성을 천제(天帝)를 대변하는 별로 보았고, 하느님의 자손인 한민족으로선 죽어서도 원래 왔던
하느님 고향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 아무런 망원경도 없이 하늘을 보고 오늘날 봐도 놀랄만큼 정확한 천문도를 작성하고,
그 수 많은 별자리와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별자리를 그냥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혜안을 가지고 보았다.
예로부터 도인들은 무슨 별을 봐야겠다고 응념하면 낮과 밤에 상관없이 해와 달, 별들을 관측하였던것이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 앞서 고구려를 침입한 수나라의 우문중장군에게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천문을 연구해서 천도에 따라 방책을 세웠고 땅의 이치를 깨우쳐 신묘한 전술을
개발하였다)라는 편지를 보내 철수를 미리 권고한 단적인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천문지리에
통달했다
(5세기말-6세기초 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우리나라- 고구려- 에서
제작된 것도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 선조들의 천문법은 인간과 천체는 하나라는 철학에 근거한 법이었다.
일식과 월식이 인간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하늘의 별은 지상 인간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보았다.
즉 천지인 합일사상 또는 인간은 소우주라 생각하신 것이다.
고조선의 감성(監星)에서 시작해 신라와 고구려의 첨성대, 고려의 태사국과 서운관, 조선의 관상감으로
수천년간 내려온 천문학 전통이 끊기기 시작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서양식 천문학과 별자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특히 일제는 우리 고유의 천문학을 정책적으로 축소 왜곡시켰으니, 우리의 왕립 천문대는 1904년부터 일개
측우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제는 또한 우리 겨레가 별에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생각들을 미신이라는 누명을 씌워 제거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별자리, 특히 북두칠성 신앙은 제 자리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한한한 비밀과 사명에서 발췌>
칠성신은 우리 민족이 존재하면서부터 삼신신앙과 더불어 믿어온 신이다.
칠성신이라고 하면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다놓고 자손들의 무병장수와 복을 비는 모습을 제일
먼저 연상하게 된다.
무교의 굿거리 중에서 칠성굿을 가장 큰 거리로 치고 있으며 굿 또한 웅장하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신 칠성님도 불교의 신으로 변한지가 오래 되었다.
오히려 무당들이 칠성거리를 불사제석거리, 또는 불사거리로 부르고 있으니 불교가 오랫동안 조금씩
바위를 뚫듯이 무당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 칠성이라고 하면 북두칠성을 떠올리게 된다. 북두칠성은 우리 민족이 유별나게 사랑해 온 별자리다.
삶의 길흉화복을 모두 북두칠성에서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가(巫歌)에는 동두칠성, 남두칠성, 서두칠성 북두칠성, 이라 하여 칠성이 있는 위치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부른다. 이것을 28수(28宿)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칠성님이라 하면 북두칠성을 말한다. 또 장소마다 칠성을 붙여 칠성신의 종류는 많이 있다.
이것은 여러 칠성신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인 칠성님은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물가에도 칠성신이 있고 장독대에도 칠성신이 있다. 산에는 바위칠성이 있다.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고 있다.
우리 할머니들은 자손들이 큰일을 앞두거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장독대에다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빌었다.
이는 장독대는 낮에는 빛이 잘 들고 밤에는 달빛이 바로 비추는 곳이다.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것은 정화수에 곧장 칠성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또 우물가에서 칠성을 비는 이유는 우물에 바로 칠성이 비춰지기 주므로 우물이 바로 칠성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우물들은 둥근형보다는 정(井)자 형태의 우물이 많다.
정(井)자가 바로 칠성의 선기옥형 즉, 칠성의 국자 모양에 해당한다.
우물 정(井)의 우물형태는 곧 사정(四政)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선기옥형은 옛날 고대 사람들이 별을 관측하는 도구를 나타내는 말이다.
선기옥형을 달리 천상옥경이라고 부리기도 하는데 삼신 즉 하나님이 사시는 곳이다.
그곳에서 칠정을 베풀어 하늘을 다스렸는지도 모른다.
하늘의 정치를 본받아 인간들도 땅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을 칠정에 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칠성신께 많은 공을 들였다.
인간의 생명은 삼신께서 주시지만 인간들의 수명장수와 길흉화복은 칠성신이 관장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칠성신을 믿고 있으며 무교에서는 제일 큰 신으로 받들며 굿거리 중 칠성거리를
제일 큰 거리로 여기고 있다.
칠성신에 대한 우리 민족의 신봉은 불교에도 영향을 끼쳐 각 사찰마다 칠성각을 세우게 되었다.
노중평의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에 「북두칠성은 항상 동북 간방(艮方)에서 떠서 서남 곤방(坤方)으로
진다. 이 방위를 귀방(鬼方), 즉 귀신의 방위라고 한다.
북두칠성이 이렇게 귀신의 길을 매일 한 번씩 지나간다.
귀신의 길은 신명이 활동하는 길이다. 간방은 신명이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므로 표귀방(表鬼方)이라고 하고
곤방은 신명이 숨어서 활동하므로 이귀방(裏鬼方)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간방에 속해 있으므로 표귀방에 있다.
그 범위는 함경도의 검덕산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이 갈라지는 각곳산에 이른다.」고 말한다.
북두칠성이 표귀방에서 떠서 이귀방으로 지므로 한밤에 귀신이 나타났다가도 닭이 울면 사라진다는 설화가
생겨났다.
또한 전국 사찰의 칠성각이나 산신각의 위치를 보면 칠성이 뜨는 동북 간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대웅전이 자리한 방위도 반드시 동북 간방으로 되어 있으며 중국의 유명한 사당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칠성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간방에 앉히고 곤방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먼 옛날 중국 땅이 동이족의 활동무대였고 사당을 지은 주인도 바로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동북 간방, 즉 칠성이 떠서 지는 길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는 방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동북 간방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토종들이 우수하고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토종학회에 따르면 외국의 종자회사들이 우리나라의 수많은 종자를 수집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의 토종은 품질이 우수하고 맛이 독특한 것이 모두 동북 간방에서 칠성의 정기를 받고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북 간방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이유는 동북 간방을 지키는 신명이 곧 칠성신명이기 때문이다.
칠성신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각 별마다 하는 역할도 각각 다르다.
제1성은 천추성(天樞星) 또는 생기탐랑성(生氣貪狼)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도리를 펼치는 별로, 천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별이다.
북극성과 함께 하늘의 중심을 잡아준다고 하는데 이 별에서 황제를 탄생시킨다고 한다.
쥐띠에 태어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2성은 천선성(天璇星) 또는 천을거문성(天乙巨門)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창고요, 복 주머니의 원천이
되는 별이다. 임금의 족보를 관장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왕족의 족보를 선원보(璇源譜)라고 하는데 그 이름을 천선성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천선성은 인간의 식록을 주관하므로 칠성님 전에 복을 비는 이유가 바로 이 별 때문이다.
우리가 설날 복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이유와 섣달그믐에 팔았던 복조리 등은 바로 이 별의 감응을 받아
복을 받기 위함이다.
소띠와 돼지띠에 태어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3성은 천기성(天璣星) 또는 화해녹존성(禍害祿存)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복을 받은 만큼 화도 함께 받게
하는 별로서, 인간이 평생을 노력하여 살 만큼 되었다고 안심할 때 일시에 재물이며 생명을 앗아가는 역할
을 담당한 별이다. 흔히 주변에서 “살 만하니 죽었다”는 말은 녹존성에서 장난을 친 것이다.
인간이 살만큼 될 때까지는 수많은 고생도 하였지만 남에게 못할 짓도 많이 하였을 것이다.
이 때 남에게 덕을 베풀지 않으면 이 별에서 그 사람을 데리고 가게 되는 것이다.
즉 칠성판을 상징하는 별로서, 인간의 죽음을 관장한다.
호랑이띠와 개띠에 태어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4성은 천권성(天權星) 또는 육살문곡성(六煞文曲)이라고 하는데 육살이란 경양(擎羊), 타라(陀羅),
화성(火星), 영성(鈴星)의 네 살성과 천공(天空), 지겁(地劫)이라는 두 흉성을 합친 것을 말한다.
이 별은 하늘의 권력을 잡는 별이다. 이 별에 조응하면 권력은 잡으나 요절하는 수가 생긴다고 한다.
세조 때 남이장군과 중종 때 조광조가 여기에 해당되나 이 별의 정기를 타고나야만 크게 출세할 수가 있다.
권세를 좌우하는 별이다. 토끼띠와 닭띠에 태어 난 사람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5성은 옥형성(玉衡星) 또는 오귀염정성(五鬼廉貞)이라고 하는데 북두칠성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늘의 형벌을 시행하는 별로서 중심을 잘 지키면 세종대왕과 같은 명군이 나와 태평성대를 이루지만
그렇지 못하면 연산군이나 스탈린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한다.
민가에서 이 별에 조응하면 효자와 망나니가 나온다.
용띠와 원숭이띠에 태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6성은 개양성(開陽星) 또는 연년무곡성(延年武曲)이라고 하는데, 자미궁의 방어를 책임지는 별로서
북두칠성 중, 힘이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 또 악살과 흉성을 물리치며 오른손에 천부인을 들고 있다 한다.
천둥 번개를 치도록 명하며 하늘의 모든 별을 부릴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서, 이 별은 인간의 수명을 무쇠에 돌 끈 단 듯 길게 늘려 주는 별이다.
특히 노인들이 이 별에다 빌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는데 칠성님께 명을 비는 이유이기도 하다.
뱀띠와 양띠에 태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7성은 요광성(搖光星) 또는 파군절명성(破軍絶命)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기운을 관장하는 별로서 특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별이다.
옛날 임금들과 장군들은 요광성을 군사의 신(軍神)으로 모시고 초제(醮祭)를 지냈다.
초제를 가장 먼저 지냈던 왕이 14대 한웅천왕인 자오지천왕 일명 치우천왕 일 것이다.
말띠에 때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그리고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이 아니라 9개의 별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잘 볼 수 없는 2개의 별이 더 존재하고 있다.
이 별은 칠성의 첫째별인 천추성의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좌측에 있는 별을 보성(輔)이라 하고 우측별을
필성(弼)이라고 한다.
이 두 별을 합쳐서 좌보우필성이라 한다.
이 별은 천추성을 보필하는 별인데 여기서 우리는 보필(輔弼)이라는 단어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은 칠성 즉 부두칠성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 왔다
고조선 때에는 무덤인 고인돌 뚜껑 위에 북두칠성을 그려 넣었고 그 뒤를 이은 고구려 역시 무덤 속에
북두칠성을 크게 그려 넣었다.
이어서 고려도 그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칠성판이 등장하게 되었다.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칠성판 위에 누워야 편안히 염라대왕을 통과하고 칠성님 품으로 돌아 갈 수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칠성은 우리에게 수명을 관장하고 복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관장하고 있다.
단군 이후 우리 역사상 북두칠성을 가장 숭상했던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북두칠성을 나라의 징표로 삼았다.
임금 스스로 자신을 북두칠성의 화신으로 생각하여 국강(國?)이라고 하였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토기에 우물 정(井)자의 표시가 있었다고 광개토대왕의 문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광개토대왕의 문장이 아니라 칠성을 섬기는 고구려의 문장인 것이다.
즉 칠성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다.
아마 우물 정(井)자가 들어 있는 토기들은 칠성님께 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토기들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도 우물 정(井)자가 새겨져 있는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고구려군 이 일본을 정복하여 그곳에서
칠성님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렸다고 볼 수가 있다.
북두칠성을 주술적인 말로 ‘괴강(魁?)’이라고 하는데 ‘괴강’의 괴(魁)자는 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귀(鬼)자와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두(斗)자가 결합한 문자라고 한다. 즉 칠성의 신명에 잡혔다는 뜻이다.
‘괴강(魁?)’을 ‘국강(國?)’으로 고쳐 부른 분은 바로 유명한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한다.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괴강(魁?)의 강(?)은 사정(四政)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사정이란 자(子:정북)?오(午:정남)?묘(卯:정동)?유(酉:정서)의 네 방위를 말하는 것으로 천지를
바르게 지키고 세운다는 뜻이다.
즉 북두칠성의‘천추’‘천선’‘천기’‘천권’을 말하는 것이며 이 네 별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공간을 선기옥형
(璇璣玉衡)이라고 하는데 이는 똑바른 정사를 의미한다.
또한 선기옥형이 자시(子時)쯤 부터 땅을 향하게 된다.
이때부터 땅위의 모든 물은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게 되는데 북두칠성 정기를 많이 받고 적게 받음에 따라
물의 맛과 질이 달라진다.
밤에 별과 달의 빛을 받고 새벽이슬에 젖은 물을 으뜸으로 치는 이유가 바로 북두칠성의 선기옥형의
기(氣)를 받은 물을 말하는 것으로 북두칠성의 기를 가장 많이 받는 자리를 천일생수(天一生水)하는 자리
라고 한다.
이물을 수정자가 내린 북극수라고 하여 가장 좋은 물로 쳤다.
종가 댁에 우물이 집안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바로 북극수를 얻기 위함이다.
북두칠성을 음두성과 양두성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음두성은 남두육성을, 양두성은 북두칠성을 말하기도
한다. 남두육성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신명이고 북두칠성은 생명을 거두어 가는 신명이라고도 말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칠성신이 인간에게 복을 주는 칠복신(七福神)으로 변하였다.
칠복신의 명칭을 살펴보면 대흑천(大黑天), 혜비수(惠比須), 비사문천(毘沙門天), 변재천(弁財天), 복록수
(福祿壽), 수노인(壽老人), 포대(布袋)라고 부르며 명산 입구마다 많이 모셔져 있으며 상아나 옥으로 형상을
만들어 모시는 가정도 많이 있다.
어찌 보면 일본인들이 우리들보다 더 칠성신앙을 숭배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우리들은 죽어서도 칠성님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시신을 안치하는 칠성판이 그렇고 송장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나타낸다.
그러나 지금의 칠성판에는 일곱 개의 별이 없다. 칠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죽어서 가기는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일깨워 준 칠성에서 태어나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칠성신앙을 송두리째 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docid=216326
제석굿에서 팽개중의 농간으로 칠성님을 덮어 쓰는 제석
노중평
우리 굿의 특징은 1인 전속으로 주무가 굿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장구재비가 주무를 도와서 조무역할을 한다.
주무와 조무가 주고받는 무가사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주무와 조주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굿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첫째, 굿을 이해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려면, 굿에 나오는 무가사설에 나오는 많은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고 하겠다.
굿을 접하는 사람들이 굿에 쓰이는 용어의 의미를 알고 나면, 굿을 이해하는 데에 훨씬 수월해 질 것이다.
둘째, 굿에는 종류가 많으므로 국민교육용으로 대표성이 있는 텍스트를 하나 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굿 중에서 대표성있는 굿을 하나 들라면 황해도굿의 철무리굿을 들고 싶다.
이 굿 하나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 굿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지리라고 본다.
이 굿에는 마고에서부터 시작하여 단군왕검에 이르는 1만년역사에서 생산된 종교적 산물이 그대로 망라되어
있다. 우리는 굿을 멀리한 탓에 지금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셋째, 외국의 인류학자들은 멀지 않은 장래에 멸망하게 될 것으로 예언되어지고 있는 기독교의 대체종교를
찾기 위하여 샤머니즘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의 굿이 절대로 샤머니즘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인류가 생산해 낸 종교들 가운데에 최고(最古, 最高)의 종교임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철무리굿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분석하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넷째, 우리 무당과 무속종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굿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류를 시정하지
않으면, 굿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 굿에서 무엇을 알지 못하고, 무엇을
오해하고,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최고의 영능력을 타고난 무당들이, 오류에 기초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결과는 본인을 불행
으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본인의 활동에 의지하고 있는 모든 신명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이번에 인용하는 본문은 무당과 장구재비가 주고받으며 구연하는 무가사설의 주인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냥 듣기만 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무당과 장고재비가 장면전환을 해가며 전환된 장면 속에서 다른 주인공이 되어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만치,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무당은 제석굿에서 종교의 근원을 밝혀주는 <천수타령>과 <천수 뿌리기>를 끝내고, 다음 단계인 <복주기와
명주기>로 넘어간다.
복을 주고 명을 주는 주체는 칠성님이다.
그러나 제석이 팽개중에게 엎여 들어와 칠성님을 제치고 주인행세를 하려 든다.
이 대목이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무당 : 검으나 따에 희나백성은 잠들여 놓고, 약수弱水 삼천리를 잠깐 건너가서, 삼신산 불로초, 만수산
가양초(취)를 구해다가, 이 댁 가중에 복이 적고 명이 짧다니,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겠구나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위에 무당이 하는 말은 칠성님이 무당을 통하여 하는 말이다.
칠성님이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칠성님만이 그의 백성을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고, 또한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이 오랜 세월을 칠성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므나 따’는 칠성을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단군왕검의 땅이고,
‘희나백성’은 단군왕검이 다스리는 조선백성이다.
약수를 건너가야 곤륜산이 있기 때문에 칠성님이 이 강은 건넌다는 것이다.
칠성님이 이 강을 건너는 이유는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을 살려 명을 주고 복을 주기 위해서이다.
약수弱水는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강인데, 물의 힘이 너무나 약한 강이라, 새털조차 갈라않지 않는다고 한다.
(산해경) 이 강이 장성長城 수 천리 밖에 있다.(산해경)
이 강은 인간으로서는 갈 수 없는 강을 의미한다. 하나님만이 가실 수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
본문에 삼신산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곤륜산과 삼신산을 혼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신산과 곤륜산은 서로 위치가 다르다. 필자는 삼신산은 발해만에 있고, 곤륜산은 타클라칸사막과 천산산맥
을 넘어가야 있는 산이기 때문에, 같은 산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산에는 북두칠성이 떠서 조응하는 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북두칠성이 관장하는 산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조상은 이들 두 산을 성산으로 여기며 중요시해왔다.
여기에서 불로초가 난다고 했으니, 칠성님을 믿는 사람들의 성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만수산萬壽山은 개성에 있는 송악산이다.
이곳에서 나는 가양취(마타리)는 9속 350여 종이나 있는 흔한 풀인데, 약재로 쓴다.
불로초는 구하기 힘든 약초이고, 가양취는 구하기 쉬운 약초이다.
불로초와 가양취를 섞어 줌으로써 구하기 힘든 명과 복을 구하기 쉬운 명과 복으로 바꾸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제석공미로 바친 떡을 굿상에서 갱정과 제금에 담아 든다 -
상교대야~ 상교대야~
장고 : 네. 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제석공미는 칠성님에게 바치는 공양미이다. 그러므로 칠성님공양미로 바꾸어 불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칠성님공양미로 바친 떡을 거두어 논아주기 위하여 갱정과 제금에 담는다.
굿에서는 떡이 불로초와 가양취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당은 상교대야~상교대야~하고 팽개중을 부른다. 무당이 칠성님을 대리하여 팽개중을 부르는 것이다.
상교象敎가 불교를 의미하므로, 대隊를 붙여, 상교대象敎隊라고 하면 중의 무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장고재비가 팽개중이 되어 ‘네. 네.’하고 대답한다.
무당 : 삼신산 불로초를 구해 왔으니, 어디로 가서 누구를 찾아 주어야 하느냐?
장고 : 제석님(실은 제석님이 아니라 칠성님이다. 팽게중이 칠성님을 제석님으로 바꿔치기 하기 위하여
수작을 부리고 있다)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시오.
무당 : 예끼 이놈. 어른은 길러보고 아이는 섬겨 보았느냐?(칠성님이 팽개중의 얕은 술수를 알아차리고 책망
한다) 칠성님보고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라니.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무당과 장고재비의 대화가 묘하게 돌아간다.
이때의 무당은 칠성님의 역할을 하고, 장고재비는 팽개중의 역할을 한다.
칠성님이 불로초를 구해 와서, 팽개중에게 "이것을 누구네 집에 전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팽개중은 자기에게 묻는 분이 칠성님임을 무시하고 제석님이라고 한다.
“제석님,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시오.”라고 하며 퉁명을 떠는 것이다.
칠성님은 자신이 칠성님임을 상기시키며 책망한다. “예끼 이놈, 어른은 길러보고 아이는 섬겨보았느냐?
칠성님보고 마음대로 돌아다녀 보라니. 어른은 길러 보고, 아이는 섬겨 보았느냐?”라는 말에서, 어른이 칠성님
이고, 아이가 제석임을 알 수 있다. 이점을 분명히 해 두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팽개중이 무교에게 무슨 악행을 저질렀는가 하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장고 : 그러면 삼신산에 약을 사려, 삼신산에 명과 복을 사려, 불사약을 사려, 불사약을 사려 하며 외쳐 보슈.
무당 : (만복떡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사려, 사려, 이 중하고 끼어서 불사약을 사려. 아무리 다녀 봐도
사자는 사람 없네.
장고 : 여보시오. 칠성님. 중 소리는 쑥 빼고 불사약만 사라고 해야지. 중하고 사라고 하면 불신천왕佛神天王이
따라 들까봐 무서워 대답을 안해요.
무당 : 옳지. 그렇겠구만. 그럼 이 중은 쑥 빼고 명과 복을 사시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쪽)
이 무가사설은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게 된다.
칠성님은 자기를 몰아내고 제석님을 칠성님의 자리에 앉히려고 술수를 부리는 팽개중을 불로초, 가양취와 함께
팔아버리려고 한다.
불로초와 가양취와 중을 함께 대려서 약으로 마셔버리라는 뜻인가?
칠성님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희귀한 약재를 사는 사람이 없다. 굿을 해 달라고 청한 이 댁 가중조차도 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무 쓸모없는 중을 불로초와 함께 사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불신대왕이 중을 따라 들어올까 보아 겁이 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민중들로부터 배척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고재비는 중을 빼고 “삼신산에서 캐 온 약 불로초사려! 삼신산에서 받아 온 명과 복 사려! 불사약을 사려!”
하라고 정정해 준다. 칠성님은 장고재비가 시키는 대로 한다.
-이 때 여주네는 새 바가지에 쌀을 담아 치마폭을 들고 나오며 대답한다-
여주네 : 네. 네.
무당 : 옳지.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7, 88쪽)
칠성님이 중을 빼고, 사라고 외치자, 여주네가 나서서, "사겠다"고 대답한다.
무당이 "옳지" 하고 대답한다. 산다는 말은 물건을 산다는 말이지만, 또 사람이 산다는 말도 되는 묘한
뉴앙스를 가지고 있다. 거래라는 말과 삶이라는 말이 함께 있다.
-여주네가 12폭 치마를 쭉 벌리고 나오면, 만신은 “주인마님, 소승 무안 드리오” 하면서 여주네를 어루
만지며, 치마폭에 복떡을 쏟아준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여주네는 12폭 치마를 쭉 벌리면서 칠성님이 파신다는 것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무당은 돌연히 팽개승으로 변하여 “주인마님, 소승 문안드리오”하고 뚱딴지를 부린다.
제석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칠성님을 덮어쓰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여주네를 어루만지며, 치마폭에 복떡을 쏟아준다.
세상에 이처럼 화가 나는 황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칠성님이 제석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전통신앙인 칠성신앙이 외래종교인 불교에게 눈뜨고 당하게 되는 일을 제석굿에서는 무당과 장고재비가 구연
하는 무가사설에서 역할을 바꾸어가며 보여주고 있다.
장고 : 여보시오. 스님인가, 중상(장승을 비꼬아 하는 말)인가, 또 검특한 마음을 먹고, 주인마님 손목을 왜
만지며 흑숙학숙(흑죽학죽-어물어물) 합니까?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이 광경을 목도한 장고재비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스님인가 중상인가 하고 비꼰다. 왜 또 흑심을 품고, 주인마님의 손을 어물어물 주무르느냐고 따진다.
이때의 주인마님은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을 대표한다.
장고재비가 하는 말은 "왜 조선백성을 농락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우리 굿의 명맥을 이어 온 사람들이 장구재비였다고 볼 수 있다.
무당 : 자라보고 놀란 놈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생각이 달라, 주인마님 손목을 어루만지는 게 아니고,
이 정성을 드리고, 아들을 낳으면, 평양감사를 낳고, 딸을 낳으면 의주부인을 낳을 제, 마나님의 마음씨가
어질어서 물을 아껴 쓰니, 용왕님이 돌보겠고, 나무를 아껴 때니, 산신님이 굽어보고, 이웃을 사촌처럼 사랑
하니 자손이 복이 되고, 부모공경을 잘 하니 자손만대 부귀공명하리라. (하면서 떡을 치마폭에 쏟아주며)
이 복을 받아 백모래 속에다가 묻어 두었다가 3년 후에 움이 돋고 싹이 나면 다시 오리라.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무당은 또 다시 팽개중으로 돌아가 능청을 떨며 사기 치는 무가사설을 늘어놓는다.
팽개중으로선 가당치 않은 무가사설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 정성을 드리고 나면, 삼신·용왕·산신이 도우실 것이요, 자손이 복이 되고, 자손만대 부귀공명을 누리
겠다고 한다.
그러나 팽개중의 협잡으로 그런 결과가 올지는 미지수이다.
"이 복을 받아, 백모래 속에다가 묻어 두었다가, 3년 후에 움이 돋고 싹이 나면 다시 온다"고 하였으니,
사기의 실상이 들어난 셈이라, 팽개중이 끼어든 굿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굿이라고 하겠다.
(나무아미타불)
명이 가요 복이 가요 삼신산 불로초가 가요 칠성님께(서) 가지(고 계신) 명복이 갑니다.
오시는 길에 명이 가요, 가시는 길에 복이 가요. 이 복을 받으시면, 마음먹었던 일은 소원 이루리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그러나 칠성님이 돕는다면 팽개중의 사기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명이 가고, 복이 가고, 삼신산의 불로초가 가고, 칠성님께서 가지고 계신 명과 복이 가고,
복을 받으면, 마음먹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무당은 친척들과 구경꾼들에게 제금에 받쳐 든 복떡을 고루 주며 축원을 한다. 이때 떡을 받은 이들은 제금
위에 돈을 놓는다-
(<거므나 따에 희나백성> 철무리굿 제석굿 88쪽)
무당은 무가사설을 구연하면서, 구경꾼들에게 복덕을 나누어 준다.
본문에는 불교가 너무 많이 침식되어 있어서 침식당한 부분을 드러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참고: 노중평저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
북두칠성은 우리의 별 (칠성을 잃어버린 우리들)
칠성신
칠성신은 우리 민족이 존재하면서부터 삼신신앙과 더불어 믿어온 신이다.
칠성신이라고 하면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다놓고 자손들의 무병장수와 복을 비는 모습을 제일 먼저 연상하게 된다.
무교의 굿거리 중에서 칠성굿을 가장 큰 거리로 치고 있으며 굿 또한 웅장하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신 칠성님도 불교의 신으로 변한지가 오래 되었다.
오히려 무당들이 칠성거리를 불사제석거리, 또는 불사거리로 부르고 있으니 불교가 오랫동안 조금씩 바위를 뚫듯이 무당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 칠성이라고 하면 북두칠성을 떠올리게 된다.
북두칠성은 우리 민족이 유별나게 사랑해 온 별자리다.
삶의 길흉화복을 모두 북두칠성에서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가(巫歌)에는 동두칠성, 남두칠성, 서두칠성 북두칠성, 이라 하여 칠성이 있는 위치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부른다.
이것을 28수(28宿)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칠성님이라 하면 북두칠성을 말한다.
또 장소마다 칠성을 붙여 칠성신의 종류는 많이 있다.
이것은 여러 칠성신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인 칠성님은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물가에도 칠성신이 있고 장독대에도 칠성신이 있다.
산에는 바위칠성이 있다.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고 있다.
우리 할머니들은 자손들이 큰일을 앞두거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장독대에다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빌었다.
이는 장독대는 낮에는 빛이 잘 들고 밤에는 달빛이 바로 비추는 곳이다.
이곳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것은 정화수에 곧장 칠성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또 우물가에서 칠성을 비는 이유는 우물에 바로 칠성이 비춰지기 주므로 우물이 바로 칠성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우물들은 둥근형보다는 정(井)자 형태의 우물이 많다.
정(井)자가 바로 칠성의 선기옥형 즉, 칠성의 국자 모양에 해당한다. 우물 정(井)의 우물형태는 곧 사정(四政)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선기옥형은 옛날 고대 사람들이 별을 관측하는 도구를 나타내는 말이다.
선기옥형을 달리 천상옥경이라고 부리기도 하는데 삼신 즉 하나님이 사시는 곳이다.
그곳에서 칠정을 베풀어 하늘을 다스렸는지도 모른다.
하늘의 정치를 본받아 인간들도 땅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을 칠정에 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칠성신께 많은 공을 들였다.
인간의 생명은 삼신께서 주시지만 인간들의 수명장수와 길흉화복은 칠성신이 관장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칠성신을 믿고 있으며 무교에서는 제일 큰 신으로 받들며 굿거리 중 칠성거리를 제일 큰 거리로 여기고 있다.
칠성신에 대한 우리 민족의 신봉은 불교에도 영향을 끼쳐 각 사찰마다 칠성각을 세우게 되었다.
노중평의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에 「북두칠성은 항상 동북 간방(艮方)에서 떠서 서남 곤방(坤方)으로 진다. 이 방위를 귀방(鬼方), 즉 귀신의 방위라고 한다.
북두칠성이 이렇게 귀신의 길을 매일 한 번씩 지나간다.
귀신의 길은 신명이 활동하는 길이다. 간방은 신명이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므로 표귀방(表鬼方)이라고 하고 곤방은 신명이 숨어서 활동하므로 이귀방(裏鬼方)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간방에 속해 있으므로 표귀방에 있다.
그 범위는 함경도의 검덕산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이 갈라지는 각곳산에 이른다.」고 말한다.
북두칠성이 표귀방에서 떠서 이귀방으로 지므로 한밤에 귀신이 나타났다가도 닭이 울면 사라진다는 설화가 생겨났다.
또한 전국 사찰의 칠성각이나 산신각의 위치를 보면 칠성이 뜨는 동북 간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대웅전이 자리한 방위도 반드시 동북 간방으로 되어 있으며 중국의 유명한 사당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 칠성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즉 간방에 앉히고 곤방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먼 옛날 중국 땅이 동이족의 활동무대였고 사당을 지은 주인도 바로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동북 간방, 즉 칠성이 떠서 지는 길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는 방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동북 간방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토종들이 우수하고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토종학회에 따르면 외국의 종자회사들이 우리나라의 수많은 종자를 수집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의 토종은 품질이 우수하고 맛이 독특한 것이 모두 동북 간방에서 칠성의 정기를 받고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북 간방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이유는 동북 간방을 지키는 신명이 곧 칠성신명이기 때문이다.
칠성신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각 별마다 하는 역할도 각각 다르다.
제1성은 천추성(天樞星) 또는 생기탐랑성(生氣貪狼)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도리를 펼치는 별로, 천제의 임무를 수행하는 별이다.
북극성과 함께 하늘의 중심을 잡아준다고 하는데 이 별에서 황제를 탄생시킨다고 한다.
쥐띠에 태어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2성은 천선성(天璇星) 또는 천을거문성(天乙巨門)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창고요, 복 주머니의 원천이 되는 별이다.
임금의 족보를 관장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왕족의 족보를 선원보(璇源譜)라고 하는데 그 이름을 천선성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천선성은 인간의 식록을 주관하므로 칠성님 전에 복을 비는 이유가 바로 이 별 때문이다.
우리가 설날 복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이유와 섣달그믐에 팔았던 복조리 등은 바로 이 별의 감응을 받아 복을 받기 위함이다.
소띠와 돼지띠에 태어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3성은 천기성(天璣星) 또는 화해녹존성(禍害祿存)이라고 하는데, 인간이 복을 받은 만큼 화도 함께 받게 하는 별로서, 인간이 평생을 노력하여 살 만큼 되었다고 안심할 때 일시에 재물이며 생명을 앗아가는 역할을 담당한 별이다.
흔히 주변에서 “살 만하니 죽었다”는 말은 녹존성에서 장난을 친 것이다.
인간이 살만큼 될 때까지는 수많은 고생도 하였지만 남에게 못할 짓도 많이 하였을 것이다.
이 때 남에게 덕을 베풀지 않으면 이 별에서 그 사람을 데리고 가게 되는 것이다.
즉 칠성판을 상징하는 별로서, 인간의 죽음을 관장한다.
호랑이띠와 개띠에 태어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4성은 천권성(天權星) 또는 육살문곡성(六煞文曲)이라고 하는데 육살이란 경양(擎羊), 타라(陀羅), 화성(火星), 영성(鈴星)의 네 살성과 천공(天空), 지겁(地劫)이라는 두 흉성을 합친 것을 말한다.
이 별은 하늘의 권력을 잡는 별이다.
이 별에 조응하면 권력은 잡으나 요절하는 수가 생긴다고 한다. 세조 때 남이장군과 중종 때 조광조가 여기에 해당되나 이 별의 정기를 타고나야만 크게 출세할 수가 있다.
권세를 좌우하는 별이다.
토끼띠와 닭띠에 태어 난 사람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5성은 옥형성(玉衡星) 또는 오귀염정성(五鬼廉貞)이라고 하는데 북두칠성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늘의 형벌을 시행하는 별로서 중심을 잘 지키면 세종대왕과 같은 명군이 나와 태평성대를 이루지만 그렇지 못하면 연산군이나 스탈린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한다.
민가에서 이 별에 조응하면 효자와 망나니가 나온다.
용띠와 원숭이띠에 태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6성은 개양성(開陽星) 또는 연년무곡성(延年武曲)이라고 하는데, 자미궁의 방어를 책임지는 별로서 북두칠성 중, 힘이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
또 악살과 흉성을 물리치며 오른손에 천부인을 들고 있다 한다.
천둥 번개를 치도록 명하며 하늘의 모든 별을 부릴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서, 이 별은 인간의 수명을 무쇠에 돌 끈 단 듯 길게 늘려 주는 별이다. 특히 노인들이 이 별에다 빌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는데 칠성님께 명을 비는 이유이기도 하다.
뱀띠와 양띠에 태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제7성은 요광성(搖光星) 또는 파군절명성(破軍絶命)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기운을 관장하는 별로서 특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별이다.
옛날 임금들과 장군들은 요광성을 군사의 신(軍神)으로 모시고 초제(醮祭)를 지냈다.
초제를 가장 먼저 지냈던 왕이 14대 한웅천왕인 자오지천왕 일명 치우천왕 일 것이다.
말띠에 때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그리고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이 아니라 9개의 별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잘 볼 수 없는 2개의 별이 더 존재하고 있다.
이 별은 칠성의 첫째별인 천추성의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좌측에 있는 별을 보성(輔)이라 하고 우측별을 필성(弼)이라고 한다.
이 두 별을 합쳐서 좌보우필성이라 한다. 이 별은 천추성을 보필하는 별인데 여기서 우리는 보필(輔弼)이라는 단어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은 칠성 즉 부두칠성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 왔다
고조선 때에는 무덤인 고인돌 뚜껑 위에 북두칠성을 그려 넣었고 그 뒤를 이은 고구려 역시 무덤 속에 북두칠성을 크게 그려 넣었다.
이어서 고려도 그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칠성판이 등장하게 되었다.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칠성판 위에 누워야 편안히 염라대왕을 통과하고 칠성님 품으로 돌아 갈 수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칠성은 우리에게 수명을 관장하고 복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관장하고 있다.
단군 이후 우리 역사상 북두칠성을 가장 숭상했던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북두칠성을 나라의 징표로 삼았다.
임금 스스로 자신을 북두칠성의 화신으로 생각하여 국강(國?)이라고 하였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토기에 우물 정(井)자의 표시가 있었다고 광개토대왕의 문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광개토대왕의 문장이 아니라 칠성을 섬기는 고구려의 문장인 것이다.
즉 칠성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다.
아마 우물 정(井)자가 들어 있는 토기들은 칠성님께 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토기들이 아닌가 한다.
일본에서도 우물 정(井)자가 새겨져 있는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고구려군 이 일본을 정복하여 그곳에서 칠성님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제를 올렸다고 볼 수가 있다.
북두칠성을 주술적인 말로 ‘괴강(魁?)’이라고 하는데 ‘괴강’의 괴(魁)자는 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귀(鬼)자와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두(斗)자가 결합한 문자라고 한다.
즉 칠성의 신명에 잡혔다는 뜻이다. ‘괴강(魁?)’을 ‘국강(國?)’으로 고쳐 부른 분은 바로 유명한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한다.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괴강(魁?)의 강(?)은 사정(四政)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사정이란 자(子:정북)?오(午:정남)?묘(卯:정동)?유(酉:정서)의 네 방위를 말하는 것으로 천지를 바르게 지키고 세운다는 뜻이다. 즉 북두칠성의‘천추’‘천선’‘천기’‘천권’을 말하는 것이며 이 네 별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공간을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 하는데 이는 똑바른 정사를 의미한다.
또한 선기옥형이 자시(子時)쯤 부터 땅을 향하게 된다.
이때부터 땅위의 모든 물은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게 되는데 북두칠성 정기를 많이 받고 적게 받음에 따라 물의 맛과 질이 달라진다.
밤에 별과 달의 빛을 받고 새벽이슬에 젖은 물을 으뜸으로 치는 이유가 바로 북두칠성의 선기옥형의 기(氣)를 받은 물을 말하는 것으로 북두칠성의 기를 가장 많이 받는 자리를 천일생수(天一生水)하는 자리라고 한다.
이물을 수정자가 내린 북극수라고 하여 가장 좋은 물로 쳤다.
종가 댁에 우물이 집안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바로 북극수를 얻기 위함이다.
북두칠성을 음두성과 양두성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음두성은 남두육성을, 양두성은 북두칠성을 말하기도 한다.
남두육성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신명이고 북두칠성은 생명을 거두어 가는 신명이라고도 말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칠성신이 인간에게 복을 주는 칠복신(七福神)으로 변하였다.
칠복신의 명칭을 살펴보면 대흑천(大黑天), 혜비수(惠比須), 비사문천(毘沙門天), 변재천(弁財天), 복록수(福祿壽), 수노인(壽老人), 포대(布袋)라고 부르며 명산 입구마다 많이 모셔져 있으며 상아나 옥으로 형상을 만들어 모시는 가정도 많이 있다.
어찌 보면 일본인들이 우리들보다 더 칠성신앙을 숭배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우리들은 죽어서도 칠성님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시신을 안치하는 칠성판이 그렇고 송장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나타낸다.
그러나 지금의 칠성판에는 일곱 개의 별이 없다.
칠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죽어서 가기는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일깨워 준 칠성에서 태어나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칠성신앙을 송두리째 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을 하는 화랑과 마복칠성
삼국유사 융천사 혜성가편에 심성을 범하는 혜성을 발견한 세 화랑의 이름이 나온다.
제 5 거열랑, 제 6 실처랑, 제 7 보동랑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진평왕(579-632) 때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금강산으로 유람을 떠났다가 하늘에 혜성(길쓸별)이 나타나 심대성을 범하려 하는 것을 보고,
왜구가 침입하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곧 경주로 돌아가 임금에게 이를 고하였다.
임금은 융천사를 불러 왜구가 물러갈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명했다.
융천사는 선교의 선사이자 불교의 법승이었다.
그는 불교적인 해법을 찾지 않고, 선교적인 해법을 찾아, 혜성가라는 주문을 지어 불렀다.
그러자 하늘의 변괴가 사라지고, 왜구도 스스로 물러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융천사는 당대의 선사와 고승을 합한 역할을 담당한 대단히 명망이 높은 분이었다.
그를 융천사融天師라고 한 것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융천融天은 하늘과 인간, 하늘과 땅을 화합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사師로 불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융천사라는 직함에서 그가 천문을 보고 주술성이 있는 무가를 이어 불러 요성의 침범을 방비하는
주술사임도 알 수 있다.
그가 장차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는 3인의 화랑이 발견한 심대성心大星에서 밝혀진다.
심대성은 동방창룡칠수東方蒼龍七宿의 중심에 있는 별로서 신라의 국도인 경주를 비정하는 별이다.
혜성이 심대성을 범하고 있으므로 전쟁이 있을 것을 예고한다고 하겠다.
화랑 3인이 천문을 보고 이를 알아냈다는 것도, 당시의 화랑으로서는 천문을 아는 것이 화랑으로서
필수였다고 볼 수 있다.
혜성가에서는 혜성을 도시소시성道尸掃尸星이라고 하였다.
양주동선생은 이 도시소시성을 길쓸별(길을 쓰는 빗자루처럼 생긴 별)이라고 해석하였다.
혜성가에 심대성을 기록하지 않아서 심대성을 이두로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깝다.
3인의 화랑은 제 5, 제 6, 제 7로 서열을 표시하고 있어서, 이들이 마복칠성摩腹七星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마복칠성은 7명의 화랑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을 달리 칠성우七星友
라고도 하였다.
필자가 마복칠성을 해석해 보니, 한 화랑이 각기 다른 화랑의 부인들을 공유하고, 화랑의 부인은 화랑
들을 공유할 수 있는 겹사돈으로 묶여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우두머리가 제 1화랑이었다.
摩腹은 마麻-삼베를 손질했다는 뜻인데, 복服자와 합하여 손수 짠 베옷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마고麻姑시대로부터 입어온 삼베옷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고시대의 유습을 지켜오는 사람의 표시로 삼베옷을 입어서 마복칠성으로 불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을 7인으로 한정한 것은 북두칠성의 별 숫자에 맞추어 인원수를 제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자식을 마복자라고 하였다.
칠성각은 칠성을 모신 전각인데, 전각의 기둥에 주련이 붙어 있다. 주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있다.
七政齋臨爲聖主 三台共照仁賢臣
칠정재임위성주 삼태공조인현신
칠성님이 임하면 성군이 되고 삼태성이 비추면 현신이 된다
임금에게는 칠성이 임해야 하고, 신하에게는 삼태성이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임금은 성군이 되고, 신하는 어질고 현명한 신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무가에서 “등 뒤에는 북두칠성, 눈앞에는 삼태성”이라고 한다.
이들 달리 바꾸어 말하면, “백성의 배후에는 임금이 있고, 백성의 면전에는 신하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칠성사상이 될 것이다.
마고의 유시 천부삼인을 구현하고자 한 칠성신앙의 본고장 운주사
2006. 4. 22. 11:37에 화순 대신리 고인돌군의 답사를 끝내고 운주사(화순읍에서 30km거리)로 향했다.
운주사는 탑과 불상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탑과 불상을 파격적으로 배치하여 불교에 익숙한 사람들을 쇠망치로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충격을
준다. 정신이 제대로 밖인 사람이라면 이곳이 야외 절로 원래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절은 운주사雲住寺로 절 이름이 표기 되어 있는데,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절 이름보다 운주사運舟寺가 합당하다고 본다.
이 절이 드러내는 키워드가 운運자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운運을 <천부경>의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에서 가져 왔다고 보면, 주舟는 <천부경>의 삼사三四를 의미
한다고 볼 수 있다.
삼三은 <천부경>에서 일석삼극一析三極의 주제가 되는 3이다.
3은 우리의 사유체계를 구성하는 3이라는 숫자를 의미한다.
사四는 우리의 사유체계를 구성하는 4를 의미한다.
3은 분화· 확장· 확대를 의미하고, 4는 이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완성은 개체로서의 완성이 아니라 분화하고 확장한 개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완성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배를 의미하는 주舟의 기능을 갖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배가 있음으로써 강과 바다를
연결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을 연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배의 기능은 마치 생명체에서 피의 기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운주運舟에 그러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운주사는 절문을 들어서 걸어 올라가다가 보면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여 세운 9층 석탑이 앞을 가로막는다.
석탑의 각 벽면은 2중의 마름모형 방형 안에 4잎 꽃잎으로 된 박달나무 꽃을 한 송이씩 새겼다.
이로써 이 석탑이 무엇을 알리고자 하는지 가늠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겠다.
박달나무 꽃 잎의 수 4는 단군조선의 사유체계의 꽃인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의 기본이 되는 수 4를 의미
한다. 탑신을 덮은 옥개석의 수 9도 <천부경>에서 성수成數의 완성수인 9를 의미한다.
운주사의 운자도 운삼사성환의 운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운행하는 주舟자가 삼사三四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운주사 안이 단군조선의 정신을 수양하는 도량임을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옥개석의 바닥엔 단군조선에서 만들었던 동경銅鏡에 새겨 넣던 인자형人字形의 사선斜線 무늬가 새겨져
있다.
삼층석탑의 북쪽으로 끝에는 방형석탑이 있고, 그 다음에 방장으로 보이는 감실에 앞에 부처님, 뒤에
부처님 2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부처님을 모셨다고 하기보다 천지인天地人의 인人을 남녀男女 인으로
분화하여 모셨다는 설명이 합당하다고 본다.
인간화한 미래불을 모셨다고나 할까, 현생에는 인류의 신앙의 대상이 되신 부처님이고, 내생에는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짐을 훌훌 버어버리고 순수한 인간으로 환생할 그런 부처님 말이다.
이러한 부처님이 천지인에서 인을 실현하는 분이다.
이 역시 <천부경>의 주제인 일석삼극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전언에 의하면, 신라 말에 도선스님이 이 천불 골에서 탑과 불상을 새겼다고 했는데, 추측컨대 도선스님이
불교의 극성기에 미륵상생신앙으로 삼국들 통일한 신라가 그들이 받아들인 불교사상에서 국가멸망의
비운이 싹트는 것을 보고 불교를 대체할 대안종교를 찾다가 단군조선의 국교였던 덕교德敎에 귀의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분에게서 느껴지는 예언가적인 기질, 무당적인 기질, 불교를 초월하려는 반불교적인 기질이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는 진에게 멸망한 단군조선의 후예들이 버린 덕교를 다시 끌어들여 불교의 대안종교로 또 다시 단군왕검
이 덕교를 세상에 펼쳤을 때처럼 세상에 펼쳐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덕교의 요체를 화순의 천불 골에서 부활시키려 했던 의도가 화순이라는 지명에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후대에 그의 의도를 알 리 없는 불자들이 야외사찰을 훼손하는 전각을 다시 짓고
부처를 안치하여 그의 도력이 높은 뜻을 훼손하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방장의 북쪽으로는 원형석탑을 세웠다. 원형을 누층으로 쌓은 이 석탑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태양주기를
상징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천天을 원圓으로 표현하면 태양은 원으로 표현된다. 천지인을 상징하는 원방각圓方角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운주사에서 도선스님이 구현하고자 했던 천지인의 구도를 살펴보았는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원형탑은 해를, 방형탑은 달을, 감실에 모신 인물상은 복수의 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천지인이 이 땅에서 단군왕검이 세우신 단군조선시대에 덕교로 세상에 위광威光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무가 <칠성거리>에, “사람이 태어날 때는 왼쪽 어께에 일광패를, 오른쪽 어깨에 월광패를, 눈앞에
삼태성을, 등 뒤에 북두칠성을 타고난다.”고 하였다.
이 무가사설에서 사설한 그대로 탑과 인물상이 운주사 경내에 배치되어 있다.
운주사가 신비스러운 절로 세상에 알려지게 한 7개의 북두칠성 바위는 감실 왼쪽 산등성이에 돌을 맷돌
처럼 깎아 칠성의 형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칠성바위 동북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아래쪽을 향하여 쏟아질 듯이 불안하게 비스듬히 누워 있는
2기의 누운 불상을 만나게 된다. 부부형상으로 깎은 불상이다.
도선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며 석공들을 시켜 이 부부불상을 깎은 것일까?
과연 언젠가 이 부부 불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때가 오면 세상이 개벽하여 덕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는
덕교의 시대가 올 수는 있는 것인가? 도선스님이 칠성제석의 세계가 오기를 염원하며 여기에 안치해 드린
부부불상이 문득 내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
이 누운 불상의 머리가 아래쪽에 만들어 배치한 북두칠성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불상의 발끝이 북두칠성이 떠오르는 방위인 동북 간방을 가리키고 있다. 부부 부처님은 칠성제석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야외시계의 시계바늘이하는 일을 수행하고 계시다.
그때가 오면 감실 안에 모신 부부불상도 그만 좌선을 끝내고 툭툭 털고 일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시게 될
것으로 본다.
저 아래에 만든 감실 안 북쪽에 배치된 인물상이 마주 향하고 있는 하늘도 산등성이에 쏟아질 듯이 누운
부처님의 발끝이 바라보는 북두칠성의 방위와 동일한 방위를 가리키고 있다.
이들 누운 부처님에게로 오는 길목에 시위부처님 한 분이 서있다.
이 시위부처님 건너편에 탑이 하나 서있는데 탑신에 사출도四出圖가 새겨져 있다.
사출도는 지수화풍地水火風(토수화기土水火氣)을 의미하는 단군조선의 국시인 단군철학을 나타내는 도안
이다. 이 사출도를 계승한 고구려는 방형 안에 사출도를 그리고 해· 달· 음두성(여칠성)· 양두성(남칠성)을
배치하였다. 삼족오가 그려진 해를 왼쪽에, 토끼와 두꺼비가 그려진 달을 오른 쪽에, 떠오르는 북두칠성을
위쪽에, 지는 북두칠성을 아래쪽에 배치한 것이다.
사출도 안에서 화의 방위는 뜨는 북두칠성이 상징하고, 수의 방위는 지는 북두칠성이 상징한다.
왼쪽 방위에 나타내고자 했던 기· 풍은 해를 그려 상징했고, 오른 쪽 방위에 나타내고자 했던 토· 지는 달을
그려 상징했다. 이 벽화가 만주 길림성 집안현의 압록강 대안에 있는 장천1호분 천정벽화이다.
무가사설 <칠성거리>대로 탑과 인물상을 배치한 곳, 이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등성이에 부부부처님을
함께 배치한 곳이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절은 절 스스로 이 절이 불교
사찰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준다.
여기에 세워진 탑을 통칭 천불 탑이라고 한다. 실은 석탑과 석불을 합하여 100기(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
쯤 된다. 속설에 전해 오기를 “와불이 일어나면 개벽이 온다”고 했으니, 언젠가 부처님 부부가 일어나게
되실 때가 북두칠성이 꼬리를 감추는 새벽의 때요, 그때가 개벽이 될 것이다.
노중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