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여인 룻에게서 배우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자리한 베들레헴에서는 모압 여자 룻을 떠올리게 됩니다.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그와 혼인하여 다윗 임금의 조상이 되었다는 룻 말입니다. 룻기는 구약성경에서 드물게 이방인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은 책인데요, 이야기의 배경은 판관 시대입니다(1,1). 가나안의 기근 탓에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족이 ‘모압’으로 이주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율법에는 ‘모압족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면 안 된다’(신명 23,7)는 내용이 나오는데도 그곳으로 피난 가게 된 상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부터 이스라엘 사회는 이방인과의 혼인을 곱게 보지 않았는데, 나오미의 아들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습니다. 그러다 남편과 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측은히 여겨 새 삶을 꾸리게 합니다. 이때 이별을 슬퍼하면서도 제 길을 간 오르파와 달리,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와 봉양하고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룻의 이름은 ‘갈증을 해소하다’, ‘물을 주다’라는 뜻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나오미의 가족에게 샘물 같은 존재가 되어줍니다. 과거에는 모압족이 이방 예언자 발라암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지만(민수 22-24장), 모압의 후예인 룻은 조상의 허물을 대신 갚기라도 하듯 이스라엘의 후손에게 휴식처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룻기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한 모압 여인의 굴곡 많은 인생만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룻기의 작중 시기는 판관 시대이지만, 실제 저작은 바빌론 유배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바빌론에서 타향살이하다 귀향한 시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많아진 듯한데요, 그들을 무조건 배척하지 말 것을 권고하려는 목적으로 룻기가 쓰인 것 같습니다. 룻기에 따르면, 다윗 임금의 조상 가운데 하나도 모압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곧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가 반영하듯(느헤 13,1-3 등) 이방인과의 혼인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그들에 대해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목소리 또한 룻기를 통해 함께 들려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방인 며느리 룻과 유다인 시어머니 나오미가 서로에게 보여준 애정과 헌신은 당시의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렇게 룻기는 자칫 민족 배타주의로 흐르기 쉬웠던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 사회에 중용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룻 1,16). 룻은 이방 여인이었으나 시어머니 나오미가 가장 어려울 때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위기에 빠졌을 때 누가 진짜 친구인지 알 수 있다는 속담처럼, 모든 걸 잃고 상심한 시어머니를 한결같이 보살핀 룻은 참으로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예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고, 다윗과 구세주의 계보에도 이름을 올리는(마태 1,5) 영광도 입을 수 있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